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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쪽짜리 고전 [건축십서], 10분만에 이해하기

[건축십서를 왜 읽어야 할까]


건축십서는 건축 분야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꼽힌다. 로마가 제국으로 확립하던 시기의 건축 철학, 공공 건축물, 주택, 재료에 대해 면밀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 문화가 로마 문화에 기반을 두어 성장했으니 건축십서는 서양 건축의 기반이다. 모든 문명 사회는 당연시 여기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두벌식 한글 키보드를 자연스레 쓰는 이유는 60년대 두벌식을 표준으로 삼았기 때문이고, cm와 m를 쓰는 이유는 18세기에 프랑스과학아카데미가 그전까지 프랑스에서 난립하던 모든 도량을 미터법으로 통일했기 때문이다. 당대 로마는 서양 문명의 표준이었고 현재까지도 서양 문명의 기반이 된다. 동양·유교 문화권에서 태어난 우리는 건축십서를 읽으며 서양 건축이 왜 기하학적으로 생겼는지, 왜 공공 건물엔 열주가 많은지, 현대 서양 건축물의 근본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표지와 목차


목차와 내용


[책의 모습]


건축십서는 10개의 건축 칼럼을 엮은 것과 비슷하다. 1서부터 10서까지 나뉘어 있고 각 서마다 장으로 내용을 구분했다. 저자는 비트루비우스라는 건축가로, 당대의 건축 지식을 엮고 자신의 견해를 추가하여 건축교본을 집필하여 당대 로마 황제인 카이사르에게 책을 바쳤다. 각 '서'마다 카이사르에게 드리는 편지를 '서언'의 형식으로 넣었다. 정리하자면, 서언+내용으로 이루어진 글이 10번 반복되는 것이다. 편지에는 건축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형식이고, 각 장에는 건축에 대한 더 전문적인 내용을 담았다. 


제 1서 : 건축가의 자질과 건축의 기본

제 2서 : 주택의 기원, 건축 재료

제 3서 : 신전 건축1

제 4서 : 신전 건축2

제 5서 : 공공 건축

제 6서 : 주택

제 7서 : 장식

제 8서 : 물

제 9서 : 천문과 시간

제 10서 : 기계 원리


책은 병렬적인 형식으로, 제 1서부터 10서까지 다 읽으면 좋겠지만, 원하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제 1서는 책의 기본이 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읽는 것을 추천한다.


현대의 건축서는 대부분 전문서로, 재료면 재료, 기후면 기후, 설계면 설계처럼 각 분야에 집중한 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건축십서는 재료, 기후, 설계 등 건축에 관련한 모든 지식을 서술했다. 오늘날 현대인의 관점에서 의아한 점은 건축 서적에 화성학과 투석기의 원리, 행성의 움직임도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전의 문명은 지식이 아직 전문적으로 분화되기 전으로, 지식이 통합적이었기 때문이다.



[제 1서 : 건축가의 자질과 건축의 기본]


비트루비우스가 밝히는 건축가의 자질은 현대 건축가에게 요구하는 자질과 흡사하다. (물론 동양의 건축가, 도편수에게 요구되는 자질과는 다르다.) 비트루비우스에서 내려오는 건축의 전통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기술과 학문을 겸비해야 한다.

천부적 재능과 후천적 학습이 갖춰져야 한다. 

학문, 회화, 기하학, 역사, 철학, 음악, 의술, 법률, 천문에 능통해야 한다.


비트루비우스가 주장하는 건축의 기본적 원칙 역시 현대와 유사하다. 비트루비우스는 질서 체계(order), 공간배치(arrangement), 미적 구성(eurythmy), 심메트리(symmetry), 적정화(propriety), 경제성(economy) 6가지를 건축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질서체계 : 적합한 치수와 비례에 맞는 부재의 양 

공간배치 : 건물을 적정한 위치에 짜 놓는 것. (매싱 하는 것)

미적 구성 : 부재끼리 합쳤을 때 조화로운지

심메트리 : 부재끼리, 혹은 부재와 전체를 보았을 때 조화로운지

적정화 : 건물이 컨셉과 자연환경에 맞는지

경제성 : 시공이 적절한지, 계급별로 맞는 건축인지


건축의 3가지 부분도 설명했다. 내구성, 편익성, 아름다움. 이 세가지는 현재까지도 통용되는 건축 원칙이다.


