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기회

블루아이(blue eye)

by Dinnerout

(진천 국가대표 수영장)


이준승코치의 권유로 국가대표 수영장에 온 지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진천은 서울과 비교도 안될 만큼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그러나 이곳 수영장만큼은 어디 보다 활기가 있었다.


김선우 선수를 포함한 몇몇 국가대표 선수는 두 달 뒤 전국체전을 앞두고 강도 놓은 훈련을 이어갔다.

특히 김선우 선수는 뉴스에서나 보는 '담금질'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몰입해 있었다.


나는 수영장 한편에 서서 선수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의 완벽한 스트로크와 물보라가 일어나는 발차기등 감탄하며 관중 모드로 지켜봤다.


그러다 문득 수영장 벽면에 설치된 전면 거울에 비친 국가대표 트레이닝복을 입은 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져 혼잣말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일단 이준승코치의 추천으로 김선우 선수 전담 재활 트레이너 보조로 임시 채용 된 단 두 달짜리 짧은 알바였다.


분명한 건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했다.


오기 일주일 전 대학원 강의실에서 담당 김중명 교수님과 면담을 했다.


"교수님, 가게 되면 제 공부랑 학점은 어떻게 되는 거죠?"


걱정스러운 질문에 교수님은 가벼운 미소 지으며 반문했다.

"정호야, 너 대학원 왜 왔어?"


순간 머뭇거렸지만 곧 또렷하게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분야를 더 깊이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그래,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고 관리하며 배우는 건 아무한테나 오는 기회가 아니야. 대학원 수업 듣는 것보다 훨씬 값진 시간이지.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딸 선수들을 네가 직접트레이닝 하는 거야."


교수님의 말에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너 수영도 잘하고 좋아하잖아. 이거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 같아? 2개월 정도라 부담도 없잖아. 학점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걱정 말고."


교수님의 마지막 말에 내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참, 거기 근처에 마늘빵 맛있는 데 있던데, 올 때 몇 개 부탁해."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 꼭 사다 드릴게요."



(진천 국가대표 수영장)


국가대표 선수들의 하루는 단순하면서도 강도 높았다.


새벽에 일어나 가벼운 구보와 스트레칭으로 몸 상태를 점검하고, 수영장에 들어가 오전 수영훈련을 시작했다.


각 종목별 정해진 훈련과 반복적인 드릴과 숏핀, 패들등 장비를 사용해서 고강도 연습을 했다.


아침식사 후 각자 휴식을 취한 뒤 웨이트나, 코어, 스트레칭등 종목별로 보조 지상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몇몇 선수들은 코치와 함께 본인의 영상을 보며 피드백을 받거나 회의를 했다.

그리고 또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오후는 파워와 기술훈련을 위주로 시작했는데 이때 훈련하는 풀리시스템(Pulley System)이 신기했다.


수영장 끝에 설치된 도르래 장비에 무게를 달아 선수가 앞으로 나가면서 줄이 풀려 저항이 걸리는 기구다.

물속에서 저항을 걸어 파워, 스피드, 근지구력등 과부하 훈련으로는 수영장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웨이트 머신이었다.


저녁 후 회복운동으로 저강도 수영을 진행했다.


선수들은 하루 평균 거의 13,000미터 이상의 수영 훈련을 소화했다.


여기서 내 임무는 김선우 선수의 몸 컨디션과 통증 부위가 발견된 전거근 재활을 전담하고 그에 맞는 체력 훈련을 돕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짬짬이 블루아이로 스캔하며 신체 상태를 점검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태블릿 PC에 기록했다.


이러한 일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저녁이었다.

감독과 코치의 허락을 받고 선수들과 함께 훈련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시간은 마치 나 자신이 진짜 국가대표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개 토 나오는 강도 높은 훈련을 같이 했다.

물론 모든 연습량을 다 따라가 지 못하고 며칠은 중간에 빠져나와 정말 구토를 하기도 했다.


자기 전에는 '오늘 김선우 선수와 50m 대시 한 썰 푼다.' '폼은 이미 국가대표 선수' 같은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그날 훈련 영상을 단톡방에 올리면서 자랑하기도 했다. 친구들의 반응과 부러움 섞인 메시지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물론 다영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면서 수영 스타트대에서 뛰기 전 보다 메시지가 오면 더 두근거렸다.



(수영장)


"쟤 또 저기 멍하니 서있네."


"이준승 코치가 데려온 애 맞죠? 김선우 선수 전거근 문제를 바로 알아차렸다는 애."


"응, 병원에서도 발견 못 한 걸 수영대회장에서 잠깐 보고 알아냈다니까"


"아직 대학원생이라던데, 얼마 전 전국 수영대회에서 3등 했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재활팀 사람들이 나를 멀리서 지켜보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 재활팀과 첫 회의를 하 던날, 나는 그들에게 내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켜 줬다.


"전거근은 견갑골을 안정시키고 주위 근육을 보조해 주는 중요한 근육입니다.

김선우 선수의 경우 이 전거근 통증으로 후방 어깨 근력도 약해져 자칫 회전근개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능형근과 승모근을 강화하는 밴드 운동과 견갑골 안정화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흉신경 문제는?"


