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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룡 May 10. 2017

1년 동안 나는 36만원을 벌었다.

제주워킹홀리 1년차 이야기

#1. 200만원으로 제주에 왔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제주도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편하게 살았다. 5살 때 발레를 시작했고, 국민대학교 무용전공 학사로 졸업했다. 그런 내가 어쩌다가 제주까지 와서 일을 하게 되었을까?

나는 여행도하고 돈도 벌고 싶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춤’ 밖에 없었다. 졸업을 앞둔 4학년은 피를 말리는 시기였다. 내가 제대로 학교생활을 했음을 증명하는 졸업과제와 졸업공연을 해야 했고, 졸업 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 살 길을 찾아야했다. 이런 나의 똥줄심지에 불을 활활 붙여주는 수업이 있었는데, 4학년 전공수업으로 들었던 ‘청년예술CEO’라는 강의였다.


‘청년예술CEO’는 전공하고 있는 ‘무용’이라는 영역에서 사업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한 학기동안 진행된 이 수업은 무용만 하던 우리에게는 너무도 생소했고 어려웠다. 관심이 없는 친구들에겐 시간낭비라고 생각 될 것이고 나와 같은 친구들에겐 이 수업이 너무 짧고 아쉬워서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강사님과 계속적인 교류를 이어나갔다. 이를 계기로 무용이라는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을 구상하고 실행해보면서 스타트업이라는 영역에 발을 넣었다. 


그런데 쥐뿔도 없이 시작하기엔 경험치가 너무 부족했다. 나는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고 싶었고, 사업과 관련된 일을 배우고 싶었다. 무용만 아는 바보가 아니라 무용이라는 전문가 영역에서 더 확장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을 가는 것은 계속 한 우물을 파는 것 같았다. 그래서 2년 정도 해외로 여행을 가거나 다른 지역에서 일을 배워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제주도’에서 스타트업을 육성 및 지원하는 기관의 채용공고를 접하게 되었고, 나는 서류와 면접을 모두 통과하여 1년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막상 제주에서 1년 동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제주에 아는 사람도 없이 집은 어떻게 구하고 잘 지낼 수 있는지 걱정이었다. 특히 부모님께서는 첫 직장과 자취생활을 제주라는 곳에서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 많으셨다.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살짝 들떠있었다. 직장과 가깝게 시청근처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치 길고 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서울에서 집을 구할 때 흔히 사용하는 직*/다* 등을 통해서 집을 알아보는데 아무리 찾아도 뭐가 없었다. 온라인검색을 통해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제주에서 원룸을 구하려면 제주교차로나 오일장, 제주대학교 생활게시판을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2월초에 집을 구하는 터라 ‘신구간’(이사 및 1년 단위 계약이 성사되는 구간) 이라는 기간이 지나서 집을 구하기 더 어려웠다.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아직 지어지고 있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월세로는 잘 계약하지 않고 1년치 월세를 한번에 지불하는 년세로 계약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직접 내려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부모님과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구해서 제주도로 내려갔다.


하필 폭풍 눈보라가 치는 날 내려갔다.

나는 처음으로 제주의 바람의 무서움을 맛보았다. 얼굴이 찢기는 것 같았고 쉼 없이 바람이 불어서 우산 따위는 소용이 없었다. 덜덜 떨면서 부동산마다 방문했고 여러 집을 구경했다. 시설도 좋지 않은데 가격은 엄청 비쌌다. 내가 꿈꾸던 제주의 라이프와 현실은 다른 것 같았다. 갑자기 임용을 포기하고 싶었다. 충동적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서울로 가야하는 비행기시간은 임박했고 이제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기적처럼 급하게 올라온 집이 있었다. 운명처럼 말이다. 시청에서 도보로 10분정도의 거리였고, 큰 대로변에 위치한 원룸이었다. 과거 레지던스나 기숙사로 활용하던 곳인데 개조해서 원룸으로 운영하는 듯 했다. 1층에 관리실이 있었고, 지하에는 공용 코인세탁실이 있었다. 방은 매우 작았지만, 혼자 지내기엔 그럭저럭 괜찮았다. 여러 가지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집주인과 계약을 했다. 보증금 100만원과 월세 40만원. 나의 통장에는 60만원이 남았다.


