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문장들 12

by 김창훈

머리카락이 길던 때의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한 그저 아주 평범한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녀는, 마치 봄을 맞아 바깥세상으로 막 뛰어나온 작은 동물처럼 싱그러운 생명감을 온몸으로부터 뿜어내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마치 독립된 생명체처럼 즐겁게 요동치고 웃고 화내다 어이없어하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생기발랄한 표정을 본 것이 무척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감탄하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거울을 보면 여행 중의 내가 얼마나 싱그러운 생명감을 내뿜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숙소가 Alesund라는 도시 외곽에 있기 때문에 도시를 들렀다가 전날 악천후로 즐기지 못한 Trollstigen 길을 가려한다.

도시 안으로 굳이 들어가려는 것은 구글에서 말도 안 되게 멋진 건물로 도시 전체가 형성된 것을 사진으로 보고 처음부터 방문을 계획했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Alesund는 1900년대 초반에 대규모 화재로 대부분의 주택이 소실된 이후 아르누보 양식으로 도시를 재건했다.

소규모 도시의 전체 건물이 이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어느 골목에 들어서도 눈이 즐거웠고, 언덕 위에서 도시 전체를 눈에 담을 때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이 도시의 전경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공유했을 때 포토샵으로 보정했는지 질문을 많이 받았다.

도시의 건물 형태뿐만 아니라 색감이 대단히 감각적이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이 건물 양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날씨가 좋은 것을 보고 Trollstigen으로 출발하면서, 마음속에 Alesund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 멋진 도시에 숙박하는 것을 염두하고 있었다.


시야가 앞으로 쭉 뻗어있는 650번 길 위에서 아침에 만들어둔 참치캔 밥을 먹으며 혼자만의 피크닉을 즐겼다.

날씨가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조바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Trollstigen으로 가는 길 자체를 잘 즐기려 노력했다.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악천후 상황이 된다면 Trollstigen은 다음으로 미루고 지나치면 된다.


결과적으로 보고 싶은 풍경을 모두 봤다.

먹구름이 다가왔지만 Trollstigen을 충분히 즐기는 동안에 비가 오지 않았다.


끝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땐 전망대 쪽에 있는 휴게소에서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연속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했고,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앉아있었다.

아름다운 도시 Alesund에서 낭만적인 하루를 더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을 하곤,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시내 숙박을 예약했다.

예정돼있는 경로를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셈이다.


Alesund에 도착할 무렵에는 보슬보슬 비가 왔다.

오래된 호텔에 차를 세우고,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우산을 쓰고 나왔는데 과거 어딘가를 거니는 느낌이어서 흔들리는 가로등 불빛처럼 시야가 어지러웠다.

아주 늦은 저녁이었기 때문에 펍들만 문을 열고 있었고 재즈가 흘러나오는 오래된 펍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몸속의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를 메워줄 것도 없는 채, 그것은 순수한 공동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몸은 부자연스럽게 가벼웠고, 소리는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나는 평일에는 이전보다 더 충실하게 대학에 다니고 강의에 출석했다. 강의는 지루하고 같은 과 녀석들과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없었지만,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나는 혼자서 교실 맨 앞줄에 앉아서 강의를 듣고,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서 식사를 했고, 담배 피우는 것을 그만뒀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내 하루가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면 더욱 현실에 집중했다.

매일 여섯 시에 일어나서 누구보다 빠르게 회사에 갔고, 궁금해하지 않는 이유를 확인하고, 이유도 모른 채 수행하는 업무 방법은 변경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조직문화를 스스로 공부해서 계획하고 제안했다. 주말에는 상담심리학을 배우러 학교에 갔다.

하루는 바쁘게 돌아갔다. 다만 지인들과의 약속은 서서히 줄여나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면의 갈증과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 위해. 이게 내 청춘의 일부 과정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고민 끝에 청춘의 발버둥을 치는 중에 한 방법으로 세계여행을 선택했다.

기존의 삶을 멈출 필요성을 느꼈고, 어떻게 살 것인지 제대로 생각해 볼 기회가 필요했다.

여행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여행이 연속되는 세계여행에 특별함이 있다고 믿었다.

기존의 삶을 멈추고 '나'와 세상을 탐구한다면 세계여행이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불안하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시간이 무의미 한건 아닌지 불안하다.

하지만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발버둥을 통해 내가 올바른 길을 향해 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정말이지 굳게 믿고 있다.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많은 것이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길 위에서 많이 울었다. 나 자신에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약한 소리가 마음에서 새어 나올라 치면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라며 악을 써댔다.

