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노자
5월
호기롭게 대학 2학년 2학기를 휴학하고 미국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다.
준비는 민병철 어학원 3개월과 스쿼시 알바로 모은 돈으로 육대주 중 하나인 아메리카로 출발하였다.
일본 경유를 할 때만 해도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미국 생활에 달콤한 꿈에 젖어있었다.
경유 포함 15시간 넘게 워싱턴 dc 달라스 공항에 저녁 7시에 도착해서 코카콜라 한 캔과 함께 도착의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탄산이 다 가시질 않은 채 문제가 발생했다.
픽업하기로 한 사람이 3시간 넘게 나오지 않는 거다.
해당 업체에 전화를 걸었더니 픽업 맨 퇴근.
오늘은 호텔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픽업을 해주겠다는 당당함에 장시간 비행의 고단함과 영어 듣기 및 말하기에 벌써 지쳐있는 나는 수긍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당시(2009년)에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픽업 맨 하나 믿고 잘 알아보지도 않아서 멘털이 나가기 시작했다.
공항 가운데 있는 인포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5명이 모이면 출발하는 밴에 탑승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은 역시였다. 도착하자마 시작이었다. 그나마 공항에서 싸게 시내까지 가는 방법과 유스호스텔을 추천해 준 인포 직원 올리버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비까지 내리는 어두운 저녁, 무사히 워싱턴 시내에 도착했다.
새벽 1시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긴 하루를 마감했다.
다음날 중년 아저씨가 흰색 포드를 나와 다른 친구 2명을 더 픽업했다. 콜롬비아 아구아? 러시아 여자는 릴리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 자신의 영어능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친구들의 영어 악센트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콜롬비아 친구에게 에스코바르에 대해 물어봤지만 돌아온 답변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물어본걸 이내 후회했다.
러시아 친구 릴리는 미녀였다. 콜롬비아 친구도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she's gorgeous를 외쳤다.
사람 보는 눈은 역시 다 똑같다.
셋이 라이프 가드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고 수영장을 배정받았다.
한국 적십자 수상인명구조 자격증을 갖고 있는 나로서 실기시험은 그냥 물장구 수준이었다. 하지만 필기시험은 죄다 영어라 쉽지 않았다.
수능 일주일 전 심정과 떨어지면 전대미문으로 미국에 오자마자 집으로 돌아간다는 각오를 가지고 공부 끝에 무사히 통과했다.
5월 말
총 세 곳의 수영장에서 일을 하였다.
처음 2달 반 정도는 2 곳을 나눠서 주상복합 개념의 아파트 안 풀에서 일을 하였다.
할 일은 물 ph 농도와 수영장 청소, 손님들 비위 맞춰주기
특히 ph 농도 맞추기가 까다로웠다. 새삼 한국에서 수영장 아르바이트할 때 기관실 아저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손님들이 말을 걸 때에는 영어 듣기 평가 보듯이 오감을 집중해서 들었다.
특히 수영장 관리인은 하루에 한 번씩 와서 이것저것 건드리고 갔다. 처음에는 좋은 사람인 줄 알았지만 날이 갈수록 갑질이 심해졌다.
하지만 1달 뒤에는 매니저와 손님들 덕분? 에 말과 귀가 틔였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화가 자연스러워졌다.
일은 11시부터 4시까지였다. 출퇴근은 지하철로 30분 정도 걸렸다.
나중에 뉴욕 지하철을 타봤지만, 수도인 워싱턴 지하철이 훨씬 깔끔하고 역사도 웅장했다.
퇴근 후에는 영어공부와 핸섬한 홍콩인 친구 제이슨과 담소를 열심히 나누며 미국에서의 퇴근 생활을 즐겼다.
숙소는 25평 정도 되는 꽤 큰 콘도에 방이 2개였는데 큰 방은 제이슨과 우즈베키스탄 한 명 이 5일 전에 와서 이미 방을 쓰고 있었다. 난 조그만 방에서 혼자 쓰기로 했다.
