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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10. 2021

굵고 짧게의 정석을 보여준 6개의 수정 (젝스키스)

그들의 활동은 3년 밖에 되지 않는다...


젝스키스 (1997) : 독일어 SechsKies (6개의 수정)

멤버 : 은지원, 이재진, 김재덕 (블랙키스) / 강성훈, 고지용, 장수원 (화이트키스)


대성기획 대표는 그룹 ‘아이돌’ 의 실패를 미리 알고 있었을까, 일부러 손 놓고 있던 걸까. SM이 ‘H.O.T’ 라는 대박 그룹을 내놓자, 청소년 그룹이 충분한 상품성이 있으며 10대야말로 중장기적으로 가요계에 막강한 영향을 줄 소비층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내세울 수 있는 차별성은 우선 SM 보다는 무조건 한 명 더!! 그리고 자주 나온다!!


솔로나 듀엣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해외파 멤버 ‘은지원, 강성훈’. 이주노 아래에서 열심히 연습하던 ‘이재진, 김재덕’건너건너서 어떻게 합류하게 된 ‘장수원, 고지용’


이 6명에서도 두 그룹으로 나뉘어 활동하게 되니

순수함과 보컬을 대표하는 '화이트 키스' 와 추임새와 상남자 파워를 대표하는 '블랙 키스'.


H.O.T의 유일한 라이벌로써 마이너한 평가를 받은 그룹이라 안타깝다. 비주얼, 스타성은 물론 음악도 절대 뒤지지 않는 그룹임에도 피할 수 없는 비교. H.O.T 가 먼저 데뷔했기에 따라한다, 밀린다, 그리고 항상 1위나 대상 경쟁에서 2순위로 인식이 확 박혀버린 이들의 입장은 2인자에서만 머무르게 되어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CLUB H.O.T 의 멤버이지만,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음악적으로는 젝키의 음악이 더 와닿으며 오래 들을 수 있다. 그만큼 대중적인 음악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멤버들의 우여곡절이 유난히도 많았던 젝키는 어떤 그룹이었을까. 6개의 수정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젝스키스’. 의도치 않게 독일어 하나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과연 여러분은 ‘젝스키스’ 라고 부르는가 ‘젝키’ 라고 부르는가.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나이가 드러난다.



여학생들을 양분화 시킨 6개의 수정

1집 (SechsKies - 1997)


대한민국의 입시 지옥을 긁어대다!!

97년 봄, 이들의 수줍으면서 화려한 데뷔는 큰 파장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잡지 ‘I LOVE STAR’ 등 기사가 실리면서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는 'H.O.T VS 젝스키스' 의 구도가 확연하게 생겨나 그들만의 싸움이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H.O.T.가 <전사의 후예> 에서 ‘선풍기 춤’ 으로 임팩트를 줬었다면 이들의 데뷔곡인 <학원별곡> 은 멤버들의 ‘백다운 (BACK DOWN) – 머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고급 기술’. 지금도 이 동작이 가능한 그들이 놀라울 뿐이며, 이 동작을 따라하던 13세의 홍블러와 몇몇 친구들은 당시 정형외과를 다니기도 했다. 위험한 동작이다.


가사가 당시 고등학생들에게 많이 먹혔을 것이다. H.O.T. 가 학원 폭력을 반대했다면 젝키는 학업 지옥을 토하며 무대에서 몸을 날렸다. 당시 멤버들은 이 곡이 매우 싫었다 한다. 가사의 구성도 그렇고, 충격적인 무대 의상. 심지어 의상에 ‘가나다라마바사, 수학 근의 공식, ABCD…’ 등을 실제로 적어놓은 이런 각설이 타령 같은 컨셉이 어디있단 말인가.


1집 앨범 자켓을 보고 놀랐다. 그냥 멤버들의 정면 사진을 박아넣은 센스. 덕분에 얼굴을 쉽게 익힐 수 있었고, 누가 누군지 외우는데 한 몫은 했지만..


게다가 노래를 담당하는 뽀얀 외모의 ‘화이트 키스’ 와 상남자를 나타내는 파워풀 ‘블랙 키스’ 라는 구성은 초반엔 신선했을지 모르나 일부 시청자에겐 정체성의 혼란이었을지도. 작곡가 ‘이윤상’ 의 이 곡은 확실히 멤버들이 싫어하긴 했으나, 과연 알았을까. 1년 후 ‘Road Fighter’ 라는 띵곡을 선사해 줄거라는걸.


가수 소찬휘의 시원시원한 코러스가 함께 들어간 <학원별곡>은 메탈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가사가 꽤나 심오하면서도 직설적. 당시 수험생들에겐 직격타였다.


