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단체 생활 별거 있네!

by 김안톤

오후 훈련을 마치고 순애를 따라 샤워장으로 이동했다.

‘열쇠/수리’ 스티커가 몇 겹으로 붙여 있는 숙소 문은 손잡이가 자주 헛돌아서 양손으로 잡고 눌러서 돌려야만 끼기긱 소리를 내며 열렸다.


‘축구부가 있는 학교니까 학교 안에 샤워장도 있구나’


순애 손에 이끌려 간 곳은 1층에 있는 커다란 탕비실이었다. 족히 내 키의 두배는 돼 보이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 뜨거운 보리차가 담겨 있었다.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여기서 물을 마신다고 했다.

탕비실 안쪽 작은 문을 열자 샤워기 3개가 달린 작은 공간이 보였다. 당시 축구부 인원은 20명이었다. 내가 입단하면서 21명이 되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3명씩 샤워를 하면 7번째나 되어야 씻을 수 있었다.

이내 3학년 선배 세명이 갈아입을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겨서 들어왔다. 순애는 남에 집에 몰래 들어온 도둑처럼 나를 끌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숙소에서는 저녁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교직원 식당을 담당하는 여사님 한분이 찌개를 끓여주시면 1학년 식사 당번은 옆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반찬도 나르고, 감자도 볶고, 콩나물도 무쳤다. 태어나서 음식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늘 집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챙겨주는 밥을 먹기만 했을 때는 미처 몰랐다. 그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오늘 취침 전까지 씻을 수 있을까’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손만 간신히 씻고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면 1학년은 설거지와 뒷정리를 한다. 2학년은 숙소 바닥에 흙먼지를 쓸어냈다. 나는 첫날이라 그냥 앉아 있으라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해서 순애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노란 비닐 장판은 맨발로 걸을 때마다 '쩍쩍'하고 달라붙었다. 여러 명이 분주하게 숙소 안에서 '쩍 쩍 쩍 쩍' 하고 소리를 내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흡사 박수소리 같기도 했다.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씻으러 갈 수 있었다. 순애도 나와 같이 샤워를 했다. 처음이라 모든 게 어색한 나를 위해 일부러 마지막에 샤워를 하는 줄 알고 너무 고마웠다.

순애는 원래 마지막 조였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돌보다 단단한 알뜨랑 비누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몸에도 칠했다.


‘까까머리가 편하긴 하구나’


물의 온도는 ‘차갑지 않다’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올 겨울이 걱정되었다.

몸을 씻고 나서 알몸으로 쭈그리고 앉아 유니폼에 파란 빨랫비누로 벅벅 비누칠을 했다. 축구스타킹에도 비누칠을 하고 손으로 비비자 누런 흙탕물이 배어 나왔다. 여러 번 흔들어 헹구고 비틀어 짠 뒤 바구니에 담았다. 그 순간 2학년으로 보이는 선배가 와서 소리쳤다.

“야! 빨리하고 취침 준비해!”


“저 들어온 지 10분도 안됐.... 읍읍”


순애가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순애의 손은 거북이 등껍질 마냥 거칠고 투박했다. 소름이 끼쳤다.

순애는 선배를 보며 죄송하다고 알몸으로 허리까지 구부리고 사과를 했다.

선배는 잠시 눈을 흘기더니 이내 돌아갔다.


“왜 입을 막고 그래? 우리 샤워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래도 그런 말 하면 큰일 나.. 입조심해야 돼”


“1학년은 말도 못 해?”


“그냥 내가 하라는 데로 해.... 안 그러면 다른 애들도 혼나”


이건 무슨 공산국가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후배들이 선배를 대하는 방식은 과하다 못해 ‘절대복종’ 그 자체였다.

마음 한편에 반항심과 더불어 자유를 향한 의지가 꾸물댔다. 하지만 일단 오늘은 빨래부터 널자.

투쟁은 일단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숙소 옆 빨랫줄에 유니폼과 스타킹을 널어놓고 숙소에 들어갔다. 모두 취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애가 나에게 이부자리를 가져다주었다.


“이건 바닥에 깔고, 이건 덮고 자면 돼. 배게는 이거 써”


“순애야 이거 어른들이 화투 칠 때 쓰는 거 아니야?”


3학년 선배들이 나를 쳐다봤다. 무서웠다.

고개를 돌리고 이불을 깔았다. 진한 국방색 이불을 바닥에 깔고, 주먹만 한 빨간 꽃이 잔뜩 그려진 이불을 올려놓으니 정말 화투판 같았다.


소등을 하고 자리에 누웠다. 마음이 뒤숭숭했다.

잘해나갈 수 있을까. 여자축구 별거 있겠냐고 큰소리쳤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단체 생활이란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걸스카웃에서 1박으로 야영하던 것 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코 고는 소리와 쌕쌕 숨소리가 들렸다.

따뜻하고 포근한 할머니 품이 그리웠다. 할머니를 서로 안고 자겠다고 남동생과 실랑이하던 게 생각났다. 할머니는 아웅다웅 대는 두 똥강아지를 왼팔에 하나 오른팔에 하나씩 안아주셨다.

고개를 돌려보니 눈은 반만 감고 입을 벌린 채 나를 보며 자고 있는 순애가 보였다.


'아오 깜짝이야 이씨....'


순애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