다음으로는 도시의 입지와 성벽, 풍향을 이용한 도로의 방위에 대해 서술했다. 정주민인 로마인들에겐 성벽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삶의 근간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후와 풍향에 따라 방위를 정하는 모습은 동양의 풍수지리를 떠올리기 한다.


현대와 다른 요소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비트루비우스의 시대엔 만물이 4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공기, 열, 습기, 흙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만물은 각 원소의 조합에 의해 이루어지며 조합 비율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새와 물고기를 예를 들어 본다.


새 : 소(흙·습기) + 중(열) + 대(공기). 그러므로 가벼워서 날 수 있다.

물고기 : 소(습기) + 중(열) + 대(흙·공기). 그러므로 물에서 생활할 수 있다.

육지동물 : 소(흙) + 중(공기·열) + 대(습기). 그러므로 물에서 생활할 수 없다.



[제 2서 : 주택의 기원, 건축 재료]


제 2서의 주된 내용은 건축 재료이지만 저자는 건축의 기원으로 운을 뗐다.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의 기본이 주택이고, 주택은 선사시대 인류가 집단거주를 시작하며 발전해나갔으며, 집단거주는 불의 발견으로 모여살게 되며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불의 발견 -> 집단거주 -> 주거의 발전 -> 건축과 도시


그 뒤, 벽돌, 모래, 석회석, 화산재, 석재, 목재, 전나무의 특성, 종류 및 원산지를 소개하고, 벽체의 종류와 구성방식을 설명했다.



[제 3서, 4서 : 신전 건축]


건축십서가 저술될 당대 로마에선 신전이 차지하는 위상이 컸기 때문에 두개의 서에 걸쳐 신전 건축을 비중있게 설명했다. 제 3서는 이오니아식 신전을 중심으로, 제 4서는 도리아식과 코린트식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다.


제 3, 4서에서 제일 눈에 띈 점은 내용이 수학과 기하학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 자연은 신의 작동원리가 숨겨져 있는 비밀 상자였다. 수학과 기하학은 상자를 열 수 있는 비밀 열쇠로, 이성을 통해 신의 뜻에 도달하고자 했다. 자연히 신전도 신의 소통 언어인 수학과 기하학의 결정체로 이루어져야 했다. 신전 건축은 엄격한 비례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둥 하나 허투루 박은 것이 없다.


그렇다면 신전에 적용된 기둥의 갯수와 비례는 어떤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그리스 로마인은 인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았다. 인간은 조물주가 빚은 최고의 예술품이었다. 비투르비우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인간의 신체는 조물주에 의해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안면은 턱에서 이마 위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까지로서 키의 1/10, 손바닥은 손목에서 장지 끝까지로 키의 1/10, 머리는 턱에서 머리끝까지로 키의 1/8, 가슴 맨 위부터 이마 위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까지는 키의 1/6, 가슴 중앙에서부터 제일 위인 머리끝까지는 키의 ¼이다. 얼굴 그 자체에서는 턱 밑에서부터 1/3 지점이 콧구멍 밑이고, 콧구멍 밑에서 양미간 사이까지가 역시 1/3이다. 발 길이는 키의 1/6이며 팔 길이는 ¼, 가슴폭도 같은 ¼이다. 기타의 구성요소도 각기 자신의 조화로운 비례를 갖는데 고래로 유명한 화가나 조가가들은 이를 이용해서 많은 칭송을 받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전의 구성 요소도 서로 다른 개개의 부분을 종합한 전체의크기가 가장 짜임새 있고 균형적으로 조화되어야 한다.


인간 신체가 비례에 맞춰 조화롭게 구성된 것처럼 신전 건물도 인체 비례처럼 조화롭게 구성되어야 신에게 도달할 수 있는 완전한 건물이었다. 



