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청의 신간 제목이 뜻밖이었다.
유튜브에서는 AI를 누구보다 빠르게 공부하고 활용하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이번 책의 제목은 <완벽한 원시인>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왜 하필 원시인일까.
출간일에 강남 교보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다녀왔고, 그렇게 내 책은 여덟 번째 사인을 받은 책이 됐다.
조금은 의외의 제목으로 시작한 이 책은, 생각보다 꽤 오래 남는 질문을 내게 남겼다.
이 책은 우리가 수렵채집 시대의 DNA를 가지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몸은 바뀌지 않았는데, 환경이 너무 빨리 바뀌어버려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겪는 여러 문제들이 의지 부족이나 성격의 문제라기보다 내 몸과 환경의 불일치에서 시작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흥미로웠던 건 그다음이었다.
이 책은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처럼, 순더대로 눌러야 하는 버튼이 있다고 말한다.
level0부터 4까지,
먼저 생존 버튼을 눌러야 하고
그다음 항상성의 버튼을 눌러 기본적인 체력을 쌓아야 그 위에 성장의 버튼도 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체력도 없는데 의지로 운동부터 밀어붙이지 말라는 저자의 말이 나는 꽤 설득력 있게 들렸다.
많은 사람이 뭔가 바꾸고 싶을 때 가장 높은 단계부터 건드리려 한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강하게.
그런데 이 책은 반대로 먼저 가장 아래 단계를 보라고 말한다.
잠은 어떤지, 햇빛은 보고 있는지, 걷고 있는지,
내 몸이 지금 살아나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부터 보라는 식이다.
그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순서를 다시 잡아보자”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두껍지만 술술 읽힌다.
그중에서도 내가 새롭게 배운 개념은 바로 도파민의 ‘베이스 라인’ 개념이었다.
모든 피크는 베이스라인에서 에너지를 끌어다 쓴다.
피크가 높을수록, 그 직후 베이스라인은 반드시 일시적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생물학적 대출이다. 당신은 미래의 동기,
즉 베이스라인을 담보로 현재의 쾌감인 피크를 빌려 쓰는 것이다.
그리고 대출에는 반드시 이자가 따른다.
<완벽한 원시인>
이 문장이 제일 오래 남았다.
이 책은 도파민을 행복보다 동기의 관점으로 설명한다.
순간의 큰 자극을 자꾸 끌어다 쓰면
그 직후 평소의 기본선이 내려가고,
그러면 결국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도파민을 자극하는 것투성이다.
특히 스마트폰이 그렇다.
짧고 강한 자극은 넘치는데
회복할 시간은 없다.
쉬려고 폰을 잡은 날,
오히려 더 지치고 멍해지는 이유를
이 설명을 보니 조금 알 것 같았다.
저자는 도파민 베이스라인이 무너졌다면
최소 2주간의 도파민 위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쓰레기 도파민을 최소화하라. (스마트폰 사용)
건강한 도파민을 늘려라. (운동, 성취, 배움, 사람을 직접 만남)
베이스라인을 회복할 시간을 가져라.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확보. 산책, 멍 때리기)
스마트폰 같은 강한 자극은 줄이고,
운동이나 성취, 배움,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 같은 건강한 자극은 늘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도 확보하라는 이야기다.
나는 원래 멍 때리기를 참 못하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라기보다 게으른 시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 지친 날에만 퍼져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1호도 그렇다.
잠시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못 견딘다.
조금만 틈이 생기면 심심하다고 한다.
나는 그래도 멍 때리려고 시도라도 할 수 있지만,
아이는 그 심심함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다행히 저자는
멍 때리기가 어렵다면 목적 없는 놀이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은 후로
나는 아이가 노는 시간을 좀 더 느슨하게 두려고 애쓰게 됐다.
뭔가 배워야 할 것 같고,
계속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고,
비어 있는 시간은 낭비처럼 느껴진다.
‘틈새 시간’마저도 활용해서 생산성을 올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비어 있는 그 시간이
회복을 위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책은 각 단계의 버튼을 설명한 뒤
<완벽한 원시인>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구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화학적 구멍, 디지털 구멍, 행동적 구멍, 인지적 구멍.
나는 그중에서 인지적 구멍이 제일 와닿았다.
원시시대에는 통계가 없었다.
직접 본 것, 직접 겪은 것만이 생존의 증거였다.
그래서 뇌는 지금도 숫자보다 사례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완벽한 원시인>
나도 그랬다.
통계와 근거자료를 찾아보기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몇 번의 사례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았다.
누가 해봤는데 안 됐다더라,
그거 별로라더라,
하지 말라더라.
그런 말 몇 마디에 금세 의욕이 사그라드는 것이다. 생각보다 사람은 논리보다 사례에 더 쉽게 끌린다.(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다)
그래서 저자가 인용한 마윈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당신의 심장이 빨리 뛰는 만큼 행동을 더 빨리 하라.
생각만 해보지 말고 무엇인가를 직접 하라.
자료를 더 찾아보고, 더 고민하고,
더 준비하는 게 답이 아닐 때가 많았다.
오히려 한 번 직접 해보고 움직여보는 쪽이
시간을 단축해 줄 때가 있었다.
결국 행동이 생각보다 더 많은 걸 알려주기도 한다.
<완벽한 원시인>은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맨 뒤쪽에 가면
저자는 이 부분은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읽고 불편해질 수 있다고.
그 ‘궁극의 질문’ 파트에는
어떻게 고민하고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중 내가 오래 붙잡은 문장은 이것이다.
당신의 도감도 같다. ‘나는 어떤 조건에서 살아나는가’,
‘무엇에 몰입하는가’는 생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살아본 순서대로 채워진다.
문제는 이 도감이 비어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원시인>
이 문장을 읽고
지금의 나는 계속 고민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중요한 건 더 많이 고민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건강한 상태의 나로 존재하면서
무언가를 직접 해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이 책은 내게 더 열심히 살라고 말하기보다
내 버튼을 제대로 누르라고 말하는 책이었다.
결국 ‘나는 어떤 조건에서 살아나는가’, ‘무엇에 몰입하는가’ 같은 질문은 오래 생각한다고 답을 구할 수 없다.
조금 더 괜찮은 상태의 나로 하루를 살아보고, 직접 해보고, 그 순서대로 내 도감을 채워가야 한다.
책을 덮은 후 내게는 더 많은 결심이 아닌,
오늘의 버튼을 제대로 누르며 시작하자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