음악 미술은 저리버려두고 국영수를 우선으로 해야 일류대학으로 간다

 모두의 친구는 모두의 적, 모두가 서로 모두 밟으려고 발버둥을 친

 어디서 무얼하다 이제 들어와, 아직도 숙제 안하고 낙오자 돼 뭐할래

중간고사 나 한 번 잡아봐라,기말고사 화나면

잡아봐

내신성적 화나면 이겨봐라, 수능시험 내가 일등이야


 H.O.T 가 사회 비판적인 주제의 노래를 타이틀로 많이 내세웠다고는 하나, 2집 ‘We are the future’ 이전 청소년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줬다라면 이 곡이 아닐까 한다. 앞서 서태지와 아이들 또한 <교실 이데아> 를 통해 한국 교육을 비판했으니, 이 계보를 잇는건 <학원별곡> 의 임팩트가 꽤 컸다.


다만, 아쉽게도 모든 멤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순 없었던. 장수원은 무대의 머릿수를 채워줬을 뿐이며, 끝내주는 비주얼의 고지용은 가사집에도 나와있지 않은 랩핑으로 잠시 나올 뿐. <전사의 후예> 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었으나, 데뷔하자마자 라이벌로 언급된 젝키의 첫 시작은 꽤 괜찮았다.


젝키 1집은 가장 대중적인 앨범이다. H.O.T. 가 데뷔 앨범의 많은 곡을 ‘리메이크’ 그리고 특정 멤버에게만 비중을 할애한 반면, 젝키는 나름 고루고루 분포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중적인 이유는 여러 대중적인 작곡가의 곡이 실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공중파의 주말 예능에 지속적으로 출연하니 더 친근감 있었다.

SBS <기쁜 우리 토요일>, KBS <자유선언 OR 슈퍼 선데이>, MBC <토토즐> 등.


데뷔곡 <학원별곡> 은 꽤 실험적인 곡이지만, 그 외의 곡들은 꽤 다르다.


작곡가 윤일상의 뽕필이 살아있는 <연정>과 발랄한 댄스곡 <배신감>,  히트곡 <폼생폼사> 와 발라드 명곡 <기억해 줄래> 를 만든 박근태 등. 이렇게 대중적인 여러 작곡가의 곡을 수용했기에 젝키의 음악이 H.O.T. 보다 더 많은 이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며, 다양한 색을 내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실력은 ‘라이브(LIVE)’ 에서 나온다. 당시 MBC 로부터 시작되었던 ‘가수라면 가창력’ 이라는 모토가 퍼지면서 초창기부터 라이브로 자주 활동. 지금의 아이돌처럼 장기간의 연습을 거친것도 아닌 이들이 보여준 나름 안정적인 무대. 역시 이 시대의 아이돌은 철저한 준비보다는 타고난 끼와 재능에 있었다.


데뷔곡 <학원별곡>과 동시에 <연정> 으로 활동. 여러 방송 매체에 자주 나오고, 왕자님 같은 비주얼의 이들을 담은 ‘화보, 잡지, 신문’ 등은 열렬한 소녀팬들의 가슴을 불 지르고. 97년 인기 절정이었던 ‘다이어리 DIY’ 열풍에 한 몫하기도 했다. 게다가 96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열린 ‘케이블 음악 채널’ 의 활약도 한 몫했다.


‘M.net’ 의 ‘GO! M.NET GO’ 과 리듬천국, 가요 발전소/ KMTV 의 ‘쇼!뮤직탱크’ / MTV 뮤직비디오 채널 등 공중파 방송에서만 볼 수 있던 멤버들을 언제든 뮤직비디오와 더 많은 무대에서 볼 수 있었기에 ‘대중에게 쉬지 않고 자주 비치자’ 는 대표의 생각과 잘 맞아 들어갔던 시기였다.


이렇게 대중성이 합쳐지며 1집인데도 활동을 6개월 가까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메인곡으로 활약하고 있음에도 서브로 활약할 대중성 높은 곡이 많았다는 것. 바로 이것이 젝키의 1집 활동이 안정적이었던 이유 아니었을까.



아이돌이 머리 밀고 군대 타령이 웬말인가..

후속곡 <폼생폼사 - 사나이 가는길>. 작곡가 박근태의 곡으로 6명이라는 구성의 이점을 살려 앞뒤로 점핑하는 파워넘치는 무대.


