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일곱 번째 편지
식당문을 열었을 땐 직원들이 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인사와 함께 환한 미소를 보낸 뒤 큰 접시에 몇 가지 음식을 서둘러 담고, 오믈렛과 허브티 한잔을 요청한 뒤 외부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흰 셔츠를 입은 남성이 미소를 띠며 다가와 주문한 것을 서빙해 주고 되돌아갔다.
대체로 열악한 환경 탓에 숙박을 이용할 때 제공되는 서비스에 꽤나 우대받는 느낌이 든다.
정갈한 방 상태와 큰 침대, 포근한 침구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게 낡고 어딘지 지저분한 구석이 있지만 장기간 인도 여행을 선택한 여행자가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뜨거운 허브티가 몸을 훑고 내려가 사지를 이완시키는 동안 코에 맴돈 향과 입안의 깔끔함이 만족스럽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진한 생강향의 짜이 한잔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농밀한 질감으로 인한 텁텁함 보다 산뜻하고 따뜻한 허브티로 몸을 이완하는 것도 좋았다.
오믈렛을 먹는 동안 계란 특유의 포슬거리는 느낌이 입 안에서 즐겁다.
삶은 달걀이나 프라이, 오믈렛처럼 계란 관련된 걸 먹을 때면 계란을 하루에 한 개라도 챙겨 먹으라던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엄마의 말이 대개 그렇듯 명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
숙소에서 가까운 포트는 유독 높은 위치에서 거대했다.
어디에서나 옥상에 올라서면 포트를 먼저 올려다볼 법했다.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 두르며 시선을 포트에 뒀다.
여행하는 동안 여백의 시간이 많고 자주 상념에 잠긴다.
여백의 시간을 맞이한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 정적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신체를 늘어뜨리고 멈춰있더라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힘들다.
생각이 끝없이 떠오르고 전환되고 이어진다.
이것이 여행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학생과 직장인이던 나의 일상에는 그런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갖는 상념의 시간이란 잠들기 직전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상념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기 전에 잠들며 끝났다.
물론 의지를 갖고 시간을 확보하고자 하면 못할 것이 없었지만.
상념 중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것들은 내용과 무관하게 모두 소중하다.
살면서 많은 것을 잊고 있었고 몇몇은 잃었다.
망각이란 축복이라 생각하지만 때론 기억에서 잊히는 많은 것들이 서글프다.
여행에서부터 그 이전으로 기억을 되짚어 본다.
주변 건물 옥상은 대체로 한가했고 몇몇 사람들이 빨래를 널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건물 아래서 분주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해는 어느새 중천에 떠서 낮에 가까웠고 더위가 주는 늘어짐이 세상에 만연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후 신논현역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다니던 회사가 강남역에 있었기에 매일 강남대로를 걸었다.
아침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 분주히 걸었고 밤에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올곧게 걸었다.
부지런한 하루를 보내고 지인들과 술 한잔하고 돌아오는 늦은 밤에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불야성 도심에 수많은 행인들 곁을 지나며 삶이 조금 공허하다고 생각했다.
햇살 좋던 어느 날 무심코 올려다본 나무에 초록의 여린 잎사귀와 소복한 흰 꽃잎이 피어있었다.
싱그러웠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나무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슬쩍 부는 봄바람에 몸을 흔드는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찰랑거렸다.
이팝나무라고 했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동안 강남대로변에 늘어선 가로수가 모두 이팝나무라는 걸 알았다.
늘 걷던 길이었지만 그 나무가 강남대로에 심겨 흰 꽃을 피운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다.
햇볕 좋고 바람이 선선한 5월이었고 봄이었다.
나무 하나 알았을 뿐인데 세상이 밝고 싱그러웠다.
이후로 봄이 좋았고, 봄이 올 때면 자연스럽게 이팝나무의 싱그러움을 떠올렸다.
지인들에게 벚꽃이 진 뒤에 싱그러운 이팝나무가 핀다고 말하길 반복했다.
몇 해가 더 흘렀고 내 삶도 이팝나무처럼 싱그럽게 피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한 번의 봄이 올 때 회사를 멈추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게 긴 여행의 시작이었다.
고민은 길었지만 떠나겠다는 말은 한번 뱉고 곧장 실행에 옮겼다.
소식을 들은 많은 이들이 앞날을 응원했고, 의아해하거나 섭섭해하는 이도 있었다.
섣불리 말을 내뱉는 것은 하나의 사슬을 늘리는 셈이고 지체하는 것은 용기를 깎아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가야 한다는 확신은 있었다.
해외여행을 가면 되지 무슨 세계여행씩이나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을 굳이 납득시킬 필요는 없었다.
