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문장들 11

by 김창훈

운암동 58동에 살 때, 언젠가 한 번은 몸살감기에 걸렸다. 아주 어릴 때다.

약을 먹고 누워서 곤히 잠든 사이 굉장히 많은 땀을 흘렸다.

얼마나 잤을까 더위에 뒤척이며 눈을 떴을 땐 옷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몸을 일으키니 욱신거리던 몸이 몹시 가뿐하고 열도 나지 않았다.

아팠던 것이 모두 꿈이었던 것만 같아서 앉은 채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털고 일어났다.

엄마는 장을 보러 나가고 집에 없었다.

창밖에 해가 지고 있었고 모든 사물이 모호하고 몽롱했다.


노르웨이 바이킹 캠핑에서 잠든 밤, 새벽 네시에 온몸에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히터로 데운 방안이 몹시 뜨거웠다.

습도 유지를 위해 빨래와 젖은 수건 모두 방에 널어뒀기에 창문엔 수증기가 맺혔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공기가 앞다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몸이 매우 가볍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기에 히터를 끄고 창문만을 닫은 채 조금 더 잠을 청했다.

다시 눈을 뜰 때까지 굉장한 숙면을 취했다.




전날 258 도로에 비견할 만한 아름다운 곳에 가기 위해 아침을 서둘러 준비했다.

재스민 쌀에 평소보다 물을 많이 넣어서 죽이라도 먹자는 심경으로 휘저으며 계속 끓였는데 지금까지 먹은 쌀밥 중에 제일 괜찮았다.

'날리는 쌀'이라고도 표현하는 재스민 쌀로 내가 생각하는 식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물을 붓고 끓여야 했나 보다.

끓이는 동안 참기름이라도 있다면 한 바퀴 둘러서 고소함을 주고 싶었다.


서울에 오랫동안 자취하면서 죽을 끓여야 할 때가 있었다.

죽에는 종류가 참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 흰 쌀로만 만든 것을 최고로 친다.

씻은 쌀을 참기름을 둘러서 가볍게 볶고, 한 컵 정도 물을 부어서 끓이며 뒤섞어준 뒤에야 넉넉한 물을 넣어 끓이며 저어준다. 참기름을 더 넣어도 좋다.

전날 밤에 미리 쌀을 씻어서 불려놓고 자면 부드러운 죽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데 불려놓지 못해도 오래 끓이면 괜찮다.

씹히는 것이 없는 죽을 만들 때는 불린 쌀을 믹서기에 한번 갈아서 조리를 시작하면 쉽다.

이 경우 쌀이 부서진 정도에 따라 정말 씹힘 없이 묽다.

소금이나 간장을 넣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리 중에 가미하기보단 다 만든 죽을 먹을 때 각자 비법으로 만든 양념장이나 간장, 반찬과 곁들이는 게 좋다.


가방에서 고추 참치캔 하나를 꺼내서 흰쌀밥과 참치 만으로 풍족한 아침 한 끼를 즐겼다.

참치캔 안에 남은 양념과 부스러기기 아까워서 남은 밥을 캔 안에 채워서 비벼보니 충분히 맛있는 참치캔 밥이 만들어졌다.

네 스푼이 들어갔다. 뚜껑을 그대로 위에 덮어서 점심 도시락으로 삼았다.

전날처럼 저녁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식사할 장소가 없기 때문에 훌륭한 대안이었다.


캠핑장을 떠난 직후부터 많은 비가 왔다.

비 올 때는 더욱 독서에 집중하기 좋아서 경치가 괜찮은 곳이 있으면 차를 세우고 전날부터 집중해서 읽던 부분을 이어서 읽었다. 비는 곧 멈출 것이다.

이동하는 동안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날씨 변화가 있었다.

이곳에서 기상을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Geiranger 쪽으로 이동 중에 비가 멈추고 해가 떴다.


Geiranger는 피오르드(Geirangerfjorden) 시작점에 있는 마을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Dalsnibba 산에 있는 전망대에서 Geiranger 쪽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대단하다고 한다.

15번 길을 따라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 63번 길을 따라가야 Geiranger까지 갈 수 있다.

이 63번 길 또한 내셔널 투어리스트 루트에 속한다.

이 길은 양쪽에 산맥을 두고 협곡을 달리는 것과 같다.

지대가 높아서 해수면이 이곳까지 차오르지 않았지만 아마 빙하가 만든 협곡일 것이다.

때문에 이곳을 지나가는 것은 물이 빠진 피오르드 밑바닥을 드라이브하는 것과 같다.

지나는 모든 길이 아름답지만 장소마다 달라서 천혜의 자연이 만든 신비를 보러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노르웨이를 찾아올 수밖에 없나 보다.


노르웨이 여행 3일 차에 비포장 된 산길을 간 적이 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으로 가다 보니 그렇게 됐다.

도심형 해치백 골프 차량으로 가당치도 않은 길이었다.

처음에는 지름길인 줄 알고 갔지만 생각보다 관리가 안된 산길을 올라가면서 의구심을 갖다가 뒤로 넘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경사에서 차를 멈췄다.

길이 아니구나. 그때 깨달았다.

차가 뒤로 미끄러지지 않는 것을 확인 한 뒤 차에서 내려서 앞쪽에 길을 살폈다.

뒤로 되돌아 가보려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자마자 차가 뒤로 미끌리며 좌측으로 회전했다.

기겁하며 핸들을 틀어 앞으로 전진하여 고정하고 탄식했다.

처음 의구심을 가졌을 때 길을 살폈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길을 올라와서 정상적인 도로에 도착했을 땐 차의 절반이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고 식은땀으로 손과 등에 축축했다.


