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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May 29. 2020

외다리 슛돌이

내 마지막 퍼랭이 축구화

축구는 개인장비가 많이 필요없는 운동에 속한다. 꼭 축구화를 신지 않아도 되고, 유니폼과 스타킹을 갖추지 않아도 공만 있다면 편하게 즐길 수 있다. 그래도 축구화를 신으면 조금 더 즐겁게 공을 찰 수있긴하다.


축구부에 입단했을 때, 나의 첫 축구화는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주신 형광색 슛돌이 축구화였다. 동네 시장에 있던 신발가게였고, 알록달록 요란하게도 생겼었다. 요란하면 어떠랴. 모처럼 사주신 새신발이 아닌가!이제 나도 축구선수가 된다는 기대감에 처음 보는 축구화를 이리저리 돌려봤다. 새 축구화를 신고 공을 차면 저 높은 구름위까지 슛을 할 수 있을것 같았다.


합숙을 시작하고 첫날, 가방에서 새 축구화를 조심스레 꺼냈다.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가고 있었다. 아직은 서먹한 동기와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우와! 하하하!! 이거봐! 신입이 이상한 축구화 샀어!!

순간 어리둥절 했다.

왜 웃는거지? 그러고 보니 다들 검정색이네? 저 삼선은 슬리퍼에서 봤는데... (아디다스였다)

저건 농구화에서 본건데....(나이키였다)


군대에 입대한 신병이 비비탄 총을 사왔어도 이보다 더할까. 축구화도 신발이니 신발가게에서 사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눈물이 핑 돌고 화가 났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놀림거리가 된 후, 오후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넓은 운동장에서도 내 형광색 슛돌이 축구화는 지나치게 튀었다. 잔디라도 깔려있는 운동장이면 좋으련만 흙바닥 운동장에 형광색은 너무 강렬한 대비였다.


나와 같이 입단한 친구는 키카(Kika)라는 브랜드의 축구화를 신고 있었다. 아버지가 조기축구회 회장이라고 했다. 내 발을 내려다 보고 피식 웃었다.

오기가 생겼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내가 이긴다!!


일주일이 지났다. 신입부원은 일주일 간 연습결과에 대해 테스트를 받는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정식입단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일주일 간 정말 열심히 했다. 기본자세, 인사이드 패스, 발바닥 볼 트래핑 등 몇가지 안되는 기본동작이지만 저녁 늦게 까지 골대 뒤 그물망에 공을 차며 개인 연습을 했다.


테스트는 3학년 주장언니가 직접 진행했다. 나를 포함해 총 3명이 대상이였다. 한명씩 호명하는 순서대로 나와서 주장언니가 지시하는 동작을 해 보이면 되는 것이다. 처음은 키카 축구화 '그'녀석이었다. 주장언니는 기본자세부터 오른발 패스, 왼발 패스를 해보라고 지시했다. 내심 실수하길 기도했다. 헛발질도 좋고 넘어지면 땡큐고...

반전은 없었다. 조기축구회 회장 딸 답게 완벽한 자세와 기본기를 선보였다.

내차례가 되었다. 주장언니는 내 발을 내려다봤다.


너는 저쪽으로 가서 대기해


주장언니가 가리키는 '저쪽'에는 키카축구화 그녀석이 서 있었다. 나는 테스트를 볼 자격도 없는건가 싶었다. 한참 어리둥절하게 있었다. 내 뒤에 마지막 사람까지 테스트를 마친 후 우리는 주장언니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였다. 수고했다는 얘기와 함께 주장언니는 내 발을 가르키며


너네 쟤 축구화 한번 봐봐.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연습해본 사람 있어?


15명의 시선이 내 발을 향했다. 그 시선의 끝엔 색을 알아볼 수 없이 닳아버렸고, 다리한쪽 스티커가 지워져버린 외다리 슛돌이가 있었다. 주장언니는 말을 이어갔다.


축구화 좋은거 신으면 뭐하니? 연습안하면 신발가게 축구화만도 못한거야!


칭찬...이었겠지. 한바탕 훈계가 이어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훗날 알게된 사실이지만 테스트에 떨어진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선수수급이 어려운 여자축구에서 테스트 불합격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슛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질 좋은 가죽 축구화가 아닌 싸구려 비닐 축구화는 솔질 몇번에도 스티커가 떨어졌다. 흙먼지를 털기위한 솔질에 슛돌이는 외다리가 되었던것이다. 슛돌이의 하나남은 다리는 그 후 피나는 훈련 과정에서 사라졌다.


형광색을 감춰보겠다고 까만 구두약으로 범벅을 만들었지만 슛돌이 축구화가 찢어져 밑창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매일매일 개인 연습을 했다. 게으름을 부리고 싶거나 슬럼프가 찾아오면 슛돌이 축구화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도 이따금씩 떠올린다.

시장 한켠 신발가게에서 산 슛돌이 축구화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행복해하던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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