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산방산 그리고 사진
대평리 산방산을 오르자던 범재님이 갑자기 근처에 좋은 곳이 있다며 급하게 핸들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골목길을 오르더니 어느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카페인지 펜션인지 둘 다인지 모를 이 곳에는 넓든 잔디와 서귀포의 바다, 그리고 산방산이 한 폭의 사진처럼 담겨있었다.
카페의 내부는 어느 사진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갤러리 카페일까 싶을 정도로 모던클래식 인테리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안도 다다오' 씨의 작품이었던 '지니어스로사이' 처럼 이 공간도 어느 곳에서든 산방산이 보였다.
서귀포의 바다가 이렇게 시원하고 멋진 것인지 몰랐다. 제주에도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새장 밖으로 나온 듯 시야가 뻥 뚫려 기분이 좋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다. 연립 주택가 골목대장 놀이를 즐겨했고 지금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며 제주에 와서도 제주시 중심에서 생활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큰 도로를 따라 걷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저녁 6시 넘도록 일을 한다. 어둑어둑 해가 넘어간 하늘과 서울인지 제주인지 구별할 수 없는 도심에서 걷고 걸어서 한적한 주택단지로 들어와 잠을 잔다. 제주에 와서도 나의 일상은 서울과 다를 것 없는 도시인이다. 이런 도시인에게 주말은 쉼표이다. 그 쉼표를 이번에 서귀포에서 찾았다.
대평리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들이 잔뜩 들어선 마을이었다. 분명 한적한 마을인 줄 알았는데, 여러 나라의 컨셉을 가진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들의 천국이 되었다. 원주민은 보이지 않았고 온통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행객들로 붐볐다. 관광명소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조용히 사색에 빠져 경치를 감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금 이 카페는 아직 평화롭다. 정말로 정말로 파아란 바다와 하늘, 푸르디 푸른 산방산과 절벽들. 막힘 없이 뻗은 시야와 오직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된 내부 인테리어. 지친 도시인에게 이곳은 쉼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