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입추
'바람이 불면 - 윤아'
'blue - yung kai'
'I Hear a Symphony - Cody Fry'
'어떡해 (Feat. 스텔라장) - Jogn OFA Rhee'
'태양물고기 - 윤하'
비가 오지 않는 날 월드컵 공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었다.
내내 숲을 생각하고 있다.
나무가 좋고 나무가 우거진 숲이 좋다.
그리고 숲이란 단어가 좋다.
그런 생각이 든 건 김훈 선생님의 글을 읽은 뒤부터다.
좋아하는 장소들은 많은데 그 장소를 지칭하는 단어에 집중하는 것은 낯설다.
숲.
그의 책 <자전거 여행>에서 숲의 어감은 깊고 서늘하다고 했다.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어본다.
숲. 잇새로 바람이 인다.
높고 빼곡한 나무 기둥, 짙은 녹음과 풀내음, 이끼와 불쾌하지 않은 습기, 서늘함 그리고 고요함.
숲에 대해 곧장 떠오르는 것들이다.
푸른 바다와 산, 고요한 호수, 끝없이 트인 지평선, 소란스러운 놀이공원처럼 이따금 숲에 가고 싶다.
마음이 안정되는 곳. 모험의 설렘이 있는 곳.
삶의 어떤 일들이 중첩되면 특정 장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많은 감정을 얻는다.
물론 때때로 단일한 경험만으로도 그렇다.
월드컵 공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상상 이상으로 길지만 숲이라고 하기엔 아쉽다.
어떠한 장소를 숲이라고 일컫는 것에 대한 나의 첫 번째 기대는 어느 정도 광활한 지역에 나무가 가득히 자라나 어느 곳에 서서 둘러봐도 사방에 녹음이 우거진 곳이다.
그 안에 나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한국에선 대게 산자락에서 그러한 환경을 접할 수 있다.
이곳은 강변북로를 옆에 두고 공원 능선의 하단부를 따라 메타세쿼이아를 심어 조성한 길에 가깝다.
홈페이지에서 하늘공원 동쪽 산책로 450m, 남쪽 산책로 900m라는 정보를 봤지만 실제는 그보다 긴 듯했다.
나무마다 많은 매미가 사는지 울음소리가 온몸에 울린다.
멤멤 하다가 찌르르 하는데 귓가가 먹먹하다.
그와 같은 울음이 내 가슴속에도 있었기에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싫지 않다.
실은 내내 숲을 생각하던 이유가 이 매미소리다.
도심의 매미도 밤낮을 울어대며 시끄럽다 하지만 숲처럼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울음소리는 그 이상이다.
올해 여름을 그리고 매미를 나는 오래전부터 기다렸다.
끝내 울음을 멈추면 찾아올 적막까지도.
숲의 서늘한 적막함 속에 지저귀는 새소리, 풀벌레 소리, 돌틈새로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매미의 울음소리.
일상의 소음과 사뭇 다른 이것이 숲에 대한 나의 두 번째 기대다.
길을 되돌아 걷는 동안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있다.
이 마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야 인공적으로 조성된 느낌이 완연했던 길이 나의 기대를 헤쳤음을 알았다.
땅을 완전히 다지고, 걷는 길과 나무가 심긴 곳을 낮은 울타리로 분리했으며 그 울타리 안에 다양한 식물을 심어 조성했는데 좋지 않다기 보단 나무 사이를 걷는다는 것에 대한 나의 기대와 다르다.
숲에 대한 나의 세 번째 기대는 자연에 가까운 것 그 상태를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동쪽의 짧은 메타세쿼이아길이 남쪽의 긴 길보다 좋다.
이따금 찾을 산책길이 하나 더 늘었다.
앞서 월드컵 공원 쪽이라고 칭한 곳은 흔히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으로 알고 있는 언덕 부지 전체를 일컫는다.
오래전에는 난지도라고 불리던 곳이 매립지로 사용됐다가 현재의 공원이 됐다.
캠핑장과 해마다 피는 억새, 핑크 뮬리가 유명하다.
강변북로를 타고 일산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성산대교를 지날 무렵부터 정면 우측 편에 이 언덕이 보인다.
언덕 위에는 풍력발전기가 네다섯 개 보이는데 멀어서인지 그저 바람개비 같다.
그 언덕 아래에 메타세쿼이아로 조성된 길이 있다.
망원동에서는 한강공원으로 나온 뒤 난지캠핑장 방향으로 걷다가 강변북로를 넘는 연결 다리로 조금 돌아가야 하는데 걷자면 조금 멀고 뛰자면 언제든 갈만한 거리다.
여름내 능소화는 강하고 뜨거운 햇볕에 빛이 바래 노래졌다가 이내 지고 주황으로 다시 피길 반복했다.
지난 글에서 막 태동하던 무궁화는 이제 심긴 곳마다 피었다.
분홍인 듯 쪽빛인 듯 보라색인 듯 오묘하다.
무덥고 비 내리고 흐리고 맑기를 불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아니 요동하는) 고온다습한 기후가 매해 여름이지만 올해 여름은 유별났다.
장마라고 비가 온다더니 안온날도 많았고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부모님이 계신 전남지방은 집중호우로 연신 경보가 울렸다.
불과 며칠 전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사람들이 아열대 기후가 됐다며 내리는 비를 올려다보는 동안 여름이란 계절이 선명한 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 계절도 지나간다.
8월 7일 입추.
더위는 아직 남았으나 해는 서서히 빨리 지고 가로등 불도 그에 맞춰 빨리 켜진다.
더위가 잠시만 물러나도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불며 공기의 질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어느새 매미소리엔 힘이 빠진 듯하고 이전에도 울었을지 모를 풀벌레 소리가 새삼스레 들린다.
낮에는 가을 같은 소리 하지 말라 하다가도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오는 건가 한다.
그런 시간이 시작된다.
+ 2018년의 여름도 유난히 더웠다. 에어컨이 고장 난 자취방에서 선풍기를 켜고 누워 날이 더운 건가 내 몸이 뜨거운 건가 하다가 집을 뛰쳐나와 서점과 카페를 오갔다. 그때도 안팎으로 매미가 울었다. 강남역의 이팝나무가 흰 꽃잎을 다 떨구고도 짙게 푸르렀지만 작열하는 태양과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에 그 푸르름을 볼 새가 없었다. 예약이 밀렸다며 한참뒤에야 방문한 기사님이 에어컨을 수리하고 냉매를 채웠을 땐 가을의 시작점에 서있었다.
다섯 곡을 선별해서 적었으나 아무래도 빼둘 수 없는 곡을 하나 더.
'숲 - 최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