당면한 인생의 과제를 말하는 이도 있었다.
결혼, 집, 차, 자녀 등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은, 언젠가, 다음에’라는 말로 귀결됐다.
시간은 언제나 균일하게 흐르고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와 같을 수 없었다.
왜를 묻는 이들이 가장 많았으나 그들이 쉽게 건넨 것처럼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길었던 고민의 기간과 결심의 무게만큼 입은 쉬이 열리지 않았고, 단편적인 말과 어설픈 단어의 조합으로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단편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애써 설명해 보려 노력한 날도 있었다.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올 때면 나의 빈곤한 언어나 상대의 이해만큼만 전달된 것에 입이 썼다.
쉬이 답한 날과 상대가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골라 전한 날도 입이 썼다.
딱히 내 말을 듣지 않고 쉽게 재단하는 상대를 만난 날엔 마음에서부터 쓴맛이 났다.
마음에 붙은 모든 진득한 것은 이륙과 동시에 사라졌다.
세계여행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했으므로 여행 중 계속 방법을 고민했고, 결국 여행의 방법은 여행을 시작한 이유와 연결되어 있단 걸 나중에 알았다.
이유의 끝은 나란 사람에 닿아 있었기에 쉬이 설명할 수도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나 보다.
마음이 쏟아진 글을 책이 될 정도로 모으면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을까.
싱그러운 나를, 싱그럽고 싶던 내 삶의 갈망을.
숙소를 나와 왼쪽으로 발을 디뎠다.
포트까지 곧장 걸으면 삼십 분이면 도달할 수 있지만 곧장 가지 않는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한 여태껏 그래왔다.
하루의 여행은 늘 길 위에 있었다.
길이 한번 꺾어진 후엔 좁은 골목이 있었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모여있었다.
그 길의 끄트머리에 좌판을 펼친 이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벽을 등지고 가방과 장신구를 펼쳐 둔 이가 있는가 하면 도무지 판매될 것 같지 않은 골동품을 늘어둔 이도 있었다.
골목을 지나서부터 넓게 트인 광장은 조금 비탈진 흙길이었는데 좌판과 천막을 펼친 상인들이 중구난방으로 자리 잡았다.
상인과 여행자, 거주민, 팔려는 이들과 사려는 이들의 말과 움직임이 섞이며 거대한 에너지가 역동했다.
유별난 소음이 없는대도 시끄러운 공간에 서있는 느낌을 받았다.
흙길에선 수시로 먼지가 피어올랐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지만 배낭 여행자가 짊어질 무언가는 없었다.
한낮의 마을은 대체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낮은 건물 사이로 난 골목은 어느 쪽으로든 결국 연결됐고 골목과 이 층집 옥상마다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옥상위 아이들 중 하나는 꼭 손에 연을 붙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 역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캠핑장에 피워둔 불, 햇살이 부서지는 강물, 바닷가의 파도처럼 아이들이 띄운 연도 생각 없이 바라보게 하는 끌림이 있었다.
인도 이름 모를 동네의 골목길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같았다.
어릴 적 순천 조곡동 좁은 골목을 뛰어다니던 때를 생각하며 골목의 경사진 곳으로 계속 걸었다.
반드시 높은 곳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트에 올라가서 전망을 내다보는 것이 인도 도시마다 즐길거리로 여겨졌다.
길이 가팔라질 무렵엔 사람들이 많아지더니 거대한 입구에 다 닿을 쯤엔 수많은 군중 틈에 있었다.
타국의 여행자뿐만 아니라 내국인들도 휴일동안 이곳을 찾은 듯했다.
요새는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조금만 올라가도 도시 전체를 볼 수 있었다.
내려다 보이는 도시 전경이 푸르다.
특히 요새 우측 언덕에 외벽을 파란색으로 칠한 건물이 밀집해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블루시티라고 했다.
오래전에는 푸른색 염료가 귀해서 특정 계층만 사용하는 상징적인 색이었다가 누구든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건물에 푸른 염료를 많이 사용하게 됐고 현재의 블루시티가 됐다고 한다.
가이드와 관광객의 대화를 귀동량한 탓에 정확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가까이서 본 건물의 짜임새와 도색은 다소 조악했지만 멀리서 통일된 모습은 근사했다.
요새의 가장 위쪽에 도착했을 땐 밖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하고 흩어지기를 반복했고 시야는 높은 성벽에 막혀있었다.
여행자들은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좁은 틈을 찾아다녔고 그런 곳엔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도 그 틈을 통해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몇 초를 눈에 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올라오면서 포트 성벽의 한 면에서 전방으로 길게 뻗은 암석 지대를 봤다.
무대의 아일렛처럼 기이할 정도로 뻗었다.