#2. 보증금 100만원, 월세 40만원.

입사일 전, 나는 대학 졸업식 후 부모님과 만찬을 즐긴 후에야 큰 캐리어를 끌고 제주로 내려왔다. 

잠깐 묵을 호텔 같은 이곳에서 옷을 정리하고 짐을 풀었다. 마트에서 청소도구며 식자재며 처음 해보는 자취에 들떠있었다. 초반에 제주에서의 라이프는 새롭고 흥미로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통유리 앞에 앉아서 지나다니는 차들과 오름을 구경하면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겼다. 캐주얼하게 차려입고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 출근했다. 서울에 비하면 사람이 없다. 대학 캠퍼스보다 사람이 없다. 그래서 평화롭고 좋았다. 내가 일하는 곳(센터)의 분위기와 업무를 파악하는 동안은 무척 평화로웠다. 근처의 카페들 느낌도 너무 좋았고 직원들도 너무 좋았다. 제주에서 일하며 사는 삶이란 평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런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3개월 동안 나는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제주의 비바람에 환풍기와 유리창이 터질 듯 굉음을 내는 통에 공포영화를 보는 듯 벌벌 떨었다.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대로변을 달리는 차 소리와 돼지 소리에(돼지 싣고 가는 차량) 잠을 설쳤다. 좁은 화장실은 언제나 불편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락스 청소를 하지 않으면 곰팡이로 뒤덮였다.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에 짜증이 났고, 더운 날씨에 냉동실 없는 음료냉장고로 버티는 것이 무리였다. 지하에 있는 코인세탁기는 매우 더럽고 고장도 잘 났으며 언제나 기다려야 이용할 수 있었다. 건물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점검을 하는 바람에 관리인이 내 방을 수시로 방문했다. 특히 내가 일하는 중에 급하게 점검을 해야 한다고 하면, 너저분한 집이지만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외부인을 들여야 했다. 나의 사생활이 침해되는 기분이었다. 제주에 아는 사람이 없어 나는 언제나 외로웠고, 이 불편한 집을 매일 나가고 싶었다. 이런 공간에 지불하는 월세와 관리비, 가스 및 전기요금이 한 달에 50만원씩 나간다는 것이 아까웠다. 집은 나에게 휴식을 주지 못했다. 그 스트레스는 회사 일로도 이어졌고, 제주 살이 우울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3. 11개월 동안 9만원의 적자.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있는 것이 더 편했다. 

집에서는 잠만 자거나 씻고 나오는 용도였다. 늦게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저녁 술자리는 무조건 참석했다. 주말이면 관광지와 전망 좋은 카페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버스 이용에 지칠 즈음에는 차가 있는 지인과 함께 다니거나 동네 카페로 갔다. 받는 급여에 비해서 나가는 돈이 많았다. 깨작깨작 여유자금 60만원도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센터의 분위기는 모험으로 가득하다

나는 회사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센터(회사)에서는 스타트업과 관련된 많은 일들을 접하고 배울 수 있었다. 비즈니스적인 모든 정보들과 유명한 스타트업 종사자 분들, 투자자 분들, 해외에서 온 디지털 노마드도 만날 수 있었다. 센터의 가장 큰 장점은 이곳이 인적 네트워크의 허브라는 것이다. 도내 외, 국내외, 영역 불문 여러 사람들이 교류하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영역을 확장하고 경험치를 쌓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출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월급은 흔적도 없이 ‘퍼가요’가 되었고, 가계부를 적을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분명, 나는 이곳에 돈을 벌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지출은 내가 제주생활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을 주지 못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문화예술사를 취득했으며, 전공을 살려 관련 분야에서 일했다면 이보다 높은 임금으로 서울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적어도 집에 대한 지출은 없으니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점점 제주라는 섬 속에 고립되는 것 같았고, 교류는 많으나 내 사람이 없는 빈껍데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삽질을 하면서 방황을 하던 시기에, 감사하게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제주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에게 계속해서 자극을 주고 정보를 주는 센터 직원 분들, 새로운 집도 알아봐주고 옮기는 것도 도와주고 제주 살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입주기업 분들,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제주여행 친구가 되어주는 스타트업 종사자 분들(체류자 등), 그리고 ‘제주IT프리랜서’ 그룹 멤버 분들 ‘따로 또 같이’ 그룹 멤버 분들..

