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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Jul 15. 2020

마음을 다스리는 ‘글’

갑돌이와 갑순이로부터 탈출을 꿈꾸며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에서 생기며, 도는 안정에서 생기고, 명은 화창에서 생기니.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하는데서 생긴다.
(생략)


구구절절 도덕책처럼 맞는 말만 있는 이 글은
명심보감 정기 편에 실려 있는 글을 불가의 승려들이 인용하면서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전해오고 있다




“아니,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런 말 할 수가 없지!”



평소 나와 의견 충돌이 잦았던 고객사 담당자(하도 갑질이 심해 별명이 ‘갑돌이’다)가 말도 안 되는 일로 꼬투리를 잡고 늘어졌다. 상식적으로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으나, 중소기업에서 ‘을’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마음 맞는 직원과 술 한잔 기울이며 신세 한탄을 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하면 절대 저런 소리 못하지! 대기업 다니는 게 무슨 벼슬도 아니고! 자기가 귀족이야? 양반이야? 협력사 직원은 사람도 아니야??”

혼자 분에 못 이겨 소주잔을 움켜쥐고 울분을 토해냈다. 잠자코 듣던 직원이 한마디 했다.

“그 사람이 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겠어? 자기가 아쉬운 게 뭐 있다고? 억울하면 대기업 다녀야지...”

‘어쩌다 멜로’라는 드라마에서 안재홍 배우가 같은 대사를 했던 게 기억났다. 유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굳이 상대를 위해 입장을 바꿔가면서 생각해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계약관계를 표현하는 ‘갑’과 ‘을’은 실제 업무 현장에서 종종 ‘계급’이 돼버리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처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나의 부모님은 대기업 총수가 아니며, 나의 학벌로 대기업 이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원하게 퇴사를 할 입장도 아니다.

이대로 살다가는 병나겠다 싶은 마음에 ‘중/장기 갑질 극복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는 버텨야 하니까.


1.
회사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구내식당 밥이 맛있어서’, ‘출퇴근이 편해서’, ‘귀여운 고양이가 있어서’와 같은 것도 있었다.


2.
가상의 퇴사일을 정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참아보자는 마음에서다. 처음에는 내일, 그다음은 일주일 뒤, 한 달 뒤...


‘갑돌이 너도 오늘만 보면 되니까...’
‘저 개소리도 다음 달이 끝이다!’


3.
개인적인 목표를 정했다.
부족한 업무를 마스터해서 나가자고 생각했다. 빔프로젝터를 떼어가지 않는 이상, 뭐라도 하나 건져서 나가자는 생각이들었다.


4.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하도급법, 김영란법,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주 52시간 근무제 등 관련 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5.
마지막으로 틈만 나면 기도했다. 갑돌이가 더 좋은 곳으로 스카웃되서 이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아니면 최소한 전배라도...

10% 정도의 스트레스는 덜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최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효과를 보고 있는 방법을 찾았다.


마음을 다스리는 ‘글’ 쓰기


힘들고 괴로운 상황과 내가 처한 현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자괴감과 무력감, 분노에 대해 펜으로, 키보드로 열심히 써 내려갔다.
한참을 써 내려가다 보면 마음 한편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마음에 새겨진 멍울이 종이에 옮겨진 것 같았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포함한 수많은 글에서 직장생활 노하우를 찾아봐도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다.
정면 돌파할 상황은 안되고, 긍정적인 마인드는 정치인들 공약만큼 감흥 없는 말이니 나에게 맞는 노하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갑질 극복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도 점심을 거른 채 이 글을 쓰며, ‘갑돌이’와 5년째 근무 중이다.



+ 대기업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모두 갑질을 하거나 나쁘다는 뜻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냥 저를 괴롭히는 갑돌이가 대기업에 다니고 있을 뿐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혹시라도 불편함을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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