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아빠 오시기 전에 한 게임만 더하자!”
꼬질꼬질한 치자 단무지색 트레이닝 바지에 피구왕 통키의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나는 소리쳤다.
어릴 적 나는 아파트에 살았다.
한 층에 두 집이 마주 보는 구조로, 5층까지 있으며 한 동에 다섯 라인이 있다. 총 50세대가 살고 있었다.
여름에는 대부분 문을 열고 생활했다. 난간을 잡고 빙빙 돌며 옥상으로 올라가다 보면 특유의 집 냄새들이 났다. 2층 왼쪽은 민선이네, 3층 오른쪽은 동식이네, 5층 왼쪽은 창식이네... 눈을 감고 냄새만 맡아도 어느 집인지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같이 놀던 아이들의 몸에서도 같은 냄새가 풍겼다.아파트는 총 7개 동으로 각 동의 옆면에는 '가'에서 '사'까지 커다란 글자가 동그라미 안에 쓰여 있었다.
우리 집은 겨울에도 눈이 가장 늦게 녹는 것으로 유명한 ㉴동이었다.
자연스레 각자의 동을 중심으로 패거리가 형성되었다.‘마동’과 축구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마동'과 우리동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시합이었으나 문제는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오시기 전까지 경기를 마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공 차고 있는 모습을 들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빨리 승부를 내고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피구왕 통키’도 봐야 했다.
한참을 헉헉 대며 뛰어다니는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날아들었다.
“이놈자식! 또 공차고 있어?!”
아버지였다! 손발이 차갑게 얼어붙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씨... 모자 썼는데 어떻게 알았지...’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소리를 친 건 우리 아버지인데 같이 공을 차던 꼬맹이들도 각자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간다.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 발자국 소리를 내면 샤샤샥 사라지는 ‘콩게’ 같았다.
그 시절 부모님, 특히 우리 아버지는 엄하기로 유명했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 나오는 ‘대발이 아버지’가 꼭 우리 아버지 같았다.
여자가 공을 차고 남자들과 뛰어 논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공차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나보다 두 살 많은 동네 축구부 오빠에게 아끼던 블랙 모터가 달린 타미야 미니카를 갖다 바치며 축구를 배웠다. 그렇게 초등학교 내내 공을 차고 집으로 뛰어가고 혼나기를 반복했다.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여자 중학교였고, 공부를 제법 한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단정하게 자른 단발머리와 남색 교복에 검정 스타킹을 신고, 학생 구두를 신었다. 나는 1학년 5반에 배정되었다.
나와 같은 초등학교 출신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은 애들만 잔뜩 보였다. 우선 임시 반장을 뽑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급 반장선거를 했다.
반장 후보는 초등학교 6학년 성적순으로 정했다. 머리만 믿고 많이 놀긴 했지만 6학년 때 공부를 좀 했던 덕에 나도 반장 후보에 올라갔다.
후보는 총 3명으로 투표를 진행했다. 임시 반장이 한 표씩 종이를 펼쳐 호명하면 글씨 좀 쓴다는 아이가 바를 정(正)으로 표기했다.
그 모습을 담임선생님은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미래의 꿈나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에 내심 흐뭇하셨나 보다.
“자, 투표 결과 반장은 ‘김안톤’으로 결정되었다. 모두 박수! 그리고 안톤이는 앞으로 나와서 한마디 해야지?”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선생님.... 반장 하면 체육부장 못하나요?”
“이 녀석, 당연하지... 반장은 선생님 도와서 할 일이 많은데 체육부장까지 할 시간이 되겠어?”
“그럼, 저 안 할래요... 체육부장 하고 싶어요”
생김새는 달랐으나 그 순간 모든 아이들의 머리위에 '?!' 기호가 둥둥 떠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나의 고집으로 득표 2위의 부반장이 반장을 하게 되었고, 나는 꿈에 그리던 체육부장을 하게 되었다.
체육시간은 나의 독무대였다. 머리를 쥐어짜며 가정 시간에 5대 영양소를 외우고, 영어시간에 ‘아임 파인땡큐 앤유?”를 시작으로 한 단원을 통째로 외우는 순간에도 체육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
체육시간에는 발야구와 피구를 자주 했는데 발야구를 하는 날이면 학급의 모든 아이들이 나에게 매달렸다. 나와 같은 편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땀을 흘리고 뛰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데 혼자 이리뛰고 저리뛰는 내가 같은 편이면 무척 편했나보다.
게다가 상대편이 되면 내가 신나게 내지르는 공을 주우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게 반가울 리 없었다. 적당히 바람 빠진 배구공을 뻥 소리가 날 정도로 신나게 차다 보니 어느새 내 발야구 실력은 전교생에게 알려졌다.
여자 중학교에서 운동을 잘하는 학생은 곧 선망의 대상이었다.
쉬는 시간 화장실을 다녀오면 책상 위에 과자, 사탕과 함께 예쁘게 접은 손편지가 있었고, 어디다 써먹어야 할지 모를 학, 별, 거북이알 같은 것을 접어주기도 했다.
초등학교에서는 남자 같다고 놀림받고, 아버지 눈치만 보던 내가 중학교에 들어오니 소위 ‘인싸‘가 된 것이다.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2주 정도 앞둔 어느 날 3학년 체육선생님의 호출로 교무실에 갔다. 체육선생님은 펜싱부와 육상부 감독을 겸하고 있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학생이 있다는 소문에 펜싱부에 입단을 시키려고 날 부른 것이다.
그러나 교무실에 들어선 나를 보자마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손바닥을 펼쳐보셨다.
“너는 키가 다 컸네... 팔도 짧아서 펜싱은 힘들겠고.... 어디 보자, 너 공좀 찬댔지? “
(무당이세요? 지금 내 키를 생각하면 맞긴 하지만...)
“옆 학교에 여자 축구부 있는데 그거 해볼래?”
“네!”
“야 인마! 고민이라도 좀 하고 대답해라! 전학도 가야되고 부모님 허락도 받아야 돼”
“허락만 받으면 되는 거죠? 오늘 집에 가서 당장 허락받고 올게요!”
“알겠다. 부모님 동의하시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보마”
“감사합니다!”
뛸 듯이 기뻤다. 축구부라니!
그것도 우리 학교에서 걸어서 10여 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여자 축구부가 있었다. 드디어 나도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
상담을 마치고 집에 가는 내내 기분이 너무 좋아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었다. 신발주머니와 도시락 통을 빙글빙글 돌리며 신나게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