H.O.T.가 알콩달콩한 사랑 노래로 인기를 떡상한 반면, ‘사나이’ 라는 단어와 ‘머리 밀고 군대가겠다는 등’ 뭔가 10대에겐 맞지 않아 보이는 구성의 노래. 여성 코러스들의 알쌍한 느낌의 추임새. 이들을 대표하는 곡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창피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라이브를 가장 많이 선보였던 곡이기도 하며, 인지도는 확실히 상승했다. 97년 여름 시즌은 대전쟁이었다. 비슷한 느낌의 댄스곡이 워낙 많았으며, 90년대 가요계의 르네상스 시대라 불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쿨 (해변의 여인) / 유피 (뿌요뿌요, 바다) / 영턱스클럽 (타인) / 클론 (도시탈출) / 박진영 (그녀는 예뻤다) / DJ DOC (DOC와 춤을) / H.O.T. (행복) 등


폭 넓게 활약한 데 비해 1위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이들의 젊은 점핑과 리더 은지원의 불독 (BULL-DOG) 랩핑이 이들의 입지를 굳힌건 확실하다. 그랬기에 H.O.T. 의 뒤를 이어 고래밥의 라이벌이던 ‘미스터 해머’ 의 CF 까지 진출한 것 아니겠는가. 워낙 활동을 길게 했기에 많은 이들이 젝키하면 떠올리는 TOP 3에 들어가는 곡이 되었으며, 마흔이 넘은 지금도 저런 점핑과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신규 오픈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용인 에버랜드 - 캐리비안 해이' 를 놀러가면 주구장창 나왔던 노래인데, 질리도록 들었음에도 콕콕 찔러주는 멜로디와 코러스가 지금 들어도 점핑하게 만들어 준다. '투니버스' 에서재밌는 만화도 많이 방영하고, 파리바게뜨가 개업한 '팥빙수 시리즈' 도 좋았고, 참 좋았던 97년 여름 방학 이었다.



무리수였을까 다행이었을까

팬들은 알겠지만 1집을 종료한 97년 9월, 충격적인 2집 컴백까지 무려 두 달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미 이들은 1집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2집 준비 중이었다. 기획사 대표가 얼마나 빡세게 기획하고 굴렸을까.


이들의 상품성을 예상해서였을까, H.O.T. 와의 전면 대결로 밀고 나가기 위해서였을까.

라이벌 'H.O.T' 는 2집으로 컴백하였고 후속곡 <행복> 의 성공으로 2집 징크스도 깨뜨렸다. 똑 같은 앨범 개수로 맞서고, 대중에게 지속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선택한 결과일지도.


멤버들에게 불만이었을 것이며, 한창 영양소 골고루 섭취하며 자라야 할 이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상황 아니었을까. 1집 활동을 이미 하고 있으면서 곧바로 2집이라니.. 그래서인지 2집을 들어보면 아직 목소리가 다듬어지지 않은 멤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녹음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배경이 3년밖에 활동하지 않았음에도 이들이 꽤 오랜 기간 활동한 걸로 인식되는 이유일 것이다. 쉬지 않고 움직인다. 진정한 ‘MUSIC FIGHTER’ 이자 달아오른 무대를 쉬지 않고 움직이는 이들이다.

어쨌든 젝키 1집은 꽤 잘만든 명반이다. 수록곡도 꽤 맘에 드는 아이돌 앨범은 많지 않다.

(go m.net go 에서 부른 ‘기억해줄래’ 무대는 너무 레전드다. 발라드에 브레이킹 댄스는 물론 분위기 있는 무대. 그리고 뒷자리를 메꿔주시는 누님들의 역할까지 완벽)


홍블러's PICK : 학원별곡 / 연정 / 폼생폼사 / 확인 / 배신감 / 기억해줄래 / Dream Comes True



쉬지 않는 그들의 두 번째 질주, IMF 의 도래..

2집 (Welcome to the Sechskies Land – 1997)


충격적인 2집 소식이었다. 97년 10월 즈음, 레코드 점을 지나가는데 ‘젝키 2집 예약’ 이라는 종이를 보고 ‘아니!! 2집이 나온다고?!’


학급 팬들과 잡지 기사를 통해 알게 된건 무려 ‘20곡’ 이나 수록된다는 점. 진짜 이를 갈고 만든다는 생각이 꽉 차오르면서 너무 기대 되었다. 라이벌 'H.O.T' 와 정면 대결이 가능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미 H.O.T.는 <We are the future> 로 1위를 씹어먹던 중인데다, 더 이상 활약할 수록곡이 없는 듯 했지만 어쨌든 2집 대결 아닌가.


