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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May 04. 2020

중간관리자가 된 미드필더

축구로 배워보는 중간관리자

축구에서 미드필더의 역할은 흔히 ‘허리’에 비유될 정도로 중요하다. 기성용 선수나 프랑스 축구를 ‘아트사커’로 만든 지네딘 지단 같은 선수들만 봐도 그렇다. 공격과 수비의 시작인 미드필더는 순간적인 판단과 날카로운 패싱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냉정함과 침착함을 가져야 한다.
예전에 혼자 침대 위치를 바꾸겠다고 매트리스를 번쩍 들었다가 허리를 삔 적이 있다. 서있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움직임에 통증이 밀려왔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 순간에도 ‘허리가 이때마저 일을 했었다니…’ 하며 참담함을 금치 못했었다.
이렇게 중요한 허리에 비유될 정도로 미드필더는 중요한 선수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중요하다는 허리에 맞먹는 미드필더와 비유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회사에서 이야기하는 ‘중간관리자’다.  대체로 대리급에서 과장급 정도의 직원을 의미하며 어느 조직에서나 중간관리자의 중요성과 역할은 강조되고 있다.


내가 다니던 회사도 매월 전 직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중간 관리자들에게 본인의 역할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발표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는 ‘허리’, ‘미드필더’, ‘소통’ 등이었다. 누군가의 종이를 베껴온 것인지 어느 유명한 블로거가 그리 말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입을 모아 허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발랄한 사원으로 한시라도 빨리 지루한 회의가 끝나길 바라며, 오늘 저녁 회식 메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곤 했었다.
퇴근시간 무렵 시작했던 발표는 대부분 두 시간 남짓 이어졌으며 곧이어 대표님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총평을 하시곤 했다. 중간관리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프로젝트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게 되니 위아래로 잘 챙기고 도와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물론 나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수업 종이 치길 기다리는 학생처럼 하반신은 출입문쪽으로 향하고 상반신과 얼굴만 정면을 응시한 채, 시계만 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중간관리자가 무엇인지도 몰랐었지만,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

감독님은 전문 축구인이 아니었고, 체육교사와 축구부 감독을 겸하였기 때문에 축구교본 같은 것으로 공부를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따라서 마땅한 전술이라기보다 그저 공격은 골을 넣어야 한다고 했고, 골키퍼와 수비는 절대 골을 허용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나는 여기저기 많이 뛰어다니라고 했다. 그래서 경기 내내 정말 열심히 뛰었다. 왜, 어디로 뛰는지 모르겠지만 잠시라도 발을 붙이고 있으면 불호령이 떨어졌기에 전후반 내내 거품을 물때까지 ‘뛰기’만 했었다. 마치 흙바닥 운동장이 불바다라도 된 것처럼..

경기에서 패배하거나 경기 내용이 맘에 들지 않으면 (안 그래도 많이 뛰라는 감독님의 주문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어다녔는데) 해가 질 때까지 선착순 뺑뺑이를 헛구역질이 나올 때까지 돌았다.  

이렇게 뛸 거면 차라리 마라톤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쯤 멈추었던 것 같다.
선착순 뺑뺑이... 그것은 패배의 원인이 선수들에게 있다는 암묵적인 표현이며, 단합이 부족하고 파이팅이 약하다는 것은 순전히 핑계다. 우리 팀은 전략과 개인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번번이 패배했던 것이다.
나는 억울했다. 잘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고, 실점의 원인은 성별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특징(주로 남자팀과 연습경기를 했다)과 전술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상대팀은 짜인 움직임과 약속된 플레이를 선보였다. 코너킥 등 세트플레이 상황에서는 키커가 손가락으로 수신호를 하면 네다섯의 선수가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였다. 공을 가진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 모두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하면 경기 도중 내가 마크하고 있던 상대팀 미드필더에게 물어보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있잖아… 공 잡으면 뭘 해야 돼?”

대표님은 아직도 중간관리자의 역할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계셨다.
중간관리자는 물론 중요하다. 어렵고 힘든 위치이며 그 옛날의 나처럼 무엇을 해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제대로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부하직원을 챙김과 동시에 견제도 해야 하고 상사의 지시를 부하직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통역해주는 일도 중간관리자가 해야 한다. 상사의 지시사항은 그 의미와 뜻이 때로는 너무도 심오하여 부하직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밑에서 올라오는 불만과 위에서 내려오는 질타는 온전히 중간관리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중간관리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미드필더는 가까운 동료에게 패스를 연결하며 결정적인 공격 찬스를 도모한다. 최소한의 적절한 패스를 통해 상대 골문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야 한다. 또한 수비 상황에서 우리 팀의 수비 진영으로 공격이 넘어가지 않도록 패스의 길목을 차단하며 압박하여 공격을 차단한다. 직장생활 또한 그러한 맥락에 있다고 본다.