미국이 3번째인 제이슨은 스피킹 실력이 아주 좋았다. 돈도 많아서 가끔 맛집을 데리고 가서 시원하게 쏘기도 해서 1달 뒤에 다른 숙소로 갈 때 많이 아쉬웠다.
이렇게 7월까지는 별다른 일 없이 주급만 기다리며, 미국의 저렴한 식료품에 감탄하고, 그래도 집이 역시 최고라는 생각과 자기 전 마무리는 항상 내일에 대한 기대감과 영어공부를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6월
day off
일주일에 1번이다.
외노자답게 열심히 돈을 모아서 미국 워킹이 끝나면 호주 워킹을 갈 생각이었다.
이미 간 친구와 열심히 메일과 채팅을 주고받으며 타 지역에서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가 토론을 했다.
주급은 13일 치를 주는데 숙소 값 빼고 400달러 정도 받았다. 한 달이 지날 때마다 조금씩 오르고 나중에 실버스프링으로 갔을 때는 600달러까지 올랐다.
쉬는 날이면 항상 은행을 찾아가 저금을 하고, 외국 친구들과 시내로 놀러 가거나 혼자 사색하고, 워싱턴 DC의 청취를 느끼며 달리기와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앞으로의 일을 집중했다.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워싱턴 기념탑, 링컨 메모리얼 파크, 백악관 투어
이렇게 워싱턴의 핵심 관광지는 다 돌아보고 미국 문화 체험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과거보다, 현재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펍에서 마시는 맥주와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재밌었다.
루마니아에서 온 친구 오르게? 게오르게? 암튼 이제 22살인데 안타깝게도 대머리다.
이 친구는 착하고 웃음이 많다. 자기 쉬는 날 굳이 내 일터까지 와서 퇴근 후 같이 놀자고 기다려 주었다.
같이 공짜 밥를 먹고 축제의 한가운데서 미국 독립 기념일을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역시 쉬는 날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빠르게 지나갔다.
7월 중순
재퍼슨 주상복합 아파트 수영장 관리인 이 점점 짜증 나게 한다.
청소 상태가 엉망이란다.
최대한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에는 일이 터졌다.
ph 농도와 청소상태의 이유로 관리인이 바로 해고시켰다. you’re fired 귀에 착 감기는 단어다.
2달 반만이였다.
8월
수영장 측에서는 그 정도면 잘 버틴 거라고 한다. 그 아줌마가 한 달 사이에 잘라버린 애들만 3명이 넘는 단다.
나 정도면 꽤 버텼다고 위로? 해준다.
이제는 실버 스프링이에 있는 꽤 큰 수영장 사역을 맡게 되었다.
출근만 1시간이다. 고되기는 해도 여기 사람들이 친절하고 주위가 온통 숲이라 삼림욕 하기 딱 좋았다.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상책이다.
실버스프링은 고즈넉하고 조용해서 사색하기 좋았다.
수영장은 5미터 풀이 같이 있어 수영도 할 맛이 낫다.
미국 초등학생들도 방학이라 그런지 제법 붐비는 날도 많았지만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갔고, 하나같이 착하고 붙임성 좋은 애들이라 영어 말하기, 듣기 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영어 실력은 딱 초등학생 정도였다.
그리고 부츠 노인은 수영은 안 하고 항상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하는데 음악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소울은 느낄 수 있었다.
수영장을 새롭게 옮기고 대만 친구들이 숙소에 새로 왔다.
내 생일까지 챙겨준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빠르게 8월은 지나가고 어느새 돌아갈 9월이 다가왔다.
9월
귀국하기 일주일 전 뉴욕으로 건너가서 신세계를 경험하고 대만 친구 들와 우정을 다지고, 돈 쓰며 노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임을 다시 깨달았다.
미국에서의 방학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고, 타지에서의 돈벌이는 낭만적이지만 않았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기억의 한구석을 오랫동안 차지할 정도의 추억과 외국 친구들과의 우정 쌓기는 미국 생활을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했다.
집에 오니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아서 안도감이 들었고, 시차 적응할 필요도 없이 항상 졸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