방송 활동을 먼저 하고 약 2주 후에 발매된 2집은 신선한 구성이었다. 타이틀에 나와 있듯 놀이 공원을 모티브로 하여, 시작은 ‘펑키와 힙합, 댄스’ 를 시작으로, 이후 발라드를 거쳐 댄스 파트까지 축제를 제대로 즐기는 느낌의 구성. 게다가 곡 수도 빵빵하다.

이 중에서 6명의 젝키를 찾아보세요~~~


추억의 도서 <윌리를 찾아라> 를 하듯 숨어있는 멤버들의 캐릭터를 찾아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1집과 동시에 준비한 앨범이라고는 하나, 단순히 볼륨을 채웠다는 점 말고도 곡의 완성도가 꽤 탄탄하기에 명반이라 생각한다.


힙합 대부 ‘BOBBY KIM’ 의 적극적인 도움은 물론 대중적이면서 실험적인 곡들의 조합. 곡 하나하나가 지금 나와도 세련된 편곡와 멜로디를 갖고 있다. 특히 이 앨범은 저녁에 들어야 진가가 나온다.



순애보 가득한 상남자로 컴백

타이틀곡 <기사도> 는 사랑 노래다. 'H.O.T' 가 1집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주제를 다룬 <늑대와 양> 으로 컴백한 것과 달리 젝키의 선택은 대중적인 느낌의 <기사도>.  이 곡으로 처음 1위를 했으나, 일부 친구들은 이미 'H.O.T' 가 2집 활동을 정리해가는 시기의 활동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반대파도 많았다. 물론 그들은 CLUB H.O.T. 일 것이다.



SBS <충전! 100% 쇼>의 컴백 무대는 사고였다. 무대 발판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사건. 당시 생방으로 보며 깜짝 이벤트인줄 알고 다음 날 교실에서 웃다가 뒷자리 친구한테 등짝 스매쉬 맞았다. 그녀는 강성훈의 열렬한 팬이었다.


이 곡에서 놀란건 사이보그 ‘장수원’ 의 두각이다. 1집에선 파트도 거의 없고, 전혀 안정적이지 못했던 보컬임에도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메인에 나선다. 물론 아직도 라이브는 불안정하였으나 어쨌든 메인으로 선다는게 어디인가. 1위 경쟁자도 막강했다.


신규 멤버 '마이키' 를 영입한 '터보'의 새로운 비상 <Goodbye Yesterday>, 장기 집권중이던 '지누션' 형님들의 <내가> 와  터지게 경쟁하던 97년 겨울 시즌. 하지만 이들도 피해갈 수 없었던 IMF 여파도 어느 정도 있었다.



이들의 컴백과 함께 비슷한 또래의 아이돌이 데뷔하기 시작했다. SM의 후속주자 <S.E.S>, 애매한 컨셉으로 금방 들어가버린 <베이비복스>, 멤버 전원의 백덤블링이 인상적인 기계체조 <NRG>, 수트빨이 너무나 멋진 슈가맨 <태사자> 등.


그러나 이렇게 쟁쟁한 경쟁자들과 활발한 활동에도 2집에 대한 나의 기억이 가물가물한건 바로 학업 문제다. 이제 중학생이 되니 빡세게 공부만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강제 TV 시청 중단, 강제 케이블 채널 거래 종료 등의 악재가 겹치며 나의 98년 초창기 추억은 학원에 쳐박혀 있게 되었다.



다양한 음악으로 승부하는 IMF 시대

IMF 로 인해 가요계, 방송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2집 활동 종료 후에 적극적으로 일어난 변화이긴 하나, 97년부터 이어져온 라이브 무대의 중요성, 그리고 가요 프로그램 폐지.


이로 인해 <KBS 가요톱텐> 은 <뮤직 뱅크> 로, <SBS TV 가요 20> 은 <SBS 생방송 인기가요> 로,

<MBC 인기가요 BEST 50> 은 <음악 캠프> 로 바뀐걸로 기억한다.


 NRG 가 항상 말하는 순위 제도 폐지, 그리고 조용해진 가요 프로그램. 케이블 채널 또한 그 여파를 피해갈 순 없었다. 이 당시에 데뷔했던 아이돌 ‘태사자, NRG, SES’ 등도 이렇게 우울해진 방송계 분위기에 어쩔 순 없었다.


젝키의 2집 후속곡은 명확히 뭐라 해야할까. 홍블러는 <탈출> 로 알고 있지만, <거절의 이유> 와 귀요미 열매 먹은 듯한 <말괄량이 길들이기> 로도 활약했고. 겨울 시즌에 맞게 훈훈한 감성 충만한 'KBS 사랑의 리퀘스트'  등에서는 발라드 퍼레이드를 선보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분위기로 인해 구성이 탄탄한 2집인데도 그렇게 큰 임팩트는 못 남긴거 같아 아쉽기도 하다.


