‘아.. 노르웨이’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하는 동안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두 눈에 가득히 나무와 강 나무와 강. 초록으로 가득한 땅으로 내려앉았다. 노르웨이의 숲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노르웨이에는 어마어마한 숲이 있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멋진 숲.
세로로 길쭉한 나무가 빼곡히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 숲을 이룬 장면도 머릿속 상상에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에 깊게 박혀있었다.
노르웨이 여행을 앞두고 노르웨이 숲을 검색했지만 숲 자체를 보기 위한 명소는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왜 노르웨이에 가면 숲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이전에는 갖지 않은 의문이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으나 딱히 이유는 찾지 못했다.
구글에서 하루키 씨의 책이 검색되는 것을 보고 나도 이 영향을 받은 것인가 짐작만 해본다.
하루키 씨는 비틀스 노래에서 책 제목을 따왔는데 나는 'Norwegian Wood'라는 비틀스 노래를 알지 못했고, 하루키 씨가 이 노래의 Wood를 숲으로 의도하여 오역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이 책이 내방 책장에 있던 '상실의 시대'와 같은 책인지도 몰랐다.
책을 이전에 읽고도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노래가 언급되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지금 나와 달랐던 모양이다.
노르웨이 여행에 이 책과 동행을 결심하고 전자책을 다운로드했다.
하루키 씨 책에서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스 노래의 제목이고 노르웨이와는 딱 그 정도 연관성만 있다.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그런 독특함이 좋다. 책을 읽은 순간이 여행을 더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노르웨이 공항 지하에 있는 차량 렌트 회사.
직원이 실수로 내가 예약한 수동 차량을 다른 사람에게 줬다고 한다.
미안해하며 동일한 가격으로 오토 차량을 줘도 괜찮겠냐고 묻는 말에 흔쾌히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나로서는 반가운 상황이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수동을 선택했지만 운전면허를 취득한 이래로 스틱을 사용하지 않아서 공항을 출발하면서부터 어떻게 운전하나 걱정했었다. 전날 밤에는 수동 운전을 인터넷으로 공부하기도 했다.
노르웨이에서 자동차 여행을 시도할 생각이다.
북유럽으로 넘어오기 전에 구글링으로 노르웨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노르웨이 관광청 정보를 가장 많이 참고하고, 그 외에 다양한 여행자의 블로그도 확인했다.
기존에 본 적 없는 놀라운 자연 풍경 사진에 눈이 뜨이고 가슴이 뛰었다.
새로운 여행지를 앞두고 사전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은 또 하나의 여행과 같아서 설렘이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가고 싶은 곳을 구글맵에 표시하고 지도를 확장해서 그 장소들을 가만히 보다가 노르웨이를 여행하려면 차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명소가 노르웨이 전역에 흩뿌려져 있고 이동 반경이 굉장히 넓다. 버스나 기차, 히치 하이킹 등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한계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내 성향상 명소에 크게 집착하기보다 지나던 중에 눈길을 사로잡는 곳에 멈추고 싶어 할 가능성이 높았다.
노르웨이를 떠올리면서 줄곧 '대자연속으로'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 여행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효율적인 동선을 위해 표시한 곳을 이어서 하나의 원을 그렸다.
오슬로에서 출발해서 트론헤임 밑으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오슬로로 돌아가는 원이다.
원에서 크게 벗어나는 곳은 포기했다.
표시한 장소들은 이동의 척도 역할을 할 뿐 이동 경로 자체를 즐길 것이다.
혼자이기에 시간과 일정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언제든 멈출 생각이다.
곧장 현지 렌터카 사이트를 검색하여 가장 저렴한 차량을 예약했다.
캠핑카는 아니지만 나하나 건사하기엔 부족함이 없으므로 캠핑카와 다를 바 없다.
3000km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오래전 해변의 카프카가 출간되고 각종 매체에서 하루키 씨의 책들을 조명할 때, 그때 이 책을 처음 알게 됐다.
