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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룡 Jan 04. 2018

2017 제주 워홀러의 통장

1년 동안 나는 얼마를 더 모았나?

  2016년 2월.

나는 대학 졸업 직후, 제주에 취업해 내려왔다. 1년 계약직이었다. 꿈과 환상의 섬 제주에서 나는 첫 자취와 첫 사회생활을 하였다. 처음 1년 동안은 적자를 기록하고, 대신에 경험치와 사람을 얻었다. 관련해서  1년 수익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렸고, 나의 경험담을 책도 출판했다.



 (적자라도 괜찮은 제주 워킹홀리데이/알라딘, 부크크, 예스 24)


  2016년, 제주 1년 생활에 대한 글.

https://brunch.co.kr/@hygo92/39



  2017년.

적응된 제주에서 나는 서울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장소만 다를 뿐, 집-회사를 반복하는 일상과 먹고 자고 노는 생활은 같았다. 그것이 제주라서 조금 특별한 부분은 있었다. 소비의 금액이라던가 패턴은 서울과는 달랐다(솔직히 제주는 관광지라 물가가 서울보다 비싸서 힘들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제주에 이주를 하거나, 한 달 살이를 한다. 또, 나처럼 이곳에 취업해 생활하는 20대 친구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고민은 같았다. 높지만은 않은 급여와 비싼 월세, 서울 집을 오가는 항공권. 그럼에도 이곳에서 얻는 수익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서울보다 더 많이 말이다.


최근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다. 몇 주 전에 나처럼 제주에서 근무하는 청년의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너무 공감되었다. 비행기 값과 육지에서 내려오는 친구들을 대접하는 비용이나 카페에서 사용되는 비용 등이 말이다.


2017년. 1년 동안 나는 얼마를 모았을까?



#1. 수익(월급+기타 수당+기타 수익)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그러나 그것은 스쳐 지나가는 것. 들어오기 무섭게 공공요금으로 퍼가요 되는 월급.

세금은 뭘 그렇게 많이 떼 가는지 차감되고 나의 통장에 찍힌 숫자는 200이 되지 않는다. 그 200 넘기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어쩌다 200이 넘는 금액이 찍히면 그것은 야근수당, 주말 수당... 나는 대체로 칼퇴를 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월급 외에 수익이 생기는 경우는, 생일에 부모님이 챙겨주신 용돈이라던가 쉬는 날 서울에서 강연을 했다거나 중고로 나의 물품을 팔아서 생긴 경우이다.


  무튼 그렇게 1년 동안 통장에 들어온 돈의 액수는 3천50만 원 정도이다. 부수익 없이 회사에서 받은 급여로는 3천은 꿈도 못 꾼다.  


'가계부' 어플에 월급 및 기타수당 들어오는 20일을 제외하곤 온통 지출 뿐이다...




#2. 공과금(월세+가스/전기/통신 및 세금)

  캥거루족 아니고서야 독립하면 생겨나는 지출. 자본 없는 사회 초년생은 전셋집을 구할 수 없다. 심지어 제주에 전셋집은 참~~~~ 말로 없다. 대부분 월세다. 나는 1년 연세로 지내다가 몇 개월 기간이 맞지 않아셔 월세로 연장 중이다. 혼자 지내면서 월세와 가스/전기/통신요금을 내려니 너무 아까웠다. 이상하게 제주에서 가스요금이 참 많이 나온다. 여름에는 몇 천 원 내지도 않으면서 겨울에는 10만 원 가까이 나올 때가 있다. 보일러도 수시로 고장으로 꺼지면서!!! 너무 아깝다!


  고정적으로 월세 (50~53만 원), 가스(4천 원~10만 원), 전기(5천 원~1만 원), 전화요금(약 5만 원)을 납부한 금액이 1년 동안 약 715만 원. 월 60만 원 가까이 꼬박꼬박 나간다는 소리! 부모님과 함께 할 때 이렇게 적금을 부었다면 1년에 7백만 원을 모았다. 아, 서울 올라가면 부모님께 하숙비 드려야 할 것 같다. 아니, 드려야겠다.


