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취준생이 읽는 [초격차]

+취준하다말고 쓰는 하소연이 절반

#1 첫 취준 앞에 담담한 사람 없다


저는 건축학과 5학년으로 곧 졸업을 앞둔 취준생입니다.

본래 저는 걱정 없이 사는 소탈한 사람이었고 평생 그럴 줄 알았습니다.

취직도 마찬가지일 줄 알았습니다.

몇 년간 매스컴에서  청년 취업문제를 떠들어대도 거들떠도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넘쳐나던 대학시절에는 나 정도의 인재면 어디든 턱턱 붙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취준은 취준인가 봅니다.

본격적으로 취직을 시작한 이후에는 마음 한 구석에 바위 하나가 쿵 박혀있는 느낌입니다.

놀다가도 문득문득 쎄한 걱정이 머리를 휙 훑고 지나갑니다.

아직 떨어진 곳도, 붙은 곳도 없는데 괜시리 마음이 불안불안합니다.


처음엔 저만 이상한 줄 알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보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얘기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우울한 이야기는 잘 안하는데 답답한 마음에 제가 갖고 있던 불안한 마음을 터놓고 얘기했습니다.

"나도 요새 그래"

취준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모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평소에 잘하던 친구들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제가 비정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27년간 배우기만 하던 인간이 배운 걸 써먹어야 할 때가 되니 마음이 참 혼란스러운 시기인가 봅니다.



#2 숲은 보지 않고 현미경으로 나무 껍질만 바라보는 나


살아오며 수십번의 진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보아라"

"시키는 일이 아닌 가슴이 뛰는 일을 해라"

한결같이 강조하는 말들입니다.

학생일 땐 머리를 끄덕이며 당연한 얘기를 뭘 그리 입 아프게 하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취준을 하다보면 시야가 참 좁아집니다.

100세 인생을 넘어 110세를 내다보고 있는 2021년에 취준생의 눈 앞에 보이는 건 취직밖에 없습니다.


건축학과인 제가 지원하는 건축 설계업은 사무소 별로 각자의 특색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과 맞는 회사, 안 맞는 회사가 나뉘어집니다.

처음엔 나름 고르고 골라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나중에는 불안한 마음에 어디든 되고 보자라며 맞든 안 맞든 시기만 맞으면 넣게 되었습니다.



#3 '자기소개서'를 위한 자기소개, '면접'을 위한 면접준비


취준을 하면 회사에서 시키는 게 참 많습니다.

인적사항 적고, 어학 성적 및 수상 내역 기입하고, 2000자 정도의 자기소개서 쓰고, 건축학과인 저희는 특별히 포트폴리오도 제작합니다.

적성검사라 부르는 희한한 IQ 테스트, 인성 설문조사를 하고 인성 면접을 봅니다.

설계업은 실기 시험 절차도 따로 있습니다.


시키는 게 많다보니 그저 따라가기 벅찹니다.

오늘은 포트폴리오 만들고, 내일은 자기소개서 쓰고, 모레는 이력서 수정하고...


자기소개서는 질문 문항이 묻는 말에 대답만 하게 됩니다.

물론 대답만 하면 떨어지니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을 녹여내어 스토리텔링 하는 것도 잊지 않긴 합니다.


면접은 묻는 질문이 대부분 비슷합니다.

Q. "장점이 무엇인가요"

Q.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나요"


대답도 다들 비슷하게 대답합니다.

A. "저는 이러저러한 것을 잘해 어떤 것에 뛰어납니다"

A. "귀사가 설계한 이 건물이 이러저러 해서 감명 받았고 꼭 들어오고 싶었습니다" 


문득 다 비슷할 답변, 꾸며낸 답을 할 거면 피차 힘들게 이걸 왜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4 친구집에 놀러갔다 심심해서 읽은 [초격차]


초격차는 지금의 일류 삼성을 만든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 집필한 책입니다.

리더의 입장에서 회사를 경영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새 일하기 좋은 회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많습니다.

저도 직장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어떤 직원이 회사가 좋아하는 직원인지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어렴풋이 떠올리기로는 야근하고 워커홀릭인 직원. 이 정도였습니다.



#5 역지사지, 회사의 입장에서 본 '나'


초격차는 회사가 뽑고 싶은 직원에 대해 말합니다.

막연히 일 잘하는 사람이 좋다가 아닌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설명합니다.

리더를 주도적, 대응적, 수동적, 방어적 리더로 나누고 각 리더별 장단점과 개선점을 설명합니다.

인재 양성에 좋은 사람은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고 최악은 '방어적이고 방해적인 사람'이라고 명확히 정의 내립니다.



#6 초격차에는 '일' 얘기는 없고 '인성' 얘기만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초격차에는 단지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기술을 개발한 누구 덕에 이런 사업을 일궜다."

이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 인성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더라."

시종일관 사람 그 자체에 대한 탐구를 합니다.


권오현 회장이 그 무엇보다 강조했던 것은 사람이 갖고 있는 인성이었습니다.



#7 이력서가 과거를 보는 잣대라면, 자기소개서와 면접은 미래를 보기 위함이다


모든 회사가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보는 이유는 다른 회사가 하는 데 우리만 안 할 수 없어서는 아닐 겁니다.

지원자의 인성을 어떻게든 파악해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도 있지만 이 둘은 현재의 능력치를 파악하는 데에 유효할 뿐입니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은 지원자가 10년 20년 후에 회사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 알아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표입니다.



#8 다시 쓰는 자기소개서


그렇다고 자기소개서 문항이 "당신의 인성을 서술하시오"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각자 자신을 한껏 포장해 꾸며낸 이야기만 가득할 게 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둘러 "지원동기를 말하시오." "가장 성취감이 있던 때는 언제인가요."라고 빙 둘러 물어봅니다.


저도 나름대로 인성을 스토리텔링에 녹아내서 나타냈습니다.

그게 맞는 방향이란 것은 귀동냥으로 들어 그렇게 썼습니다.


초격차를 읽고 다시 자기소개서를 읽었습니다.

자기소개서 문항의 의도만을 파악하고 썼던 것을 자기소개서를 쓰는 진짜 이유를 안 뒤에 읽으니 부족한 점이 들어왔습니다.



#9 다시 고르는 회사


초격차는 지원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회사가 아닌 경영자의 입장으로 회사를 바라보게 했습니다.

덕분에 취직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가 확장됐습니다.


취직을 하는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제서야 진로 교육에서 강조했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시키는 일이 아닌 가슴이 뛰는 일을 해라"


전보다 평정해진 마음으로 제게 꼭 맞는 회사를 선별하기 시작했습니다.

꼼꼼히 살펴보니 함께 성잘할 수 있는 회사가 눈에 보이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회사를 찾으니 이력서, 자기소개서, 취업 준비를 능동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10 취직은 과정일 뿐이다


여전히 취준을 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변한 것은 취직을 목적지가 아닌 인생의 갈림길 중 하나로 보는 저의 태도입니다.

취준도 인생의 소중한 한 과정임을 느끼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백양로, 다시 바라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