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전교 1등이 축구를 하는 이유

by 김안톤

여자 중학교 팀은 1년에 3차례 전국대회 참여가 가능했다.

4월에 열리는 ‘여왕기 종별 여자축구대회’, 7월에 열리는 ‘청학기 여자축구대회’ 그리고 9월에 ‘전국 여자축구 선수권대회’가 있다. 우리 학교는 전국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편이었다. 감독님 입장에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우승도 노려볼만했을 것이다.

7월에 열리는 청학기 대회는 강릉에서 진행했다. 더운 여름에 진행되는 대회인 만큼 체력훈련을 많이 했다. 매일 새벽 인터벌 트레이닝을 20바퀴씩 뛰는 것으로 시작해 사람이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체력훈련을 오전 내내 진행했다.


다행히 나는 신입부원이므로 골대 뒤 공터에서 기본기를 배우고 있었다.

그 새 2명이 더 입단을 하여 총 3명이 골대 뒤에서 기본기를 배우게 되었다.

무릎을 다쳐 재활치료 중인 3학년 언니에게 운동을 배웠는데 왕년에 상비군 후보에 들 정도로 잘했던 선수라고 했다.


바닥에 + 모양으로 선을 그은 후, 십자 모양 가운데 교차점에 공을 세웠다. 오른발로 공을 찰 때, 왼발의 딛는 위치와 뛰어가는 방향을 습득하기 위한 아날로그 훈련 방식이다.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서서 달려가며 공을 차는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50번쯤 반복을 하니 허벅지가 후들거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3학년 언니는 잠시 휴식시간을 갖자며 나와 신입부원들을 그늘로 데려갔다.

“너네 숙소 생활 힘들지?”


“아닙니다!”


“괜찮아, 힘든 거 있으면 언니한테 얘기해”


(‘아! 안... 안돼!!! 속지 마! 입 다물고 있어 제발!!!’)


“3학년 언니들 따까리 안 하면 안 되나요?”

말을 꺼낸 것은 아버지가 조기축구회 회장이고, 감독님과 친분이 깊다는 ‘용덕’이었다.

전학 오기 전 사고를 많이 쳐서 용덕이 아버지가 축구부에 강제로 입단을 시켰다는 소문이 기억났다.


3학년 언니는 아무 말하지 않고 이내 자리에 일어났다. 그 후로 한참 동안 우리는 오리걸음을 했다.

용덕이는 살이 제법 찐 편이라 뒤뚱뒤뚱 걸으니 정말 오리 같았다.


“우리 X언니들한테 다 이를 거야!”


꼴찌로 기어 오면서도 악에 받친 목소리로 용덕이가 말했다.

‘그래 X언니도 좋고, Y언니도 좋으니 부를 거면 지금 오라고 해. 허벅지 터지기 전에’

훈련이 끝나자 감독님은 주장 언니를 불렀다.


“오늘은 2, 3학년들만 외식 좀 하자. 1학년은 내일 따로 하고..”

2, 3학년 언니들이 감독님을 따라 나가자 1학년은 운동장 그늘에 둘러앉았다.

용덕이가 교문밖으로 나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돈이 어디서 났냐는 물음에 아버지가 와서 계산할 테니 외상으로 달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 노는 애라 그런가, 대범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국민학교 6학년 겨울방학부터 축구부에서 훈련을 했다는 ‘유정’이가 말을 했다.

안톤이 너는 공부 잘했다면서? 등까지 했어?”


“나? 그냥 중간 정도 했어”


“전교 1등 같은 거 했다던데?”


“누가 그래? 반장 후보 들어갈 정도는 했는데 전교 1등은 아니야”


“그래도 공부 잘하는데 왜 축구해?”


공부를 잘하는 것과 축구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공부를 못해서 축구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대화는 이내 용덕이에게 집중되었다. 집이 잘 사는 편인 용덕이가 휴가 때 동기들을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냉장고가 간식으로 빼곡하다는 말에 모두 눈이 반짝거렸다.

저녁때가 되어 언니들이 숙소로 돌아왔다. 자기들끼리만 맛있는 걸 먹은 게 미안했는지 과자 몇 봉지와 카스텔라 빵을 사 와서 1학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운데 툭 하고 던졌다.

존재감이 적은 2학년에 비해 3학년 언니들은 카리스마가 남달랐다.

개성도 강해 1학년과 2학년은 3학년 언니들 눈치를 많이 봤다.

3학년 언니 중 ‘얼음 언니’와 ‘록기 언니’는 특히 주의 대상이었다. 얼음 언니는 신입부원에게 기본기를 가르치던 그 언니다.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도 갱년기 제대로 온 중년 여성처럼 돌변한다. 본인이 화를 참지 못하면 냉동실로 달려가 얼음을 모조리 씹어 먹는다.


록기 언니는 홍록기와 정말 똑같이 생겼다. 악바리에 깡이 있고 태클을 정말 잘했다. 그러나 장이 예민해 화장실을 자주 갔다. 그래서 두루마리 휴지에 집착했으며, 화장실에 두루마리 휴지가 떨어지면 그날은 죽는 날이었다.


주장 언니가 나를 보더니 물었다.


안톤이 공부 했다며?”


“전교 1등 했었대요”


순애가 불쑥 끼어들었다.

언니들은 놀람과 동시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전교 1등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는 표정이다. 순애를 나무랄 틈도 없이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나서 나는 순애를 따로 불러 내 따졌다.

“왜 거짓말해! 내가 언제 전교 1등 했다고 했어?”


“아까 운동장에서 전교 1등 했다고 하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너 귀먹었어?”


“아.. 나 귀가 좀 안 좋긴 해...”


불쌍한 우리 순애는 손에 주부습진으로도 부족해 귀에도 염증이 있어서 잘 안 들릴 때가 많다고 했다. 우리를 뒤 따라 나온 유정이가 화난 나를 달래며 얘기해 주었다.


전교 1등이면 어떻고, 반장 후보였던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냄새나는 이불을 덮고 흙먼지 마시며 공을 차는 건 똑같다. 정말 내가 전교 1등이었어도 나는 축구를 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은 결사반대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날 밤 나는 화내서 미안하다는 쪽지를 순애의 사물함에 살짝 넣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챙겨주신 바세린 연고도 같이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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