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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Aug 07. 2020

야근은 셀프입니다

일 잘하고 잘 쉽시다.

“두두두두두두” 창문 너머 시끄러운 공사장 소음이 들렸다. 얼마 전까지 멀쩡하던 단독주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최근 주변에 신축 오피스텔이 많아졌다 싶더니 또 하나가 들어서나 보다. 이번엔 또 얼마나 빨리 완공하려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땅을 판다 싶으면 건물 골격이 세워졌다. 며칠 지나면 벽이 세워지고, 창에 새시(Sash window)를 설치했다. 이 속도는 무엇? 하는 순간, 두둥실 ‘분양‘이라고 적힌 풍선이 떠오른다. 저렇게 지은 집이 과연 괜찮을까 내 집도 아닌데 괜스레 걱정이 된다.

저녁이 없는 삶

개발자라는 직업과 연상되는 많은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야근’이다. 업무특성이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IT업계의 슬픈 현실일 뿐이다. 다들 슬퍼하고만 있고 개선은 되지 않으니 더욱 슬프다. 일본에서 개발자로 근무 중인 지인의 말을 빌자면, 한국에서 평균 6~8개월 정도 소요되는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가 일본에서는 최소 2년에 걸쳐 개발한다고 한다. 누가 성격 급한 한국사람들 아니랄까 봐 고객은 안 그래도 짧은 일정을 보채고 압박해서 더욱 줄인다. 정시에 출근해 꼬박 근무시간을 채워도 시간은 늘 부족하니 자연스레 야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또 그것을 종용한다. 퇴근시간에 “내일 뵙겠습니다” 대신 “저녁 먹고 하시죠”가 당연한 분위기가 돼버리는 것이다. 나 또한 밤샘 작업도 많았고, 야근도 부지기수로 했지만 야근 자체보다 상사의 이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 약속 있어? 일찍 가네. 야근 안 하고 집에 가려고?”


“지금 저녁 9신데요”


나의 성공은 팀의 발전

저녁식사를 마치고 하는 개인 야간훈련은 무척이나 귀찮고 싫었다.

이미 파김치가 된 몸으로 끌려가다시피 나가서 시간을 때우다 들어오기 일쑤였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장비를 점검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나처럼 게으른 선수들이 전국에서 모였을 뿐이다.

어느 날 감독님은 선수들을 한 명씩 방으로 불러 면담을 진행하셨다.

면담을 하고 나오는 선수들의 손에는 종이가 한 장씩 들려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방으로 들어가니 감독님은 손에 들고 있던 노트의 한 페이지를 쭉 찢어 내게 주셨다. 종이에는 나의 개인 기량에 대한 평가와 장점, 단점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고, 보완해야 할 부분은 빨간 글씨로 적혀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성적표를 손에 들고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그거 잘 읽어보고 빨간 글씨로 쓴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지 적어봐”


내가 보완해야 할 부분은 지구력과 순발력이 부족해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왼발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진다고도 적혀있었다.


감독님 방을 나와 거실에 나가니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다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려 빨간 글씨 밑에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나도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체력적인 부분은 단 시간에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왼발 패스의 정확도도 한두 번 연습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결국 매일매일 시간을 내어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후반전에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주 멍하니 있었고, 왼발로 패스해야 되는 상황에 오른발로 무리하게 패스를 하다가 역습을 당했던 기억이 났다.
그날부터 자연스레 저녁식사를 마치면 체육관으로 하나둘씩 모였다. 누가 강요해서도 아니고 눈치를 보느라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체력이 부족한 선수는 줄넘기를 하거나, 런닝을 하고 개인 기술이 부족한 선수는 기술이 몸에 익을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 훈련을 했다. 그러다가 마음 맞는 선수 몇이 모여 작전판에 빨간 자석, 파란 자석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전술 공부를 하기도 했다. 나라고 별수 있겠는가.

하다못해 런닝화를 신고 운동장이라도 몇 바퀴 돌지 않으면 잠을 편하게 잘 수 없었다. 그렇게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연습을 하다 보니 팀의 성적은 자연스레 좋아졌다.

