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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10. 2021

아이돌 문화의 단군 왕검 - H.O.T

1세대 아이돌의 신화를 시작한 다섯 전사



H.O.T. (High-five OF Teenager) - 10대들의 우상 (1996)

멤버 : 문희준, 장우혁, 토니, 강타, 이재원


한창 'DJ.DOC', 'R.ef', '터보' 등의 빠르고 오와 열 맞추어 춤추기 좋은듯한 형님들에게 푹 빠져있던 96년 중반. 그냥 예능인으로 알고 있었던 '이수만' 이 다섯 명의 청소년을 무대에 내세웠다.


솔로 아티스트 '현진영, 유영진' 의 성공은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댄스 그룹의 지속적인 인기 및 부가 아이템 사업의 필요성을 예감한 SM 대표 '이수만'. 중장기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소비 계층은 바로 청소년이라는 것을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을 통해 알아차렸을 예감은 적중했다.


여심 팍팍 끌어모으며 '오빠 오빠' 소리를 질러대게 만들 5인조 댄스 그룹이 탄생하게 되었다.

수줍수줍 하던 토토즐에서의 자기 소개 타임과 레전드의 시작을 알린 중산고 축제


H.O.T... 철자 사이에 있는 작은 점을 모르고 'HOT 핫' 이라고 부르는 즉시 구세대 라는 취급 받던 시절.

그랬기에 이들의 유일한 적은 시원함으로 승부하는 'COOL 쿨' 이라는 데뷔 초반까지..


평균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이들은 어떻게 한국의 아이돌 문화를 창조하는 단군 왕검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된 것일까..


1. 시작은 어두우나 그 끝은 찬란하리라...

1집 -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 (1996)


학교 폭력을 반대하는 시원스런 퍼포먼스

당시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 폭발하는 방법은 최신 가요의 춤을 선보이는 것. 그러나 학교 수련회와 장기 자랑의 기회는 많지 않으니 매력 어필이 힘든 시기였다. 친구 집에서 생라면으로 부숴 먹어도 맛있는 '스낵면' 을 5개 이상씩 끓여 먹으며 2~3인조 남성 그룹에 빠져있던 그 때.


청소년만으로 이루어진 대성 기획의 '아이돌' 이후, 아마 10대만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그룹 아닐까.

선배들은 20대 중반 내외의 성인으로 사랑 노래를 부르는 가요계의 흐름은 이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 이 <교실 이데아> 를 통해 10대의 분노를 대변한 사례를 통해 이들의 데뷔 컨셉은 독특했다.


학교 폭력으로 크게 다쳐 바이올린을 접어야 했던 학생의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타이틀곡 <전사의 후예-폭력 시대> 는 과거 '현진영' 이 좋아했던 어둡고 강한 비트의 갱스터 느낌이 가득하다. 학교 폭력을 반대한다지만 분위기 자체는 그 폭력을 주도하는 형들이 뒷골목에서 BGM으로 깔아놓고 기다릴것 같은 이 곡은 '선풍기춤' 이라고 하는 마스코트 안무를 남겼다.


데뷔 전, 리더 '문희준' 의 모교인 '중산고'  축제에서 첫 무대를 선보인 이들은 이후로 사장님 파워에 힘 입어 주말 예능 <MBC 토토즐 -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에도 출연하여 수줍은 자기 소개는 물론 <삐삐 012 CF> 등 청소년을 타겟으로 여러 루트를 통해 등장한다.


데뷔곡임에도 4분 이상이라는 꽤 긴 플레이 타임은 방송에선 짧게 편곡하여 활동하고, 통풍 하나 되지 않는 빵빵한 메탈 느낌의 복장을 소화하며 '그만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 를 외쳐대는 그들의 메세지는 멋있는 춤과 분위기로 10대들의 인기를 끌었다.


'강타와 아이들' 이라고 이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메인 보컬 '강타'가 거의 독점하다 싶은듯한 분량과 당시 열풍이던 영어 교육에 힘 입어 장기자랑 타임에 선보이면 우상으로 떠오르는 '토니' 의 랩핑 등.

하지만 3위까지 올라갔음에도 이들에겐 장벽이 있었으니 바로 라이벌 '영턱스 클럽' 이었다.

