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이(blue eye)
수영대회의 메인 스폰서인 '이리네' 소속의 국가대표 김선우 선수가 특별 초청되어 100m 자유형 퍼포먼스를 선보이게 되었다.
그가 다른 선수들과 등장하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하나둘 관중석에서 목을 빼고 기대감에 찬 눈빛을 보냈다.
짙은 검은색 수영복을 입은 그의 몸은 다비드 조각상처럼 아름다웠다.
그가 스타트대 위에 올라섰다.
김선우 선수는 천천히 숨을 고른 뒤, 날카로운 출발 신호음과 함께 순식간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차원이 다르다.'
그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물살을 가르는 그의 속도는 마치 미사일처럼 일직선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물 밖에서 봐도 강력한 킥과 정확한 팔의 스트로크가 속도감을 극대화시켰다.
첫 50미터를 마치고 완벽한 플립턴으로 벽을 박차고 나왔다.
22.00. 50m 기록이었다.
"와아!"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플립턴을 하고 벽을 밀어내며 수중에서의 돌핀킥은 마치 물속에서 돌고래가 유영하는 것 같았다. 이 장면이 바로 내가 매일 밤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상상했던 그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자유형 100m 퍼포먼스가 끝나자 장내는 큰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우리는 모두 감탄하며 김선우를 바라봤고, 그는 담담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잠시 후 점심시간이 되자 바깥으로 나와 대형 천막 안에서 미리 시켜놓은 도시락을 먹었다.
그때 은성샘이 김선우 선수를 데려 왔다.
"내 친한 후배야"
"안녕하세요. 다들 수영 열심히 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오오오"
"국가대표 이렇게 가까이서 처음 봐요."
"근데 은성샘이랑 정말 친한 거 맞아요?"
지윤이가 의아해하면서 농담을 던졌다.
"하하하 네! 제일 친한 선배님입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멤버들은 은성샘을 그날로 다시 보게 되었다.
김선우 선수는 사인을 해주고 수영에 대해 코멘트와 조언을 해주고 떠났다.
"은성샘, 혹시 다음에 만나면 김선우 선수 전거근 쪽에 문제 있는지 좀 물어봐 주세요."
(전거근(serratus anterior)은 갈비뼈 1~9번, 1~8번에 시작하여 어깨뼈 안쪽 가장자리를 따라 부탁되는 근육)
"전거근?"
내 말에 은성샘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하는 모습을 감탄하며 블루아로 본 순간 그의 몸은 전반적으로 깊고 진한 파란색으로 빛났다.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단련한 선수들의 몸에서 나타나는 완벽한 컨디션이었다.
그러나 짧은 글라이딩 순간 그의 전거근 부위는 희미하게 빨간색이 보였고, 어깨와 견갑골 주위가 노란색으로 관찰 됐다.
"전거근이라면 스트로크 할 때 영향이 있겠지... 나중에 내가 말할게."
은성샘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 어깨를 툭 쳤다.
"얘들아 적당히 먹어."
"어차피 정호 오빠 결승까지 보려면 든든하게 먹어야죠."
"다 같이 빨리 끝났으면 낮술 먹을 수 있는 건데."
지윤이와 희수가 번갈아가면서 주고받았다.
오후가 되자 다들 우리 핵심멤버인 지윤이와 택진이 형이 출전했다.
이날 경기에서 지윤은 평영 36초라는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더 빠른 기록을 냈지만, 상위권 선수들은 모두 35초 이하로 기록을 세워 전국구 격차를 실감케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30대 부문에 출전한 택진이 형이 자유형에서 26.88초라는 뛰어난 기록을 세웠지만, 같은 조에서 23초대를 기록한 선수가 등장하자 '진짜 선수가 나온 거 아니야?' 다들 놀라움과 한숨이 뒤섞인 웅성거림이 곳곳에서 들렸다.
기다리다 지쳐 드러눕기 전 결승전이 찾아왔다.
이제는 하도 기다려서 더 이상 긴장이 되지 않았고, 같이 기다려준 멤버들에게 미안한 감정까지 생겼다.
그의 곁으로 다가온 택진이 형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정호야, 아까 예선 때처럼만 25초대 기록이면 입상 가능성 충분히 있어."
"제 첫 대회잖아요. 결승까지 오를 거라고는 제 데이터에 없었는데, 솔직히 이 정도면 전 충분히 만족합니다."
하지만 택진은 그런 정호어깨에 손을 얻고 말을 이어 갔다.
