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 병아리 팀장의 자기반성과 성찰
금요일에 회식 한번 할까? 불금이니까 2차로 노래방까지!!
결혼해서 빨리 애 낳는 게 애국이야
시원한 커피 한잔만~ 나 믹스커피 안 먹는 거 알지?
축구했다고 프로그램도 발로 짰냐!
넌 여자애가 축구를 해서 그런지 다리가 코끼리 같냐
직장을 다니며 상사들에게 들었던 100만 개의 개소리 중 그나마 무난한 것들이다. 소름이 끼쳤다. 저 말을 듣고 참았다니... 어지간히 미련했다. 직장인들에게 상사란 불편하고 짜증 나는 존재이며, 단골 술안주 거리다. 얘기하다 보면 혈압이 오르니 다른 얘기하자고 해도 1분도 안되어 다시 상사를 씹는다. 씹히는 게 전문인 마른오징어가 제 역할을 못해 민망해할 정도다. 그중 팀장의 직책을 가진 상사에 대한 분노는 가히 독보적이다.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중에는 신호 위반하는 팀장을 찍어 경찰에 신고를 하고 팀장의 차에 몰래 스크레치를 내거나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팀장의 커피에 침을 뱉는 것은 애교에 속한다. 이대로 가다간 팀장들은 200살도 거뜬히 넘기겠구나 싶을 정도로 욕을 많이 먹고 있다. 진정 갈등을 해소할 방법이 있긴 한 것인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돌아보면 축구부 시절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주장 언니가 유난히 편애하는 선수가 있었다. 1학년임에도 청소와 설거지에서 번번이 제외되었다. 당시 금지 식품인 초코파이나 과자 등을 사서 주장 언니에게 바치기도 하고, HOT를 좋아하던 주장 언니를 위해 브로마이드를 구해주기도 했다. 아부는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처세에 강한 아이였다.
주장 언니의 신임을 얻자 동기임에도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조선 광해군 시절 간신 이이첨(李爾瞻)도 이보다 더했을까. 선배들의 운동화를 빨고 있는 동기에게 슬쩍 본인 운동화도 던지고 가는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도 주장 언니와 TV를 보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축구화 끈도 미처 풀지 못하고 일을 하던 동기들은 점점 불만이 커졌다. 이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다. 치사하게 왕따를 시키거나 감독님께 일러바치는 짓은 하지 말자는 결론이 나왔다. 불합리한 상황에 정면으로 맞서자! 그래!! 선배는 팰 수 없으니 저 놈을 잡아서 혼내주자! 결론이 이상하게 흘러갔지만 동기들은 야간 훈련을 마치고 얄미운 나비 같던 그 녀석을 잡아다 혼쭐을 내줬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았다. 눈, 코, 입이 빨갛게 물든 그 녀석을 본 주장 언니는 동기간에 단합이 안된다며 집합을 시켰다. 피해자를 제외하고 거사에 참여한 모두가 시멘트 바닥에 한 시간쯤 머리를 박은 뒤, 몽둥이로 억 소리가 날 때까지 맞았다. 일제에 맞서는 독립운동가처럼 우리는 맞으면서도 항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빨갛게 부어오른 엉덩이가 파란색, 보라색, 검은색을 거쳐 노란 자국만 남았을 때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부와 아첨을 한 얄미운 나비보다 주장 언니가 더 큰 문제였다.
주장 언니는 여러모로 요즘 ‘욕먹는 팀장’과 닮아 있었다. 간식비를 빼돌려 떡볶이와 햄버거를 사 먹다 우리에게 들킨 적도 있고, 부원의 사생활에 과도한 참견을 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 기분이 안 좋으면 윽박지르거나 집합을 시키곤 했다. 본인의 썰렁한 농담에 웃지 않아도 맞았고, 양말 한 짝이 없어지면 찾을 때까지 머리를 박아야 했으며, 연습 중 주장 언니가 감독님께 꾸중이라도 듣는 날엔 숙소로 먼저 뛰어가 알아서 머리를 박고 있어야 했다. 주장 언니가 운동을 그만두기 전까지 내 엉덩이는 언제나 일곱 빛깔 무지개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새로운 주장을 만났다. 고향을 떠나 낯선 울산까지 온 어린 후배들을 따뜻한 미소로 맞아 주었다. 고등학교 주장과 대학교 주장은 부여되는 권한 자체가 달랐다. 그러한 지위와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했다.
훈련이 끝나면 학년에 상관없이 뒷정리를 하게 했으며, 청소, 설거지, 빨래는 선배와 후배가 짝을 지어 돌아가며 하게 했다. 매일 저녁 간식을 펼쳐 놓고 둥글게 모여 앉아 그날 훈련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도 가졌다. 인민재판과 같은 자기반성과 질타가 아니었다. 포지션별로 모여 전술적인 토론을 하기도 하고 연습경기를 치른 날은 잘한 부분과 잘못한 부분에 대해 회고하는 매우 생산적인 활동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치킨과 피자를 시켜주기도 했다. 또한 훈련시간을 제외하고 개인의 자유시간을 보장해주었다. 잠을 자고 TV를 보거나, 멘소래담으로 마사지를 하는 등 학년에 상관없이 모두 여가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당시 스무 살이라는 어수선한 시기에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온 선수들이 많았다. 주장 언니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저녁마다 후배들을 한 명씩 불러 1:1 면담을 진행했다. 고민을 들어주고 감독님께 대신 건의를 해주기도 했다. 주장 언니 덕분에 큰 사고 없이 숙소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장이라고 해봤자 기껏 21살의 나이에 주장 언니는 팀의 리더로서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너무도 훌륭히 소임을 다한 것이다.
나를 비롯해 ‘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는 모든 이는 변해야 한다. 현업 담당자만 갑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팀장이라는 상대적 우위와 권한을 앞세워 횡포를 부리는 것 또한 갑질이다. 팀장은 팀원을 관리하는 역할 그뿐이다. 팀원이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어떠한 형태로든 돌보고 살펴야 한다.
IT팀장의 경우, 본인의 기술에만 집착하는 팀장들이 있다. 기술이 아니라 관리자의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 시대가 변했다. 승진, 연봉, 출세가 목적인 시대가 아니다. 팀원들은 예전처럼 상하관계가 명확하고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세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현재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중시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을 찾길 원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팀원에게 애사심(愛社心)을 강요하기 앞서 성장과 비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집중해야 한다.
애사심은 그것이 만족된 이후 자연스레 생긴다. 회사에 목숨 걸고 충성하지 않는다고 애사심이 없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선순위가 달라진 것뿐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히 해야 되는 일도 없다. 물을 따르거나, 수저를 놓거나, 회식장소를 예약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설프고 불편한 충고와 지적보다 실패하고 좌절했던 순간을 극복한 경험이 그들에게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존경하는 팀원이 많아질수록 회사에서 나의 경쟁력이 올라감을 잊지 말자. 팀원은 나의 재산이자 무기다. 자리에 앉아 잔소리만 하며 코털을 뽑고 있는 팀장 밑에서 일하고 싶은 팀원은 없다. 월급 통장의 잔고처럼 팀원은 ‘퍼가요~’를 반복하다 끝내 로그아웃할 수도 있는 것이다.
훌륭하고 모범적인 팀장과 관리자도 많이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례를 훨씬 더 접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팀장들도 이제 욕 좀 그만 먹자.
욕먹으며 200살까지 사는 건 너무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