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인정

블루아이(blue eye)

by Dinnerout


들어온 지 한 달이 지나고 목요일 저녁 훈련이 끝나자 감독님이 모두 불러 모아 한마디 했다.


"내일부터 3일간 휴가다. 잘 쉬다 와라 사고 일으키지 말고."


다들 미소와 함께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잠실 수영장)


오랜만에 진천에서 벗어나 익숙한 수영장에 들어섰다.


이곳 특유의 염소냄새 마저 정겹게 느껴졌다.


은성샘과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이 와서 말을 걸었다.


"선우 선수 트레이닝하러 간 거 아니었어? 왜 단톡방에 네가 수영하는 영상만 올리냐?"


"오빠 거기 어떻게 들어갔어요? 빽 있어요?"


"우리도 가서 하면 안 돼요?"


"국가대표 훈련표 받아온 거 없어요?"


은성샘을 시작으로 다들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국가대표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연습량을 소화하기 에만 급급했다. 여기 훈련이 시작되자, 오랜만에 편안한 곳에서 여유 있게 수영하니 물속 손끝의 감각, 킥, 코비네이션, 타이밍. 스트로크 효율이 확실히 전보다 좋아졌다는 걸 나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달라진 내 몸과 수영 실력에 감탄을 하면서 신나게 회포를 풀었다.


몸도 마음도 편하게 수영을 만끽하고 마지막 하루 남은 휴가는 다영 누나를 만나 부대찌개를 먹으러 갔다.



"국가대표랑 수영하니깐 어때? 부럽다."


보글보글 끓는 뚜껑사이로 빠져나오는 거품을 보면서 말했다.

"그 사람들도 저랑 같은 선수죠 그냥 동료 같아요

어때요? 초심 완전 잃은 사람 같죠?"


"푸흣, 순간 정신 나간 줄 알았다."


"제가 운동을 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 초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환경이 바뀌면, 태도도 알게 모르게 달라지는 데 저는 초심을 잃지 말자고 늘 다짐하죠."


“맞아 어떤 것이든 초심을 잃으면 오래 못 가지."


"사람이 초심을 잃으면 크림 없는 다쿠아즈죠"


"뭐? 다쿠아즈?"


"다쿠아즈 자체는 맛있어 보이지만 먹는 순간 크림이 없으면 뻑뻑하고, 그 달콤한 맛이 안 나서 다쿠아즈 본연의 맛을 못 즐기잖아요."


"음... 좀…그래, 넌 가끔 비유가 이상하긴 한데 뭔지는 알겠다."


"제가 운동에 만큼은 초심을 잃지 않은 이유가 옛날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제 실력이 안된다고 게임에도 안 껴주고, 겉으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뭔가 .. 좀 그랬어요. 나중에 제가 가르칠 수 있는 위치가 되더라도 절대 그러지 말자고 생각했죠."


"그건 그냥 그 사람들 인성인 거고, 이거와 다르게 사람들은 초심을 가장 빠르게 잃는 이유는 쾌락적 적응이지."


"오 역시, 좀 더 해줘요."


"말 그대로야. 인간은 환경과 감정상태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해서 처음 강렬하게 느꼈던 성취감, 설렘, 동기가 시간이 지나면 '기본상태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어. 너도 국가대표랑 몇 달 있어보면 설렘과 열정도 줄어들 거야. 아까 니가 말한 것이 본심일 수도."


"전 아닙니다. 원헌드레드퍼센트!."


"응. 널 본 지 얼마 안 됐지만, 초심을 잃을 것 같지는 않아. 그리고 오랜만에 봐서 어색하냐? 존대를 해 또"


멋쩍게 웃었다

"나... 좋은 사람이야 내 입으로 말하긴 뭐 하지만, "


"아냐, 나도 그렇게 느껴. 진짜 좋은 사람 같아."


'지금인가?'

갑자기 스마트워치 심박이 올라가더니 심장이 입 밖으로 나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타이밍인가?'


'드르륵드득'


"뚜껑 열고 드시면 돼요."

부대찌개가 다 끓고 종업원이 와서 헛소리하지 말고 먹으라는 듯 날 한번 보더니 시크하게 뚜껑을 열고 갖고 갔다.


"크흠.."

멋쩍은 듯 미소만 지었다.


"사케 한잔 할까?"


"네? 부대찌개에 사케?"


"저기 봐, 사케 맛집이라고 써있잔아."


[한국의 맛과 일본의 향이 함께하면 중독됩니다.]


벽보에 써져 있는 문구에 서로 웃음이 터졌다.


좋은 타이밍은 다음으로 기약하기로 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정호 넌 어떻게 그렇게 사람 몸을 잘 알아? 어디가 약한지, 무슨 운동이 필요한지 보면 진단이 나와?