#3. 교통비(버스+택시+렌터카+비행기)

  제주에는 지하철이 없다. 버스만 이용할 수 있는데, 노선도 어렵고 일찍 종료된다. 집과 회사의 거리는 도보 10분이라서 버스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 내가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공항에 간다거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놀러 가는 경우이다. 그 외에 멀리 나가거나 친구가 놀러 와서 이동을 하게 될 경우는 렌트를 한다. 렌트는 저렴한데 기름값이 많이 잡아먹는다. 무튼, 렌트는 1년에 2-3번 정도밖에 안 한다.


  주로 택시와 비행기로 요금이 많이 나간다. 택시는 수시로 타게 되는 교통수단이다. 기본요금 2800원으로 잘 다닌다. 버스를 한참 기다리고 추위에 떨며 고생하고 걸을 수고보다 택시를 타면 3천 원 안으로는 어디든 편하게 갈 수 있다. 특히, 저녁 늦도록 음주가무를 즐긴 후에는 택시가 답이다. 안전귀가! 택시를 엄청 자주 이용하지만, 1달에 1만 원? 2만 원도 안 쓴다. 이런 생활에 적응하다가 서울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었는데 기본 6천 원 이상, 2-3만 원은 거뜬히 나와서 놀란 경우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서울에서는 택시비가 아까워서 차라리 그 돈으로 밤새 술을 더 마시고 해장하고 첫차(버스나 지하철)를 타고 이동하지 않았던가! 길도 많이 막히고... 제주는 길도 별로 안 막히고 멀리 갈 일도 참 없다. 다 거기서 거기인 작은 도시(제주시에서 서귀포시 넘어갈 일 아니고서야....). 공하에서 집까지 짐이 무거워서 택시를 타는 경우가 있는데 7천 원 이내로 끝난다.


  교통비에서 가장 많은 지출을 차지한 원인! 바로 비행기.

나는 한 달에 한번 꼭 서울에 올라간다. 제주에서 보내는 주말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나는 이미 1년 동안 여기저기 많이 쏘다녀서 더 이상 감흥이 없다. 그리고 함께 놀 친구도 없어서 주말에 혼자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행위는 무척 외롭다. 카페나 식당은 커플들 혹은 가족단위 손님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나 같이 혼자 다니는 사람들은 참 외롭고 자리 때문에 눈치도 보인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좋은 풍경을 보아도 함께 할 누군가가 없으면 무슨 소용? 그리고 치아 교정을 시작해서 어차피 서울에 가야 한다. 월에 한번. 서울에 가는 날만 보고 버틴다. 또, 부모님도 내가 올라올 날을 기대하고 계셨다. 명절에 자식들이 올라오면 이렇게 기쁘구나 할 적도 있다고 하셨다. 내가 오는 날은 맛있는 음식으로 진수성찬이고 일부러 스케줄도 빼서 나들이도 다녀온다. 참 행복한 시간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가야 한다!


  2017년에는 유독 경조사가 많았다. 친구들의 결혼, 사촌의 결혼이 많았다. 겹쳐서 못 가는 경우도 있었고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한 극성수기에도 못 갔었다. 그렇게 서울/대전/대구 등으로 육지행이 많았고, 저렴하게 구한다고 하여도 왕복 10만 원의 예산은 필요했다.


1년 동안 비행기 값으로만 130만 원의 지출이 있었고, 교통비 총지출은 약 190만 원.


#4. 예측 불가능 필수 지출(경조사+의료)

  사회생활로 어쩔 수 없는 비용 지출 경조사. 누구의 결혼식, 돌잔치, 개업선물비, 축하금, 부의금, 부모님 용돈... 몰랐는데, 경조사로 200만 원 지출이 있었다. 쌓이면 무섭다더니...


