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마지막 날.
헬싱키 공항으로 가기 직전에 한식집 <한국관>에 갔는데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있었다.
여행 중에는 볼 수 없던 한국인을 마주하니 반가움이 일었지만 속내를 감추고 빈자리에 앉았다.
여기저기에 외국인도 있었다.
노르웨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여행이 될지 알 수 없으니 힘을 비축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찾아간 한식당이다.
외국에 있는 한식당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유쾌한 순간은 한국말로 주문할 때다.
메뉴를 딱히 살펴보지 않고 '사장님, 된장찌개 하나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면서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혼자 여행하다 보니 오랫동안 한국말을 할 일이 없었다.
된장찌개를 시키고 기다리던 중 뒤에 앉은 아저씨가 큰 배낭을 보시고는 혼자 여행 중이냐며 말을 건넸다.
4개월 전 한국을 떠나 세계여행 중이고 앞으로도 꽤나 많은 날을 여행하게 될 것이라는 내 말에 아저씨와 일행들은 탄성을 뱉으며 엄지를 들었다.
세계 여행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는 처음이라 신기하다는 말에 의아했으나 이내 이해했다.
세계여행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사방에 많아졌지만 실제 주위에서 세계 여행자를 만나는 건 아직 드문 일이다. 물론 세계여행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를 반경으로 식사를 마친 어머님 아버님들께서 몸을 돌려 작은 반원을 만들었고, 멀리 계시던 분들도 관심을 보이셔서 핀란드에 오기까지 이야기를 조금 더 꺼냈다.
필리핀에서 꾸준히 서쪽으로 이동하여 싱가포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을 거치는 동안 쌓인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하나씩 꺼내기 수월했다.
이동할 시간이 됐다는 누군가의 외침에 한분 두 분 일어서실 때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과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난 반가움을 담아 인사드렸다.
그제야 된장찌개가 나왔다.
그런데 잠시 후 나가셨던 분들 중 한 부부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검정 봉투에 담은 반찬을 건네주셨다. 본인들에게도 두 자녀가 있는데 하나는 서른여덟이라며, 아들 같다며, 남은 반찬이 이것뿐이라며 그렇게 건네주시고는 가셨다. 너무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하는 내 손을 말없이 잡아주시고 가셨다.
깻잎 통조림과 참치, 김, 고추장, 스팸이 있었다.
아들 같다며 주셨으니 부모님을 뵌 듯하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손을 잡아주실 때 누군가의 체온이 굉장히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고 가신 그 눈에 세상을 헤쳐 나가느라 고생이 많음을 다 아시는 듯했다.
'이렇게 여행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이 나이에 남들이 좋다는 직장생활을 멈추고 세상으로 나온 게 맞는지 모르겠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있는지, 변하고 있는지, 여행을 어디까지 해야 할지, 어떤 경험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많은 것이 어렵다.'
마음 한편에 눌러둔 생각이 봇물 터지듯 세어 나와 다 토해내고 싶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꾹꾹 눌렀다.
국밥 그릇처럼 큰 뚝배기에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된장찌개를 열심히 먹었다.
한 공기를 더 주문했고 주인아저씨는 두 공기 분량의 밥을 한 공기에 쌓아주셨다.
노르웨이로 오기 직전,
핀란드에서 이런 정을 받고 온터라 혼자 자동차 여행해야 하는 이 순간도 든든하다.
오슬로 호스텔에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여섯 시 이른 아침이었다.
커튼 사이로 비춘 햇볕에 드러난 방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침대가 비어있었는데 이른 아침 또는 밤중에 많은 여행객이 떠난 것 같았다.
광활한 노르웨이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오슬로를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내가 목표로 하는 지점은 차로 7시간 떨어진 곳이다.
전체 일정 중 오늘 하루를 가장 고생해서 이동하면 이후로는 이보다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숙소에서 지체할 필요가 없기에 서둘러 씻고 곧장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
오슬로를 벗어나면 아름다운 풍경이 연속될 줄 알았다.
