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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05. 2021

첩보 레전드의 시작은 소탈하게 - 007 닥터 노

오직 사건 진행만을 위한 첫 발걸음

코로나로 인해 몇 번이나 개봉이 연기되었는지 아쉬운 작품 '007 노 타임 투 다이'. 가을에는 꼭 개봉한다 하니 기대는 되나 너무나 긴 공백으로 인해 팬들은 지쳐갔을 것이다. 거의 6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게 된 첩보물의 대표작 '007 시리즈'.


당시 일본/한국의 번역 수준을 알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제목. 타이틀인 'Dr.No' 는 메인 빌런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걸 직역으로 '살인 번호' 라고 내놓다니 웃음이 나온다. 포스터에 나와 있듯 한 작품에 그와 관계를 맺는 여성이 무려 4명이나 나온다. 첫 작품이라 당연히 여러모로 부족하다. 그럼에도 레전드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어땠을까.



사건 전개만을 위해 소비되는 요소

1962년 개봉작이기에 연출 기법, 음악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겠다. BGM 이 부재하다 싶을 정도로 들어보기 힘들며, 씬마다 롱 테이크 샷으로 가기에 호흡이 너무 길다. 연기는 길어지는데 이를 보조할 음악이 없으니 꽤나 누드 하면서 지치게 되며, 긴장감이나 통쾌함이 부족하다. 물론 20세기 후반부터의 액션 영화를 즐겨온 내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비교가 되는 부분이겠지만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당시 작품들과 비교해보자면 차이가 분명하다.


<007 닥터 노> 는 '제임스 본드' 라는 인물을 소개하는데 그친 작품이다. 그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떤 능력과 성격을 갖고 있는지, 주로 싸우게 될 악당들은 어떤 유형인지를 살짝 보여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1대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 님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으며, 훤칠한 키에 젠틀한 목소리. 그런데 여자를 밝히면서 능구렁이처럼 행동하는 언밸런스에서 코믹함이 느껴진다.


온몸을 쓴다거나 막대한 돈을 투자한 액션 장면은 없다. 기술력 또는 자본의 한계 때문인지 꽤나 밋밋한 작품이 되어버렸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야기도 무난하면서 어느 정도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나 쓸데없이 소모된 요소가 많다.


연결 고리가 미흡하다. 앞서 언급한 4명의 여성 중 깊은 관계를 맺는 이는 2명 정도다. 그런데 여성을 좋아하는 본드를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것인지는 몰라도 무언가 역할을 보여줄 것 같은 인물이 등장했다 별 역할 없이 사라지고, 또 뜬금없이 새로운 여성이 나오더니 아예 엔딩을 맞이한다. 엔딩을 맞이하는 여성은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그저 우연히 만난 캐릭터일 뿐.


게다가 그의 수사를 도울 조력자들이 등장은 하나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모든 건 본드 혼자서 처리한다. 합동 수사라는 포인트는 4편 <썬더볼 작전>, 5편 <두 번 산다>에서부터 본격화되는데 이때부터 스케일이 커지면서 더 다양한 인물과 장비들이 등장하여 시리즈의 개성을 갖춰 나간다.


그러나 1편은 오로지 빌런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그 많은 요소를 카메오라 해도 될 정도로 짤막하게 사용한 뒤 버린 채, 제임스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만 만든다. 그리고 마주한 빌런 '닥터 노' 와의 대결은 너무나 싱겁다. 입으로 싸우다 끝난다. 이때부터 메인 조직인 '스펙터' 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여 후속작 떡밥을 뿌리긴 했으나 일단 이 빌런부터 존재감이 그다지 없으니...


겨우 이 정도의 야망을 가진 이와 이 정도의 대결을 보이려 그렇게 바쁘게 달려왔나 싶을 정도로 '수박 겉핥기' 정도의 첫 작품이 되었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1회 차 감상 시엔 꽤 지루할 수 있다 (나는 5회 차 감상). 3회 차 정도는 봐야 느릿하게 느껴지던 전개 속도가 나에게 맞게 느껴질 것이며, 텅텅 비어있는 듯한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 처음이니 그럴 수 있다.


어쨌든 훤칠하면서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1대 제임스 본드의 시작은 이러하며, 최근의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는 비밀 요원 '제임스 본드' 가 아닌, 오리지널의 향수를 느껴보고 싶다면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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