‘상실의 시대’, 책에 대한 첫 느낌은 ‘무겁고 어두운 성인의 책.’이었다. 단지 제목을 보고 그렇게 느낀 것이다.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표지 또한 기괴해서 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 때 도서관 4층 창가에서 처음으로 책을 펼쳤다.
군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해였다.
책의 색이 너무나 진해서 한동안 그 여운에 다른 책을 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색감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해 하루키 씨의 책을 시작으로 참 많은 일본 소설을 읽었다.
이전까지 접하지 못한 세상. 전혀 다른 느낌의 문체, 시선, 표현, 그 모든 문화의 문학들은 가히 충격적이어서 2학년의 봄과 그 한해를 떠올리면 그 느낌들이 있다.
상실의 시대와 노르웨이의 숲은 다른 제목 같은 책이다.
앞서 언급했듯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스의 노래 ‘Norwegian Wood’에서 가져왔는데 하루키 씨는 Wood를 숲으로 의도하여 오역했다. (비틀스의 노래에서는 노르웨이산 나무로 만든 가구를 칭하고 있다.)
1987년 일본에서 출간된 후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킨 책. 1988년 저작권 계약이 없는 상태로 국내 3개 출판사에서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이 없던 책. 1989년 문학사상사가 하루키 씨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한 뒤 ‘상실의 시대’로 제목을 바꿔 한국에 출간했고 첫해 30만 권이 팔린 책. 계약 종료 후 민음사와 계약으로 2013년 원제목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된 책.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가 회복 저작물에 해당하여 출간을 이어가고 있기에 두 개가 된 하나의 책.
그때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은 유유정 님 번역의 상실의 시대였고, 그때의 언어들에서 받은 느낌을 훼손하고 싶지 않기에 이번에 전자책도 문학사상사의 책을 골랐지만 마음이 좋지 않다.
노르웨이의 숲. 작가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고 나는 아름다운 청춘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곧장 오슬로를 떠나기엔 늦은 시간이었기에 호스텔을 예약했다.
예약을 했음에도 내 이름이 없을까 봐 늘 불안한 카운터에서 무사히 카드키와 침구류를 받아 들고서 방으로 올라갔다.
2만 8천 원가량의 36인 혼성 도미토리 룸이다.
불이 꺼진 방. 취침 중인 사람도 있고, 침대에 딸린 불을 켜고서 책을 보는 사람도 있다.
어둠 속에서 배정받은 침대를 찾아보니 만족스럽게도 문이 열리는 곳 뒤편의 침대 1층이다.
더 늦기 전에 식량을 구비하기 위해 서둘러 침구를 정돈하고 방을 나섰다.
과거 여행자들이 책과 지도와 귀동냥으로 정보를 얻으며 새로운 세계를 날마다 새로운 시선과 마음으로 탐험하던 것과 다르게 이제는 인터넷이 있고, 그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통신망과 노트북, 특히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정보를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검색할 수 있다.
물론 원하는 정보를 누군가가 인터넷 상에 제공해두었다는 가정이 전제이지만 여행에 대한 콘텐츠는 어딘가에 꼭 있다.
이번 노르웨이 여행도 인터넷 정보에 도움을 받아 경로를 잡았고, 식량 비축의 필요성도 전달받았다.
냉동 파스타와 생수 한 병, 미스터 리 라면 3개, 킷캣 한 봉지, 감자 과자 한 봉지를 샀다.
한편으로 손쉽게 정보를 얻은 만큼 좌충우돌할 경험을 잃는 듯해서 과거 여행자가 부럽다.
호스텔은 훌륭한 온수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온 몸에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었다.
몸에 얼마 없었을 유분기도 모조리 씻기어 나가서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는 온몸이 건조한 뽀송함으로 바짝 땅겼다.
그런 상태로 곧장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누이니 쏟아지는 잠을 버틸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