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배움

블루아이(blue eye)

by Dinnerout

"어때요? 여기가 뉴욕에 있을 때 맛있게 먹었던 곳인데 한국에도 생겼더라고요."


한 입을 베어 물자, 입안에서 육즙과 풍미가 터져 나오면서 스테이크가 부드럽게 녹았다.


"정말 녹습니다. 녹아요."


"하하, 다행이네요. 와인도 좀 드세요."


"근데 술 드셔도 괜찮으세요?"


"아 와인 정도는 혈액순환에 좋죠."


"아빠, 딱 그것까지만 드시고 이제 그만 마셔요."

옆에 다영씨가 핀잔을 주듯 말한다.


"오늘 좋은 날인데…."


"다영 씨는 수영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저번에 보니깐 잘하시던데."


"한 3년 정도 한 거 같아요. 근데 요즘은 슬슬 수태기가 오는 건 같기도 하고..."


"벌써 수태기요? 하하.


"혹시 괜찮으면 제가 나가는 수영모임 있는데 같이 나가 볼래요? 매주 일요일마다 2시간 정도 훈련해요."


"아, 정말요? 재밌겠다."


"아.. 재밌죠 하하 아! 은성샘 아시죠?


"은성샘?"


"화, 목에 강습하시는 키 크신 선생님이요. 상비군까지 하셨는데 그분이 저희 모임장입니다. 원포인트레슨도 많이 해주셔서 오시면 무조건 수영실력은 늡니다.


"저도 가도 됩니까?"


"현우 님은 …."


"농담이에요. 저도 눈치는 있습니다. 하하. 나중에 강철심장으로 바꾸면 도전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페이스 메이커를 삽입해서 조심해야죠."


"병원에서는 심근경색이라고 진단받으셨죠?"


"네, 정확히는 3도 방실차단이었습니다."


"3도요? 엄청 위험했네요. 저도 요즘 대학원에서 심장을 공부 중이라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현우 님 덕분에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 것 같아요."


현우님이 미소를 지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계기가 있으면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맞아요. 사실 처음에는 CPR을 알기 전까진 심정지가 왔을 때 주먹으로 심장을 치는 줄 알았거든요.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나오잖아요."


"precordial Thump!"


"어? 어떻게 아세요? 나중에 교수님께 물어보고 알게 됐는데."


"심실세동이나 심실빈맥 상태에 빠졌을 때 가슴중앙을 뽝! 하고 세게 내리치는 거죠."


"맞아요."


"근데 거의 효과도 없고 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극적인 장면 때문에 넣은 거죠."


"교수님하고 똑같이 말씀하시네요. 실례가 안 되면 현우 님은 어떤 일 하시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아 여기 명함하나 받으세요."


현우 님 품 안에서 꺼낸 카드지갑을 열고 준 고급진 하얀 명함지 위에는 '좋은 한국 병원 외과전문의 강현우'라고 적혀 있었다.


"아, 의느님이셨네요!"


"이외죠? 의사가 운동하다 심장마비로 쓰러지다니?"


"원래 의사는 제병 못 고친다고 하잖아요."


"하하하, 맞아요. 저도 뒤늦게 배운 수영이 너무 재밌어서 무리를 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 공부는 할만하세요?"


"아~ 쉽지 않습니다. 워낙 공부 습관이 안 들어 있어서...하지만 힘들어도 정말 꾸역꾸역 하고 있어요.

알고 싶은 것도 많고, 아까 말한 것처럼 현우 님에게 CPR을 하면서 배움에 대한 계기가 생긴 것 같아요."


"저도 레지던트 때 하루 세네 시간 자면서 병동 뛰어다니고, 케이스 리포트 쓰고 정말 힘들었죠.

근데 지금 보면 그때 배운 지식도 중요했지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돼서 피곤하고 쓰러질 것 같아도 해낸 것 같아요


"왜 공부를 하는 거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저 같은 경우는 환자를 치료하는 게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대충 해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아마 선생님도 지금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힘들어도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면 됩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지만, 그 습득이라는 시기는 분명 존재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맛있는 스테이크 식사를 마치고 다영 씨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다음 주 수영 정모에 약속을 잡고,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렜다.



(수영장)


"아니, 게스트 데리고 온다고 하다니 이분이었어?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뒤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승원이 형은 환한 미소로 손뼉까지 치면서 크게 반겼다.


"오늘은 몸풀기하고 인터벌 그리고 마지막 대시 50m 갈 겁니다."


수영장에 들어가 자유형으로 워밍업부터 시작했다.


다영 씨의 수영은 우아했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고, 체력도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부드러운 동작은 흠잡을 데 없었다.


"영법 폼 좋네요. 어릴 때부터 배웠죠?"


"네, 그래도 아기스포츠단 출신이에요."


"역시 기본자세가 있습니다. 이따가 힘들면 천천히 따라오세요."


훈련 강도는 점점 올라갔다.

노란색 인터벌 시계 초침이 인터벌시작을 알렸고, 이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경험이 뭔지 느낄 수 있다.


"이제 인터벌 200부터 시작합니다."


노란 인터벌 시계를 모두 바라보면서 출발 를 기다렸다.


