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소재의 영화들은 리스크가 있다. 그 종목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지루한 작품이 될 것이며, 잘못된 정보나 너무 얕은 배경만 보인다면 팬들에게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스포츠 소재의 영화는 잘 모르는 이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영화 <머니볼>은 2002년 시즌에서 20연승을 이뤄낸 '오클랜드 에슬레틱스' 의 단장 '빌리 빈' 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며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명확한 데이터 분석, 수치와 통계에 따라 팀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펼쳐나가는 '빌리 빈' 의 시도는 기존 인원에게는 도전이며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외로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 그는 성공 신화를 이뤄냈으며 그와 파트너인 '피터 브랜드' 의 케미는 영향을 주어 '세이버 매트릭스' 의 발전 등 야구계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야알못' 인 나도 꽤 괜찮게 볼 수 있었던 작품 <머니볼> 은 어땠을까.
야알못도 환영, 도전하는 인생을 보여주다!
스포츠 소재의 영화는 대부분 위기에 처한 팀이 다시 일어나는 성장기를 보여줌으로써 승리에서 차오르는 기쁨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변화에 중점을 둔다. 영화 <머니볼> 도 마찬가지이며, 실화라는 점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의 우수 선례가 되었다. 미국 야구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작품에 나오는 많은 선수들의 이름과 처해진 상황에 대해 공감하며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구가 메인인 만큼, 나 같은 야알못이 조금은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저 선수는 어떤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기에 저런 식으로 언급되는 것일까. '오클랜드' 와 타 구단의 상황은 어느 정도의 수준차가 있길래 '빌리 빈' 은 그토록 처절한 싸움을 해나가는 것일까. 그럼에도 작품 감상에는 문제가 없다.
<머니볼>은 관습에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팀은 계속 처절해지고, 근본적인 원인을 싹 갈아치우기 위해 '빌리' 는 관습에 도전한다. 초반부, 공석이 되어버린 1루수 포지션을 채우기 위해 회의가 한창이지만 모두가 자신의 직감, 경험, 소문, 평판 등을 가지고 말로만 후보자를 언급할 뿐 어느 누구도 명확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모두 나이가 많다.
몇십 년을 이어온 그들의 야구 역사와 경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야구는 물론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변수가 많기에, 이것을 숫자로 자그마한 표에 정리하여 판단한다는 것이 그들 눈에는 우스워 보일 것이다. 본인들이 직접 눈으로 보아오며 쌓아온 경험치를 더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잘 나갈 때와 그렇지 못할 때에 온도차가 확연히 다름은 물론, 지금과 같이 똑같은 근거를 들어가며 대책을 세웠을까.
'빌리' 또한 유망한 타자로써 대학을 포기하고 프로 세계에 입문했다. 그를 설득한 건 거액의 연봉과 촉망받는 장래를 얘기하는 스카우트 팀의 이야기. 명확한 데이터는 없었다. 그저 오랫동안 야구계에서 살아온 자신들의 감에 따라 제안했을 뿐, 이후 그의 실패에 대해 그들은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래서 '빌리' 는 여기저기를 떠돌다 현업에서 물러나 단장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이런 새로운 변화를 해야겠다는 시도조차 생각해보지 못한 구세대의 방식은 현재 팀의 저조한 성적을 야기하였으며, 이를 바꾸기 위해 '빌리' 는 도전에 나선 것이다. <머니볼>은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눈 뜨고, 변화를 통해 성장하는 작품이다. 누구도 단장 '빌리' 의 말에 절대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며, 조롱과 불화 그리고 불신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각자의 역할만 챙기려 한다.
일단 여기서 흔들릴 것이다. 나에게 충분한 권한이 있는데, 동료들이 따라주지 않는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것이다. 게다가 거액을 들여 데려온 인물이 선수도 아닐뿐더러, 저렴한 가격에 하자 있는 선수들을 내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욕먹을만한 일이겠는가. 빌리에게는 '믿음, 확신, 추진력' 이 필요했다.
그런 불화 속에서 당연히 성적은 좋지 않으며, 자신부터가 이 프로젝트에 확신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 그는 과감히 행동한다. 계속 말을 듣지 않는 감독이 전면으로 내세우는 이들을 트레이드 해버리는 것. 좋지 않은 처사와 성적으로 팬들과 언론으로부터도 강한 비난을 받는 상황. 심지어 딸도 상황을 걱정한다.