그래 나는 이제 노르웨이 대자연을 향해 고함치고 악을 써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수그려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데 그게 내가 나로서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는 아니라고 발버둥 쳤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도, 세상 사는 게 그렇다는 말도, 남들처럼, 되는대로, 편하게 이 모든 말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깨져라, 내 마음을 둘러싼 막이 깨지거나 나를 둘러싼 세상이란 벽이 깨지거나 둘 중에 하나가 깨져라. 하고 바랬다.

나는 지지 않겠다고 했다. 넘어지고 실패하고 낙망하는 건 상관없지만, 적어도 타인의 가치관에 무너지지 않겠다. 부자가 되지 않아도, 물질이 가난한 삶이어도, 타인에 비해 많은 것이 느려도 괜찮다. 나의 다음을 내가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괜찮다고 다독였다.

이런 나의 갈망이 혹여나 틀린 것이면 어쩌나. 대체 먹고 자는 것이 전부인 이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모아둔 돈과 내 청춘의 시간이 타국의 길 위에 뿌려지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의문이 고개를 쳐들어도 그때의 내가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선택했음을 믿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내가 싫어서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다. 부정하고 싶은 과거는 하나도 없다. 언제나 나는 최선을 다해서 고민하고 결정했고, 그 선택이 모두 좋다. 정말 사랑스러운 날들이었다.

이제 때가 됐을 뿐이다.


조급해선 안된다. 천천히, 하나씩.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이야, 초조해하지 않는 거야." 하고 레이코 씨는 내게 말했다. "이게 내 또 하나의 충고야. 초조해하지 말 것.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일이 얽히고설켜 있어도, 절망에 빠지거나 조바심이 나서 무리하게 서두르면 안 돼.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서서히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할 수 있겠어?"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실제로 세계여행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적합했다.

세계여행은 그 시작과 근본이 나의 일상, 나의 거주지로부터 떠나는 것에 있어서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이미 많은 실타래를 끊어내고 시작한다.

불필요한 것들이 단번에 끊어져버리니 풀어야 할 마음의 실타래도 단순해진다.

서울에 거주하는 동안엔 나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것보다 새로운 실이 엉키는 게 늘 빨랐다.

그리고 이 여행은 내가 기존에 살아보지 못한 여행자의 삶을 살아볼 기회였으며, 내가 겪어보지 못한 타 국가의 문화를 겪어볼 기회였다.

나라는 사람의 세상은 내가 맺는 인간관계와 내가 겪은 것들, 내가 아는 것들로 구성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세계가 이 여행 동안 계속 확장된다.

그러니까 세계여행도 그냥 생각 없이 이동하기보다 여기에서는 어디를 가볼까 궁리하고 무엇을 할지, 어떻게 여행할지 고민해야 더 풍부해진다.

타인이 정해둔 길을 따라가는 것도 좋고, 타인이 가지 않은 곳을 가는 곳도 좋다.

모든 게 나한테 집중되어있으면 가장 좋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 외에는 여러 글에 나눠 이야기하고 있으니 재차 언급할 필요 없을 것이다.


다만 여행도 잘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모든 활동에서 가장 그 활동을 잘하는 것, 그 활동을 이들 중 진정한 승자는 그 경험 자체에 푹 빠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게이치 않고, 누군가 미련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자신이 가진 것을 그곳에 진정성 있게 쏟아내는 사람들이 늘 승자였다.

사랑도 그렇다. 누가 더 덜 좋아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랑을 할 때 온전히 사랑에 마음을 쏟은 쪽이 늘 승자다.

쏟아지는 마음을 받기만 한쪽은 마음 우쭐해할 필요가 없다.

헤어질 때 패자로써 초라해질 테니까.

그러니까 여행도 여행 그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고 몸과 마음을 쏟아버리는 쪽이 제대로 여행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이번 여행은 어떻게 하지? 이렇게 여행하는 것이 맞나? 이 여행을 왜 시작했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되새기고 고민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 있다.

그래서 타인의 이목을 신경 쓰거나 타인에게 자랑할 틈이 없다.

나에게 자랑이면 그게 스스로에게 최고의 칭찬이고 위안이다.

이를 위해 SNS를 멀리하고 있으나 SNS가 얼마나 강한 유혹을 갖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북유럽으로 넘어오면서 USIM칩을 설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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