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가 되고 싶거나 하는 일이 궁금하다면
김태호, 나영석 PD와 같은 스타 PD의 탄생으로 PD의 일은 많이 알려졌고 친숙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PD와 함께 방송을 만드는 방송작가의 일은 어딘지 손에 잡히지 않는 애매한 느낌입니다. 작가라고 하면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방송작가의 일은 글을 쓰는 것 이외에도 더 폭넓은 업무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제 경험을 토대로 방송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방송작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물론 저는 거의 발만 담갔던 사람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을텐데, 그래도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 방송에 관해 알고 싶은 분에게 정보를 드리고 싶어서 이야기합니다.
우선 방송작가는 크게 드라마 / 예능 / 시사 교양 으로 나뉘는데요. 이름은 모두 방송작가이지만 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시사 교양 분야에 있었기 때문에 그 분야를 위주로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몇년 동안 방송가 환경이 많이 변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가 드리는 정보가 지금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참고하시기 바래요.
방송작가되는 법
1. MBC, KBS방송아카데미에 등록해서 과정을 수료한 후 KBS구성작가협의회나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막내작가를 뽑는다는 공고가 나면 지원한다.
2. 구인구직사이트에서 막내작가를 구한다는 공고가 나면 그냥 지원한다.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1번 과정을 따라서 막내작가로 들어왔는데, 저는 2번 과정으로 방송제작사에 입사해 막내작가로 일을 했습니다. 1번이 자격증이 아니기 때문에 꼭 수료하지 않아도 막내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번 과정을 수료하는 것에 따른 장점도 분명있겠죠. 제 생각에는 자신의 성향이 공부를 먼저하고 실전에 투입되는 걸 원한다면 1번 과정을 따르면 될 것 같고, 비용도 부담스럽고 일을 하면서 배우는 타입이라면 2번으로 도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막내작가의 일
1. 프리뷰
2. 자료조사 (섭외)
3. 후반작업 (자막)
방송제작과정
기획 - 촬영구성안 작성(메인작가) - 촬영(피디 & 촬영감독) - 편집구성안(메인작가) - 편집 (피디) - 종합편집 (CG, 자막, 음악....)
기획은 피디와 구성작가(메인 작가)가 회의를 통해서 만듭니다. 기획회의를 통해 어떤 내용을 촬영할지 얼개가 잡히면 막내작가는 그에 맞는 인물을 섭외하는 역할을 주로 맡습니다. 예를 들어 <건축탐구 집>에서 '대한외국인이 선택한 집'이라는 주제가 잡혔다면, 막내작가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 중에 집과 관련해서 이야기가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이 단계를 자료조사라고 하는데요. 자료조사의 목적이 대체로 섭외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자료조사 방법은 인터넷이 대부분입니다. 키워드로 검색해서 관련 인물을 찾는 방식입니다. 대부분은 이미 기사로 인터뷰가 돼 있는 사람, 혹은 책을 출간한 사람처럼 어느 정도 검증가능한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물론 블로그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도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일수록 기사를 통해 이미 '검증'받은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sns에서 아무리 유명한 인플러언서라고 할지라도 tv에서 보기 힘든 이유는 기사로 인터뷰가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인플러언서가 인터뷰를 하나 하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이곳저곳에서 섭외가 물밀듯이 쏟아지는 게 다반사입니다. 기사를 통해서 그 사람의 캐릭터나 이야기, 콘텐츠가 어느 정도 확인이 됐다고 생각하는 거죠.
섭외에서는 얼마나 괜찮은 대상을 잘 섭외하는지가 관건입니다. 한국에 집을 갖고 살고 있는 외국인이 1차 대상이지만 모두 섭외가 가능한 건 아닙니다. 그중에서 자기 이야기, 혹은 집과 관련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대상이어야 합니다. 섭외만 되면 한숨 놓을 수 있지만 섭외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적합한 인물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고, 적합한 인물을 찾았다해도 촬영을 거절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때때로 메인 작가가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한국기행>에서 안면도 편을 하는데, "안면도에서 수제 맥주를 만들면서 사는 20대 청년 사업가"같은 사람 없을까처럼.
스튜디오 촬영이 아닌 이상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경우 작가진들이 출연자를 직접 볼 기회가 없습니다. 물론 유명한 사람은 섭외 과정부터 참여하긴 하겠지만 대체로 일반 사람들을 촬영할 때는 막내작가가 공들여 섭외하면 pd가 친해진 후에 촬영을 진행하죠. 저는 사실 이 부분이 일을 하면서 좀 허무하더라고요. 그 사람과 전화통화하며 기획안 설명하고, 진행과정 설명하면서 계속 전화를 주고 받았는데, 나중에는 저는 존재감이 없어지니까요. 이 쪽 일의 장점 중 하나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영감을 받고 감동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인데, 그런 부분이 어느 순간 박탈된 느낌 같은 게 있었습니다.
반면, 예능은 촬영팀도 더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보조해야 하는 일도 많기 때문인지 거의 막내작가나 구성작가도 촬영현장에 참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막내작가가 하는 일은 단순 보조 업무입니다. 예를 들면 산 정상에서 촬영하는데 배터리가 다 돼서 산 아래에 가서 건전지를 사온다든지 하는. (카더라)
섭외를 마치면 현장 답사를 가기도 하고, 다른 프로그램의 자료조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담당 PD와 촬영감독, 조연출은 촬영을 진행하고 돌아오면 엄청난 양의 녹화 테이프를 넘겨줍니다. 그러면 그걸로 이제부터 프리뷰라는 걸 합니다.