  그리고, 나는 참 자주 아프다. 위염을 달고 살아서 한 달에 한 번은 병원 치료를 받는 것 같다. 그리고 8월부터 교정을 시작해서 할부로 월 37만 원씩 꼬박꼬박 지불하고 있다.


예측은 불가능하고 줄일 수 없는 지출! 450만 원.


#5. 먹는 즐거움은 살을 찌우는 통장 다이어트(식비+카페+주류)

  의. 식. 주에서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식욕은 참을 수 없다. 욕구 중에서도 식욕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 비용은 서울이나 제주나 해외나 어디에서나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제주에서 많이 지출한 경우는 식비와 카페다(워낙 놀 곳이 없어서 유흥에 사용되는 주류비는 별로 안 나갔음). 어쩌다가 서울에서 만난 후배, 제주에 놀러 온 친구들과 저녁을 먹을 적에 유일한 직장인이라 내가 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류비는 많이 나가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는 구내식당이 없다. 구내식당이 생기면 주변 상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생길 수 없다고 한다. 점심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최소 6500원~1만 원 사이이다. 서울에는 국밥집도 5천 원부터인데, 여기는 대부분 7천 원부터이다. 비싸다... 어머니가 근무하는 곳의 구내식당은 4천 원 정도던데..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도 없고, 안 먹을 수도 없고...


  재료를 사서 삼시 세 끼를 집에서 먹어본 적도 있었다. 생각보다 재료가 많이 사용되었고,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양이 많았다. 오히려 지출이 더 심했다. 그래서 그냥 사 먹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침은 대체로 패스하거나 카푸치노로 대신한다. 점심은 직원들과 함께 사 먹고, 저녁을 굶거나 술 약속을 나간다. 분식집에서 김밥 등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식당보다 카페를 더 많이 이용한다. 아침에도 커피, 식후에서 커피, 주말에도 카페를... 그래서 카페에 사용되는 지출을 줄이려고~ 줄이려고 참 많이 노력했는데도 잘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충분히 줄일 수 있었는데 말이다. 외로운 제주에서 밤마다 할 수 있는 것은 또래들과 모여서 술 마시는 것. 이상하게 같은 소주인데 여기서 더 비싼 것 같다. 저번에 강남에서 먹고 마시고 놀 적에 안주도 저렴하고 소주값도 저렴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제주가 더 비싸다. 소주가 1천 원씩 더 비싸다거나 안주값이 이상하게 높다. 반성하자! 집밥 잘 챙겨 먹고 놀지 말고 바로 퇴근해서 집에 가자. 식욕으로 인한 지출, 약 5백 만원.


제주 돌아다니며 맛집/카페로 가득한 나의 계정...



굳이~~~~ 카페가서 작업하는 소비로 가득한 작가용 계정...



#6.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있을까?(미용+의류+헬스)

  요즘은 남자 여자 구분 없이 뷰티에 관심이 많고, 비용 지출도 많다. 특히 나 같은 20대는 더더욱! 어머니는 어쩌다 한 번 하시는 펌도 5만 원 넘어가면 비싸서 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나는 기본 10만 원은 넘어가는데...  커트나 단발은 유지하느라 미용실 많이 갈 것 같아서 머리를 기르고 펌을 한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면 푸석푸석 상하고 모양도 예쁘지 않아서 다시 미용실에 방문해 손질하고 다시 볶는다. 월 5만 원이 꼬박꼬박 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은...


  여름에는 멋을 낸다고 네일아트라는 사치를 즐겼다. 제주에선 젤 네일이 5만 원이 기본이다. 세상에나 너무 비싸다. 그리고 잘 못한다. 잘 하는 집은 더 많은 돈을 주어야 한다. 나는 서울에 올라가서 다니는 네일샵을 찾는다. 3만 원도 되지 않는 비용으로 화려한 아트까지! 그런데, 이것도 안 해도 되는 지출. 어머니는 한 번도 네일아트를 받아보신 적이 없다고 하셨다. 어차피 못 생긴 나의 손, 칠해서 뭐 하나? 사치였다.


