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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코끼리 Nov 22. 2020

아이는 엄마의 거울이다

아이는 언제부터 혼자 놀이터에서 놀아도 되는 걸까

작년의 일이었다. 네 살의 큰 애는 그네를 타고 있었고 나는 걷기 시작한 둘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근데 그때 체구가 좀 큰 아이가 우리 큰 애에게 지나치게 가까이에 서 있는 게 보였고 나는 신경이 쓰여 둘째 손을 잡고 그네 쪽으로 가는데 아이 표정이 좋지 않더니 그네에서 내려서 나에게 달려왔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그 언니가 몇 살이냐고 했다고. 내가 경험한 그런 식으로 말하는 아이들의 의도는 내가 너보다 언니니까, 오빠니까 나한테 양보해라는 거였다. 그게 양보가 될 수가 없지만. 화가 너무 났는데 내가 애랑 싸울 수도 없고 일단 참고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그 언니는 혼자 놀이터에 와서 놀다가 엄마랑 약속한 시간이 되면 들어갔다. 처음엔 엄마 없이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혼자 집을 찾아갈 수 있다고 혼자 놀 수 있는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언니로 인해 말 그대로 불쾌감의 정점을 찍은 경험은 바로 며칠 전이었다. 내가 놀이터 옆에서 둘째와 공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와 아이의 거리는 일 미터 간격 정도. 둘째는 이제 20개월의 아주 작은 아이이고 공놀이라고 해야 대충 던지면 내가 받아서 굴려주는 수준이다. 그렇게 놀고 있는데 그 언니가 우리 옆을 지나가면서 침을 뱉었다. 너무 놀라고 당황한 감정이 먼저 들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침 뱉기에 너무 능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발사한 침은 찍하고 불쾌한 소리와 함께 정확하게 내 발 바로 앞에 떨어졌다.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함에 아이의 무례를 지적했다. 이렇게 길에 침을 뱉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 아이는 스윽 쳐다보고 갈 뿐이었다.


그 아이는 사실 우리랑 같은 동 아파트에 산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곤 하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말했다. 이건 아이 엄마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친구는 말했다. 아이 엄마가 그런 행동을 제재하는 사람이었다면 아이가 밖에서 그럴 리가 없다고. 엄마가 그런 사람인 거니까 괜히 더 불쾌한 일을 만들지 말고 적당히 그 아이를 피해서 아이가 놀이터에서 안전하게 놀게 해 주라고. 나에겐 너무 상식인 일들이 남에게 그렇지 않을 수 있다지만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 길에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침 뱉지 말아야 하는 것. 남의 것에 허락 없이 손대지 않는 것. 이건 단순히 예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단순한 깨달음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던져주었다.


아이가 엄마의 거울이라는 말은 사실 너무 무서운 말이면서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아직도 내 기억 속 선명한 우리 엄마의 기억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쌀쌀한 어느 날 붕어빵을 사주던 모습이다. 그날 엄마는 붕어빵을 사고는 붕어빵 기계 근처에 앉아있던 할머니였나 할아버지였나 처음 본 사람에게 붕어빵을 건넸다. 내가 왜 저 사람에게 주는 거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은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 옆에서 계속 쳐다보고 있었겠냐는 말이었다. 그때의 엄마는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였다. 나는 이때의 기억을 평생 가져갈 것이고, 언젠가 우리 아이에게 붕어빵을 사주며 이야기해 줄 것이다. 엄마는 나를 그렇게 키웠다. 좋은 어른의 모습으로.


아이가 언제 혼자 놀이터에 나가서 놀아도 되느냐는 아이가 더 이상 쉽게 위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과 더불어 더 작은 아이를 위협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고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적절히 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은 자라야 하겠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내가 아이에게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겁을 주거나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게 더 중요한 오늘 나의 결론이다. 아이에게 롤모델이 되어줄 수 있는 엄마가, 어른이 되고 싶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래 주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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