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 듯 유럽 아닌 유럽 같은 곳
마카오를 400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식민지였다고 표현하는데 사실 마카오에 가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우울한 광경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의 잔인한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식민지라고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를 떠올리는데 마카오의 역사는 우리와는 다른 것 같다. 어찌 보면 중국에서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마카오에 살도록 허락해 주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지금의 외국인 경제 자유구역인 인천 송도처럼 마카오는 외국인자유무역지대로 시대를 앞서 갔다고 보는 게 낫겠다.
1535년, 젖은 화물을 말린다는 핑계로 슬며시 항구에 내린 포르투갈 상인들은 그 뒤로 매년 은 20kg을 내는 조건으로 마카오에 눌러앉았다. 무기한 전세 계약이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중국의 차와 도자기, 비단 등을 유럽으로 실어 나르며 큰 부를 축적했다. 당시 유럽의 귀족들이 중국의 물품에 매료돼 아니 거의 미쳐있었다는 말이 맞겠다. 여하튼 유럽에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제품들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유럽 국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이 마카오에 접근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성벽과 요새를 쌓으며 강력하게 그들의 발길을 막았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영국이 아니다. 칼을 갈던 영국은 아편전쟁을 일으켜 청나라 군대를 이기고 이후에는 홍콩을 점령한다. 이 전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자극을 받은 포르투갈은 부랴부랴 마카오를 강제로 점령한다. 하지만 강압적으로 변한 포르투갈에 가만히 있을 마카오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소한 일이었으나 포르투갈 행정청이 폭력으로 대응하면서 마카오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소요사태로 까지 번지면서 본토의 인민해방군이 마카오 국경까지 이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포르투갈이 꼬리를 내려 결국 인민해방군이 마카오에 당도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마무리됐으나 포르투갈은 이 일을 계기로 된통 데인 모양이다. 마카오를 다시 돌려주겠다고 나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중국에서 마카오를 받을 여건이 안된다며 오히려 반환을 만류했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1999년, 마카오는 제 주인을 찾았다. 반환 당시에 포르투갈은 마카오에 관음상을 선물했다. 부처의 얼굴을 한 성모 마리아 상이다. 동서양의 화합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마지막까지 포교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포르투갈의 심정이 담겨있는 것 같다. 중국은 이걸 받고 속으로 좋았을지 마음에 안 들었을지 가늠이 안된다. 어쨌든 떡 벌어진 어깨를 하고 있는 거대한 부처 상보다 관음상은 훨씬 사람의 마음을 끌어 당겼다. 지금까지 본 부처 중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관음상만 보면 포르투갈에서 미련이 남은 것 같지만 사실 포르투갈은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마카오까지 챙길 여념은 없는 것 같고 중국에서 반대로 유럽과 관계를 다지는 데 포르투갈을 이용하려고 한다고 한다. 일종의 유럽 인맥인 셈이다. 여전히 포르투갈과 중국은 재미있는 관계이다.
세계문화유산 지역에 포함된 건물에는 중국 사원이나 건물도 있지만 대부분은 포르투갈 풍의 건물이고 또 그중 대부분이 성당이다. 마카오가 동양에 가톨릭 교를 포교하기 위한 전초기지였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가장 대표적인 유적이 마카오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이다. 동양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으나 건물은 사고로 타버리고 전면부만 남아있다. 1644년에 완성된 성 바울 성당은 동방 선교의 거점으로 아시아로 파송하기 전에 선교사들을 교육하는 기관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주실의>의 저자인 마테오 리치도 이 곳 출신이다. 김대건 신부도 마카오를 다녀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주교 신자라면 순례 여행으로 다녀와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 바울 성당은 전면부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해도 초라하지 않고 굉장히 아름다웠다. 성당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건 뒤로 보이는 쾌청한 하늘과 앞쪽의 계단과 광장, 정성스레 조경된 나무들이다.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뤄 이곳을 더욱 아름답게 느끼게 해주었다. 낮에는 이곳이 단체 관광객으로 북적여서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기는 것도 쉽지 않지만 밤이 되면 한강변처럼 운치 있는 곳으로 변한다. 낮과 밤 두 가지 모두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어 어느 것 하나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낮 시간과 밤 시간 모두 들려보면 좋겠다.
1990년만 해도 여기는 존재하지 않던 곳이었다. 타이파 섬과 콜로안 섬 사이의 바다를 메우자는 계획은 무모해 보였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걸 가능하게 했다. 파도는 대지가 되었다. ... 베네시안, 시티 오브 드림즈, 갤럭시 마카오, 샌즈 코타이 센트럴, 브로드웨이, 스튜디오 시티라는 호텔과 쇼핑센터, 카지노, 레스토랑이 연결돼 있다.