해체 이후 행보가 궁금했던 멤버 '이주노' 의 프로듀싱과 히트곡 문화재 '윤일상' 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토종 뽕 FEEL' 의 새로운 곡, <정> 을 통해 멤버 전원이 '나이키' 댄스를 선보이는 모습. 너도나도 따라하는 유행에 한동안 정형외과가 성황일 뿐 아니라, 대중적인 멜로디가 더 크게 먹혔던 이들은 'H.O.T' 를 눌러밟는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두운 분위기와 표정을 하고서 움직이는 5명의 남학생이 기성 세대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건, 이 곡의 작곡가가 바로 R&B 가수였던 '유영진' 이라는 사실. 이후로 SM 의 많은 타이틀을 담당하게 되지만, 소울을 내뱉던 남자가 이런 강렬한 느낌의 곡들을 계속 만들어낼 줄이야..


어쨌든 시기 적절치 못하게 라이벌의 크나큰 인기로 정상에 확 오르지 못했던 아쉬움은 이들을 로또의 길로 인도하게 되니, 이 곡을 통해 그들은 아이돌의 단군 왕검으로 솟아난다.



온 국민을 따뜻하게 만든 다섯 색깔의 사탕

카리스마가 강렬한 곡을 많이 남긴 그들이지만 아직도 최고의 곡을 고르라면 'CANDY' 가 아닐까.

'언타이틀, 영턱스클럽' 등 신인 가수들의 평균 연령대가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하면서 댄스곡의 입지가 절정에 다르기 시작하던 96년 말.


데뷔곡이 너무나 어두웠다면 후속곡은 지나치게 밝고 상큼하고 귀엽다. 노래 자체가 명곡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장착한 아이템의 파워가 크지 않았을까 한다. 각 멤버 고유의 색깔이 지정되고, 이를 나타내는 뽀송뽀송한 소재의 털 옷 의상.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였던 그룹 '스크림' 이 내리막길을 걸으며, 이들의 의상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가요계 TOP 3 안에 들어갈 의상 컨셉.

대중적인 멜로디와 분위기에 힘입어, '내가 누구다' 라는걸 알리기라도 하듯 멤버들의 이름을 앞뒤로 박아넣고, 털모자와 털장갑 그리고 털가방을 착용하고서 방방 뛰어다니는 이들의 이미지 변신은 '오빠, 동생' 가릴것 없이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을 잡았음은 물론 인기에 한 몫하고자 따라하는 남학생 등 전 국민이 보며 즐겼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정말 좋아했던 곡이지만 하두 많이 들어서 이가 썩을 지경이다.


<CANDY>의 대박으로 인해 나 또한 지갑이 많이 털렸다. 한창 만화 영화 맛집이던 KBS 의 <꾸러기 수비대 지우개 세트>, <지구용사 선가드 로봇 세트>, 그리고 <야구 스티커 북> 에 용돈을 모두 쏟고 있던 남자 아이가 형들에게 푹 빠져 문구점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이들로 인해 '엽서, 학용품, 다이어리' 등이 불티나게 팔림과 동시에, 너도나도 '포스터 칼라' 를 얼굴에 쭉 발라주며 셀프 아티스트가 되며, 동대문 시장 등에서는 이미테이션 의상 들을 사러 다니는 청소년들로 인해 전통 시장에 활기까지 불어넣어주니 패션과 음악의 선도 그룹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후속곡 <못난이 컴플렉스>로 활동중이던 라이벌 '영턱스클럽' 과의 격차는 크게 벌어지게 되며, 5주 연속 1위 등 이들의 이미지 변신은 대박 행진이었으며, 이를 통해 첫 곡은 어둡고 무겁게 / 후속곡은 밝게 라는 아이돌 그룹의 정석이 생겨나기도 했다.


튼튼한 골반이 있어야 가능한 문희준의 '파워레이서 춤', 몸으로 연장 도구까지 구현해해는 장우혁의 '망치춤', 혹시나 이름이 '단지' 였다면 교실에서 긴장하고 있었을 후렴의 주인공 '토니' 등. 이들의 부가 상품으로 인해 츄파춥스도 많이 팔리고, 이렇게 그들은 이후 등장하게 될 10대 그룹을 양산시킨 아이돌 문화의 선조가 된 셈이다.


허나 아쉽게도 겨울 방학에 인기있던 곡이라 이 곡의 안무를 외웠음에도 뽐낼 기회가 없었다. 억지로 다니게 된 <ECC 어린이 영어 학원> 의 쉬는 시간은 10분 밖에 되지 않았으며, 3월이 되어 <반장 부반장 임원 수련회> 를 통해서야 선보일 수 있게 되었으니 타이밍은 지나갔다..



