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위축된 마음이 없었다

나도 고마워

by 김창훈

홈스테이,

교육의 지원이 잘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가서 가정집에 머물며 교육봉사를 한다.

치앙라이에서 기존에 지원하던 학교들도 열악한 환경을 갖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봉사자의 손길이 필요하고 외진 곳으로 간다.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에는 학생의 집에서 잔다니 멋진 봉사 프로그램이고 봉사자에게도 색다른 경험이다.

홈스테이 참여 여부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데 교육 봉사팀 중에서 홈스테이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나를 포함한 교육팀 일곱 명은 아침부터 분주히 침낭과 짐가방, 교보재를 챙겨서 차에 탑승했다.

침낭을 챙기고 군용 백처럼 짐을 든 청년들이 트럭 뒤에 올라타니 영락없는 파병이다.


꽤나 먼 곳까지 차를 타고 이동해서 치앙마이와 치앙라이의 사이 그 어디쯤에 도착했다.

학교는 산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교실 창문 밖은 온통 푸르렀다.

현장 상황이 바뀌어 학생들의 집으로 흩어져서 숙식하는 대신 학교 맞은편 밭에 아담하게 세운 숙소에서 봉사자들끼리 합숙하게 됐다.

하나의 방에 큰 침대가 2개 화장실 1개 사람은 일곱이다.

교실처럼 숙소 창문 밖은 산과 들로 푸르렀다.

태국 가정에서 학생과 함께 지내는 경험 대신 합숙의 경험을 얻게 됐고, 학교에서 진행할 교육 봉사는 계획과 동일하게 진행됐다.

저학년을 대상으로는 놀이를 중심으로 단어를 가르치고, 고학년을 대상으로는 문장 구조를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겠지만 여전히 나에게도 영어가 숙제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홈스테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홈스테이 자체에 대한 것보다 교육팀 봉사자들과 숙식부터 봉사까지 24시간 함께하면서 온전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언어적인 두려움이다.

홈스테이는 온전히 시간을 함께하는 작은 커뮤니티이기에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다.

그렇지만 막상 이곳에 와서 지내는 동안 그런 것은 느끼지 못했다.

말을 다 알아듣고,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할 수 있어진 건 아니지만 어쩐지 괜찮았다.

봉사자의 관계에서 친구로 조금 더 친해지면서 마음이 느슨해지자 일어난 변화다.


아침에 숙소 문을 열고 나와 주위를 둘러보면 학교가 보인다.

봉사자들과 도로 옆으로 붙어 일렬로 학교까지 걸어가다 보면 크고 작은 아이들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서 학교로 오는데 그 광경이 마치 내게로 오는 듯하다.

‘어서 오렴 얘들아’


오전에는 어린아이들과 수업으로 방방 뛰고, 오후에는 중학생들과의 수업으로 오전보다 차분한데 어느 쪽의 수업이나 시끌벅적하다.

수업 사이에 있는 점심은 참으로 꿀 같아서 많은 양을 먹고도 늘 더 먹고, 식사 이후엔 교무실 의자에 저마다 쓰러져 낮잠을 잤다.

학교가 끝나면 저녁을 먹고 다양한 게임으로 자투리 시간을 즐기다가 해가 지는 것을 시계삼아 아쉬움 속에 일렬로 집으로 돌아갔다.

봉사와 놀이의 경계가 희미하고 농담과 놀이가 일상이다.

가수 권나무의 노래 <어릴 때> 가사처럼, 오늘은 무얼 하고 놀지 생각에 이미 흙과 놀고 있던 손으로 미 도레미 노래를 부르던, 걱정 없이도 아무 생각 없이도 하루를 실컷 놀고서도 해가 질 때를 조금만 더 늦추고 싶었던 꿈만 같던 어린 시절 같았다.

어떤 때는 책가방을 벗어던진 아이들 틈에 껴서 같이 축구를 하고, 농구공을 빌려 투 바운드 게임을 했다.

승자가 없는 이 게임에 마지막은 하프라인 부근에서 누가 먼저 골을 넣는가 인데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와서야 멈출 수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봉사자들은 한집으로 돌아가니 그곳에서 잠들기 전까지 퀴즈와 대화가 이어진다.