2016년 12월 말.

통장 잔고의 오르내림 끝에 9만원이라는 적자를 보았지만 그것은 결코 적자가 아니었다.

9만원을 지불하고 엄청난 것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4. 보증금 200만원, 월세 50만원.

지금 살고 있는 기숙사 같은 원룸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더 많은 적자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매일아침 오일장 신문과 교차로 신문을 읽었고, 제주대 생활게시판과 직*/다*/빠*을 뒤졌다. 그러는 동안 살고 있는 집을 빼서 쉐어하우스로 들어가서 버텼다. 이 쉐어하우스에도 사연이 있다. 체류지원프로그램으로 계셨던 분께서 제주에 정착하고자 좋은 집을 년세로 구해둔 집이었는데, 쉐어하우스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아직 가구도 없는 집이라서 작은 방 하나를 나에게 내어주셨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신세를 지게 되었다. 심지어 비용도 받지 않으셨다. 한 달 넘도록 그곳에서 신세를 졌고, 새로운 집을 찾아 이사를 하게 되었다. 


시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조용한 주택단지에 있는 4층짜리 원룸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이었지만 높은 편은 아니었다. 많이 낡았지만, 해도 잘 들고 침대도 넓었으며 나름대로 쾌적한 화장실과 세탁기가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곰팡이에 찌들어서 건강한 집은 아니었지만, 전보다는 훨씬 나은 곳이었다. 나는 어머니께 천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빌려서 보증금 200만원을 내고 년세 600만원을 지불했다. 월세 50인 셈이다. 월세로도 낼 수 있었지만, 년세로 지불하고 관리비를 면제 받았다. 아무리 청소해도 곰팡이를 전부 지울 수 없었고, 세탁기도 낡아서 세탁이 깨끗하게 되지 않지만 나는 만족했다. 마음의 평화를 찾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집순이처럼 쉴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때로는 지인들을 재워주기도 하였고, 불러서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안정감을 찾았고 제주에서 무사히 1년을 버티었다. 그 후 센터와 1년 계약연장 하였다. 


#5. 1년 동안 나는 36만원을 벌었다.

딱 1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께 빌린 천만원을 제외하고 내가 제주에서 벌은 돈은 36만원 이었다. 

매달 50만원씩 어머니께 갚고 있고, 맨 처음 가져와서 사용했던 200만원 통장을 다시 채웠으며, 제주에서 쓴 모든 지출과 벌어들인 수익을 계산해서 36만원 벌었다. 


앞으로 1년 동안 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더 많은 누적 수익이 생길 것 같다. 더 이상 구입할 살림도 없고, 식비나 유흥비도 줄었고, 급여도 조금 올랐다. 아직 어머니께 빌린 돈을 전부 갚지는 못했다. 하지만 1년 동안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금전적인 부분을 떠나서 나는 이곳 제주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센터에서의 일들이 나에게 주는 영향도 크다. 배울 점도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생겼다. 


집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까?

제주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 때문일까?

무엇의 영향이 더 컸던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제주에서 1년 동안 얻은 것이 많다. 그것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무용' 외에는 아는 것이 없던 내가, 스타트업과 IT 개발, 노마드라이프, 공간디자인, 프로그램 기획과 관련한 영역들을 접하면서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1년 사이에 내가 이렇게 성장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제주워킹홀리데이를 1년 더 이어가야겠다.

J-Space (Co-working space) Manager 혜룡 입니닷 :D

1년동안 어떤 일들을 했는지에 대해서 기록된 자세한 내용들은 차차 하나씩 업데이트 할 예정 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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