야간훈련에 대해 누구 하나 불만을 표출하는 선수는 없었다. 왜 해야 하는지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발전해야 팀이 발전하고, 팀이 발전해야 내가 성공한다.


당시 여자축구팀, 특히 대학부와 일반부 팀은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해 대학/일반부로 묶어서 경기를 치렀다.

남자로 따지면 고려대 축구부와 FC서울이 시합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대회 측에서 조 편성을 기가 막히게 해주는 덕에, 결승에서는 항상 대학부와 일반부가 경기를 했다.

대학부는 잘해야 준우승이었다. 그래도 준우승은 대학부 우승과 같았다.

선수 개인의 문제점을 찾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니 훈련의 집중력이 향상되고, 책임감이 높아졌다.

보너스 포인트처럼 차곡차곡 쌓여가던 야간훈련의 성과를 통해 우리 팀은 대학부 최초로 일반부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억지로 야근하는 A와 집중력 없는 B

내가 처음 IT업종에 발을 들일 때부터, 팀장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야근은 존재한다. 안 하면 참 좋겠지만 안 하는 날보다 해야 하는 날이 더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야근과 관련된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A직원은 정해진 일정보다 한참 일이 밀려있었다. 야근은 하기 싫지만 눈치가 보여 일단 저녁을 먹고 자리로 돌아왔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양치를 하고,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다 슬쩍 퇴근해버린다. 다음날 사내 그룹웨어에 야근수당을 신청한다.


B직원은 출근 후 차 한잔을 마시고, 업무를 시작한다.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익스플로러 창을 열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고 한참 동안 기사를 읽는다. 그리고 동료들과 담배를 피우러 나가서 30분쯤 수다를 떨고 온다.
오전에는 왠지 집중이 잘 되지 않는 듯 하니 점심 먹고 오후부터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2시가 지나자 몰려오는 졸음에 꾸벅꾸벅 졸다가 잠을 깬다고 커피를 마시고, 커피 마시니 담배가 생각나고... 결국 오늘 못한 일은 내일 하자는 생각과 함께 칼퇴근을 한다.

야근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되는 일이다. 야근을 해서라도 일정을 맞추라고 무조건 강요하기보다, 현재 프로젝트가 처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시키고,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에 책임감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관리자가 이끄는 것이 우선이다.


두 직원을 어찌하면 좋으리까

눈치를 보며 시간을 때우는 A직원은 차라리 퇴근을 하는 것이 좋으나 일정이 밀려있다.

본인의 작업이 지연됨으로써 도래할 문제에 대해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에 대해 책임감이 없다.

당신이 관리자라면 A 직원을 어떻게 하겠는가?

1. 꼴보기 싫으니 퇴근을 시킨다. 2.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을 낸다 3. 내일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한다. 4. 작업이 지연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일정이 지연되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부분을 충분히 설명한다.

  그렇다면, 집중력이 약한 B직원은 어떻게 할까? 1. 보건소에 데려가 금연클리닉 상담을 받게 한다. 2. 엠씨스퀘어를 사준다. 3. 돈을 더 줄 테니 열심히 좀 해달라고 사정한다. 4. 오전과 오후를 나누어 1시간 이상 집중 근무시간을 설정하도록 한다. 최소한 본인이 설정한 집중 근무시간 만이라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업무를 하도록 하며, 점차 집중시간을 늘려간다.


프로젝트도 축구와 마찬가지로 팀으로 진행된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이 모여 유기적인 동작을 수행할 때 비로소 ‘시스템’으로 거듭나고, 프로젝트는 성공한다. 감독님이 강제로 야간 개인훈련을 시켰다면 일반부를 제치고 우승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눈치껏 시간을 때우거나, 농땡이를 부렸을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로 인해 많은 관리자들이 난색을 표했다. 직원들에게 야근을 제대로 시킬 수 없게 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야근이 아니라 일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먼저다. 업무에 대한 오너쉽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관리자가 이끌어주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부득이 한 야근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효율성 없이 보여주기만을 위한 야근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또한 개발자 = 야근이라는 케케묵은 고정관념도 개발자 스스로가 없애 나가야 한다.


야근은 셀프다.

셀프여야만 한다. 내가 필요해서 혹은 나의 판단하에 ‘짧게’ 하고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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