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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08. 2021

건조함이 화합의 눈물로  -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뻔한 클리쉐에 눈물을 흘려본 게 언제이던가...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예상되며 이제는 거리두기 격상이든 하락이든 너무 지쳐버렸다. 방송/영화계도 너무 힘든 상황이고, 콘텐츠를 즐기는 입장에서도 혼자서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게 너무 심심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을 줄이고 화합하자는 진부한 메시지를 던지는 애니메이션에 눈물을 흘린 이유는 뭘까.


디즈니의 신작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은 디즈니 스타일의 뻔한 클리쉐를 담은 청량한 느낌의 작품이다. 과거 <뮬란> 과 같이 (실사판 말고 애니메이션) 동양의 정서를 가득 담은 이 작품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 건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는 결말의 통쾌함과 뿌듯함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꽉 막혀 있는 나에게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화합이라는 진부함의 감동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래픽과 연출이라 하겠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동양이라 하면 칙칙하고 단조로운 느낌이 있는 듯하다. 과거 <뮬란>이 그러했고, 정적이면서 올곧아야 하는 바른 이미지. 작품은 그런 동양의 이미지를 캐릭터의 화사한 색감과 탁 트인 공간, 그리고 빠른 연출로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주인공인 마지막 드래곤 '시수' 부터 청량한 파란색을 가진 캐릭터. 용이라기보다는 그냥 '댕댕이' 같은데.. 수호신이라 하여 진중하고 딱딱하지 않고, 정반대로 쾌활하고 옆에서 뜯어말려야 할거 같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이다. 갈라진 돌조각을 하나씩 손에 넣어 형제들의 능력을 얻을 때마다 보여주는 그녀의 새로운 모습은 지니고 있던 푸른색을 더 빛나게 하고, '드룬' 으로 인해 황폐해진 세계와 칙칙한 느낌의 '라야' 와 같은 캐릭터들을 감싸준다. 후반부에 부활하는 용들은 모두 찬란한 색상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단조로운 느낌의 세계와 사람들을 대조시킴으로써 확실히 구분하고 잔잔한 세계관에 청량함을 주고 있다.


캐릭터 '시수' 가 너무 좋다. 기존 수호신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타파함은 물론, 성우 '아콰피나' 의 칼칼한 목소리가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마치 리즈 시절의 '우피 골드버그' 를 보는듯한 느낌에 지속적으로 충전 에너지를 부여함으로써 디스토피아 세계가 되어버린 '쿠만드라' 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내리는 비를 발판으로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설정이 좋더라.


형제들이 전력으로 짜낸 마법을 활용하여 그녀는 마지막 대결에 나섰을 뿐. 달라진 세상을 신기하게 대하고, 오랜만에 만난 물속과 하늘을 자유롭게 다니는 그녀는 완벽하게 성숙한 캐릭터는 아니다. 그러나 화합이 필요한 순간에 그녀가 보여주는 관찰력과 메시지는 수호신으로서 본받아야 할 멋진 구석도 갖추고 있다.


주인공' 라야' 는 개성 있는 인물은 아니다. 정의감에 불타는 여성 히어로는 이젠 너무도 당연한 사회이며, 특별한 능력도 가진 건 없이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화합하려는 진부한 인물이다. 그녀를 돕는 조연 캐릭터 또한 마찬가지.

그럼에도 마지막 돌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 상대를 믿고, 자신을 먼저 희생하는 결정. 그리고 믿음의 결과로 온 세상이 부활의 비를 맞아 하나로 합쳐지는 클리쉐는 어릴 적 이런 류의 작품을 통해 느꼈던 감동을 다시 느끼게 해 주었다. 음악이 그리 인상적이지도 않았는데 왜 눈물이 났을까.


어째서 내가 역할을 맡은 걸까.. 누구라도 될 수 있었어
그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칼을 겨누는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발전된 이야기. 이런 류의 작품이 대개 그러하듯 '성악설' 을 포함하여 많은 사상가들이 '인간은 기본적으로 죄를 지었다' 는 인식을 기반으로 이를 회복하여 착하게 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어찌 보면 몇몇의 이기심으로 인해 확산된 것이고, 또 어찌 보면 작품과는 세상이 갈라진 배경과 다르다.


