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엔 기본 4병..........
확실히 약해졌다.
축구선수 시절, 냉면 사발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마시고, 끝까지 남아 뒷정리하던 시절은 어느덧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흔히 주량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 아직도 정확한 정의를 모르겠다. 최소한의 의식이 남아있기까지의 주량을 의미하는 건지, 모양새가 어찌 되든 간에 먹을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무엇인가 애매하다. 그래서 보통 주량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사회 초년생 때는 한 병 반에서 두병이라 답했고, 지금은 기분 따라 적당히 먹는다고 답한다.
그래도 나름 '술좀한다'는 편에 속하는지라 여직원 중 주량이 세다고 소문난 사람이 있으면, 알 수 없는 도전의식이 솟구치기도 한다.
직장을 다니다 보면 피치 못할 상황으로 술을 좀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온다. 요즘은 그래도 회식문화가 많이 좋아져 네발로 기어갈 때까지 마시는 일도 드물거니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회식의 기회도 적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두어 번 정도는 '준비'를 하고 마셔야 하는 자리도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컨디션 조절'에 들어간다. 이것은 흡사 선수 시절, 시합에 앞서 몸 관리를 하던 그것과 유사하다.
1. 거사를 앞두기 전,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최소 2차까지 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2. 사소한 트러블이나 감정적인 충돌을 피한다. 기분 좋은 술자리는 약이요, 기분 나쁜 술자리는 독이다.
3. 좋은 안주와 편안한 장소를 고른다. 깡 생수 한 모금에 소주 한잔 하던 시절을 흉내 내다가는 다음날 말로 표현하지 못할 숙취를 겪는다.
이렇게까지 준비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즐거운 술자리에서 오래오래 놀고 싶은 욕구 때문이고, 둘째는 술을 제법 마신다는 나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술을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술은 그 정도를 지나치지 않았을 때, 인간관계의 활력소이자 윤활유가 될 수 있다. 부족한 용기를 채워주기도 하고, 감정을 자극해 추억에 잠기게도 하며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주량의 전성기다. 뇌가 파업할 때까지 마시고 쓰린 속을 부여잡고 '해장이 필요해!!'를 외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지인들과 주고받는 술잔이, 또 술자리가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비록 예전만큼 주량은 안되지만 전에는 느끼지 못한 여유와 만족을 알게 된 것으로 더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