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중학생, 입대하다

축구부 숙소 체험기

by 김안톤

세상천지 귀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냐만은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어느 날 축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부모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평소 남자애들과 어울려 공차는 것을 못마땅해하셨으니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 또는 아버지의 불호령쯤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축구부 입단을 하기 위해 조심스레 내민 동의서를 한참 내려다보시던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축구선수는 힘들 텐데 열심히 할 수 있겠냐?”

“네... “

“중간에 포기 안 한다고 약속하면 허락 하마”


걱정했던 일이 너무 쉽게 풀리면 으레 더 찜찜하기 마련이다.

펄쩍펄쩍 뛰며 만세를 불러도 모자랄 판에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라던지, 학업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은 없으셨다. 그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까지 열심히 할 것! 중간에 포기하지 말 것! 두 가지만 약속을 하자고 하셨다. 그날 밤 할머니의 따뜻하고 푹신푹신한 뱃살에 얼굴을 비비며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손녀를 보며 할머니는 다치지 마라.. 공 살살 차라.. 혼잣말을 하셨다.


전학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정든 학우들과 인사를 나눈 게 전부였다. 교무실에 들러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학교를 나와 10여분을 걸어가니 내가 다니게 될 중학교가 보였다. 교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운동장을 바라봤다. 하교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삼삼오오 팔짱을 끼고 교문을 빠르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 교문만 지나면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 이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교문으로 들어섰다.


운동장에는 이미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나와 있었다. ‘피구왕 통키’나 ‘슬램덩크’에서는 주장이 선수 입단부터 모든 것을 결정했었다. 그래서 곧장 ‘주장’처럼 보이는 사람을 찾아 운동장을 가로질러 저벅저벅 걸어갔다.


“축구하러 왔어요!”

“훈련 중이야 나가!”

“네...”


서슬 퍼런 호령에 주춤하며 그대로 골대 뒤쪽까지 뛰어 나갔다. 그때 골대에서 혼자 두툼한 장갑을 끼고 서 있는 골키퍼가 말을 걸었다.


“누구 만나러 왔어?”

“축구하러 왔는데 주장이 누구예요?”

“주장이 아니라 감독님한테 가야지. 저기 구령대 밑에 감독님 계시니까 가봐”


아.. 종목이 달라서 그런가? 통키네 학교랑은 다르네...


혼자 그늘에 앉아있는 중년의 아저씨가 보였다. 그저 공 차는 거 구경하는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감독님이란다. 감독님을 향해 걸어갔다. 물론 아까 그 서슬퍼런 언니가 무서우니 운동장을 빙 둘러 돌아갔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저 축구하고 싶어서 왔어요!”

“너구나? 얘기는 들었다. 키가 작네. 여기 앉아라” (그놈의 키...)


구령대 밑 30센티도 되지 않는 그늘에 앉아 한참을 얘기했다. 왜 축구를 하려고 하는지, 부모님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등


그날로 나는 정식 축구선수가 되었다. 아니, 선수 등록은 아직 하지 않았으니 예비 선수쯤 되겠다. 감독님은 운동장에 있는 선수들을 집합시키고 나를 소개하셨다. 스카웃도 아니고 제 발로 축구하겠다고 들어온 나를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 선수들은 모두 제자리로 뛰어 돌아갔고, 나는 ‘순애’라고 하는 동급생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 ‘숙소’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순애는 내가 숙소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옆에서 챙기고 도와주는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본인이 자처했다기보다 주장 언니가 지목을 해서 하게 된 것이다.


숙소는 학교 건물 뒤에 있었다. 창살은 군데군데 녹이 있었고, 문은 누가 발로 찬 듯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다. 숙소에 들어서자 땀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묘한 냄새가 뒤섞여 났다.


군대 내무반과 똑같은 구조로 생겼었다. (사진은 실제 내무반 모습)


순애는 내게 본인의 유니폼을 한벌 내어주며 갈아입도록 했다. 내 옷은 아니지만 유니폼을 입고 나니 정말 선수가 된 듯 설레었다.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향하면서 순애는 내게 여러 가지 숙소 생활의 규율을 알려주었다.

‘우리 부모님께도 그렇게 까지는 안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은 청소, 빨래, 설거지, 축구장비 정리 등을 주로 한다고 했다. 2학년은 식사 당번이었다.

그렇다면 3학년은??

훈련시간을 제외하면 TV를 보거나 잠을 잔다고 한다. 뭘 하던 3학년, 2학년, 1학년 순서로 진행된다고 했다.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잠을 자는 것 까지.

훈련은 비 시즌엔 새벽훈련, 오후 훈련 두 차례 진행하고 시즌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새벽, 오전, 오후, 야간훈련으로 총 4차례 진행한다고 했다. 야간훈련은 주로 개인훈련 시간이었다. 순애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보니 운동장에 도착했다. 골대 그물망 뒤에 자리를 잡은 뒤 순애가 알려주는 체조를 따라 하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 후 기본적인 용어와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처음 보는 축구선수들의 훈련 모습이 신기해 멍하니 보고 있었다. 둘씩 짝을 지어 마주 보고 공을 주고받더니, 이내 세명이 짝을 지어 가운데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며 공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둘, 셋, 다섯 늘어나던 그룹은 어느 순간 골대로 슈팅을 하기 시작했다.


출렁~

골이 들어갈 때마다 그물망을 시원하게 때리는 소리에 가슴이 뛰었다. 멋지게 다이빙 캐치를 하는 골키퍼도 멋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는데 순애가 기겁을 하며 달려왔다. 훈련시간에 딴짓하면 큰일 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고개도 마음대로 돌릴 수 없고, 힘들어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물도 정해진 시간에 마셔야 했다.

난생처음 듣는 생소한 규율과 엄격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날 저녁 또다시 순애의 손에 이끌려 미용실에 갔고, 나는 까까머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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