프리뷰는 피디와 촬영감독이 촬영해 온 비디오를 전부다 모니터링하면서 문서화해주는 작업입니다. 그 이유는 구성작가의 일을 보조하기 위해서이죠. 구성작가는 촬영을 가기 전에 촬영구성안이라는 걸 작성해주지만, 현장의 상황이라는 건 언제나 변수가 있기 때문에 촬영해 온 걸 보지도 않고 그대로 편집구성안을 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편집구성안을 쓰기 전에 PD와 촬영감독이 촬영해 온 필름을 봐야하는데, 이 사람들이 50분짜리 방송인데, 촬영분은 100시간을 해오고 이러기 때문에 다 보는데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그래서 막내작가가 영상을 문서화해주는 역할을 맡는겁니다. 그러면 100시간동안 비디오를 보지 않고 몇시간 만에 프리뷰 원고를 보면서 전체 비디오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겠죠. 방송시간이 임박한 프로그램의 경우 프리뷰해주는 알바를 모집해서 하곤 합니다. 방송 작가나 pd에 관심이 있다면 프리뷰 알바를 먼저 해보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포털에서 kbs구성작가협의회를 쳐서 홈피에 들어가면 프리뷰 알바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프리뷰를 다 해주면 메인작가는 편집구성안을 써서 PD에게 주고 PD는 그걸 보고 편집을 합니다. 그리고 편집이 마무리되면 종합편집을 해주는 편집소(?)에 가서 자막을 입히고 일러스트도 넣고 지도도 넣고, 음악도 넣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막내작가는 완성된 편집본을 보고 기본적인 자막을 달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맞춤법을 잘 알아야하고, 사실 관계나 정확한 정보가 필요할 때는 관련 기관에 요청해서 정보를 알아내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풀꽃의 학명 등.
방송 끝나고 마지막에 올라가는 크레딧에는 막내작가는 자막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갑니다. 요즘은 자료조사나 취재기자(따로 있기도 하고)라고 넣어주는데도 있는 것 같은데, 대체로는 자막 000으로 들어갑니다. 그래도 그거 보면 꽤 뿌듯합니다.
막내 작가는 보통 2년 정도 하고, 월급은 2012년쯤에 80만원이었습니다. 그 뒤로 조금씩 올려줘서 2년 뒤에는 120~150만원 정도 받았던 거 같습니다. 제가 다녔던 곳만 그런 게 아니라 업계의 통상적인 기준이었는데, 어디는 점심도 안주면서 50만원 주는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튼 박봉에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2년 정도 지나면 구성작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죠. 약 2년 정도 막내작가 일을 한 후에는 생생정보통 같은 프로그램의 5분짜리 한 꼭지를 맡아서 구성안을 쓸 수 있습니다. 대체로 그렇다는 겁니다. 이렇게 매일 방영되는 정보 중심의 프로그램들을 통상 레귤러라고 했던 거 같습니다. (가물가물)
그러면서 5분에서 10분, 20분, 30분, 50분 이런 식으로 점점 규모가 큰 프로그램을 맡는 건데, 문제는 막내작가하는 동안 구성안을 써보는 교육을 전혀받지 않고 구성작가 보조만 하다가 갑자기 구성안을 써야 하니 막막하기 그지 없다는 겁니다. 조연출도 막내작가와 월급도 같고 위치가 거의 비슷한데, PD를 따라다니면서 촬영하는 것도 배우고, 편집도 배우고, 나중에는 예고편 같은 건 거의 조연출이 편집합니다. 그런데 막내작가는 구성작가와 일이 분리돼 있는 거죠.
또한 PD는 방송사의 직원으로 일을 하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모든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로 알고 있습니다. 즉 방송작가를 고용한 방송사는 없었던 거죠. 하지만 근래에는 스타pd들이 방송작가와 스태프들을 모두 대동해 방송사를 옮기기 때문에 계약이 돼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jtbc뉴스룸도 손석희 앵커가 사장으로 가면서 '손석희의 시선집중' 작가분들을 모두 데려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대부분의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프리랜서라고 꼭 나쁜 건 아니죠.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동시에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고, 꼭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pd들이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해야 일을 할 수 있는 입장이긴 한데, pd보다 유능한 작가들도 많습니다. 작가가 하는 일을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며 섣부르게 덥볐다가 죽도 밥도 안된 프로그램 만드는 pd들도 많고, 신참 pd들일수록 작가에 의지를 많이 해서 작가들이 거의 기획안부터 편집안까지 진두지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방송을 보다보면 어디서 제작진이 개입했는지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요. 예를 들면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경우 셰프들이 어떤 음식을 할지 정한 후에 음식에 그에 맞는 예능적인 이름(?)을 짓잖아요. '만두가 캐비지'와 같은... 방송에서는 이런 이름을 셰프들이 직접 지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체로 이런 역할들은 작가진들이 맡아서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이걸 조작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게 방송의 흐름 상 셰프가 얘기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다른 출연자들의 반응도 이끌어내기 쉽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이런 게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작진에서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여성 비하적인 표현을 쓰거나, 일베식 표현 등을 출연자에게 일러주고 출연자가 그걸 자기가 만든 것처럼 그대로 읊었다고 고초를 겪는 경우가 있죠. 이런 문제는 제작진이 백배사죄해야 하는 문제인데 거의 출연자가 독박쓰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라져 가는 기억을 되살려서 써보았는데 지금 상황과 얼마나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참조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