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매일 시작한다.

시작하라, 한 번도 주저 않지 않은 것처럼

by 엄마코끼리


'시작'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스무 살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더 어릴 때는 뭔가를 스스로 결정해서 시작할 만한 계기를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 그 어린 시절의 나는 새롭게 뭔가를 시도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참 심심한 삶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스무 살. 그 단어가 주는 설렘과 청량감은 '청춘'이라는 말과도 또 다른 느낌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의 스무 살은 찬란하지 않았고 새롭게 시작된 무엇도 아니었다. 저 뭘 하고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탐색하는 과정에 있던 과도기였다. 그러나 나름 치열한 과도기를 보내며 서른엔 뭔가 다를 거라는 막연한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맞이한 서른도 스물아홉의 나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런 서른을 지나고, 내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 나이도 지나고 나서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 결혼이라는 걸 했다


내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느낀 첫 순간은 바로 결혼이었다. 새롭게 가정을 꾸리게 된다는 것이 어색하고 떨렸지만 내가 성숙해지는, 혹은 어른이 되는 첫 관문을 지났다고 생각했다. 모든 졸업식마다 새로운 시작을 말하지만 그건 그냥 언제 밥 먹자는 약속처럼 그냥 하는 말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내 삶이 새로워질 것 같았지만 내 삶의 혁명적 변화는 엄마가 되면서부터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 삶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잠을 자는 것도 아이에게 맞춰서 함께 자거나 잠들지 못했고, 밥을 먹는 것도 아이가 나에게 시간을 줘야 가능했다. 쉴 새 없이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하고 안아서 재우고 놀아주다 보면 신랑이 퇴근했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다 기절하듯 함께 잠이 들었다. 하루 24시간이 전부 아이에게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된 후 내 시간이 처음 생겼다.


육아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다음 나를 돌아보니 세상은 내게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이름표를 주었다. 엄마로서의 시간은 내가 해온 모든 일 가운데 난이도와 업무강도가 최고였는데 세상이 말하는 경력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아이가 커갈수록 내 삶에 대해 고민이 시작됐다. 엄마라는 이름 말고, 내 삶은 어디로 갔을까. 임신하고 나서도 휴학 없이 기를 쓰고 다닌 대학원도 다 무의미한 것 같았고,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일도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꿈과 목표, 비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던 나의 고민을 듣고 누군가 내게 말했다. 경단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라고. 나 스스로 그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된다고. 그래서 나는 지금, 새롭게 내 삶이 시작되어야 함을 알았다


그렇다. 시작이란 사실 뭔가 거창한 어떤 변화가 있어야만 하는 삶의 변곡점은 아니었다. 스무 살이 되는 것 혹은 서른 살이 된다는 것, 결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내 삶의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이벤트가 있는 순간이긴 하지만 그러한 순간만이 내 삶에 있는 '시작의 순간'은 아닌 것이다.

내 인생은 늘 오늘부터 시작이다.


매일 아침 하루가 새롭게 시작되고, 내가 어떤 결심을 하는 순간도 내 행동의 시작이 된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추성훈이 나온 걸 봤다. 46세의 현역 파이터. 그가 한 말이 너무 와 닿았다. "내 인생은 늘 오늘부터 시작이다." 시작이 뭔가 대단한 변화 앞에서만 있는 단어처럼 여겨지던 내게 그 말은 오래도록 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새로 시작된다. 다만 내가 결심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아 '변화'가 없을 뿐이다. 그러니 뭔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뿐이다. 스무 살 내 인생에서 내가 겪은 변화도 지금 와서 돌아보니 별다를 거 없는 흔한 삶처럼 느껴지고, 결혼한 그 이후의 삶도 육아라는 현실에 부딪혀 하루하루 감당하기 바쁜 시간이었을 뿐 내 삶도 매일 새로 시작한다. 걸 깨닫게 된 지금이 나의 새로운 시작이다. 끝으로 얼마 전 읽은 책의 한 문구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왜 사람들은 남들과 동시에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늦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시작도 하지 않고 미리 패배감을 갖는 걸까. 내가 무언가를 결심하고 시작한 날을 첫날로 보면 안 될까? 남들의 첫날과 나의 첫날을 비교하는 건 출발에 지장만 줄 뿐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출처: 김미경의 리부트)

매일 시작되는 나의 삶에 늦었다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시작하기로 결단하는 것이고, 매일 주어지는 그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고 행동으로 잡는 것이다. 그러니 시작하라, 한 번도 주저 않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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