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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nerout Aug 05. 2019

속초 가서 오징어회 먹고 오기

자전거 타고 200km

다나스 때문에 이번 속초 야라(야간 라이딩)는 일단 보류해야 될 것 같습니다.
18일까지만 해도 기상청 태풍 경보는 무섭도록 위협하였다. 하지만 예보를 시간 단위로 봤지만 19일 오후에 상황을 보니 중부 지방은 비가 안 올 것 같고 속초는 토요일 늦게, 일요일 오전에 영향권에 들어선다는 예보를 보고 강행하기로 했다.
이렇게 도전이 시작됐다. 전날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이 많았지만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맥박수는 더 빠르게 뛰고 흥분감과 기대감이 더욱 커져갔다.


자전거 타고 속초 가서 오징어회 먹고 오기!
보통 사람들이라면 자전거 타고 서울에서 속초? 잠도 안 자고? 제정신이야?
하지만 자전거를 깨나 타는 사람들은 속초로 껌 사러 갔다 오는 거죠~
200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가다니 가능한가? 그것도 저녁 열 시에 출발해서 밤새 달려서 다음날 오전 10시에 도착한다고?
나조차도 미친 짓 같아서 떠나기 전 나 자신에게 몇 번이나 되물어 보며 지금이라도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같이 가는 직장상사는 랜도넌스 자전거 장거리 대회를 매회 해내고 있는 무적이다.
과장님 저 버리고 가시면 안 됩니다?
한번 죽어보세요.  
농담 섞인 말에는 정말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갔다.
과장은 속초까지 몇 번이나 다녀온 베테랑이다. 나의 최고 장거리는 춘천 100km가 다였다. 그때도 보충을 제때 해주지 못해 저혈당 즉 봉크가 찾아와서 많이 힘든 기억이 뚜렷하다
하지만 5년 전과 나는 많이 달라져있다고 생각했다.  스쿼트는 1rm 130kg까지 가능하고 레그 컬 즉 햄스트링 쪽을 훈련을 많이 했다. 또한 남산과 북악 스카이웨이 업힐 연습과 주 2회는 30km 넘는 중거리 연습을 꾸준히 하였다.

자전거, 헬멧, 전조등, 물통, 에너지바를 챙겨서 무겁고도 흥분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정확히는 안양천 합수부랑 가까운 우리 집에서 속초까지는 250km가 넘는 미친 거리였다.
폭풍전야라 그런지 바람은 약간 불고 기분 좋은 비 냄새가 섞여오는 습도 높은 날씨였다.
제발 비만 오지 마라라는 심정으로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자전거를 타고 한강 도심지의 야경을 보면 아름답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면서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흔하지 않을 것이다.
1:30분 만에 광진교 인증센터에서 과장과 합류한 후 인증샷을 찍은 뒤 출발했다.
양평을 지나서 자전거 도로로 안전하게 달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길을 따라 열심히 페달링을 하였다.
너무 좋았다. 가시거리도 끝내줬지만 땀을 식혀줄 정도의 바람과 적당히 젖은 노면상태는 페달링을 좀 더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양평을 조금 지나서 편의점에서 보충을 하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 한번 죽어보세요 라고 했던 과장은 계속해서 내 상태를 체크해주고 물을 다 마시자 자기 물을 나눠주면서 힘들면 말하라고 안심시켜주었다.
과장은 낙타처럼 물 한 방울 안 마시고 양평까지 달렸다.
내 물통 650ml는 하남을 지나고 얼마 안돼 바닥을 드러냈다.
경의 중앙 아신역 근처 편의점에서 핫식스와 빵과 쵸코 우유, 포카리를 사 가지고 보충을 충분히 하고 다시 달렸다.
경의 중앙 용문역 앞 편의점을 마지막으로 국도를 따라서 속초까지 다시 페달링을 시작했다.
편의점 주인이 20 전에  팀이 속초로 출발했어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이제부터는 국도로 가기 때문에 한 줄로 안전하게 라이딩을 시작했다.