활동 중단을 공식 선언하는 신인의 패기

새 앨범 준비를 위해 휴식기에 들어간다고 기자회견까지 하는 신인이 있었던가.

수록곡 <널 사랑한 만큼> <내가 필요할 때> <오늘도 짜증나는 날이네> 의 메들리로 마무리 활동에 들어간 이들. 큰 성공으로 미국 진출까지 동시에 노리며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인기를 얻게 된 이들의 부담감은 얼마나 컸을까.


그리고 이들의 성공으로 당초 계획을 틀어버린 기획사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명곡 <CANDY> 가 있다 해도 이들의 1집은 많이 부족하다. 과거 SM 아티스트들을 리메이크한 곡이 많으며, 보컬 '강타' 에게 너무 너무 너무 몰아준듯한 파트 배분. '강타와 아이들' 타이틀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문제가 2집에서 풀어야 할 중요 과제였을 것이다.


홍블러's PICK : CANDY, 널 사랑한만큼, 전사의 후예


2. 진정한 10대들의 우상이 되다!!

2집 - Wolf & Sheep (1997)

2집 징스크의 시작인것인가..

97년은 가요계의 황금기였다. 지금도 밤사나 별밤, 토토가 등의 스테이지에서 울려 퍼지는 많은 댄스곡들이 이 시기에 나왔으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 본인 또는 직장 상사들이 날라다녔던 시기의 노래들. 너무나 컴백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1집이 대박나면 2집은 잘 되지 않는다는 '2집 징크스'.


1집 종료 후, 미국에서의 활동. 그렇게 아메리칸 소울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탄생한 2집은 '그래피티' 라는 외국 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개성을 표현했다. 멋있고 유행을 선도하는 느낌은 좋은데, 지금봐도 한 눈에 알아보기 힘든 형태로 보아 나는 구세대인것인가.


정품 구매 홍보를 위해 홀로그램 스티커까지 동봉한 2집은 1집과 확연히 달랐다. 사운드가 세련되었고, '강타와 아이들' 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파트 배분.


컴백 당시, 비슷한 또래의 그룹들이 데뷔 혹은 컨셉 변경으로 활동 중이었으며 댄스곡이 가장 풍성하던 시기였다. 유피의 <뿌요뿌요>, 영턱스클럽의 <질투>, 박진영의 <그녀는 예뻤다>, 젝키의 <폼생폼사>, 쿨의 <해변의 여인>, DJ DOC 의 <DOC와 춤을> 등.

                         양들의 모든 것은 그의 전리품, 에이 늑대 빌어먹을 짐승같은 놈들


하지만 위기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리더 '문희준' 의 왼쪽 어깨 부상으로 인해 컴백이 연기. 또한 타이틀곡 <늑대와 양> 의 직설적인 욕설 가사를 공중파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케이블은 용인해줬는데 보수적인 공중파는 다르다, 심지어 이들의 염색과 스타일까지 규제시켜 머리에 두건을 두르게 만드는 일 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통수치는 전쟁은 하지 말자는 메세지의 <늑대와 양> 은 갱스터 리듬 속에 알앤비가 섞인 꽤 오묘한 곡인데 지금 들어도 세련됐다. <전사의 후예>가 '강타와 아이들' 이란 수식어가 붙었다면, <늑대와 양> 은 '문희준과 아이들' 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문희준' 을 강하게 밀어주는 구조다.


팬들은 지금도 이 무대를 통해 팔팔한 20살의 그가 보여준 카리스마와 춤선에 유튜브 댓글과 좋아요를 누를지 모른다. 여기에 파트가 늘어난 막내 '이재원' 의 풋풋함과 이소룡 성대모사로 빙의한 '장우혁' 의 랩핑이 더하며 곡이 완성된다.

SBS의 <충전 100% 쇼> 였던걸로 기억한다. 간지 폭발했던 컴백 무대는 물론 이후 여러 가수들의 댄스 배틀 타임에서 타도 H.O.T 를 외치던 젝키의 '이재진' 과 '장우혁' 의 대결. 내가 봐도 이 대결의 승리는 '이재진' 이었다. 넘어진 후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소소한 추억에도 불구하고 멤버 부상, 활동 제약 등의 문제는 원활한 컴백 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했으며 <CANDY> 로 심어뒀던 그들만의 임팩트는 빛 바래져가는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역시 아이돌이라면 방방 뛰는 매력이 있어야...