몇 번이고 차를 멈춰 세우고 놀라운 풍경을 감상했다.
틀어둔 라디오에선 유럽 Top 20 곡이 연속으로 흘러나왔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기 시작한 건 이동 중 강가에 차를 세웠을 때다.
글은 주인공 와타나베가 비행기에서 비틀스의 <Norwegian Wood>를 듣고 과거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오코와 초원을 걷고 있다.
나는 작가가 나열한 모든 것을 머리로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과거를 더듬는 화자의 시선을 따라 초원과 나오코를 바라보고 화자 본인의 현재에 대해서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 잠시 눈을 뗐을 때 눈앞에 노르웨이의 강이 굉음을 내며 굽이치고 있었다.
나는 마음에 차오르는 어떤 감정을 마음껏 발산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남들은 여행 버킷리스트에 스카이 다이빙을 적는다는데 나는 마음껏 감정을 발산하고 싶다고 적었다.
살면서 여러 번 기쁨과 슬픔, 뜨거움과 울분을 마음껏 발산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기껏해야 야구장이나 노래방에 가서 소리 지르는 것으로 발산해온 게 지난 삶이다.
그래서 세계여행을 하면 마음껏 울부짖고 고함치며 내 감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주 작은 티끌까지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부끄러운 것은 세상에 두고 돌아오면 되니까.
막상 여행을 시작한 뒤 감정을 발산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껍질을 스스로 두르고 있었다.
필리핀을 시작으로 다양한 상황 속에 나를 놓고 껍질을 깨기 위한 시도를 했다. 이것은 일부 성공했고 일부 실패했다. 여전히 나는 감정의 껍질을 벗지 못했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 혼자가 된 순간, 심지어 주변에 아무도 없이 강 앞에 혼자 서있는데도 감정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
감정 발산이란 무엇인가. 고함 한번 마구 질러볼 수 있는 게 일반인의 감정 발산이다.
거센 강물이 굽이치며 내려오는 경이로움 앞에서 마음에 차오르는 감정을 소리 내어 내뱉고 싶었지만 주저하고 있다.
주변에 누가 있는 건 아닌지만 살피고 있는 나 자신이 안쓰럽다.
"와" 와 라는 외마디 감탄이 이렇게 어색하게 입으로 나와서 귀에 닿는다.
괜히 멋쩍어서 한 번 더 길게 "와아아아"라고 외쳤다.
왜 나는 감탄하나 내지르는데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인간으로 자라왔는가.
개방되고 싶다. 여기서 개방이란 내가 만든 인식의 틀과 감정의 껍질을 깨는 것처럼 내 안의 것에 대한 개방과 외부 자극의 수용성 모두를 말한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단한 껍질을 내 마음에 두르고 있음을 인지 한 건 세계여행을 나오자마자 필리핀에서부터였다.
한국을 떠나며 환경과 타인이 둘러싼 무형의 것이 벗겨지고 내가 잡고 있던 욕심도 놓자 비로소 내가 만든 단단한 껍질을 발견했다. 호두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필리핀에서 계속 그 노력을 한 것이다.
호두를 두드려 깨듯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까려고 발버둥 친 것이다.
운동을 하려면 그전에 스트레칭을 공들여서 한다. 근육을 유연하게 해서 가동성을 높이는 거다.
여행도 그렇다. 청춘의 발버둥도 그렇다. 사람이 새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도 그렇다.
마음부터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껍질을 두드려야 한다.
강이 만드는 굉음에 묻어 소리를 내 지른 뒤부터 다시 운전을 하면서 놀라운 풍경이 보이면 감탄사를 의식하여 내뱉었다.
내뱉은 것에서 끝내지 않고 크게 소리 지르고 환호했다.
노래를 부르는 게 일상인 민족의 아들인데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리도 어색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