  화장품 욕심은 많이 없어서 수분크림이나 팩트 정도만 구매한다. 그런데, 이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고급 화장품을 사용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내 화장품 지출을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은근히 지출이 있다.


  건강을 위해 헬스장도 6개월 회원권을 긁었다. 주 1회는 꼭 방문하고 최근 몇 달은 아침마다 매일 출근 찍었다. 확실히 몸이 건강해졌다. 그런데, 제주에서 유독 활동량이 없어서 헬스를 다니는 것 같았다. 서울에선 출퇴근을 위해 지하철을 타거나 무튼 움직임이 많은데, 여기에선 하루에 20분? 30분 겨우 걷는다. 가만히 앉아서 일하니 당연히 체력이 좋지 않을 수밖에. 테니스나 축구 동호회라도 들어야 하나? 만만한 게 헬스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도 헬스 아니더라도 댄스 학원 같은데 다녔을 것 같다.


  그 외에도 구두, 옷, 외투 등의 아이템을 구매한다. 대학 다닐 적에는 운동복에 과잠을 입고 대충 다녀서 어머니는 내가 체대생 같다고 싫어하셨다(나름 무용과). 사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복장이 자유로워서 신경 써서 입을 일은 없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옷이 필요했다. 대학생 때 입던 몇 안 되는 패션으론 도저히...


  하, 그러나 이것도 결국 사치다. 보여주기를 위한 사치. 또, 핸드폰이 박살 나서 아이폰 구매, 노트북 고장으로 맥북 구매. 이것도 약간의 사치로 저렴이가 아닌, 비싸고 비싼 애플 제품들..(여기서 약 3백만 원 지출)

보여주기를 위한 비용으로 나는 약 8백만 원 지출했다.


#7. 미래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적금들(청약+연금+기타)

  통장에 찍힌 숫자가 백만 원을 넘어가면 뭔가 불안한 것 같다. 괜히 좋은 전자제품(핸드폰이나 노트북을 산다거나)을 알아보게 된다거나 국외 항공권을 검색한다(연차 모아서 해외여행 다녀올까?). 그래서 나는 미래를 위해 지출한다. 적금도 결국 지출이라고 생각한다. 없는 돈이다 생각해야 쓰질 않는다. 그렇게 꼬박꼬박 모아서 연세도 해결하고 해외여행도 다녀왔고 이렇게 제주살이를 위해서 초기 자본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고정 수입이 생기니까 적금도 안심하고 여러 가지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지금 현재에 만족해야 했다. 내가 어떠한 사고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데, 무작정 돈을 쟁여두고 쓰지 못하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작년까지 실비 보험료를 월 7만 원 가까이 냈었다. 그런데, 내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너무 적었다. 큰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어떠한 암이 걸리지 않고서야 60세까지 꼬박꼬박 지출해도 나에게 돌아올 돈은 없었다. 결국 도중에 해지했다. 엄청 많은 돈을 부었는데 해지하고 돌려받은 돈은 정말 몇 푼 되지 않았다. 아까웠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해지해서 다행이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지금까지 청약통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월 2만 원. 비용이 적은 이유는 청약 통장은 만들고 유지하는 기간만 길면 되기 때문이었다. 뭐, 일반 적금이다 생각하고 돈을 많이 부어도 되었지만, '내 집'에 대한 희망이 1도 없는 나는 최소한의 대비책으로 청약통장만 가지고 있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나는 평생 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 번도 '우리 집'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결혼 직후 월세 살이를 하셨고 출산 이후 전세로 작은 빌라 반지하 생활을 하셨다. 나는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방에서 자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본능적으로 거실 불을 켜기 전에 바닥을 주시해야 했다. 불을 켜면 왕 큰 바퀴벌레와 지네, 돈벌레 같은 녀석들이 꾸물꾸물 바닥에 널어놓은 양말 밑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상이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처음으로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반 지하실이 있었고 반 지상이었다. 지상! 하지만 방 한 칸은 집주인 할머니가 거주하시고 그 방을 농으로 막아 사용하는 신세. 역시 전세였다. 심지어 집이 엄청 낡고 오래되어서(우리 집 빼고 아파트와 빌라가 들어 설 정도였다. 북촌 한옥마을도 우리 집 보다 좋을 것이다.) 천장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다락방에 고양이가 들어오면 정말 지붕이 조금씩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고정한 나사못이 해가 갈수록 아래로 휘었다. 조만간 자다가 천장에 깔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집에서 초-충-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어머니는 거실에서, 아버지는 작은방, 안방에 나와 동생이 함께 지내는 생활에서 어머니는 마침내 기적을 이뤄내셨다.