[제 5서 : 공공 건축]


한 사회에서 제일 거대한 건물은 그 사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보여준다. 기독교가 중심인 중세시대엔 노트르담 성당이, 전제 프랑스 황제 시대에는 베르사유 궁전이, 자본주의 시대인 현대사회엔 상업 기업이 세운 마천루가 그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로마시대에는 공공건축물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거대한 규모의 콜로세움, 카라칼라 목욕장은 단순히 오락시설과 목욕탕을 나타내지 않고 로마가 중요시했던 가치를 보여준다. 당대엔 황제도, 종교도 아닌 로마 시민의 권리가 중요했고 시민들이 오락을 즐기고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신분을 공고히 여기는 장치로서 공공 건축이 존재했다. 건축십서에서도 도시, 신전 다음으로 공공 건축을 서술하며 공공 건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포럼은 위엄있게 지어져야 하며 보물창고, 감옥, 원로원 회의장은 포럼에 맞추어 균형이 잡히도록 했다. 포럼이 공공 건축의 중심이 되고 나머지는 그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원로원 회의장은 마을과 도시의 위엄에 상응해서 건립했다.


특이한 점은 극장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화성학을 논한다는 것이다. 극장의 음향계획을 건축에 적용하려면 배경지식인 화성학을 알아야했다. 그만큼 각 분야별 건축에도 심혈을 기울인 점은 현대 건축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극장 계획에는 음이 퍼져 나가 반사가 될 때, 반사되는 재질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정도를 조절했으며, 여향, 반향, 협향,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재질에 대해서도 논했다.


또한 현대에는 관람객의 "쾌적성"에 초점을 맞추어 공간 설비를 계획하지만 당대에는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중점으로 고려했다.


극에 흥미가 고조되면 신체에 열이 올라 혈관이 열리고 장내의 기류가 스며들게 되는데, 만약 기류가 습지에서 혹은 다른 나쁜 방향에서 밀려온다면 그 독기가 신체에 스며드는 결과가 된다. 극장 부지의 선정에 주의를 기울이면 위의 문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남쪽에서 일사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는 태양이 극장의 둘레를 강하게 비추게 되면 오목한 형태의 극장 내부에 기류가 갇혀 환기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기를 뜨겁게 데워 사람 몸에서 습기를 빼앗아 분비물질에도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욕장, 팔라에스트라(체육관), 항구, 방파제, 선착장에 대해 서술했다. 당대 지중해에 살던 로마인들에게 중요한 목욕, 체육관, 항만시설을 차례로 설명했다.



[제 6서 : 주택]


6서에서는 당대 로마인들이 그렸던 세계관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로마인은 로마가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으며 남쪽과 북쪽 사이 중간 지대에 위치한 자신이 온화하고 용맹과 지력을 갖춘 민족이라 여겼다. 로마의 북쪽에 위치한 현재의 서,중부, 동유럽을 야만인(barbarian)이라 불렀고,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을 용맹하지 못하다고 했다. 비트루비우스가 주장한 당시 민족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북쪽 사람 특징 : 체격이 크고 음성의 울림이 크다. 신체는 크고 피부가 고우며 모발이 곧고 붉다. 눈은 회색빛이며 다혈질이다. 무력은 세나 열에 약하다. 경직된 사고를 갖는다.

남쪽 사람 특징 : 키가 작고 피부가 거무스름하며 모발이 곱슬곱슬하고 눈이 검으며 사지가 약하고 핏기가 부족하다. 무력에 대항하는 힘은 약하지만 더위와 열병에는 강하다. 자유롭고 민첩하게 사고한다.

중부 사람, 로마인 특징 : 전체 지구공간에서 천계의 중앙에 위치하여 가장 적절한 곳에 입지한다. 용맹과 지력 모두 갖추었다. 지력으로 북방 야만인를 분쇄했고 용맹으로 남방인을 진압했다. 


