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땅에 쏟아진 것도 있다

여름, 7월 초

by 김창훈

'장마 - 하현상'

'always - keshi'

'Mystical Magical - Benson Boone'

'커다란 - 민수'


능소화 라고 한다.

벽에 붙어서 올라가는 덩굴 식물로 담장에서 많이 본다.

아파트 입구에 여느 집 모퉁이에 지붕에 한강변 그물망에 오른 줄기마다 달린 주황색 나팔 모양의 꽃이다.

가지는 오르는데 꽃송이들은 무게로 땅을 향해 늘어지며 매달렸다.

높은 벽 위에서 내리고 밑에서 오르며 핀 것과 기댈 곳이 없어서 그대로 땅에 쏟아진 것도 있다.

강변북로를 타고 동부이촌 쪽을 지나는 길은 온통 주황빛이다.

이만큼 주황으로 예쁘게 피는 꽃은 드물다.

무더위와 높은 습도가 지속되는 동안에도 꽃은 날마다 피었다.

그중 몇몇은 내리는 비에 혹은 때가 되어 떨어졌다.

꽃잎이 아니라 그 꽃이 송이째 땅에 있다.

능소화 꽃은 한 번에 피었다가 지지 않고 지고 나면 또 피고 또 핀다는 글을 읽었다.

개화기간 내내 피는 꽃을 볼 수 있다니.

글을 읽고 나니 그간 졌다 생각한 꽃들도 여전히 땅에 있음을 안다.

또 피는 종이 아니어도 이제야 피고 여전히 피어 있는 것이 있다.


2-3주 전에 막 피어나던 작은 능소화 꽃은 지금 아주 크다.

겨울을 벗어날 때는 모든 것의 시작을 예찬하면서 작은 변화와 태동을 기민하게 반응했으나 여름을 통과할수록 만개한 것을 본다.

어느 시작과 절정과 저뭄이 수없이 교차하는 중에도 시작을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기어이 여문 것을 오래 들여다볼 때가 많다.

글도 대부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쓰는 탓에 뒷박이거나 엇박으로 늦다.

붙이기 나름으로 그런 계절인가 보다 한다.


매실을 닮았던 살구는 어느새 여물어 노랗다. 이제 복숭아를 닮았다.

매실 같으면서 복숭아 같기도 한 열매는 먹어본 적이 아주 오래다.

먹어보긴 했는지 오랜 기억의 페이지를 뒤지고도 과실의 명확한 맛을 찾아내지 못했다.

살구맛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로 기억하는 맛만 뇌리에 달큰하다.

그 향이나 맛은 미묘해서 살구맛 음료를 떠올리다 보면 복숭아 같고 그게 다시 살구 같고 한다.

(순천 둑실을 사방으로 뛰어다닐 때 분명 먹어봤을 것이다. 그땐 단냄새가 나면 일단 입으로 깨물어보던 때였으므로.)

궁금한 김에 내친걸음으로 시장으로 향했다.

닮은 것끼리 시기가 겹치는지 망원시장의 과일 바구니마다 자두와 복숭아가 담겼다.

살구는 찾지 못하고 자두 한 바구니와 필요한 채소를 샀다.

복숭아는 빛깔은 좋으나 아직 원하는 식감과 맛이 아닐 것 같아서 두었다.

시장을 돌아 나오면서 복숭아나무를 타고 올라갔던 때를 떠올렸다.

복숭아를 양 주머니에 넣고 양손에도 쥔 채 집에 도착할 때쯤엔 온몸이 간지러움에 몸부림쳤다.

몇 번을 샤워하며 미세한 잔털을 씻어내고 기진하는 동안 복숭아를 자랑할 틈도 없었다.

그땐 그게 분했다.

나무 아래 기다리다가 하나씩 받아 든 녀석들도 집에 도착했을 때쯤 곤욕을 치렀으리라.

벗어둔 옷을 세탁하고 복숭아를 건네받은 엄마도 곤욕이었으리라. 그게 이제 떠오른다.

그 복숭아를 먹었던가 어쨌던가, 맛은 있었던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좁은 시장 초입에서 본 먼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었다.

여름엔 구름을 따라 자연히 하늘로 시선이 간다.

구름을 보는 재미가 대단한 계절.

평소 의식적으로 하늘을 자주 보려 하지만 일상의 시선은 대부분 땅에 있었음을 여름에 안다.

푸른 하늘에 거대한 흰 구름이 뭉쳐있는 것은 근사하고 사람의 생활권에 뒷배경이 될 때 비현실적이다.

양손에 노란 봉투를 들고 걷는 탓에 사진은 남기지 않았다.

구름이 뜬 여름 하늘은 지상에서 가깝고 잠자리들이 그 사이로 난다.


그리고 무궁화가 피었다.

망원한강공원에서 굴다리 쪽으로 들어오는 길에 발견한 꽃을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그 앞에 섰다.

무엇이든 발견하면 이후로 와장창 쏟아진다.

생명력만큼 인식과 인지의 힘은 크다.

때론 이 아이들이 수없이 자란 것인지 피었다는 것을 안 뒤로 이것이 쉬이 눈에 띄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사는 내내 그러하다.


묶어서 듣기엔 제각각이지만 적은 것을 보는 동안 들은 곡들.

하현상, keshi, Benson Boone 그리고 민수.


+ 동네 산책길에 향에 이끌려 발견한 꽃나무는 사진으로만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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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와 꽃댕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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