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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타임 Mar 21. 2018

회사를 그만 둬야 할까요?

임계점에 다다른 워킹맘의 삶

육아 휴직 후 작년 1월에 복직해서 지금까지 1년 조금 넘게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때때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망설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다시 회사로 꼭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하는 엄마가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이 더 높고, 그 자신감과 성취감이 아이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육아휴직을 하는 내내 고용 불안에 시달렸던 것도 한 몫 했을 겁니다. 안팎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회사는 조직 개편을 하면서 눈엣가시인 사람들을 딱히 할일도 없는 부서로 좌천시키거나 부서를 통폐합했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회사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퇴사를 선택했고 누군가는 남아서 비굴한 상황을 견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회사 규모는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고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다시 돌아갈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다시 오라고 '불러주'니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복직했던 것 같습니다. 선택의 여지란 게 없었죠.


어쨌든 작년 한 해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얼굴에 로션도 바르지 못하고 출근하고, 방은 언제나 벗어놓은 양말과 옷가지로 어수선했지만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했습니다. 워킹맘의 연차는 모두 아이가 아플 때를 대비한 비상용으로 남겨둬야 해서 힘들어도 연차를 쓰지 못하고 항상 저금해 놔야 했지만 그래도 에너지가 넘쳤고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게 즐거웠습니다. 시간이 간다는 건 월급날이 다가온다는 뜻이니까요. 사람들은 그 에너지로 어떻게 집에서 애만 키웠느냐고 할 정도였습니다. 모였던 에너지가 응축돼서 더 커보였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다행히도 열심히 하는 걸 상사와 동료들이 인정해 줬고, 작년 연말에는 우수직원상장도 받았네요. 다 큰 나이에 상장이란 걸 받으니 유치하게 느껴졌지만 나쁠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엔진이 그리 훌륭하진 못한가 봅니다. 절대적인 운동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지병이란 게 슬슬 고개를 듭니다. 살면서 거의 없던 증상들도 생기고요. 지병은 어깨와 목을 둘러싼 근육통이고, 새로 생긴 증상은 구내염과 입술에 생긴 헤르패스 염증입니다. 피곤해도 입술이 터지는 일은 잘 없었는데, 한번 터지고 나자 편두통이 와서 잠을 자기 힘들 정도이더군요.

근육통을 해결하기 위해 1월부터는 오전 6시 타임에 요가를 신청해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차로 7분 정도 떨어진 거리이고, 옷도 입고 준비도 해야 해서 오전 5시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래도 아침형 인간이라 비교적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수월했습니다. 어깨는 금방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많이 좋아졌죠. 요가 프로그램과 선생님도 너무 좋아서 다녀오고 나면 무슨 좋은 일 있는 사람처럼 방방 떠다녔습니다.

요가가 끝나면 잽싸게 집으로 와서 출근 준비를 합니다. 아이와 남편을 깨우고 남편에게는 계란 후라이를, 아이에게는 떡이나 빵이나 주먹밥을 번갈아서 주고 저도 그 사이에 밥을 먹고 씻어야 합니다. 나기기 전에 전기 밥솥의 취사예약을 눌러놓는 것도 잊으면 안되고요.


늘 잠이 덜 깬 아이의 입에 하나라도 더 넣어주고 얼굴이 지저분한 날에만 세수를 시키고 기저귀와 옷을 입히고, 도시락 가방을 챙겨서 겨우 문 밖을 나섭니다. 어린이집 등원 선생님의 독촉 전화에 애가 타는 애미의 마음을 알리가 없는 아이는 안 가겠다고 생떼를 쓰거나 딴짓을 하면서 애간장을 태웁니다. 우는 아이를 등원 차량에 넣다시피 하고 돌아서면 이제 아이한테 시달일 일은 없다는 안도감과 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심호흡인지 한숨인지 모를 긴 숨을 내뱉습니다.


회사 생활은 그래도 '고마운' 편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6시 30분까지만 아이를 돌봐줘서(법적으로는 7시까지지만 7시까지 하는 곳을 찾기 어렵고, 왜 7시까지 안하느냐고 따지기도 어렵습니다. 아이들 하원시키고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이거든요) 그 전에 아이를 무조건 픽업해야 하는데, 6시 넘어서 퇴근해서는 6시 30분까지 집에 오기 어려운 상황이라 사정 얘기를 했더니 20분 먼저 퇴근하는 걸 '허락'해 줬습니다. 다른 직원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대표가 직접 나서서 '누구든지 엄마가 될 수 있는 상황이고, 이런 건 워킹맘의 당연한 권리'라고 얘기해줘서 반발하는 직원은 없고 이 모든 상황이 고마운 것도 사실이지만, 20분 먼저 퇴근한다고 워킹맘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기에 고마운 마음을 잠시 넣어둡니다.  


