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다고 해야 할지, 옅게 노랗다고 해야 할지

여름, 6월 하지

by 김창훈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 Keira Knightley'

'Messy - Lola Young'

'I'd Love You to Want Me - Lobo'


25년 6월 22일 일요일 04:31 새가 울었다.

어제는 24 절기 중 하지로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이 긴 날이었다.

북반구는 태양으로부터 많은 열을 받아서 하지 이후로 기온이 상승하고 더워진다고 한다.


강변북로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길은 언제나처럼 더뎠다.

도로의 사정과 내비게이션의 안내와 무관하게 늘 경부고속도로를 탄다.

미련하게도 그 길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반가워한다.

서울에 올라온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그 길로 고향을 오갔다.


한참을 경부를 따라 내려가면 천안분기점에서 우측도로를 탄다.

거기서부터 논산천안고속도로다.

도심보다는 산이나 들판을 보게 된다.

별다를 것 없는 하행길에 녹음이 조금 더 짙어진 것을 인식하고 그럼에도 다채롭다 생각한다.

좌우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다가오는 앞쪽의 먼산에서 다채로움을 더 풍요롭게 느낀다.

초록에도 재각각인 색이 있어 아름답다.

6월의 한복판에도 여전히 연두의 향연이 진행되는구나 생각할 때 남풍세에 접어들었고 자연히 속력을 줄여야 했다.

매번 이 도로에서 차가 더디게 가는 이유는 지난 십여 년 동안에도 찾지 못했다.

더디게 가는 차 안에서 가까워진 풍경을 눈에 담으니 연두의 새 잎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밤꽃임을 깨닫는다.

나무 위를 뒤덮은 꽃이 희다고 해야 할지, 옅게 노랗다고 해야 할지, 초록의 잎들 사이에 피어 얼핏 연두 같다고 해야 할지.

야산에 밤꽃이 곳곳에 피어 풍경을 다채롭게 하는구나 한다.

틀어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와 평소라면 듣지 않았을 음악이 좋아서 볼륨을 올리고 창문을 내렸다.

눈은 연달아 보이는 밤나무의 존재를 크게 인식한다.

저기에도 있구나 여기에도 있네 하다 보니 이렇게나 많았나 싶다.

터널을 지난 후 차가 제 속력을 낸 이후로 더욱 그렇다.

많다 많다 하다 보니 어느 산은 온통 밤나무다.

그리고 다음 표지판이 정안알밤휴게소다.

휴게소에 진입하기 몇 킬로 전과 몇 킬로 이후는 모조리 밤나무였다.

앞으론 이 휴게소에 올 때마다 꼼짝없이 밤을 사다 먹겠구나 한다.

공주시를 가로지르는 금강을 넘을 때까지 수많은 밤나무를 봤다. 밤꽃을 봤다.


명절을 제외하면 특별한 시간 변동 없이 내달리는 고속버스 좌석에 몸을 맡기고 창문을 내다보다 잠들던 때를 생각한다.

지금은 스마트 폰이 있고 유튜브 등 시간을 때울 거리가 손안에 있지만

언젠가는 버스에 타면 내가 가진 욕심이나 짊어진 무엇이 무용하게 쉬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쉴 때면 상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내려갈 때의 기대와 올라올 때의 감정이 가득했다.

직접 운전을 할 때도 운전하는 것 외엔 별수가 없다.

피로함과 별개로 그런 단순함이 좋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것과 다르게 늘 다니던 길을 택했다.

내가 갈 길은 하나인데 실시간으로 다른 선택지를 부여받는다.

정답은 없고 기준이 저마다 다른 순간이 많다.

돌아보면 나는 나의 선택을 많이 했다.


광주에 다녀오고 몇 차례 비가 왔다.

빗소리를 들을 때면 지금 떨어지는 꽃은 밤꽃이라 생각했다.


추천곡은 비긴어게인 OST 중 Tell Me If You Wanna Go Home과 최근 라디오를 통해 들은 두곡.


+ 땅에 붙어 귀엽던 토끼풀은 이제 대부분 빛바래 갈색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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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의 토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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