63번 길을 가는 중에 산비탈을 타고 흐른 물이 고여 호수가 만들어진 벌판에 차를 세우고, 잠시 쉬는 동안 여전히 지저분한 차를 봤다.

비가 그렇게 많이 왔는데도 씻기지 않은 것은 모두 진흙이 남긴 흔적이다.

차에서 수건을 꺼내서 조심히 털어내고 물을 뿌려 닦았다.

네가 있는 덕분에 내가 이렇게 노르웨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오랫동안 나는 같은 자세로 소파에 누워서, 그 당시의 일을 잇따라 떠올리고 있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 방에 누워 있자니, 여태껏 그다지 떠오르지 않던 옛날 일과 정경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떤 기억은 즐거웠고, 또 어떤 기억은 조금 슬펐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dalsnibba에서 모든 것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고, 몹시 작고 오밀조밀한 세상은 게임 지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내려다본 풍경보다 Geiranger까지 가는 모든 길이 더 대단했다.

양쪽에 산맥을 두고 협곡을 운전해서 내려가는 동안 크고 작은 암석들이 그 길을 만들어서 차 안에 있는데도 몹시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산 위 전망대에서 밑을 내려다본 탓인지 게임 미니맵을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Geiranger가 몹시 아늑한 마을로 느껴져서 이곳에서 하루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63번 길을 따라 계속 앞으로 이동했다.

운전을 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동안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리에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를 여행하는 동안 계속해서 잠들어있던 기억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정신없이 기억을 붙잡고 꼬리를 물다 보면 나중에는 옮겨 적으래야 적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버려서 아주 일부만 되새겨 기록할 수 있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자유로움 때문일까, 다양한 자극 때문일까, 과거의 단편과 비슷한 무언가가 스쳐갔기 때문일까.

기억을 기록하다 보면 새로이 생각나는 것들이 있어서 메모하던 핸드폰을 넣고 맥북을 꺼내어 바삐 타자를 쳤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이 이런 작용을 돕는 듯했다.


63번 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Trollstigen, 요정의 길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이곳에 도착할 때쯤부터 많은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했다.

그대로 지나쳐서 숙소를 예약한 곳으로 이동했다. Alesund Airport Hotel.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별관에 있는 싱글룸은 단층 벙커 형태로 독특한데 방안에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있고 창문 밖에 혼자만의 작은 테라스가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바닷가 방파제에 차를 세우고 앉아서 한참 동안 바다를 봤다.

나는 바닷가에 태어나지 않아서 바다를 책으로 읽고 텔레비전에서 보고 라디오로 들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처음 바다를 보기 전까지 내게 바다란 미지의 세계였다.

동순천 다리 밑에 흐르는 강이 내게는 바다에 가까웠으나 사람들은 바다란 끝도 없이 넓고 깊다고 했다.

기억 속에서 여수에 있는 이모집에 놀러 갔을 때 다 같이 오동도에 가면서 본 바다가 내게는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간 바다가 있었을 진 모르겠으나 해수욕장의 모래사장과 물놀이가 아니라 바다라는 존재의 인식은 내 머릿속에 그렇다.

파아란 바다와 파도, 갈매기 소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바다 냄새. 모두 낯선 것이었다.

여수 바다에 엄마 손에 끌려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그 바다를 찾아갔을 것이다.

늘 바다를 보면 마음이 좋다.




밤 열한 시에 청량리 역에서 기차를 탔다.

술을 마시고 피시방에서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가 "지리산에 갈래?"라는 형들 말에 가자고 답했다.

유훈이 형, 덕수 형, 건이, 진우와 나 이렇게 다섯 명이서 그날 아침에 헤어져서 저녁에 다시 만났다.

지리산 노고단을 올라간다는 형들 복장이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고 우리 또한 평소와 다름없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야간 기차가 구례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입석 칸에 앉아서 이야기하고 떠들며 게임을 하다가 도착 직전에서야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는 기차 칸에서 떠들썩한 것이 흔히 보는 풍경이었다.

게임의 벌칙으로 다음칸에 들어가서 승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물구나무를 서고 팔 굽혀 펴기를 해도 모두 그것에 박장대소하며 웃고 손뼉 칠 뿐이었다.


깜깜한 새벽에 구례역에서 택시를 타고 기사님이 소개해준 민박에 짐을 풀고서 바로 노고단으로 가는 산 입구로 향했다.

등산 입구에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전문 장비를 착용하고 등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고 총각들 후레쉬는 있소?' 없었다. '뭐 먹을 거는 있고?' 등산 후에 먹을 생각으로 민박에 두고 왔다. 조심해서 우리 뒤에 따라오라는 말에 우리는 멋쩍게 웃으며 산을 올랐다.

모든 게 즐겁기만 했다.

동이 트면서 드러난 산길엔 곳곳에 눈이 녹지 않았고, 계곡에는 대형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고드름을 따서 갈증을 채우고, 칼싸움을 하고, 경쟁하듯 망가진 사진을 찍으며 쉴 틈 없이 웃었다.

얇은 옷을 입고도 추운지 몰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무모했지만 누구 하나 등산화를 신은 사람도 없었다.

정상에서 내려와서 숙소 평상에 앉아 김밥을 먹을 때는 우리 발에서 나는 발 냄새 때문에 김밥이 상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또 한참을 웃으며 허겁지겁 먹고 잠들었다.

광양 산수유 축제를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모든 게 즉흥적이었고 근심 걱정이 없었다.

순간을 더 즐기는 것에만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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