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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Mar 30. 2021

세상을 바꾼 이름 칸(Khan) - 내 이름은 칸

세상엔 좋은 일을 하는 사람과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뿐


2001년, 911 테러의 충격. 이 사건으로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안보 문제와 경각심은 더욱 커졌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기술도 발전했다. 변화의 이면에는 선입견과 차별 등의 부정적인 인식 또한 커졌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그 어느것도 고려하지 않은 독단적인 행동은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는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만이 희생자가 아니다. 그들의 가족, 그리고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동의받지 않은 질타와 차별을 받아야 했던 손가락질. 영화 '내 이름은 칸' 은 사회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 하는 주인공 '칸' 의 소박한 행복을 시작으로 불행을 이겨내고, 자신의 존재는 물론 세계에 인식의 변화를 일으킨 드라마다.


인도의 최고 인기 스타 '샤룩 칸' 이 <아스퍼거 증후군 - 자폐증의 일종> 을 앓고 있는 인물 '칸' 을 연기한 장편 영화 <내 이름은 칸> 이다.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

무슬림이라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짐을 공항 검색대에 올려 놓는다. 조그맣고 내부가 시커먼 그 기계가 사람들의 현황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러나 누군가의 가방이 검색대에 들어가 화면이 시커멓게 변한 상황에서 곧바로 '칸' 의 입장 장면으로 바뀐다. '칸' 자체가 검사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무슬림이라서..

<내 이름은 칸> 은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공항에서 심하게 검사받는 '칸' 의 상황으로 시작하여 어째서 그는 미국 대통령을 만나려 하는 것인지. 왜 공항 직원들은 그를 심하게 대하였는지를 살짝 보여준 후, '칸' 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자폐증에는 많은 종류가 있고, 콘텐츠의 주요 소재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노란색과 날카로운 소리를 참을 수 없는 주인공 '칸'. 대신 그는 뛰어난 암기력,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잘 공감하지 못 한다. 표정 변화가 없으며, 오로지 말로만 따라할 뿐 그를 잘 모른다면 누구나 기피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칸' 에게 쏠리는 듯한 애정을 참지 못한 그의 동생은 화가 나 있다.


친구들에겐 괴롭힘 당하고, 어른들에게도 무시당하는 '칸' 은 존재 그 자체가 부정당한다. 하지만 그의 성실성과 무엇이든 고치는 능력, 그리고 엄마의 사랑으로 올바르게 성장했다. 여기서 엄마의 대사가 영화의 핵심 주제이며, 이후 '칸' 이 존재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세상에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과 나쁜 일을 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 모두 같단다


자신의 장애를 당당히 밝히고 세상에 적응하는 '칸' 의 모습은 주변 사람을 웃음 짓게 만들고, 그의 말처럼 혈육만이 가족은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911 의 충격은 같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미국 내의 많은 이들을 핍박받게 만들었고, 국민 사이에 강하게 박혀버린 선입견을 정부는 나서서 풀어주지 않는다. 정부는 방관한다.


그렇기에 홍수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손 대지 않은채, 모든 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나서서 구호 활동하는 웃기는 구조가 탄생하게 된다. 처음엔 그래도 '나와는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으니' 라는 생각을 가졌던 이들도 그 영향으로 인해 무언가를 잃었다면 설사 그게 가족같은 관계였다 해도 깨어지게 마련일 것이다.


'칸'의 아들, '샘' 의 절친이었던 '리즈' 가 파견 취재 나갔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들 가족을 멀리하게 되고, 결국 그 분노가 엉뚱한 불꽃을 일으켜 '샘' 을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방관한다. 생명을 앗아가도 좋다는 동의가 없음에도 어째서 극단적인 이들로 인해 같은 무슬림이라고 비난받고 소외되는 것인가. 삶의 전부였던 아들마저 잃어버린 '칸의 아들 '만디라' 는 그를 밀어내고, 오로지 한 가지 목표!


제 이름은 칸입니다. 저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이 말 하나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자신과 가족들의 평범함을 알리고자 했던 '칸' 의 어려운 여정.

도로 한복판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자신을 도와줄 당시 '만디라' 가 두르고 있던 파란색 머플러. 아들 '샘' 의 복도를 꽉 채운 파란색 사물함. 그에게 안정감을 주던 파란색의 행복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상을 가진 세상으로 홀로 떠나는 여정.

