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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많아도 칼퇴하는 혁태, 일이 없어도 야근하는 기열

누가 더 나쁜가

같은 대학교를 졸업한 혁태와 기열은 특유의 성실한 성격으로 무난히 대형 건축 구조 회사에 취직했다. 비교적 높은 연봉과 캐쥬얼 옷을 입어도 되는 자유로운 환경이 마음에 들어 입사하게 됐다. 혁태는 구조A팀, 기열은 구조B팀에 발령되어 업무 시간동안 열심히 일을 한다. 


같은 구조팀이지만 구조A팀은 일이 많고, 구조B팀은 일이 적다. 혁태는 매 시간 허투루 쓰지 않고 업무에 집중해도 업무의 양이 많아 도저히 퇴근 시간까지 끝낼 수 없다. 그럼에도 6시에 퇴근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혁태는 칼 같이 컴퓨터를 종료하고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그럼 옆에 앉아 있던 혁태의 동료 도빈은 한숨을 내쉰다.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혁태와 도빈은 특성상 서로의 일을 같이 하진 않지만, 혁태의 일이 쌓이면 도빈에게 넘어올 게 뻔하다. 도빈은 혁태에게 넌지시 이 상황을 말하며 야근을 하며 일을 마무리 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표했다. 하지만 혁태는 퇴근은 직장인의 권리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넘어가곤 했다. 도빈은 칼퇴하는 혁태를 보며 인상을 찌뿌린다.


기열이가 일하는 구조B팀은 관리, 감독이 주 업무인 부서이다. 문제가 생길만한 크리티컬한 요소들만 체크하면 되기 때문에 업무의 양이 많진 않다. 한편으론 그 요소를 진단하지 못하면 대형 건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이 뒤따른다. 꼼꼼한 기열이는 3시에 이미 체크를 끝냈던 요소를 다시 한번 검토하고 있다. 6시가 되어 모두가 퇴근할 때에도 기열은 재검을 계속하고 있다. 저녁 7시, 팀장은 아직까지 일하고 있는 기열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퇴근한다.



혁태는 나쁜 사람일까 좋은 사람일까. 

기열이는 나쁜 사람일까 좋은 사람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혁태가 나쁜 사람이고 기열이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최근엔, 혁태가 나쁘지만은 않은 사람이 되었고, 더러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더 최근에는 혁태가 좋은 사람이고 기열이가 나쁜 사람이라는 사람이 생겼다.



혁나기좋(혁태는 나쁜사람, 기열은 좋은 사람)은 맡은 일은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기반이 되어 있다. 근로자이기 전에 바람직한 시민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일은 자기가 마무리지어야 한다. 기열은 자신의 업무를 끝내고도 검토까지 끝냈다. 업무의 완성도를 떠나 그는 이미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이다. 반면 혁태는 자기의 할당량을 채우지도 않고 일을 종료해버렸다. 더욱이 그의 동료, 도빈에게까지 업무가 넘어가게 되어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회 구성원이다. 전체 사회를 보았을 때, 기열은 좋은 사회인, 혁태는 나쁜 사회인이다.



혁태가 나쁜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 전체의 효용보다 근로자 개개인을 들여다본다. 전통적으로 사용자는 근로자의 공간과 시간을 무제한적으로 지배했다. 유럽의 농노가 그러했고, 조선시대의 소작농은 겉보기엔 계약 관계이지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선 끝없는 노동을 강요당했다. 근대에 노동자는 휴식 시간 없이 일을 했으며 간혹 주말에 쉬는 것도 눈치와 허락을 받아야 했다. 법적으로 휴식이 보장된 오늘날에도 육아휴가를 쓰는 일은 "근로자를 사용할 사용자의 권리를 침해했기 때문에" 대표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근로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퍼지고 있다. 골자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사용할 권리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입사를 할 때에 사용자는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공간만을 요구할 수 있고 근로자가 이를 받아들이며 입사계약서에 서명을 하며 둘의 계약관계가 성립이 된다. 혁태와 기열의 회사는 '9시부터 18시까지', '회사 사옥에서', '성실히 일할 것'만을 규정했다. 혁태는 이 모든 사항을 준수했기 때문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근로자이다. 18시 이후에 무엇을 할 지는 전적으로 혁태의 권리이며 회사는 절대 업무를 강요할 수 없다. 만약 일이 정말 바빠 혁태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회사는 혁태에게 정중히 '부탁'을 해야 한다. 혁태의 권리를 빼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혁태로 인해 도빈에게 일이 전가되는 것은 혁태의 잘못이 아니라 적정한 업무량을 산정하지 못한 회사의 잘못이다. 민법에서도 "오늘 안에 핵 융합기를 만들어라" 같은 사회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정되는 계약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혁태에게 부여된 업무량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성실히 근로시간 동안 일한 혁태가 못 끝내는 일은 업무량의 문제이다.



더 최근엔 기열이가 나쁘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오래 전 어떤 책에서 읽었던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책 제목은 기억이 안난다) 한 한국 직장인이 오랜 노력 끝에 독일의 인기있는 기업에 취직했다. 직전 직장에 비해 높은 연봉을 제안 받은 그는 독일로 넘어가 열심히 일을 했다. 회사는 출퇴근을 철저히 지키는 좋은 워라밸을 가졌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에서처럼 수시로 야근을 하며 성실히 업무를 진행했다. 평소처럼 퇴근 종이 울려도 일을 계속하는 그에게 독일인 직장 상사가 다가갔다. 상사는 그에게 정중하지만 힘이 있는 말로, 자신들은 이 워라밸 문화를 위해 수십년을 투쟁했다고 하며 그가 계속 야근을 하면 문화를 다시 퇴보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온 구성원이 힘을 합쳐 악습을 없앴더니 어떤 사람이 악습을 반복하며 재생시키려 한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열이는 근로자의 적이며 사용자의 스파이다. 워라밸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해도 부족할 판국에 그 반대로 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용자는 기열이를 보며 이게 정상 사회이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할 것이다. 또한 기열의 동료들은 기열이를 보며 흐뭇해 하는 사장을 보며 눈치껏 일이 없더라도 야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기열에 비해 근무 평가에 불이익이 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진 않을 것이다. 사실 옳고 그름이란 없다. 아무것도 없는 자연에 인간이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고 옳고 그름의 잣대도 창조했기 때문에 판단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흔들린다. 다만 워라밸과 둘러싼 구성원의 여러 생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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