- 마카오관광청 관광책자 중-
코타이 스트립은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 알려졌던 마카오의 이미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야말로 으리으리한 호텔과 카지노, 쇼핑센터, 식당가가 한데 모여있는 곳이다. 이탈리아 도시 베네치아를 재현한 듯한 베네시안이 대표적이다. 사실 가기 전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늘 그렇듯이 모조품이란 유치하고 어딘가 엉성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안 보느니만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하지만 실제로 보니 걱정은 기우였다. 아니 사실 좀 놀랐다. 하늘과 건물, 인공수로까지 모든 게 모조품이었지만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었다. 상점 사이에 수로를 내고 곤돌라를 띄워 최대한 현지 분위기를 조성했고 벽은 유럽풍 건물로 장식했다. 정신이 약간 몽롱해졌다. 오랜 시간을 머문 것도 아닌데 어쩐지 공기에 취한 기분이었다. '여기서는 골치 아픈 바깥세상 따위는 잊어버리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사고, 카지노에서 즐기고 공연 보며, 호텔에서 편히 쉬어. 여기도 또 하나의 세상이야'라고 베니시안이 말하는 것 같았다.
에그타르트 베어 물고 베네시안을 나와 두 번째 목적지인 타이파 빌리지로 가기 위해 입구 반대편으로 나왔다. 해는 쨍쨍했고 공기는 습했다. 안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멍했다. 이때부터는 유난히 등짐도 무겁게 느껴졌다. 베네시안의 여파인가 보다. 코타이 스트립과 타이파 빌리지는 바로 붙어있어 하루에 다 돌아보기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역부족이었나 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이파 빌리지도 좋았던 것 같은데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고 허덕대다가 아기가 울어대는 바람에 황급히 택시를 타고 와야만 했다. 아기도 지쳤고 나도 지쳤었다.
그래도 기억을 다시 되짚어 보자면 타이파 빌리지는 분위기 좋은 상수동의 어느 뒷골목을 연상하게 했다. 유럽 스타일 특유의 여유로움이 물씬 풍기는 바와 레스토랑, 아무 데나 들어가도 실패 없을 것 같은 디저트 카페들, 조금 늦은 시간에 찾아서 마카오의 밤 분위기에 취하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지난날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곳에 별장을 지어놓고 지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타이파 빌리지 초입에 모델 하우스처럼 덩그러니 남아있는 다섯 채의 포르투갈 풍 주택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은 주택 박물관이라는 재미없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공항과 택시, 호텔은 그 도시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첫인상이다. 마카오는 그런 면에서 첫인상이 매우 친절했고 호의적이었다. 공항이 매우 작아서 입국 절차는 순식간에 진행됐고 택시는 기본요금 17 타이파(한화 약 2500원)로 국내와 비슷해서 평소 뚜벅이 여행을 자처하던 우리 부부가 택시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도 많이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매우 놀랐던 점 중 하나는 호텔 객실에 비치돼 있던 스마트폰이다. 일본, 한국, 중국 등 인근 국가로 거는 전화가 무료였고 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신 관광 정보도 담겨 있었다. 관광 명소와 맛집을 좀 더 편하게 찾아다니고 마카오에 있는 동안 편안하게 지내라는 최고의 웰컴 선물이었다.
너무나 깨끗하게 잘 보존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구 다음으로 놀랐던 건 중국풍의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소개하고 있는 펠리시다데 가였다. 지난날 홍등가였던 이곳은 당시의 건물은 그대로 남긴 채 지금은 맛집이 들어선 젊음의 골목이 됐다. 홍등가였던 곳을 께름칙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주 들르는 현지인들도 놀랍고 이곳을 관광화시킨 마카오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마카오의 또 다른 랜드마크는 으리으리한 호텔들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느니 좋다느니 하는 타워들을 봤을 땐 전혀 감흥이 없었는데 금빛으로 요란하게 치장한 그랜드 리스보아 호텔을 보고는 눈과 입이 말 그대로 떡 벌어졌다. 하늘을 향해 폭죽을 터트리는 모양을 하고 있는 이 호텔은 포르투갈 풍 유적에 맞서는 느낌으로 거만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 당당한 모습이 오히려 사람을 매료시키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보이는 마카오 타워가 초라할 지경이었다. 근처의 MGM호텔이나 다른 호텔을 둘러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아름다운 호텔 외관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배낭에 생수 병 하나 꽂고 걸어서 돌아보는 걸 좋아하는 뚜벅이 여행을 좋아하지만 지독한 지도 맹인이다. 꽉 막힌 공간지각 능력을 갖고 있어 지도에 보이는 길은 선이요, 가고자 하는 곳은 점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래도 다행히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거는 능력은 있다. 내 생각에 가이드 없이 여행하고자 한다면 지도를 볼 줄 알거나 말을 잘 걸거나 둘 중 하나만 잘해도 혼자 여행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마카오는 나 같은 지도 맹인에게 최적화된 도시다. 지도를 볼 줄 알면 좀 더 편하겠지만 굳이 지도를 따라가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만 가도 유적이 있고 맛집이 있고 찻집이 있다. 심지어 중국어는 전혀 모르고, 영어는 안 통하지만 별로 문제 될 게 없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관광객에게 호의적이어서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한다면 안 될 게 없다.
요즘 한 도시에 한 달 살기가 유행인데 마카오는 하루 들르기에는 너무너무 아까운 곳이고, 한 달쯤 살아보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간 다시 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