명확한 조사 절차 없이 그저 '테러리스트' 라는 단어 하나로 그를 쥐잡듯 대하는 미국 정부. 사건을 담당하던 이들의 폭력적인 처우로 정부 전체에 먹칠을 하는 역설. 이 또한 작은 것에서 시작된 전체의 선입견인 것인가. 하지만 상황이 어떠하든 '칸'의 생각은 간단하다. 세상엔 좋고 나쁜 것만이 있을 뿐. 외형과 상황은 중요치 않다.


자신의 긴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재민 복구에 나선 '칸' 의 행동은 그것이 옳다고 여겼을 뿐이며, 자신에게 온정을 베풀었던 올바른 이들을 진심으로 구하고자 했기 때문. 그런 '칸' 이 보여준 올바른 행동과 생각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며, 눈과 귀를 가린채 이런 선입견의 세상을 방관하는 정부를 꾸짖는 것이라 생각한다.


메인 테마곡 중 하나인 'We shall overcome'


가사가 뜻하듯 '칸' 은 여러 피부 색과 상황을 가진 이들과 이 경건한 노래를 소화해 냈으며, 이런 세상의 변화에 종지부를 찍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의 공표를 통해 마무리 된다. 어째서 평범한 국민은 대통령을 만나면 안 되는 것인가. 세상은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을, 우리 인간이 만든 쓸데없는 기준과 울타리로 인해 과도하게 신성시하고 있는건 아닐지...


인도인들이 주인공인 영화이지만 메인 배경은 '미국' 이다. 다양성이 인정받지만 사건으로 다양성의 존중이 깨져버린 사회. 그 외롭고도 억울한 환경에서 이겨 나가는 드라마가 바로 <내 이름은 칸> 이다.


긴 호흡에 동화되어 가다..

거의 두 시간 반에 육박하는 러닝 타임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견줄 정도로 길다. 블록 버스터도 아니기에 흥미를 유발할 유머나 액션 장면이 있는것도 아니다. 잔잔한 감동 이야기의 긴 호흡을 따라갈 수 있는건 시퀀스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 아닐까.


증후군을 앓고 있는 '칸' 이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은 너무나 제한적이며, 오로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전개 된다. 한 쪽은 답답하고, 한 쪽은 속 터지는 갈등. 그러나 <내 이름은 칸>은 마주하는 인물간의 빠른 상황 전개를 통해 긴 여정을 무리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 인도 영화의 정통인 '맛샬라' 스타일의 음악과 연출이 더해지며, 소박한 환경에서 점차 웅장한 규모의 드라마로 커져간다. 시종일관 우울한 분위기가 아니라, 중간 중간 '칸' 의 엉뚱함에 웃음 짓게 만드는 소박한 유머를 넣어주고, 긴장과 분노의 상황을 교차시키기에 지루하지 않다.


평범함과 무죄임을 밝히기 위해 고정되지 않은 목표지를 향해 떠나가는 '칸' 과 홀로 남아 진실을 밝혀내는 싸움에 임하는 아내 '만디라' 의 교차 연출은 행복과 진실을 찾아가는 방법의 차이로 다가오며, 흩어진 조각들이 모이는 마지막 장면이 더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그냥 '칸(Khan)'

주인공 '칸(Khan)' 의 이름이 중요하다. 무슬림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만으로 숨어 살아야 할 것 같은 상황. 많은 이들이 종교를 버시는 등 자신의 본 모습을 버리고 살아간다. 수치스러운 것이며 범죄자와 같은 부류로 낙인 찍혀 살기 보다는 사회가 원하는, 가장 보편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911 테러와 아들의 죽음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보편적이다' 라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상실케 한다.

그는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그냥 '칸(Khan)'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많은 이들이 따뜻함에 반한 좋은 사람. 형식의 굴레가 주는 선입견과 소통 단절.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그의 이름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모든 걸 고칠 수 있지만 정작 무너져내린 자신의 가족과 병을 고칠 수는 없는 남자.

선천적인 병은 못 고쳤지만 그건 장애가 되지 않는다.

세상이 안고 있는 선입견이라는 병을 치유하고, 온전한 가족을 지켜낸 남자 '칸' 의 감동 드라마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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