그러나 결국 성공 신화를 이루어냈고, 최정상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의 전략은 보스턴의 우승에 도움이 되기도 했으며 야구 시스템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현재를 명확하게 분석하여 돌아보고, 변화가 필요하다면, 믿음이 확실하다면 밀어붙이라는 것이 <머니볼>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빌리' 는 말한다.
예전에 인생의 기로에서 돈을 선택했었어. 다시는 그런 짓 안 하겠다고 맹세했고.
선택은 옳았지만 최정상을 얻지 못해 실망하는 그에게 '피터' 는 자신이 홈런을 치고도 그걸 몰라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했던 포수의 영상을 보여준다. 뚱뚱한 포수. 내가 쳐봤자 겨우 안타 수준이지, 무슨 홈런이겠는가. 상상이나 해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포수는 대형 홈런을 쳤으며, 이는 영화 오프닝에서 유명 타자 '미키 맨틀' 의 메시지와 연결된다.
당신은 당신의 지난 인생을 너무 모르고 있다.
변화된 전략으로 승리를 위해 달려왔던 '빌리'. 그에겐 긍정적인 도전과 변화 의식이 생겼지만, 이를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갇혔고, 보스턴의 단장으로서 사상 최고의 연봉을 보장받는 계약을 거절. 딸이 자신을 위해 녹음한 노래를 통해 깨닫는다.
'잘 못 하면 어때, 그냥 즐기면 되는 거야'
성공적인 변화의 긍정을 체험한 그는 그 후로도 그 에너지를 계속 쏟아부었을 것이다. 야알못도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인생의 철학을 말하는 영화 <머니볼>.
진짜 단장을 데려다 놨네...
'브래드 피트' 의 단장 연기가 실감 난다. 성적은 최하위지만 그에 꿇리지 않고 변화를 일으키려 앞장선다. 아닌 건 아니라고 대놓고 반발하며, 맞다 생각하면 밀어붙인다. 그리고 항상 초조해한다. 자신의 선택이 맞는 것인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낼지. 방출되어야만 하는 인원에게는 냉정하게 말해줘야 하는 부담스러운 직책의 압박감.
머리에 총 한 발이 낫겠냐, 가슴팍에 다섯 발이 낫겠냐
그의 연기력은 최고 명장면이라 생각하는 '전화 트레이드' 장면에서 놀라게 된다. '피터' 의 조언을 받으며, 정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먼저 협상 카드를 제시하는 상대 팀, 순간순간 어떤 제안과 선택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것인가. 전화를 기다리고, 논의하는 그 짤막한 시퀀스에서는 좋아 죽겠다면서도 신중함과 초조함을 동시에 갖춘 실제 단장을 앉혀 놓은 듯하다. 그리고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약간의 양념만 쳤다면 좋았을 외톨이 싸움
이렇게 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머니볼>에 별점 3점밖에 주지 않았다. SBS의 명작 <스토브리그>의 영향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로써 형태 자체가 다르니 비교하기는 애매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머니볼> 이 아쉬운 건 너무 '빌리 빈' 의 고독한 고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다른 팀이든 내부 인원이든 좀 더 다양한 인원들과 갈등 또는 언론 플레이의 악재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함께 풀어나가는 모습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실화이기에 과도한 연출이나 BGM 을 사용하지 않은 건 괜찮다. 그러나 너무 한 사람의 고독에만 맞춰져 있다 보니 그의 고민에 공감은 가지만, 나 또한 그 상황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백승수 단장을 중심으로 모든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머니볼>은 오로지 '빌리' 에게 모든 게 맞춰진 것. 그의 새로운 시도는 자신뿐만 아니라 팀 전체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렇듯 주변 환경과의 상호적인 갈등과 기쁨의 공유가 부족하게 느껴져 나는 건조한 휴먼 드라마로 평가한다. 과장하지 않더라도 조금의 양념만 가미했다면 더 풍성한 감동으로 와 닿지 않았을까..
<머니볼> 은 10년 전 1회 차 감상 이후로 총 4번 정도를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평점이 떨어진 셈이다. <스토브리그>를 접하지 않았다면 유지했을 텐데. 그럼에도 방향을 잃었거나, 변화를 주고픈데 망설이는 지인이 있다면 꼭 추천할 작품 중 하나이다. '백승수 단장' 만큼 '빌리 빈' 단장도 충분히 멋있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