정확한 명칭이나 주소가 없음에도 인터넷에 그곳의 정보를 남긴 이가 있었고 구글맵에서도 그 정보를 검색할 수 있었다.
석양의 시간이 되기 전에 그 무대에 오르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른다.
요새를 나와서 한참 비탈길을 내려왔고 지도를 보며 좁을 골목을 지날 때 맞은편에서 개 한 마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찰나는 매우 짧은 시간을 일컫지만 어떨 때는 그 찰나를 매우 느리고 길게 경험한다.
교차해 지나가던 개는 갑작스레 몸을 돌려 덤벼들었다.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를 물었던 개를 고함으로 쫓았고 잠시 대치가 있었다.
주춤 거리며 노려보던 개는 이내 몸을 돌리고 멀어졌다.
놀라 경황이 없는 동안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언제 뒷걸음질 쳤는지 등뒤에 벽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몸 어딘가도 식은땀이 스쳐 서늘했다.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개 짖는 소리와 내 고함에 앞쪽에서 빠르게 다가온 두 여행자가 괜찮냐고 묻는 동안 심장이 빠르게 뛰다가 이내 제자리를 찾았다.
타인의 존재가 큰 위로된다.
그들은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고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괜찮다고 답하고 그들의 걱정에 감사를 전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며 마음을 수습하는 동안 다시 걸음을 내딛는다.
해가 지기 전에 어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몸을 비틀어 내려다본 바지는 일부가 뜯겨 있었다.
몇 없는 옷가지 중 하나가 훼손된 것에 분노하며 바지 구멍을 어루만지다가 불쑥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바지춤에 손을 넣어 허벅지 쪽을 쓰다듬었다.
빼어든 손에는 피가 묻어있다.
그때를 사는 이들이 아니면 알 수 없다.
청년의 젊음.
가슴에서 끝없는 욕구와 욕망이 샘솟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공존하며, 나는 어디에 서있는지 몰라 혼란스럽고.
인생이 말하는 과제와 주변 사람들, 사회에서 만든 프레임이 나를 조여 오는 것 같지만 실은 나이가 주는 시간적 자유와 여유가 있으며.
내향적이었다가 외향적이었다가 수줍었다가 사나웠다가 상냥했다가 어른스러운 나의 다양한 모습에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혼란스러운.
하나의 선택이 무언갈 크게 좌우할 것 같아서 두렵고, 보편적이라거나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에 반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큰 용기가 필요하며.
스치는 인연 하나에 삶이 밝음으로 어둠으로 시시각각 다채로운.
끝없이 밀려들어 오는 사랑과 외로움, 기쁨과 슬픔의 감정에 흔들리는.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나 역시 그런 때를 겪어봤노라 말하는 나이 든 어른들에게도 이젠 이해되지 않는 무언가.
치사하게 그리고 아쉽게도, 미루어 짐작할 수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되짚어도 완전히 헤아릴 수 없다.
열정은 언제고 가슴에 품을 수 있지만 그 눈부신 시간의 조바심은 그때만의 것으로 유일하다.
*물론 시간에 따라 내가 변하고 타인과 시대도 머물러 있지 않으므로 모든 것은 유일하다.
그래서 한 번의 젊음이라면 나의 젊음은 이팝나무처럼 싱그럽길 바랐다.
나에겐 작고 뜨거운 씨앗이 있었고 아주 오래 그 씨앗을 품었다.
무엇인지 모를 씨앗에 균열이 생기며 여린 첫 잎이 나왔을 때 나는 싱그러웠다.
세상은 온화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실패하지 않는 방법과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었다.
나는 그런 온실 속에 컸다.
정해진 길을 가는 동안 세상은 계속 온화했고 나는 그보다 조금 더 뜨거웠다.
내가 생각하는 젊음은 뜨거운 것이었다.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하는 용기이고
어느 정도의 만용이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낙천성이었다.
나는 그런 청춘에 대한 갈망이 컸고 어느 시점이 무심히 지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모두가 궁리하던 그 해 겨울에 현석이 형이 넋두리하길 "안 하는 건 있어도 안 되는 건 없다"라고 했다.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늘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으나 무엇이든 좋았다.
내겐 어떻게 살 것인가가 늘 과제였으므로.
시기에 따라 빛나는 것들이 있다.
조숙한 아이가 누군가에겐 현명하다 불릴지라도 어린아이가 어린아이 다운 것보다 빛나진 못할 것 같다.
학교에 프로젝트에 동아리와 취미에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벤트마다 반짝이는 것은 완전히 그 상황에 몰입하고 빠지는 것에 있었다.
온전히 그 시기를 보낼 것. 혼란함 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