"여러 테스트 결과, 손상이나 마비 징후는 없습니다. 일단은 견갑골 안정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며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재활팀장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상 깊네요. 웬만한 데이터와 경험 없이는 어려운 부분인데, 대단하네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PT 경험과 수영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있어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습니다."


"나중에 다른 종목도 한번 봐줄래요?"


"아, 네..."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절대 다른 종목만큼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만약 펜싱 같은 종목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그럼 그러치'라는 대답이 돌아올 게 뻔했다.


수영장에 온 지 3주 정도 지나면서 김선우 선수에게서 긍정적인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선우 선수, 어깨 가동범위랑 전거근 근력이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본인은 어때요?"


김선우는 밝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아졌어요. 선생님 수영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처럼."


"아, 훈련할 때 보셨나요? 처음엔 객기로 끝까지 따라갔다가 중간에 화장실 가서 토했어요."


"저희도 힘든데, 오죽하겠어요."

웃으면서 자유형 스트로크 동작을 하며 말을 이어 갔다.


"어제 자유형 보니깐 왼쪽 스트로크 때 물 잡기와 푸시가 몸에 너무 붙어요. 11시 방향으로 더 뻗으면서 들어가세요. 물을 잡을 때 너무 몸통 가까이 잡지 마시고요."


"네, 이따 저녁 연습 때 신경 써서 해볼게요."


그날 저녁, 가벼운 몸풀기를 마치고 선수들과 함께 주 종목 기록 측정을 했다.

측정 이 끝나고, 감독이 오늘은 이벤트성으로 50m 기록 순으로 계영팀을 꾸려 초코우유 내기를 진행했다.


팀이 공개되자 모두의 이목이 우리 조에 집중됐다.

나와 함께 팀을 이룬 멤버가 김민우, 이준호, 김영서였기 때문이다. 모두 2년 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들이고, 김민우는 도쿄 올림픽 동메달, 김영서는 한국 신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였다.

누구랑 편을 먹어도 부담이 밀려왔을 거 같지만, 이 멤버를 보고 있으면 어깨가 으스러질 지경이 이었다.


"이거, 저 때문에 지면 큰일이네요. 하하."


멋쩍게 웃으면 농담을 던지자 민우 선수가 밝게 웃으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에이, 부담 닺지 마세요. 어차피 재미로 하는 거잖아요? 지면 정호 선생님이 다 사면되죠 뭐."


옆에 있는 맏언니 김영서 선수도 장난치면서 거들었다.

"맞아요, 원래 국대 룰이 있는데 제일 느린 사람이 무조건 쏘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 팀은 올림픽 라인업이잖아요. 이 멤버로 지면 이거 다아아~ 정호샘 탓 이지모."


말이 끝나자 주변 선수들이 빵 터졌다.


이준호 선수까지 끼어들어 미소를 지었다.

"꼴찌만 면하면 되는 거니깐 걱정 마요, 우리 목표는 '꼴찌만 면하기'로


묘하게 위안이 되면서 진심으로 웃지는 못했다. 여기서 큰 구멍이 나인데 진짜 꼴찌 하면 완전 내 책임이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각 팀 주자들은 양쪽 스타트대로 가주세요."


코치가 외치자 우리 첫 번째 주자인 민우선수가 스타트대에 올라섰다.

내 차례도 아니었지만, 대회 때 보다도 떨리고 긴장과 흥분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take your mark


띠익 !


힘차게 튀어나간 민우선수의 스타트를 보자 가슴이 더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다른 레인 선수들과 격차가 안 벌어진다. 초코우유 한 박스를 걸고 펼쳐지는 이벤트지만, 국가대표 릴레이 경기는 훨씬 진지하고 치열했다.


나는 4번 주자로 선수들이 확인 사살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맡았다.


'꼴찌만 면하자.'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며,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사형대로 향하듯 긴장된 발걸음으로 스타트대에 올라섰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작은 저항이 눈을 떴다.


'아니야, 생각해 보면 나도 그동안 엄청 늘었잖아. 어쩌면 내가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갑자기 뇌가 맛이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밑 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앞쪽에서는 우리 팀 세 번째 주자 김영서 선수가 힘차게 수면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얼핏 봐도 다른 팀들과 격차는 크지 않았다.


김영서선수가 한 스트로크정도 간신히 앞서는 상황이었다.


심호흡을 한 번 길게 내뱉고 , 전력을 다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팔을 반원을 그리며 돌리며, 선수가 벽을 터치하는 순간 힘차게 점프했다.


강력한 코어에서부터 어깨와 팔, 다리 힘까지 끌어모아 필사적으로 전진했다.


물속에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양옆도 보이지 않았다. 경주마처럼 앞으로만 기계처럼 강력하고 빠르게 헤엄쳤다.


마지막 스트로크를 힘껏 뻗으며 손끝으로 벽을 터치했다.


터치하고 고개를 들어 좌우 레인을 바라보니 다들 물안경을 벗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허억... 허억.. 헉헉! 꼴찌.. 인가요?

겨우 목소리를 짜내서 말했다.


"면했습니다, 하하하하"

김민우 선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코치가 와서 50m 기록을 알려줬다.


정호! 23초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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