완쾌된건 아니지만 계속 제약적인 활동에 머무를 수 없었던 그들. 방법은 매우 무난한 후속곡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CANDY>로 그들을 국민 그룹으로 만들어준 작곡가 '장용진' 의 신곡 <행복> 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그는 유피의 <뿌요뿌요, 바다> 와 같은 곡으로 전자 오락 음악을 듣는듯한 사운드로 인기 몰이 중이었고, 당연히 후속곡도 떡상했다, 심지어 'H.O.T.' 가 부른 것이 아닌다.


밝은 분위기의 <행복> 또한 메인 보컬 '강타'에게 치중한 듯한 아쉬움은 있다. 그래서인지 활동 중에는 <CANDY>의 지배자였던 '토니' 와 후렴을 나눠 부르는 등 변화를 주었다. 그들이 라이브를 가장 많이 한 시기가 바로 이 때가 아닐까 한다.


97년 상반기부터 흐름 타기 시작한 '라이브 LIVE' 무대. 립씽크만 하는 가수가 진정한 가수라 비난하는 여론이 많았고, 이를 의식한듯 MBC 부터 쏴올린 라이브 무대는 이후 KBS 에까지 영향을.

그래서 지금도 유튜뷰를 찾아보면 97년 활동 가수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열악한 사운드 환경에 소리를 질러대는 가수들의 직업 정신을 볼 수 있다. 또한 전주나 간주에 애드립을 넣음으로써 라이브 인증까지 확실하게 시켜주니 일석이조 아닌가.


당시 멤버 '토니' 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가을 운동회를 맞아 이렇게 스타일을 선도하는 친구들이 항상 '토니' 혹은 '강타' 역할을 맡았으며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냥 부러울 뿐이었다. 전면에 나서지 못 하는 나같은 평범한 친구들은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 을 보유한 친구 집에 모여 공포 게임을 즐길 뿐.


케이블 채널이 가정집에 보편적으로 보급되었기에 당시 가요계가 르네상스라 불리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억지로 일어난 여름방학의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여러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접할 수 있었던 시절.


언제든 비디오로 녹화할 타이밍이 있었으며, 오히려 공중파보다 더 자주/다양하게 보여주는 케이블의 매력은 아이돌 팬덤을 더 굳건히 만들었다. 여기에 '투니버스' 라는 만화 채널까지 가세하니, 여러모로 즐길 거리가 많았던 문화 르네상스 시기가 아닌가.

<CANDY> 와는 다른 느낌의 통통 튀는 이 곡으로 그들은 2집 징크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 라이벌로 언급되던 젝키의 <폼생폼사> 와의 1위 대결. <슈퍼 선데이> <토토즐> 등 많은 주말 예능에서 보여준 꽁트의 향연. 또한 꽤 들을 곡이 많았던 앨범의 장점을 살려 <GO! H.O.T>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을 섞어 부르기 까지 가장 많은 활동이 있었던 시기였다. 그만큼 2집은 따뜻하고 추억이 많은 앨범이다.



꼰대는 물러나라!! 이게 10대들의 메세지다!

10대들의 우상이라 불리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청소년의 입장을 대변하는 음악을 통해서이다. 이런 이미지가 강하게 박힌 곡이 바로 후속곡 <We are the future> 일 것이다. 차분한 머리와 밝은 의상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갑자기 다크하면서 반항적인 이미지로 발차기를 헤대는 강렬함은 한 앨범에서의 활동이라기에 큰 이슈였다.


어른들이 시대는 갔으니 강요하지 마라,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든다는 청소년 반항 운동을 선도하는 <We are the future>는 빠른 유로비트의 곡으로, 안무가 가장 유명하다. 간주 부분을 장식하는 그 때 그 때 다른 장우혁의 랜덤 타임, 아직도 왜 이름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문희준의 진공관 춤.


'수학여행' 에서 이 곡을 장기자랑에서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학교의 자금 사정으로 전면 취소. 열심히 연습했는데 그렇게 쓸쓸하게 졸업을 향해 가니 여러모로 아쉬운 추억의 곡이다.

그리고 전주와 간주를 꾸며주는 단체 군무는 '이것이 아이돌 군무의 정석이다' 를 제대로 보여주는 구성이다. 하지만 원곡의 2절 후렴은 '문희준' 이 맡았으나 방송에선 '토니'로 바꾼건 과연 라이브의 빡셈 때문일까, 아직도 '단지'에 열광하는 팬들의 피드백이 무서워서였을까...


그들을 대표하는 명곡 TOP 3 안에 들어갈 이 곡은 노래와 안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연말에 활동함으로써 '가요 대상' 에도 비벼볼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는 영광을 안겨준 곡이다. 한 앨범에서 냉탕과 온탕을 완전히 오갈 수 있는 그룹이 얼마나 되겠는가.