아이를 6시 30분에 맞춰서 픽업해서 집으로 데려오면 부리나케 저녁을 차려서 먹여야 합니다. 주로 식판에 밥을 떠서 먹이는데, 반찬을 넣는 세 칸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닙니다. 반찬 칸 세 칸을 채우는 건 언감생심이고 하나라도 제대로 해서 먹이자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지지고 볶는데, 그마저도 아이가 입맛에 안맞는다고 뱉어버리면 난감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면 전 그냥 먹지말라고 하고 내버려두는데 자기 전까지 계속 무언가를 달라고 쫓아다닙니다. 밥은 안먹고 주스랑 과자랑 치즈 같은 주전부리만 먹다가 잠들곤 했죠. 그 모습을 본 남편이 배부르게 먹여야 잘 논다며 안먹는다고 그래도 떠먹이면 먹으니까 좋아하는 것이랑 해서 주라고 얘기해줍니다. 그래야지 저녁 시간에 절 안 괴롭히고 혼자 잘 논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맞는 말입니다.


저녁해주고 겨우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아이랑 놀아줘야 하는데 낮에 잘 버틴 체력이 이 시간쯤 되면 이제는 빨간 불이 들어옵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는 좋아하는 만화를 틀어주고 저는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무엇 때문에 회사를 다니고 있나, 지금 내가 잘 하는 게 맞나, 이게 최선인가, 남들 다 이렇게 사는 데 나만 어리광부리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상도 받고 월급받아서 대출금도 꼬박꼬박 갚고 있지만, 사람 노릇은 전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시부모님께 전화드리는 건 거의 없고, 요즘은 친정 부모님께도 전화를 잘 안하는 것 같습니다. 육아 휴직하고 있을 땐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시어머니께도 일주일에 두어번씩 전화를 했거든요. 친정 부모님께는 하루에도 두세번씩 했던 거 같고요. 엄마는 쇼핑과 여행을 정말 좋아하고 저랑 같이 하는 걸 특히 더 좋아하는데 회사를 다닌다는 핑계로 전혀 같이 해줄 수가 없습니다. 주말에 시간 낼 수도 있지만, 엄마를 위해 봉사를 하는 개념이다 보니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멀리 떨어져 살아도 서운해 하는 얼굴이 보이는 것 같은데 모른 척 지냅니다. 친구들과 형제들에게 관심이 뜸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그들이 필요한 데도 말이죠.  

아이 챙기는 것도 겨우 하다 보니 남편에게도 신경을 못쓰는 일이 많습니다. 문득 지나고 보면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닌지 늘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100점짜리 엄마도 아닐 겁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비위를 맞추고 시중을 들어도 아이는 어느 순간 짜증을 내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울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바로 취업하지 않고 돈을 안벌고 비경제 인구로 있던 시간이 꽤 있었습니다. 그 사이 동생은 어느새 취업을 했고, 연애도 하면서 좀 이른 나이였지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동생이 결혼하면 언니라는 사람은 냉장고라도 해줘야 할텐데 수중에 돈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동생이 결혼하는데 5만원도 안되는 핑크색 스탠드를 하나 사주고 말았습니다. 그 전 해에 외국으로 혼자 떠나는 언니에게 100만원을 보태줬던 동생인데 말이죠. 결혼하는 동생한테 그런 것 밖에 못해주는 상황이 정말 참담했습니다.  

꿈 찾아서 세월만 보내고 있는 사이, 사람 노릇도 멀어져 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니 노릇, 자식 노릇. 사람 도리를 못하고 산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던 것 같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사람 노릇을 못한다는 생각에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해 취업을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요. 지금 다니는 회사가 그 첫회사는 아니지만, 같은 생각으로 문을 두드렸습니다. 여기 일이라면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

취업하고 사람 도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적은 돈이지만 저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매달 월급을 주는 사장님이 정말 고마웠죠. 그때는 순진하게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났고, 머리는 굵어졌는데 월급은 여전히 제자리입니다. 사람 노릇을 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다시 그 사람 노릇을 못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회사를 그만둬야 할까요? 아니면 잠깐 찾아온 고비일테니 더 견뎌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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