<탈출> 의 무대는 굉장히 실험적이면서 댄스팀 출신인 ‘이재진, 김재덕’ 의 안무 구성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우리는 이 정도로도 한다’ 는 강력한 어필.  인기의 척도인 디자이너가 만든 패션 학생복 ‘엘리트 교복 CF’ 도 찍고 (요즘엔 어느 브랜드가 잘 나가는가). 'SBS 충전 100% 쇼' 에서의 고화질 무대를 보면 시기가 좋지 안아 묻혀버린 아쉬움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갈 것이다.


2집도 다양한 곡으로 활동했다. <탈출> 과 <기사도> 가 강력한 이미지였다면, 발라드 <사랑하는 너에게> 와 발랄한 <말괄량이 길들이기>. 수록곡이 튼튼해 가능한 일이었지만 너무 많이 활동하다보니 명확한 라인은 잘 와닿지 않았던 2집.


당시 남자애들만이 가득한 중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너무 빨리 밀어버린 머리를 아쉬워하던 혼란의 시기였기에 잠시 가요계에 관심을 끊은 점도 있지만...


어쨌든 2집은 명반이다. 지금 정규 앨범으로 나와도 세련된 편곡과 곡 구성, 무엇보다 빵빵한 볼륨이 이 앨범의 진가를 말해주며, 어째서 젝키가 발라드에도 강자임을 보여주는지 잘 드러나 있다. 꼭 들어보시라.

이렇게 열일 했으니 이들에게도 휴식이 어느 정도 부여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홍블러's PICK : 미성년자 관람불가 / 거절의 이유 / 기사도 / FOR YOU / LOVE / 하얀밤에 / 사랑하는 너에게 / 젝키의 크리스마스 / 겨울편지



그들에게 휴식은 없다, 오로지 달릴 뿐!!

영화와 뮤지컬이 그들에게 준 선물은...??


IMF 여파는 있으나, 2집 활동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는 좀 쉬는가 했더니 기획사는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3집 앨범 준비도 있겠으나 그들을 잡아놓은 새로운 관문은 바로 뮤지컬과 영화.


어린이 뮤지컬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은 젝키 전 멤버가 주연으로 활약했으며, 가수 ‘진주’ 와 함께 했다. 타겟이 청소년도 아닌 어린이 였다는 점에서 새로운 부담이었을 것이며, 신곡을 숙지하느라 이들의 몸은 남아나지 않았을 듯 하다. ‘진주’ 와 메인 보컬 ‘강성훈’ 의 조합이 어울리는 <천년의 약속>, 나머지 멤버들의 역할을 보여주는 <형제가 너무 달라> 가 나름 인기를 얻었고, 꽤 괜찮은 공연으로 마무리 된 걸로 알고 있다.


이렇게 뮤지컬로 어린이를 사로 잡았다면, 청소년은 영화 <세븐틴> 으로 끌었다. 지금봐도 예쁜 신예 ‘김지혜 (향후 그룹 투야의 멤버)’ 를 여주인공으로, ‘강성훈’ 과의 주요 러브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작품. 욕설도 섞여 나오고, 청소년들의 반항 가득한 모습을 드러낸 이 작품은 첫 정식 연기 도전이었다.


춤을 추며 즐기는 장면엔 이미 향후 발매될 스페셜 앨범의 수록곡 <너를 보내며> 와 <변신> 이 흘러나왔고, 이를 통해 전년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앨범 두 장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H.O.T.를 앞서기 위해 멈추지 않는 6인조

3집 – Road Fighter (1998)


'H.O.T' 가 자작곡 문제로 꽤 긴 공백을 가진 것에 비해, 이들의 3집은 훨씬 먼저 나왔다.

여름을 맞아 댄스곡 <Crying Game> 으로 컴백. 하지만 수록곡으로써의 매력만 있을 뿐, 시원치 않았던 반응과 함께 타이틀을 변경하게 되니, 폭주족을 더 미치도록 달리게 만드는 명곡 <Road Fighter> 이다.


빨리 나온 3집이라고는 하나 역시 빈틈없이 빵빵하다. 멤버들의 목소리도 성숙해졌고, 음악적으로도 강한 메탈 사운드와 다양한 장르의 시도. 멤버 ‘은지원’ 을 시작으로 자작곡이 실리기 시작하는 등 3집은 단순히 외모만으로 인기를 끄는 아이돌을 넘어서는 노력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변경된 타이틀곡 <Road Fighter> 는 리더 ‘은지원’ 의 곡이라 해도 무방하다. 후렴 부분에서의 군무와 함께 가운데에서 무대를 끌어가는 역할. 또한 라이브를 통해 알아듣기 힘든 영어 가사를 써가며 라이브도 되는 아이돌 그룹의 자존심을 굳혔다. 데뷔곡이었던 <학원별곡>과 같은 작곡가의 곡인데, 멤버들 모두 이 곡 만큼은 대찬성이었다 하니 얼마나 애정이 많았을까.