그러나 합쳐지지 못 한채 떨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각자의 시간만 늘고,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너무 외롭고 지루한 생활을 이어가는 나이기에 그냥 즐기려 봤던 이 작품의 교훈이 더 감동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각 나라의 식자재가 모여 맛있는 국 한 그릇이 나오는 작품의 이야기처럼 화합해야 하는 시대를 원하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먼저 화합의 손을 내밀어야 한단다


 수호신 '시수' 의 역할은 '라야'와 동료들이 화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부추기는 역할뿐이었다. 그녀는 마법으로 인간을 화합토록 하기보다는 신뢰의 마음을 선물과 함께 먼저 보여줌으로써 진실된 관계를 만들어가기를 권한다. 인간을 믿지 못하는 건 인간뿐이다. 마법의 힘은 드래곤들의 것이지만 결국 그 힘을 되찾아준 건 인간들의 화합이며, 앞으로는 인간과 수호신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해피해피한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 영화의 주제다.


너무 빨라 놓쳐버린 깊이

디즈니와 픽사의 장점. 사전 배경이 필요한 작품의 주요 스토리를 오프닝에서 매우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설명 방식도 탁월하지만 이에 사용되는 연출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영상 자체도 임팩트가 있어 마치 '007 시리즈' 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는듯하다. 그런데 작품 자체가 전체 이야기를 요약해 버렸다는 느낌은 뭘까.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의 이야기는 꽤 짧게 느껴진다. 중반부까지 따라갔을 때 '벌써부터 이렇게 캐릭터 정리가 되어 최종장에 들어가려 한다면 뒤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는 걸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야기는 벌써 최종장에 와 있었다.


'라야와 시수' 를 돕기 위한 조연 캐릭터들의 역할이 미진하다. 5개 구역으로 나뉜 '쿠만드라' 세계의 모든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조력자를 얻는 몇 개의 마을은 도입부에 그렇게 멋들어지게 마을 이름과 함께 멋있는 전경을 보여주면서 정작 그 마을의 개성을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다.


초반부 '라야' 가 각 마을의 특징을 설명하는 장면을 통해 다양한 개성을 가진 마을과 캐릭터가 펼쳐지겠구나, 꽤 큰 스케일의 모험 이야기가 되겠구나 싶었는데... 평화롭던 세계가 갈라지는 과정은 길면서 이를 화합해가는 과정과 그 안에서 얻게 된 동료와 세계 소개는 미약하다. 발만 살짝 담갔을 뿐인데, 그걸 그대로 최종장으로 가져가 세계의 화합에 뛰어든다.

액션 시퀀스도 현란하고 빠르고 좋은데 세계관을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결국 주인공만 고뇌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좁은 시각의 이야기로 끌고 나간다. 이를 커버하는 것이 쾌활한 주인공 '시수' 이며, 그녀의 하드캐리에도 불구하고 '라야' 와 친구들의 활약이 그저 그렇게 느껴진 건 디스토피아 치고는 많은 고생을 하지 않은 탓에 있겠다. 그랬다면 그들의 노력이 더 간절해 보이고, 화합이 더 와 닿았을 텐데.. 만약 그랬다면 난 '눈물 살짝' 이 아니라 '눈물 줄줄' 이 되었을지도..



한 가지 이해가 안 갔던 건, 500년 전 '시수' 가 '드룬' 을 몰아냈다면 그녀의 형제들도 모두 돌에서 풀려났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평화가 이어진 기간 동안 형제들을 포함한 세상의 드래곤들은 각자 지역에서 살고 있었단 건데, 왜 인간들의 불화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까. 500년 전 풀었던 마법은 인간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마지막 마법의 힘은 드래곤들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화합의 손을 내밀어 이루어낸 기적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어쨌든 어릴 적부터 디즈니를 즐겼던 팬으로서, 기술이 정말 많이 발전했구나를 다시 체감했다. 아직도 디즈니는 뻔한 교훈을 주고 있지만 보여주는 방식에 변화를 주려 노력하기에 다양한 소재가 나오고, 뻔할 걸 알면서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뚜렷한 개성이 있지는 않으나, 이번만큼은 실제 시대 상황의 고독과 맞물려 나의 감성을 건드렸고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은 꽤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다.


https://youtu.be/C0D6p7pG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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