"만족? 야, 여기까지 왔으면 무조건 1등 하는 거야. 이제부터는 누가 더 간절한지, 누가 더 집중력을 유지하느냐의 싸움이라고. 정신 차려 정호야!"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은성샘이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진용이 말이 맞아. 끝까지 집중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거야. 마무리가 중요해."
정호는 둘의 응원에 어깨를 으쓱하며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요,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은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이 결승은 통과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들 웃는 와중에 은성샘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당연하지. 전국체전 가야지."
"아무 말 대잔치네요. 제가 오늘 22초라도 나오면 그때 생각해 볼게요."
다시 한번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대기실로 향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선약이 있어 먼저 간 다영누나가 문자로 내 스트레칭 사진을 보내 주면서 응원 메시지도 같이 보냈다.
웃으면서 경기장에 들어갔다.
1번 레인에 배정을 받았다.
우리 응원석과는 멀어졌지만, 바로 옆 우튜브 중계카메라가 있어 우튜브 생방송으로 가장 잘 나오는 레인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결승은 결승이네' 옆레인을 보니 다들 수영복이며 물안경 그리고 몸 푸는 동작이 다들 예사롭지 않았다.
거의 올림픽 결승전을 떠올리게 했다.
"take your mark"
"피익"
팟!
힘차게 발과 손으로 스타트대를 밀어서 공중을 날았다.
촤악 ! 핑!
마지막 발등이 수면 위에 약간 걸리긴 했지만, 깔끔하게 입수했다.
촤락! 촤악! 촤락! 챠악!
양팔이 거칠게 수면을 때리면서 물살을 벤다.
파바밧! 타타탓! 투두둑!
뒤에서는 하얀 물보라가 일어나며 발차기가 쉼 없이 움직인다.
25m
40m
읍! 읍! 으!
마지막까지 숨을 참는다.
파악! 하아하아 헉헉헉
24.89
전광판에 내 이름이 3등으로 나와있었다.
1등은 23.78
'수고했다 정호야'
나 자신에게 축하해 주고, 한 동안 수영장 데크 위로 올라가지도 못했다.
정말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다 끌어 쓴 탓에 온몸이 찌릿찌릿하다.
수영을 배워서 정말 잘했다는 생각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 눌 수 있어서 더 기억에 남을 경기 같았다.
(대학원)
수영 대회가 끝나고 난 뒤, 다시 일상의 흐름 속으로 들어갔다.
대회 이후 주목받았던 기억은 어느새 흐려지고 대학원 수업과 과제, 연구로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어느 날, 강의가 끝난 직후 조교가 찾아왔다.
"정호야, 중명 교수님께서 잠깐 교수실로 오래."
무슨 일인지 궁금한 채 교수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서자 예상치 못한 얼굴이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 김선우 선수님."
김선우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정호를 맞았다.
"안녕하세요. 축하드려요, 그날 대회에서 3등 하셨다고 들었어요. 처음 나가셨는데 굉장한데요?"
멋쩍게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운이 좋았죠."
그러자 김선우 옆에 서 있던 40대 중반의 남성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해야죠."
김선우가 소개를 했다.
"이쪽은 저희 수영팀을 맡고 계신 국가대표 전담 코치님이세요."
코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준승이라고 합니다. 중명 교수님과 선우 선수한테 정호 학생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선우 선수가 전거근에 문제가 있는 걸 그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하셨다고 하던데, 어떻게 알아차리신 건가요?"
정호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은성쌤이 선우 선수에게 말하고 그걸 가벼이 여기지 않고 코치에게 말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때 이후 상태가 더 악화된 듯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글라이딩 이후 EVF(초기수직전완물 잡기)로 들어갈 때 좌우 밸런스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걸 느꼈습니다.
사실 제 추측이라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여태까지 은성샘과 저희 팀원들을 보면서 전거근에 문제가 있으면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걸 확인했거든요."
코치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거근에 문제가 있다면, 훈련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정호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병원 진찰에서 이상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는 어깨와 견갑골 강화 훈련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횡격막 강화 훈련도 추가해 주면 좋겠죠."
코치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김선우 선수는 실제로 어떤 불편함이 있었는지 한번 설명해 줄 수 있겠어요?"
김선우가 조용히 말했다.
"정호 선생님이 정확히 짚으신 대로입니다. 글라이딩 동작에서 팔을 끝까지 뻗을 때 불편한 느낌이 있고, 캐치 동작에 들어갈 때 통증이 생기기도 했어요."
김선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정호를 바라봤다.
어느새 선생님으로 불리는 자신이 조금 어리둥절했다.
"근데 정말로, 관중석에서 그걸 다 보셨다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