아빠한테 물어봐도 사람진단 내리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하던데."


사케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내가 관찰력이 남들보다 좋은 거 같아. 그리고 전공이 운동이 다 보니 몸 쓰는 패턴이나 자세 변화가 오면 감이 와."


"그래도 대단해 내가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상대방 이 어떤 심리 상태인지 잘 알지 못하는데."


"몰라? 누나는 그냥 눈치가 없는 거 아닌가?"


"뭔 소리야, 나 눈치 빨라."


'그럼 내가 누나 좋아하는 것도 알겠네'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나는 어때 수영할 때 어떤 동작이나 근육을 트레이닝하면 좀 더 좋아질까?"


"누나는 지금 수영보다 손목이 문제인 거 같은데."


"어? 어떻게 알았어?"


"손등끼리 이렇게 명치 앞에서 맞대 봐."


"으으윽 찌릿한데."


"방금 손목정중신경이 눌리면 통증이 있을 수 있는 팔렌테스트라고 하지."


"진짜 신기하네, 요즘 논문이다, 일할 때 컴퓨터 하면서 손가락이 저릿할 때가 있었는데. 진짜 대단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낫는데?


"스트레칭해야지 손 줘봐."


자연스럽게 손을 잡으면서


전문용어로 pnf스트레칭이라는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누나의 하얀 손을 자연스럽게 잡으며 놓지 않으려고 손목과 관련된 스트레칭을 쥐어짜 냈다.


"어때? 나 진짜 좋은 사람인 거 같지?"


"너 mbti가 뭐야?"


"누나 전공이니깐 맞춰봐."


"너 INFP 같은데?"


!!??


"누나 정말 심리학 박사가 맞구나. 정확해!"


"대부분 ENFJ라고 말하던데."


"왜 그렇게 듣고 싶어?"


"사실 따뜻하고, 감성적인 ISFP 같기도 했는데 좀 친해지니깐 알겠더라."


"누나는 뭐예요?"


"ENFJ"


그럼 나랑 잘 맞네.


"너 MBTI 잘 모르지?"


"응 크크크. MBTI가 정확해?"


"MBTI는 처음 만났을 때 대화 주제로 도 좋고, 그 사람을 쇼츠 형식으로 알 수 있어서 유행하는 것 같은데, 성격을 4가지 지표로 단순화하는 건 무리가 있지."


사케 잔을 들어 정겨운 소리와 함께 한 잔씩 들이켰다.


"환경에 따라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많이 바뀌지. 예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E가 I로 바뀌는 걸 종종 볼 수 있어. 심리학에서는 빅파이브가 과학적 신뢰도를 더 높게 쳐주지."


사케의 병 안 수위가 낮아질수록 행복지수는 올라갔다.


(진천 수영장)


바쁜 휴가가 끝났다.


수영장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끝내고, 내일부터 다시 쾌락의 적응이 아닌 초심의 복귀로 생각하며 스케줄을 체크하고 있었다.

'드득드드드-'


진동음 이 울렸다.


"네. 김민우 선수"


"혹시 시간 되시면, 저 문 좀 열어주세요."


"네?"


문을 열자 김민우 선수와 이준호 선수가 서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샘 저도 트레이닝을 좀 받고 싶은데 알려주세요."

민우선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우형이 샘 한테 운동받고 엄청 좋아졌다고 하던데, 속도랑 폼도"


옆에 있던 준호 선수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탰다.


"정신교육도 시켜주신다고...."


"하하하"


어쩌면 당사자보다 제삼자 에게 이런 말을 들어서 그런가 그동안 트레이닝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국가대표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김선우 선수도 추천을 한 것이 깊은 곳에서 뭉클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게... 동네 수영장이면 문제없는데 여기는 시스템이 있어서 일단 내일 팀장님하고, 코치님하고 상의해볼게요."


"귀찮은 건 아니죠?"


"에이- 나중에 제가 트레이닝해서 잘돼면, 어디 나가서 언급 좀 해주세요."


다음날 아침 이준승 코치에게 말하자. 재활팀장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준승 코치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선우 폼이 예전보다 확실히 좋아졌고, 정호샘 방법이 효과를 본 건 같아서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팀장님은 어떻게 보세요?


"좋죠 제가 봐도 선우 선수 부상이나 근력이 좋아졌어요 정호샘만 괜찮으면 다른 선수들도 참가하면 도움 될 겁니다."


"바쁘네, 선수들 트레이닝시키느라 본인 수영하느라. 이참에 내년에 선수 등록해 봐요, 50M 기록이 어떻게 나왔죠?


"23.93이요."


"22초까지 맞춰서 국가대표 달아보는 건 어때요. 운동하는 거 보니깐 가능성 있어 보여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이상하게 설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2초... 국가대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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