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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03. 2021

별을 쫓다 길을 잃어버린 이야기 (별을 쫓는 아이)

화사함으로 치장한 불안정한 스토리

'별(Star)' 이라 하면 평소 꿈꾸던 이상향이나 동경의 대상을 상징한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닿을 수 없는 하늘에 있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로써 아름답기에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담아 별을 바라보곤 한다. 게다가 고개만 들으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 편하지 않은가.


영화 <별을 쫓는 아이> 는 우주 탐험의 별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동경의 대상을 찾아가는 성장기이다. 전 세계 애니메이션 감독 중에서 '빛(Light)' 의 표현을 가장 화사하고 아름답게 연출하는 사람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일 것이다. 어떻게 애니를 통해 태양, 빛, 우주를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별을 쫓는 아이> 또한 그런 감독의 특기를 잘 살려 화사함으로 가득차 있으며, 여기에 OST 버프가 더해져 나름 괜찮은 성장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초창기 작품이라 그럴까,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방향을 잃어버린 성장기와 세계관

오프닝의 평온한 산 속 마을 분위기를 통해 잔잔한 이야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주인공 '아스나' 또한 명랑하면서 그저 형태없는 무언가를 찾아 소박하게 살아가는 소녀이기에, 그녀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소년의 등장으로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그러나 급작스럽게도 괴기스러운 형태의 괴물, 놀라운 신체 능력을 가진 소년의 등장과 함께 진한 상처와 핏물을 그대로 보여주며 호러에 가까운 장르로 변한다. 잠시 동안의 잔잔함이 이어지며 동화 같은 이야기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급작스레 헬리콥터와 총기가 등장하며 현실적인 전투로 이어진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무대가 되는 전설의 성지 '아가르타' 로 향하게 된다.

영상과 딱 들어맞는 OST 때문일까. 마치 온탕과 냉탕을 마구 오가는 듯한 빠른 사태 전환이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급작스런 전환은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주겠으나, 결국 이야기의 핵심에 이르기까지 집중을 흐트러뜨리게 만들었다. 급작스런 상황에 맞추어 급작스레 소개되는 새로운 개념들. '아가르타' 에 존재하는 많은 생명체와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않으며 갑툭튀로 일관 되기에 불친절하다.


주요 배경인 '아가르타' 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상인을 경계하는 상황과 더불어 그들의 역할은 매우 미비하며 굳이 등장시켜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이야기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았다. '아가르타' 의 절대신과 악의 존재 '이족' 은 긴장감 유발을 위해 삽입된 존재이지 '아스나' 가 목숨 걸고 들어온 세계관에 잘 어울리지 못한듯 하다.

다만, 감독의 특기인 '조명 연출' 과 색감이 OST 와 합쳐져 이를 커버하기에 장대한 성장기로 보여지나 핵심 주제에 서 있는 '아스나' 와 '모리사키' 의 이야기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 '모리사키' 는 그나마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를 되살리고픈 마음에 뛰어들었는데 '아스나' 는?


그래, 난 외로웠던거야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에 눈물 범벅이 되었던 어머니와의 추억. 어머니의 성품을 알기에 자신도 억눌려 있으면 안될 듯 하여 더 명랑하게 자랐을 착한 소녀 '아스나'. 어머니가 야근으로 집을 오래 비워도 그녀는 살림과 공부를 잘 해내며 혼자서도 잘 지내는 강인함을 갖췄다. 그런데 혼자 힘으로 견딜 수 없는 세계의 존재들과 접하며 그녀는 달라진다.


기껏해야 하루 정도일 것이다. 어째서 그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슌' 을 살리고픈 마음에 '아가르타'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일까. 후반으로 갈 수록 '슌' 을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아버지' 를 그리워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짤막한 나레이션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버지가 남겨 주신 유품 '크라비스' 를 통해 명확치도 않은 세계를 동경하던 '아스나' 의 '아르가타' 모험 자체의 배경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별, 자신의 동경을 비춰주는 존재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모리시타' 의 외로움과 달리 뭔진 모르지만 일단 가보겠다는 들뜬 마음의 '아스나', 주인공의 목적이 명확치 않다.

'아르가타' 진입 이후로는 뻔하다. 목적을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모리사키' 와의 대립, 뜻 밖의 위기에서 만난 아이와 '슌'의 동생, '신' 을 통해 헤쳐나가는 '아스나' 의 순수함과 용맹. 그리고 마지막, 결국 부인의 혼을 부활시키는데는 성공하였으나 보관할 육체가 없어 제물로 바쳐지는 상황. 빼앗긴 육체를 되찾기 위해 현세에 돌아와야 했던 '아스나' 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녀가 이 알 수 없는 세계에서 핵심을 향해 달리도록 도와주는 소년 '신' 의 역할 또한 알 수 없다. 대체 무슨 연결 고리가 있길래 그녀의 위험을 감지하고 활약하는지. 두 사람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이야기를 만들어두지 않은채 억지로 '아가르타' 에 쳐넣어 끌어가는 구조라 생각한다.


