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안톤 Aug 29. 2020

당신의 미래가 지금의 결정을 판단한다

‘퇴사’와 관련된 글은 쓰기가 왠지 부담스럽다. 직장인들의 핫 키워드이기도 하고, 뭔가 조회수를 노린 얄팍한 노림수로 비칠까 싶기도 해서다.

하긴, 폭발적인 조회수는 강남 건물주의 삶 같은 것이니... (브런치님아, 간접체험이라도 좀 하게 해 주렴~) 얼마 전 경영진으로부터 숙제를 받았다. 각 팀장들에게 직원의 퇴사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방안을 보고서로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최근 높아진 퇴사율을 걱정해 경영진 회의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문제가 생겼다. 나는 퇴사 경험이 없다.

13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첫 회사는 경영악화로 인해 스스로 문을 닫았으며, 현 회사는 관련 사업을 승계받았다. 자연스레 나와 내 동료들은 새로운 회사로 흡수되었다. 따라서 나는 내 의지로 회사를 박차고 나간 적이 없다. 그런 내가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어찌 알겠는가

차마 “퇴사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대표님도 모르시잖아요!”라고 적을 수는 없어서 몇 가지 사내 복지에 관련된 사항을 정리해서 제출했다. 연봉이 불만인 사람에게 달라는 데로 연봉을 맞춰줄 수 없고, 사람이 싫어 나간다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내보낼 테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할 수 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퇴사에 대한 대책 수립이 가능한 것이라면 애초에 회사의 퇴사율이 높아졌을까?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축구선수로서의 미래가 불안했고, 내 실력으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 때문이다. 그리고 숙소 생활도 지긋지긋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짝 사춘기가 온 것이 아니었나 싶다. 운동선수에게 선수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은 조금 과장을 보태 삶을 포기하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평생 운동하나 만 바라본 선수이기에 학교 밖은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정규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 덩치만 큰 어린아이인 상태다.


운동을 그만두면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피폐해지지만 현실적으로도 선수로써 누렸던 소소한 혜택이 사라진다. 고등학생 때 그만둔다면 대학 진학을 위해 수능을 봐야 하는데 수업을 받은 적이 거의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결국 최종학력은 고졸로 마감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취업도 당연히 불가능하다.

대학 때 그만둔다면 특기생 장학금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학비를 내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대다수의 부모님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싫다면 자퇴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 두려는 동기와 선후배들은 많은 시간 고민을 한다. 뭐든 새로 배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는 게 없으니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일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선택하는 것은 생산직이다.

   당장은 남아도는 체력으로 3교대에 특근까지 해가며 돈을 모아도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후회를 하곤 했다. 이러려고 그 힘든 훈련을 견디며 살아온 것은 아닌데 자신의 삶에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엎어진 물이다.

실제로 나와 같은 길을 가던 수많은 선, 후배와 동기들이 그러했다.



오래전 퇴사를 하고 싶어 하는 직원과 면담을 한 적이 있다.

퇴직서에는 ‘일신상의 이유’라는 국민 퇴사 사유가 적혀있었다.

퇴사를 말릴 생각은 없었다. 말린다고 다시 다닐 것도 아니고, 그만큼의 고민은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서다. 다만 퇴사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와 퇴사 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듣고 싶었으며, 그래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준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우를 하고 싶었다.

소주 한잔이 생각나는 밤이었으나, 술을 마시지 않는 친구기에 퇴근 후 조용한 카페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신상의 이유라던 그 친구는 한참의 대화 끝에 막힌 수도관이 뚫린 것처럼 불만을 쏟아냈다. 그 친구의 얘기 중에 절반은 나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동안 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누구에게 얘기를 해야 되나요?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얘기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어요” 짐작은 했었다. 개인의 목소리로 회사의 경영방침과 내부구조를 바꾸기는 불가능하다.

한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나 혼자 속을 끓이며 지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회사를 대신해서 미안함을 느꼈다.

퇴사 후 친구와 작은 네일아트샵을 차릴 계획이라고 했다. 뭉툭한 내 손톱을 보더니 ‘조만간 가게 차리면 한번 들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왕 차릴 거면 술집이나 했으면 좋을 텐데, 갈 일이 없는 네일아트라니 조금 아쉬웠다.

3년을 열심히 근무한 그 직원과는 그렇게 헤어졌다. 운동을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나름의 목표를 세웠었다. 고등학교 까지만 하자, 대학까지만 하자.. 결국 지도자 생활까지 하고  은퇴했지만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퇴사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러했을까.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지... 지금 생각해보면 잘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축구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그만두고 전혀 다른 삶에 도전했으며, 잘 적응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많은 고비와 무시, 좌절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용기가 더는 없었다. 그래서 꾸역꾸역 참고 견뎠고, 버티며 오늘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과거의 나의 결정이 ‘잘 내린 결정’이 된 것이다. 중간에 포기했다면, 운동을 계속할걸 그랬다며  후회 속에 살았을 것이다.

결국 과거의 나의 결정과 판단이 잘되었는지는 현재의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인생에 중요한 판단을 하는 상황에 내린 결정은 그 당시엔 알 수가 없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신 지금 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길 만 생각하면 된다.  


훗날 3년간 속앓이를 하다 그만둔 그 직원도, 지금도 퇴사를 고민하며 힘들게 직장생활을 버티고 있는 이들도 자신들이 내리는 결정이 잘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근은 셀프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