개인 정비를 하는 동안 책상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샤워를 마친 이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갑자기 퀴즈를 시작했다.

서구권의 인물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퀴즈를 내는 진행자와 그 문제를 맞히는 아이들이 신기해서 쓰던 일기를 멈추고 멍하니 바라봤다.

역사를 머리에 담고 사는 사람들이구나.

이런 퀴즈를 즐기는 상황이 생소하고 유쾌했다.

페드로가 같이 하자고 연거푸 나를 불렀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이 수능과 동시에 모두 휘발된 탓에 도저히 껴들 수 없어 난감하게 웃었다.

역사 퀴즈는 자연스럽게 난센스로 넘어갔다.

엉뚱한 답들에 깔깔대며 웃고, 기발한 답에 찬사를 보내다 보니 퀴즈도 놀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이곳에서 매 순간 무엇을 하고 놀지 궁리하다 보니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

사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어야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교실의 아이들은 보이는 모든 것을 활용해서 놀이를 만들고 세상을 즐긴다.

수업을 마칠 때면 한 번에 왁자지껄해지며 삼삼오오 고무줄, 공기, 리코더, 술래잡기, 그리기 등으로 활력이 가득한 아이들을 본다. 세상이 놀이터다.

어른이 된 나도 세상을 놀이터 삼아 즐기고 싶다. 순간순간 삶이 더 풍부해지도록.


이게 홈스테이 봉사지의 하루다.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간지럽다.

모든 순간들이 눈부시고 낭만이 가득하다.

나의 학창 시절의 하루도 그랬다.

특히 대학생 때의 나는 굉장했다. 늘 마음이 이상했다.

늘 설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몽글몽글한 마음으로 살았다.


해가 뜨고 질 때

교내에 사람들이 이리저리로 움직이는 틈을 지나갈 때

수업 중간의 공강 때

오늘 수업이 끝나가고 자유의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잔디밭에 둘러앉아서 도시락을 먹을 때

동아리 봉사를 갈 때

개강 총회 때

대자보 만들어 붙일 때

동아리 테이블을 밖에 빼고 신입생을 모집할 때

도서관 안에서 책을 찾을 때

내가 좋아하는 창가에 앉아서 책을 볼 때

수업이 끝나고 저녁을 먹자며 모여서 그다음은 뭐 할까 고민할 때

숯가마에서 양념치킨을 먹고 2차는 지짐이라고 외칠 때

오고 가다가 선배들, 후배들을 볼 때

대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할 때

정해지지 않은 내 미래가 기대될 때

가만히 있어도 계절의 온도가 내 마음을 간지럽힐 때

내게 대단히 낭만적인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낼 때

그럴 때마다 마음이 이상했다. 그럴 때가 있었다. 사실 4년간 늘 그랬다.


하루는 비가 왔는데, 창밖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어도 절로 웃음이 났다.

웅웅 울리도록 실내가 시끄러워지고, 내리는 비 사이로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이 들려왔다.

빗자루로 기타를 튕기고 손바닥으로 드럼 치는 아이가 있었고, 정체불명의 노래를 부르는 아이도 있었다.

로버트가 골목에 숨어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이 좋아서 끝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뒀다.

모두 흠뻑 젖어서 머리가 납작했다.

피하려던 비도 놀다 보면 즐거워서 비 맞는 것이 아무것 아니게 된다.

'이렇게 살면 안 되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두벌의 옷으로도 욕심낼 것 없이 이렇게 살면 안 되나’

이쯤엔 더 이상 위축된 마음이 없었다. 티끌이 없었다.


학교를 떠나는 날 편지를 한가득 받았다.

“안녕하세요 또 만납시다”

삐뚤빼뚤하게 쓴 한글이 편지마다 적혀있었고, 아이들은 나를 둘러싸고 인사와 손길을 건넸다.

함께 한 시간이 같은데도 같은 동양 사람이기 때문인지 체구가 작기 때문인지 아이들이 나를 편하게 생각했다.

같은 아시아 인이니까 그렇다며 앤드류가 투덜댔지만 인기 없는 자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누가 자신을 애틋하게 대했는지 아는 법이다.

한 번도 말 걸어 보지 않은 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와 한국어로 고마워라고 했다.


나도 고마워.

이전 15화스스로 택하는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