  꿈을 잘 꾸시는 어머니는(친인척 태몽이나 좋지 않은 일을 예감하는 꿈은 모두 어머니가 꾸어주심.) 으리으리한 집 꿈을 꾸셨다고 하였다. 로또라도 되려나 싶어서 로또를 구매했지만 허탕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국가지원 임대주택에 신청을 했었는데, 그것이 당첨되었다! 엄청난 로또다! 은평 뉴타운에 새로 지은 아파트 1층이었다. 처음으로 새집, 아파트, 빛이 잘 들어오는, 내방이 있는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화장실이 두 개나 되었고 따뜻하며 욕조도 있었다. 벽걸이 TV와 소파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 집도 결국 전세였다. 마음대로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공사를 한다거나 뭔가를 할 수 없었다. 못 하나 마음대로 박을 수 없었다.

  나는 평생 집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가질 필요도 느끼지 못하였다. 어차피 평생 모아서 집 갖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냥 조금씩 돈을 주면서 이런 집 저런 집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유목민 같은 삶을 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집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집순이는 아니거든. 그러한 이유로 청약에는 아주아주 적은 돈을 넣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퇴직연금 통장에는 1만 원을 넣고 있다. 그래도 혹시 내가 오래오래 살아서 60세 넘어간 뒤로 연금을 타서 놀고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해외여행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말이다. 이런 삶을 60 넘어서 노후로 생각해야 하다니 슬프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아주아주 작은 기대의 적금이 하나 있다. 이곳에 월 50만 원 가까이 넣고 있다. 반절은 어머니 시골집을 위한 돈, 반절은 프리랜서가 되어도 어느 정도 죽지 않을 수 있는 비상금이다. 어머니는 집에 대한 욕심이 있으셨다. 할아버지는 건축 쪽 일을 하셔서(지금으로 말하면 건축디자인 회사를 운영한 셈) 전국으로 다니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이사를 참 많이 다니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친구를 사귈 겨를도 없었고 어느 동네에서 얼마를 살았는지도 기억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그렇게 잘 나가던 할아버지는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가족 사이에도 보증은 서면 안됩니다 여러분...) 힘든 서울 살이를 하셨다. 부유한 종갓집에 시집을 왔으나(그때 우리 집은 서울에서 매우 으리으리한 부잣집이었음) 나의 친할아버지는 음주가무와 도박을 즐기셔서 좋은 집과 재산 대신에 빚을 잔뜩 물려주셨다. 결국 그 좋은 집은 우리 집이 되지 못하였다. 심지어 내가 딸로 태어나는 바람에 대를 이을 수도 없었다. 어차피 우리 것이 아니었다. 무튼 어머니는 '내 집' 이란 것을 가지고 싶어 하셨다. 그것을 위해 아끼고 아껴서 모든 것을 헌신하시어 우리를 독립시키고 지금까지도 일을 하시며 본인을 위해 쓰지 않고 '집'을 위한 투자를 하고 계셨다. 내가 드린 용돈은 모두 적금 통장으로 들어갔다. 내가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실 적에 어머니는 집에서 믹스커피를 타서 마셨다. 내가 미용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클리닉을 받을 때에도 어머니는 저렴한 미용실에서 일반 펌을 하셨다. 밖에서 친구들이랑 비싼 안주에 술을 사 마신 날에도 어머니는 집에서 남은 반찬에 밥을 드셨다. 지금은 우리의 교육비가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용돈도 드리는데 여전히 아끼시고 아끼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제 너희도 다 커서 독립을 하였으니,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 한적한 시골 마을로 내려가서 내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어머니 시골집을 위한 적금, 그리고 부모님의 도움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상금을 위하여 적금을 들고 있다. 없는 돈이 다 생각하고 절대 중간에 해지하진 않는다. 어머니는 수익의 반은 적금으로 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나는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아직 돈과 일의 노예로 삶을 살고 싶진 않았다.