하지만 노래의 카리스마와는 별개로 뮤직비디오는 너무나 성의없게 찍어서 아쉽다. 야심한 시간, 서울 어딘가의 텅 빈 도로에서 대충 찍은듯한 퀄리티는 팬들로 하여금 기획사의 반발을 사게 만들었으며, 같은 기획사의 후배 가수 ‘핑클’ 의 뮤직 비디오 보다도 성의없게 만든 것 같다는 반발로 좋지 않았다.


3분 20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곡이지만, 젝키 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이미지는 이 곡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당시 <98년 프랑스 월드컵 시즌>과 맞물려 이들의 파이팅 넘치는 무대는 정말 활기찼으며, 3집을 라이벌 ‘H.O.T’ 보다 먼저 시작했다는 점에서 기획사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봐도 좋을 것이다.


남중을 다니고 있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복도에서 안무를 따라했으니 카리스마와 중독성은 인정한다. NRG 의 '천명훈' 이 괜히 중독된게 아니다. 신개념 음료 <815 콜라> 출시와 함께 즐겁게 달렸던 98년 여름방학. 비록 장마가 너무 심해 야외 활동은 많이 못했지만 이들의 질주가 있었기에 집콕으로 만족했다.



최고의 안무는 무모한 동작에서 나온다!!

후속곡 <무모한 사랑> 은 작곡가 ‘윤일상’ 의 곡으로, 빠른 비트에 일렉기타 사운드가 잘 맞는 우울한 곡 중 하나이다. 터보의 <Love is / 금지된 장난 / X>, 구피의 <비련> 과 비교하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모든 활동곡 중에서 안무 난이도가 가장 높다. 과거 특정 구간에서는 춤에 특화된 멤버 ‘이재진, 김재덕’ 을 중심으로 했다면, 이 곡에서는 멤버 전원이 어려운 안무를 소화 한다. 특히 간주에서 순차적으로 ‘웜’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화이트키스’ 멤버들도 춤에 일가견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


이 과격한 안무에도 불구하고 라이브를 많이 했는데, 리더 '은지원' 의 입에 쫙쫙 달라붙는 영어 랩이 인상적이다. 굳이 따라하겠다고 되지도 않는 영어 실력에 가사를 상상해서 적어보기도 했지만 지금 들어도 정확히 뭐라 하는진 모르겠다.


스페셜 앨범인 3.5집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느라 체력적으로 무척이나 지쳤을텐데도, 이들의 무대를 보면 그런건 짐작조차 되지도 않았다. 아니, 설마 3.5집이란게 나올거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H.O.T' 가 3집으로 컴백하며 정면 대결을 벌이는가 했으나 이미 다음 앨범으로 승부를 보며 98년 가요 대상을 잡아먹겠다는 기획사의 전략으로 3집은 마무리.


비록 활동을 중단하더라도 대성 기획엔 아직 활동곡이 남아있던 ‘핑클’ 이 있었으니, 이들의 빠른 활동 중단은 전략적인 면에선 괜찮은 판단이었을지 모른다. 3집 수록곡 또한 퀄리티가 좋다. 2집을 이어 발라드를 대표하는 명곡 <SAY>, 지금 들어도 편곡과 멜로디 센스가 뛰어난 <Come to me baby>.


홍블러’s PICK

Road Fighter / 무모한 사랑 / Chance / 약속된 운명 / Come to me baby / Say



따뜻했던 98년 겨울, 젝키 최고의 명반

3.5집 – Special (1998)


너무나 달달하고 행복한 겨울 선물

3집 활동 약 한 달만에 접한 컴백 소식. 처음엔 좀만 더 있으면 성탄절이니 특별 앨범이겠거니 했으나,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과거 그룹 ‘듀스’ 의 <여름 안에서> 를 시작으로 나왔던 스페셜 앨범 형태.


3.5집이라고는 하나 정규 앨범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빵빵한 수록곡들. 발라드와 댄스곡들의 적절한 비율로 매우 안정적인 명반이 탄생했다.  준비는 오래 됐을지 몰라도 이 앨범의 뮤직비디오를 본다면 한숨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타이틀곡 <커플>은 분명 너무나 사랑스럽고 좋은 곡이지만, 사무실 복도에서 대충 찍은 뮤직비디오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젝키 최고의 명곡이라도 불리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 수준이 이렇다니.