결국 작품은 이런 주제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가라, 그것 또한 인간의 축복이다

세계의 문지기인 '케찰코아틀' 은 사명을 다한 생명체들을 잡아먹은 후, 자신도 역할을 다 했다 생각하면 생을 마감하기 위해 '피니쉬 테라' 에 몸을 던지러 온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기억을 담은 노래를 부르며 최후를 맞이한다. '아스나' 가 처음 들었던 노래는 바로 이들의 노래 였으며, 운이 좋게도 행복한 추억을 담은 '케찰코아틀' 의 노래를 들었던게 아닐까.


이렇듯 <별을 쫓는 아이> 는 죽음의 진리를 강조하고 있으며,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온갖 감정들은 남은자들의 몫이라 말한다. 떠나간 자와의 관계가 어떠하며, 어떤 추억이 담겨있느냐에 따라 남은 자가 짊어질 무게는 '행복 또는 슬픔과 분노' 등 그 형태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겐 축복이자, 불행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르가타' 세계는 쇠퇴를 기다리고 있다. 지상인들로부터 받은 상처에 지쳤으며, 죽음에 흡수되어 새로운 존재로 남기를 희망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역할을 다한 '케찰코아틀' 이 잡아 먹히듯 그들 나름대로의 최후를 기다리며 더 이상 노력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너무 절망적인 세계관 아닌가. 새로운 세계, 그것이 삶이든 죽음이든 접근하기 위해서는 몸을 아래로 던져야 한다. '아르가타' 입장이 그러했고, '생사의 문' 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던져야 한다. 이렇듯 잡아먹히고, 침략 당하고, 아래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세계관.


더 진부한 작품이라면 '아르가타' 의 절망과 그래도 지상인 중에는 희망있는 자가 남아있음을 계속 조명하여 두 세계의 조화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전개였을텐데, 이 작품은 힘을 쭉 빼어가며, 인간 개개인이 감당해야 할 삶의 진리로 마무리 짓는다.


진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아가르타' 라는 세계를 만들어내고, 여러 위협 요소를 삽입했지만 별을 쫓으려던 소녀 '아스나' 는 명확하지 않은 불빛을 향해 목표도 없이 달렸을 뿐, 그저 끌려온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불친절한 세계관 소개로 인해 흐지부지한 결말을 보여주기에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 '스토리(Story)' 의 구멍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오버스러운 상황과 음악의 부조화

OST 는 분명 괜찮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온탕/냉탕' 을 오가는 전개에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듯한 느낌도 많았다. 음악이 너무 오버스러운 것이다. 위기 상황의 음악은 마치 일반적인 '소년 전투 만화' 에서 최후의 필살기를 사용하는 듯한 상황과 같이 쓰였으나, <별을 쫓는 아이>에는 어색한 조화였다.

이 모든 것이 '아가르타' 의 세계관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았기에 그런게 아닐까. 상황의 긴박함만 표현했지 '아가르타' 라는 세계의 괴리감에서 느껴져야 할 균형이 없었다. 영화 초반의 첫 전투 씬에서부터 이런걸 느꼈으니 얼마나 OST 를 오버스럽게 사용했다는 건지.. 게다가 OST 가 도대체 몇 곡인가.. 너무 많은 BGM 을 쓰다보니 엔딩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는 음악이 없으며 그래서 연속성이 더 떨어지는듯 하다.




가장 아쉬운건 스토리다. <별을 쫓는 아이> 인데, 대체 이 소녀는 무엇을 갈망하고 있었기에 위험에 뛰어든 것이며, 마지막 자신의 고독을 깨닫는 과정까지 그녀의 이야기가 충분치 않았다. 보조 캐릭터인 '모리시타' 에게 억지로 끌려간듯한 이야기. '아스나' 본인은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 하지만, 자신 또한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명확히 모른 상태에서 떠난 이 모험 이야기는 그래서 어색한 것이다.


빛의 마법사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화사한 연출이 있고, 웅장한 OST 가 얹혀져서 그렇지, 무언가를 찾아나선 소녀 '아스나' 의 이야기는 많이 아쉽다. 엔딩곡 'Hello, Goodbye & Hello' 는 분명히 좋은 곡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아가르타' 에서 펼치지 못한 소녀가 떠나고, 다시 일상으로 뛰어드는 마무리 역시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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