라이딩 중 최대의 적은 당연히 오르막이다. 우리나라는 오르막이 많아도 너무 많다. 업힐을 할 때마다 과장 엉덩이가 너무 멀어져만 간다.
하지만 오버페이스를 할 경우 아웃이 될 것은 분명함으로 기어를 최대한 올리고 거북이처럼 묵묵하게 조금씩 올라갔다.  과장은 답답했겠지만 내 페이스에 최대한 맞춰주었다.
지금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 속초로 가는 로드 한 팀이 따라와서 과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난 한마디도 못 했다 아니할 수가 없었다.
한 팀 중 파란 헬멧 분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미니벨로로 속초까지 가시다니
죽을  같습니다. 속에 있는 한마디를 내뱉고 다시 거친 숨을 내쉬면서 달렸다.
과장이 업힐을 끝내고 다운힐에서는 피로 회복이 돼야 다시 업힐이 가능하다고 했다.
근데 업힐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달린 지 7시간 만에 홍천 방향 며느리 고갯길? 중간에서 쓰러졌다.
과장님  다리가  펴져요 죽을  같습니다. 쥐가 허벅지 앞쪽 뒤쪽 안쪽까지 같이 온건 살아생전 처음이었다.
과장은  나서 죽은 사람은  봤어요 하면서 신음 소리를 내며 살려주세요 를 외치는 나를 보면서 느긋하게 천만 원짜리 자전거를 안전하게 세우고 다가왔다.
상태를 한번 보고 이거  모금 마셔요 하고 내민 것은 엄청 강한 식초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크램 픽스(crampfix)라는 근육경련 예방 드링크였다.
몸이 산성화가 됐기 때문에 드링크 성분이 중화시켜줘서 근육 뭉친  나아질 거예요
하면서 내 두 다리를 잡고 풀어주면서 말을 이어갔다.
쥐 난 지 10분 정도 되어서야 서서히 풀리고 자전거를 끌고 나머지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과장은   있겠어요?를 웃으면서 반복했다.
!   있습니다. 집으로요 물론 집으로요는 속으로 말했다.
다시 힘을 내서 도착한 홍천읍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핫식스를 마시면서 다시 재충전하고 멘탈을 다 잡았다.
다시 출발이다. 에어팟으로 노래를 들으며 리듬에 맞춰서 힘차게 페달링을 시작했다. 속초까지 100km라고 쓰여있는 이정표를 본 순간 빨리 잊으려고 노력했다.
아무 생각 없이 밤공기를 마시면서 과장 등 한번, 앞바퀴 한번 번갈아가며 보면서 호흡에 신경 썼다.
포기하지 말자 갈 수 있다! 천 번은 마음속으로 되뇐 것 같다.
계속해서 다리는 무거워지고 고비는 많았지만 페이스를 찾고 다운힐을 할 때는 회복에 집중했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더 이상 전조등은 길 앞을 비추지 못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뚜르 드 프랑스에서 뛰고 있는 듯한 선수처럼 희열을 느꼈다.

인제를 15km 정도  남겨두고 들른 남근 휴게소아니 청정 조각공원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조각상들이 하나같이 x 같았다.
사진을 찍고 충분히 쉬면서 기력을 보충했다. 이제 나머지 50km를 남겨두고 마지막 미시령 고개를 향해 돌진했다.
경련 때문에 예상보다 도착시간이 늦었졌지만 적어도 11시 전까지는 갈 수 있을 거예요 라는 과장의 말에 힘을 내서 열심히 밟았다.
뭘 밟았지? 피시이이이이 펑크가 났다. 욕이 절로 나온 순간이다. 멀어져 가는 과장 엉덩이에 대고 펑크 났어요! 외쳤지만 더 멀어져 간다. 전화를 걸어 되돌아온 과장은 펑크를 확인하고 튜브를 교체하자고 한다.
여분 안 가져왔는데요?
뭐?! 200km 넘게 타는데 스패어 튜브를 안 가져왔어요?
아마 속으로는 욕을 하셨을 거다.
나 자신도 한심하기 그지없었는데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과장은 예정대로 속초로 난 난생처음 도로 한복판에서 콜택시를 불러 인제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인제까지 7km, 속초까지는 약 50km 남은 상황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속초 가서 오징어회 먹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다. 하다못해 튜브 패치도 안 가져온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과장은  7월 20일 오전 10시에 속초 터미널에서 인증샷을 보내왔다.

난생처음 떠난 200km 라이딩에서 떠나기 전 마음과 라이딩 중, 라이딩 후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반쪽짜리 성취감이 아쉬울 것 같아서 다시 한번 과장에게 말할 생각이다.
과장님 이번에는 오징어회 제가 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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