멤버들의 비주얼이 뛰어났기에 커버됐지 이건 분명한 기획사의 큰 실수다. 끊임없이 컴백하여 대중에게 인식되는 전략은 좋았을지 모르나, 앨범 이외의 다른 부분들에 대한 케어는 부족했던게 사실.


어쨌든 이 앨범은 최고의 명반이며 시기도 좋았다. 당시 ‘H.O.T’가 3집 후속곡인 <빛>으로 활동하고, 이들은 비슷한 느낌의 <커플>로 활약하며, 연말 두 곡의 1위 대결은 흥미진진. 물론 대부분 ‘H.O.T’가 이기긴 했지만 지금도 멤버 ‘강타’ 는 딱 한 번 <커플>에게 1위 자리를 내준적이 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20년 이상이 지났어도 사랑받는 노래 <커플>. 그 동안 쉬지 않고 강렬한 댄스로 달려왔던 이들에겐 그나마 편한 활동 시기는 아니었을까.



최고의 전성기를 마무리하며

후속곡 <너를 보내며>는 영화 ‘세븐틴’ 의 OST 다. 앞서 언급했듯 젝키는 발라드곡 라인업이 탄탄한 편이며, 이 앨범에서도 그 진가는 발휘된다. 발라드에 댄스를 접목하다니 형님들은 정말 최고!!


98년 한 해는 그들이 쉬지 않고 꽉꽉 채웠던 최고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데뷔한지 이제 막 2년에 가까워지려는 상황에 거의 정규 앨범 5장에 가까운 활동. 그리고 어린 나이에 얻게 된 인기와 팬덤.


하지만 팬들의 불만은 많았다. 바로 후배 그룹 ‘핑클’ 에 더 투자하는 듯한 기획사의 전략에 젝키는 찬밥 신세로 전락하는건 아닌가 하는 불만들. 희생양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일까.


99년 초, 이들의 콘서트는 독특했다. 원형의 무대를 중심으로 온 주변에 팬들이 들어서는 구조. 그래서 그 수 많은 곡들을 가지고 더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었으며, 자작곡 발표 등 팬들에겐 크게 기억에 남는 콘서트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그들은 데뷔 후, 처음으로 꽤 긴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홍블러’s PICK

명반 3.5집은 모두 듣도록 하자!!!



트렌드를 따라가는 음악과 상남자들의 마지막 활약

4집 – Com’back (1999)



오락실까지 휘어잡는 대중성의 끝판왕

너무나 성의없는 앨범 자켓. 4집은 약 7개월 정도 쉬면서 제작한걸로 기억한다. 이들에겐 가장 길었던 공백기. 아이돌 그룹의 성공으로 많은 그룹이 가요계에 데뷔하였고, 음악 장르 또한 더욱 다양해졌다. 여기에 99년 당시를 휘어잡던 장르는 바로 ‘테크노(Techno)’ 다.



앨범 정식 발매 전, ‘아시아 슈퍼 콘서트’ 와 각종 프로를 통해 먼저 시작한 4집 활동.


타이틀곡 <Com’back> 은 자신들의 컴백을 알리는게 아닌, 강렬한 사랑 노래이며 당시 트렌드이던 테크노 사운드를 잔뜩 집어넣은 댄스곡이다. 블랙 사이버 전사 컨셉으로 방방뛰는 그들의 무대. 심지어 ‘괌’ 까지 날아가 올로케이션 뮤직비디오를 찍어놓고, 정작 만들지는 않은 기획사의 과오.


그럼에도 이 곡이 인기있었던 이유는 곡 자체가 좋은 것도 있지만, 지금도 오락실에서 인기 만점인 ‘펌프(PUMP)’ 에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랩 파트에서 빙글빙글 돌아보지 않았던가. 여기에 수록곡인 <뫼비우스의 띠> 를 ‘더블 모드’ 로 꼭 플레이해주며, 4집은 다른 면에서도 홍보가 되었다. 아직 앨범은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무대로 먼저 활동. 이 또한 ‘H.O.T’ 를 의식해서가 아닐까.


게다가 ‘H.O.T’ 가 3집부터 자작곡을 수록해왔다는 점을 빌어, 젝키 또한 4집에서는 멤버 전원이 자작곡을 수록함으로써 탈 아이돌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H.O.T’ 의 4집 활동이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던 타이밍과 함께 성공적이었던 4집 컴백.