비트루비우스는 이 같은 종족적, 민족적 특성을 고려하여 주거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후, 비례, 중요 실의 계획, 공간의 구성, 방마다의 방위를 다각적으로 살펴 집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제 7서 : 장식]


로마인은 그리스 문명, 바로코, 로코로 시대에 비해 절제된 장식을 행했다. 화려한 것 보단 실용적이고 사실적인 면을 추구했던 영향이다. 이 철학은 건축 치장 철학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철저히 사실에 입각한 장식만이 그 역할을 다한다는 것이다. 당대 로마인이 보기에 아무 의미 없는 현대 밈은 완전한 쓰레기로 보일 듯하다.


사실 회화란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는 인간, 가옥, 배, 기타 그 자체의 윤곽이나 실제의 모방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중략)… 요즘은 확실하고 사실적인 진실한 표현보다는 오히려 기괴한 프레스코 화법이 좋다고 여겨지고 있다. …(중략)… 그러나 이런 것들은 현존하는 것도, 존재할 수 있는 것도, 과거에 존재했던 것도 아니므로, 올바르지 못한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 새로이 생긴 풍습에 불과하다.



[제 8서 : 물]


양질의 물을 찾는 일은 고대인들에게 항상 중요한 일이었다. 물과 목욕을 좋아했던 로마인들에겐 특별히 소중한 일이었다. 건축십서에선 자연 상태에서 수원을 찾는 법, 좋은 물과 나쁜 물의 위치와 종류, 양질의 물을 실험하는 법을 사례를 들어 자세히 소개했다. 책에 나온대로만 하면 당장 나가 실험해볼 요소도 많다. 



[제 9서 : 천문과 시간]


건축에 중요한 기후와 계절별 날씨, 하루 동안의 해의 방향을 알기 위해 천문학을 논했다.



[제 10서 : 기계 원리]


감아올리는 기계장치, 도르래, 양수장치, 물레방아와 수차, 펌프, 수력기관, 주행기록계의 원리를 서술했으며, 투석기, 쇠뇌, 노포 등 공격과 방어를 위한 무기를 서술했다. 비트루비우스는 기계의 진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야였다.


모든 기계류는 자연의 법칙에서부터, 천체 회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따라서 그것들을 기초로 이루어졌다.  …(중략)… 자연의 원리에서 모든 기계의 원형을 찾고 또한 이를 모방하여 생활에 편리한 기기들을 만들어 왔다. 이처럼 기계 또는 그 장치들의 회전이나 도구들을 통하여 또한 이들에 관한 조사연구, 실기, 실제적 체험 등으로 하나의 과학적 원리를 터득하면서 점점 진보를 거듭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10서까지의 내용이 마무리 되었다.



[그 밖의 내용들]


비트루비우스는 로마인답게 굉장히 실용적인 인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군더더기 없이 쓰여진 담백한 말은 매 문장이 난해한 철학가의 문장과는 정반대이다. 그 자신도 황제에 바치는 서언에 책을 많은 사람이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간략히 서술했다고 밝혔다.


역사서, 예술서와 달리 건축서는 생소한 어휘로 인해 독자에게 혼란을 주기 쉽다. 또한 로마 시민들은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로 분주하므로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 쉽도록 간략하게 서로 구분된 책을 저술했다.


로마시대 공공건축의 공사비 산출에 대해 저자의 재밌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에 자격이 부족한 건축가가 공공건축을 설계하다가 정해진 예산을 초과해 재정에 부담을 안기는 일이 많았나보다. 저자는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건축가가 제시한 견적비의 ¼ 미만이 초과되었을 경우 초과분만큼 국고에서 충당하고 ¼이상을 초과할 경우 그의 재산에서 총공사비를 제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리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건축 고전, 건축십서를 요약해보았다. 책의 목적이 당시 실무자에게 지식을 제공하는 건축 백과의 역할을 겸하므로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많이 덜어내고 현대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 내용을 중점으로 작성해보았다.


건축십서를 읽다보면 현재 건축과 비슷한 이야기도 많고 전혀 다른 이야기도 많다. 이 공통점과 차이점에 주목하여 무엇이 공통점을 만들었고 무엇이 차이점을 낳았는지 주목하며 읽는 방법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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