#8. 순수익 (수익-지출=?)

 자. 구구절절 다 핑계다. 결론적으로 내 통장에 지금 얼마가 있느냐?

우선 수익에는 월급+기타 수당+기타 수입, 즉 외부에서 들어온 돈을 모두 포함한다.

지출에는 적금을 포함하여 무조건 통장에서 빠져나가 다른 곳에 사용되는 돈을 모두 포함한다.

그렇게 2017년 수익과 지출, 나에게 남은 순수익은 200만 원.


  작년 포스팅에는 36만 원(사실은 적자). 올해는 200만 원. 심지어 먹고 놀고 실컷 했으니 200만 원. 보증금을 돌려받고 적금을 해지해서 나에게 돌아오면 500은 되려나..? 나의 자산이 500... 500이라니.. 그래도 흑자다!



 2018년 1월.

서울 부모님 집에(은평 뉴타운 아파트) 온 식구가 다 모였다. 제주 워홀러 나와 자취하는 곧 대졸자 내 동생.

어머니는 곧 졸업해서 백수가 될 동생보다 내 걱정을 더 많이 하셨다. 나는 곧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퇴사 후 서울에 올라올 예정이었다. 그다음 계획은 없었다. 확실하게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엔 취업은 불가능했다. 나도 원하지 않았고 그런 기관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미치지 못하는 스펙이었다(토익 점수 따위 나는 없다). 어디서 일을 하던 연봉 높은 곳은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돈보다는 손해는 없지만 나 스스로 즐겁게 일하고 경력치가 쌓일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 것들이 쌓여 언젠가는 다 돈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동생은 미술대학을 졸업한다. 동생은 나처럼 곧 백수다. 임용 준비는 취미였다. 내가 겨우겨우 한 클래스 레슨 해서 몇 만 원 받을 때 미술학원 러브콜을 받아 끄적끄적 몇 시간 그림을 그려주고 입시생을 가르쳐주는 알바를 하면서 몇 십 반원을 받던 동생이었다. 현재는 졸전을 끝내고 졸업장 나오기 전까지 방문 미술과외와 비트코인으로 아주 아주 편하게 천만 원 단위를 찍고 있었다. 못 본 사이에 자가용도 뽑았고, 전셋집도 알아보고 있을 정도로 자기 앞가림 잘 하고 있었다. 엄청 비교되었다. 어머니는 동생에게 돈을 불려달라고 맡기기도 하셨다고 했다. 장녀 체면이 정말 구겨졌다.

  매 달 서울 갈 때마다 용돈 챙겨드리고 선물 챙겨드리고 열심히 연락도 드리고 그랬는데... 통장 잔고 차이로 이렇게 바뀌다니... 부들부들...


  하지만 괜찮아.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통장에 찍힌 돈의 숫자가 아니라 지금의 경험과 사람이다. 사람이 곧 재산이다. 당장은 뭐가 없어 보여도 나중에는 다 돌아올 것이다(그렇게 믿고 싶다). 서울로 복귀해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의 씀씀이와 나에게 얻어진 것들을 모두 분석해서 이제는 집중해야 한다. 뭐든,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뭘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해서 그렇지!


  통장에 순수익  200만 원. 두 권의 책 출판. 예술뿐 아니라 IT/스타트업 관련 인맥. 이 정도면 제주 워킹홀리데이 나름 성공적 아닌가? 외국 가서도 잘 벌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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