부하직원과의 업무는 공격 상황이 되고, 상사를 대할 때는 수비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공격은 여러 차례 실패해도 재 도전의 기회가 있고, 한 번의 공격 성공으로도 그동안의 실패와 실수를 만회할 수 있지만, 반대로 수비는 억울하게도 10번 중 9번을 잘 막았다 한들 한 번의 실수로 실점을 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책임감의 무게가 남다르다.

아래 부하직원과 상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축구와 비교해보았다. 축구를 즐기는 분이거나 잘 알고 있는 분이라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겠지만 혹,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1.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할 때
- 부하직원이 편안하게 볼 을 잡을 수 있도록 정확한 패스를 한다. 부하직원이 달려가고 있는 방향을 고려하여 볼을 넘겨주어야 한다.

- 패스를 하고 나서 재빨리 다가가 적극적으로 서포터 해야 한다. 볼을 패스했으니 내 역할은 끝났다는 생각은 안된다.

업무의 지시 또는 요청은 간결하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뜬 구름을 잡는 듯한 표현이나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는 '패스미스'를 유발할 수 있다.    

 
2. 부하직원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거나 일 처리를 잘했을 때 
- 한 골 멋지게 넣은 것과 같다!

- 칭찬을 아끼지 말자

- 방심은 금물이다. 기쁨에 취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도 있으니 조심하자.  

적절한 칭찬과 격려는 해당 직원과 팀의 사기를 북돋아 줄 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 오버스럽지 않은 가벼운 칭찬 또는 커피 한잔 기분 좋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3. 부하직원이 업무 중 실수를 했을 때 
- 공격이 실패하여 수비 상황으로 전환되었다. 잘잘못을 따지며 싸울 시간이 있겠는가?

- 볼을 빼앗긴 순간부터 수비의 시작이다. 고로 문제가 발생한 부분부터 수습해야 한다.

- 반성과 훈계가 필요하다면 락커룸에 가서 조용히 얘기한다. 관중들 보는데서 선수의 기를 죽일 필요는 없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너는 안돼!!라는 말을 실제로 들어본 적이 있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고 상황을 수습한 후 감정적으로 안정이 된 상태에서 '잘못된 부분'만 설명해주도록 하자. 독특한 마인드를 가지 않은 이상 가장 당황했을 사람은 실수를 한 당사자일 것이다. 추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른 직원들 앞에서 추궁하고 윽박지르는 행동이다.



반대로 상사와의 업무상황이다. 상사는 수비 상황으로 생각해본다.

 
1. 상사를 대할 때
- 방심하지 말고 자세를 낮춘다. (수비의 기본은 중심을 낮추는 자세다)

- 볼을 끝까지 주시하고 적당한 긴장감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굽신굽신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당한 긴장감을 바탕으로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특히 상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경우, 직장에서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 공과 사를 구분하여 직장에서 상사를 '형'또는 '언니'라고 부르는 몹쓸 소리는 하지 말자.


2. 상사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을 때 
- 온갖 현란한 페인팅 모션으로 나를 속이고 있다. 볼에만 집중한다면 속지 않으니 집중해서 상사가 원하는 핵심을 파악하는데 집중한다.
- 무리하게 태클을 시도하거나, 위험지역에서 파울을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업무 지시는 구두로 전달받을 수도 있고, 메일이나 메신저 또는 서면을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면, 정중한 태도로 질의하거나 확인하고 넘어가야 한다. 대충 알 것 같으니 '네네 알겠습니다' 하고 일을 시작했다가 낭패를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귀찮게 또 묻는다고 한 소리 듣더라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한 뒤 일을 시작해야 더 큰 사고를 방지한다. 


3. 상사로부터 질타를 받을 때

- 경기 중 : "네!!! 알겠습니다!!!"

- 경기 후 : "감독님, 드릴 말씀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상사로부터 듣기 싫은 잔소리를 들을 때가 더러 있다. 감독이 선수를 나무란다고 해서 멱살을 잡거나 욕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잘못으로부터 발생된 일이라면 즉각 시정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부당하다고 여겨진다면 감정적으로 부딪치지 않도록 유의하며 풀어야 한다.


나의 경우, 상사로부터 질타가 쏟아지고 있는 동안에는 우선 경청하고 있는 편이다. 상사가 감정적으로 진정이 되고 나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오해가 있는 부분 또는 소명해야 할 부분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모든 상사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대부분의 상사들은 다른 직원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구기지 않았다는 점이 고마웠는지 오해를 풀고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매우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회사생활에 있어 정답은 없다. 나 역시 최소한 10년은 더 직장생활을 더 해야 할 것이며, 나이를 먹고 진급을 할수록 아메리카노보다는 '라떼'를 좋아하는 소위 '꼰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축구도 직장생활도 모두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니 각자의 포지션에서, 또 각자의 직급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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