성숙한 1세대 아이돌의 마지막으로…

후속곡 <예감>은 작곡가 ‘윤일상’ 의 곡으로, 앞치마/모닝 커피 등 남자의 로망을 그대로 담은 따뜻한 곡이다. 이 곡으로 당시 ‘평양 공연’ 에도 참가, 좀 더 부드럽고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갔던 젝키. 하지만 곡의 임팩트 때문이었을까, 4집이 이전에 비해 확 와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H.O.T’는 리더 ‘문희준’ 의 부상은 물론, 과도한 패션 등으로 일부 방송사 정지까지 먹은 상태라 순탄치 않았던 것에 비해 대중적이었던 젝키 4집은 많은 임팩트는 남기지 못했다. 실제로 멤버들의 스케쥴이 많이 줄기도 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일정에 멤버들의 불만도 커져갔을 것이며, 기획사 입장에선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후배들에 대한 투자 계획으로 갈등이 있진 않았을까.


음악 프로 생방송의 구조도 영향을 미쳤을듯 하다. 과거 팬들이 응원하는 자리가 가수들과 곧바로 앞에 있었던 것에 반해 극성팬들의 등장은 물론 IMF 분위기를 반영하여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꽤 있다. 그래서 엄접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져 과거 만큼의 친근함은 사그러든 느낌도 있었다.


또한 성숙한만큼 새로운 팬들을 끌어들일 요인이 떨어진다는 점도 있었을 것이다. 활동 초반에 보여줬던 친근함은 물론 귀엽우면서 말랑말랑한 컨셉이 어린 세대를 끌어들일 수 있었던 반면, 멤버들이 성숙해짐에 따라 이들이 보여줘야 하는 음악은 그에 걸맞아야 한다.


그렇기에 뽀송뽀송한 매력을 보이기 힘들어 진다는 점에서 4집의 임팩트가 덜 했던 부분도 있었을 것이며, 이는 모든 아이돌 그룹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4집 역시 수록곡 모두가 꽤 괜찮은 명반이다. 그래서 마지막엔 자작곡 메들리로도 짧게 활동하며, 힙합곡 <그대로 멈춰>를 통해서 4집 마무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것이 젝키의 마지막 활동이 되었다. 5집을 기다렸을 팬들에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홍블러’s PICK

Com’back / 예감 / Love Forever / Summer in Love / A+ / 뫼비우스의 띠 / Missing You / 적



잘가요 노랭이들…

이들의 해체 소식이 스물스물 올라오더니 급기야 기자회견과 함께 공식화 되었다.

2000년 5월. ‘드림 콘서트’ 를 가득 채운 노란색 풍선. 이들을 송별하는 당시의 동료 가수들. 그 동안 많이 지쳤을 텐데. 기획사의 잘못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분명 그들은 더욱 활동하고 싶었으나 정산과 처우 문제 등으로 어린 나이에 너무 힘들었을 것이며 결국 헤어지는 걸로 결론 지을 수 밖에..

그들의 눈물을 보면 알 수 있으며, 잘 울지 않는다던 멤버 ‘이재진’ 은 심지어 기자 회견 이전 이를 반대하며 잠적하는 등 얼마나 애정이 많았던 그룹인지 알 수 있다. 1세대 아이돌 중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작별 인사를 남긴 그룹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몇 곡 되지도 않는 이별 신곡 <Bye> 등을 수록한 고별 앨범 ‘BLUE NOTE’.
 당시 사장이었던 ‘이호연 대표’ 를 증오했던 팬들의 과격한 행동은 인기 리포터 였던 ‘조영구’ 의 새 차를 박살내는데 까지 이르렀으며, 이후 팬들이 돈을 모아 보상했다는 실화는 유명하다.



그들의 활동은 3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굵직하고 빈틈없이 활약했던 젝키.

 이후 은지원은 힙합의 길로, 강성훈은 메인 보컬 답게 솔로로, 이재진 또한 외로운 솔로 활동을, 김재덕과 장수원은 ‘제이 워크’ 결성을, 고지용은 연예계 은퇴.

그 동안 이들에겐 많은 일들이 있었으며 2016년 ‘무한도전’ 을 통해 재결합하는 계기가 마련되니 팬들에겐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을까. 이미 2014년 그룹 ‘god’ 가 재결합한데 이어 두 번째 1세대 아이돌의 귀환. YG의 든든한 지원과 함께 신곡도 내고 활동하였으나 특정 멤버의 사고로 너무나 안타까운 4인조가 되어버린 전설 젝스키스.


가장 대중적이었던 1세대 아이돌을 회상하며, 다시 한 번 그들의 음악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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