승원이 형의 외침과 함께 10초 간격으로 모두 전력을 다해서 앞으로 나갔다.


물살을 가르며,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물보라와 함께 하나의 지렁이처럼 일사불란하게, 뒷사람에게 안 잡히려고 다들 안간힘을 쓴다.

아직 초반이라 할 만하다. 킥도 살아있고, 폐도 충분히 산소를 받아들이고 있다.


"남은 휴식 10,9,8,7,6...."


승원이 형이 밖에서 외치지만, 쉴 틈이 없다. 두세 번 숨을 고르고 있으면 벌썬 앞사람이 출발하고 어느새 내 차례다.


"50M 인터벌 1분 마지막 7개 자 힘내자!"


입술사이로 나오는 숨은 짧아졌고, 허벅지엔 이제 스멀스멀 쥐가 올라오는 찌릿찌릿한 낌새가 느껴진다.

다영 씨는 진작에 구석에서 호흡을 고르고 눈치껏 따라가고 있었다.


붉은 바늘이 45초를 향해 다시 달려간다. 다시 내 차례다.


"다섯 바퀴 남았다!"


이제 물안경 사이로 다들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제 슬슬 한계다. 팔은 무겁고, 발차기에는 더 이상 물보라가 일어나지 않는다.


"자 마지막!"


마지막 수영장 벽을 치고 머리를 물밖으로 꺼내자 폐를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10분간 휴식 후 50m 대시 가겠습니다."


"하아. 하아, 헉헉헉 후 우우우~ 다영 씨 어때요?"


"저 이제 안 나올래요."

빨갛게 상기된 얼굴 사이로 웃으면서 얘기한다.


"크크크, 아니에요 다다음주가 시합이라 오늘 좀 파이팅 넘치게 한 거예요 그리고 하다 보면 이게 또 은근 중독성이 있어요."


"하하하, 글쎄요. 이제 또 뭐가 남았어요?"


"스타트하고 50M 대시 남았죠."


"저 스타트는 좋아해요! 끝까지 가는 건 안 좋아하지만..."


"승원이 형이 스타트 잘 봐줄 거예요. 그리고 페이스대로 가세요."


초가 비슷한 사람끼리 짝을 지어 두 명이 출발했다.

시합은 아니지만,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옆에 있는 사람보다 빨리 가고 싶은 승부욕이 생겨 자연스럽게 페이스가 올라간다.


다행히 오늘은 17명 이 참가해서 50M 대시한 후 걸어오면서 쉬고 약간의 기다림이 호흡을 고를 수 있게 해 준다.


"지윤아, 너 어깨 아프지 않아?"


"네? 좀 아픈데 참을 만해요."


평영을 주종으로 하는 김지윤은 여자 중 에이스다.

금방 50M 대시를 하고 올라와서 인지 얼굴은 빨갛게 열이 올라왔지만, 눈동자에서 투지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래? 여기 이렇게 눌러도?"


"아아!"


"어때? 이래도 참을만하냐?"


"엄청 아픈데요?"


손가락으로 쇄골과 날개뼈를 이어주는 견쇄인대(AC ligament)를 살짝 눌러줬다.


물밖에서 사람들 수영을 블루아이로 관찰하면서 영법에 중요한 근육 활성영역도 공부하면서 나름 팀원들에게 부족한 근력부위나 부상부위를 챙기고 있었다.


오늘은 특히 나랑 주종이 같은 지윤이와 동균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물론 다영씨를 향한 내 눈은 나침반이 북극을 향하듯 멀리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지윤이의 어깨 부위가 빨간색보다는 옅은 주황색이었지만, 견쇄인대는 이미 빨간색으로 물 들고 있었다.


"너 인대 좀 찢어진 것 같은데 훈련 그만하고 병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 오늘까지만 마무리하고 갈게요."


"며칠이면 나을 거 너 시합도 못 나가고 싶냐?"


"뭐 해?"

은성샘이 준비 안 하고 뭐 하냐는 식으로 다가왔다.


"지윤이 어깨가 많이 안 좋은데 고집부리네."


"그래 정호 말 들어, 사람도 살린애니깐 너도 말 잘 들어야 돼."


"아 형 무슨 소리예요."


"농담이야 하하 지윤아 너 병원 가봐, 어깨 한 번 다치면 오래가"


"알았어요, 그럼 훈련은 여기까지 하고 종료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깐 제가 스타트 부저랑 다영언니 봐 줄게요."


"그래, 그럼 땡큐지."


은성샘은 지윤이 어깨 상태를 보고 빠르게 알아낸 걸 보고 은성샘이 감탄하듯 물었다.

"근데 넌 어떻게 한 번에 아냐? 대단한데?"


"저 요즘 대학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잖아요. 근육, 건, 인대, 심장, 혈관 등 그리고 수영할 때 필요한 근육과 동작에 대해서 만 생각하니깐 딱 보면 알겠더라고요. 지윤이는 저랑 같은 평영이라 어깨가 아프면 보상작용이 바로 보입니다. 팔 동작 궤적이 작아지고, 상체와 머리가 더 들리는 것 같고."


은성샘이 흥미롭게 처다보며 말한다.


"정호야, 너 진짜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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