최초 계획대로라면 20대가 된 멤버들은 내보내고, 계속해서 10대들로 이루어진 그룹을 이어가야 했겠으나 큰 성공은 그런 계획 따윈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고, 이들은 10대 최고의 가수로 군림한다.

콘서트 준비와 새 앨범 준비를 위해 슬슬 추운 겨울 분위기를 타며 <사랑의 리퀘스트> 등을 통해 주로 보여주던 발라드 <너와 나> 는 팬들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담은 곡으로 지금도 콘서트 막판에 부르는 떼창 곡일 것이다.


그런데 2집 활동을 하면서도 그들은 뮤지션들의 지갑을 탈탈 털어내는 성지 <낙원 상가> 에 자주 방문하며, 또 다른 고민을 갖고 있었으니, 바로 아티스트로써의 성장일 것이다.


홍블러's PICK : 2집 앨범은 다 듣도록 하자, 너무 좋다~~~



3. 싱어송 라이터의 길로 들어서다

3집 - Resurrection (1998)


나라 정치 좀 제대로 하고 삽시다!! 꼰대짓도 그만하고!!

약 9개월이라는 꽤 긴 공백기를 가졌던 그들. 98년 여름 즈음, 그들의 놀라운 3집 계획을 접한건 연예 기사가 아니라 정기 구독 중이던 학습지 '빨간펜' 의 스타 코너에서였다. 3집에는 멤버들의 자작곡이 수록될 거라는 계획. 이미 '문희준' 의 자작곡인 <후에..> 는 콘서트에서 공개된 바 있으나 멤버 전원이 작사/작곡/편곡을 한다는건 가요계에서 완전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전체 곡 수가 늘어났다.


'서태지와 아이들' 에서는 '서태지'가 전곡을 담당한건 맞으나, 멤버 한 명의 업적이었지만 'H.O.T' 는 멤버 전원이 그렇게 하지 않는가. '부활' 이라는 의미를 가진 3집의 타이틀은 꽉 막힌 머리 속의 편견을 깨고, 아티스트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미 라이벌 '젝키' 는 3집으로 한창 활동 중이었으나, 늦게 시작한 3집이었음에도 'H.O.T.' 이기에 가능했던 인기.

똑바로 살아라, 정치도 제대로 좀 하고!! 라는 메세지를 던지는 사회 풍조 타이틀곡 <열맞춰!!>.

IMF 를 겪으며 깨달았던 사회의 부조리와 삐뚤어짐을 청소년을 대변하여 토하는 그들은 역시나 10대들의 우상 같았다. 아직도 청소년인 막내 '이재원'과 함께 기껏해야 20대 초반인 남자들이 이런 주제의 노래를 타이틀로 내세우다니 뚜렷한 개성 아닌가.


당시 남중을 다니고 있던 나는 더 이상 뽐내기 위해 가수들의 안무를 외울 필요는 었었지만 좋아하는 우상의 컴백과 멋진 무대는 언제나 이상이었다.


<열맞춰> 의 기막힌 구성은 다양한 리듬 변화에 있다. 락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이 곡은 다양한 속도로 변주되며, 템포에 맞는 다양한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곡이다. 한 때 밴드 활동하던 시기 이 곡을 락 버전으로 연주할 정도였으며, 이 곡을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강렬한 사회 메세지는 이후로도 곡 전체를 둘러싼 'ROCK SPIRIT' 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과거부터 따라다니던 표절 시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전설의 락 그룹 'Rage Against The Machine' 의 <Killins in the name> 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하여 젝키팬들에겐 강렬한 웃음거리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이런 비난 여론 떄문인지, 아니면 너무나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가사와 컨셉 때문인지 가장 보수적인 '한국 방송 KBS' 에서 이들의 무대는 본 적이 없는거 같다.



리즈 시절을 찍어낸 절정의 아티스트

후속곡 <빛>은 '강타' 의 자작곡으로 앨범의 1번 트랙이기도 하다. 지금도 SM 콘서트의 엔딩 테마로 쓰이기도 하는 이 곡은 멤버의 자작곡으로 1위를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IMF로 어려웠던 전 국민을 떠올리며 써내려간 가사와 멜로디를 정작 작곡가 본인은 아직 아마추어라 모든게 '엉망인 노래' 라 평가했으나, 너무 겸손한 발언이다. 이 곡으로 그들의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남겼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또한 남달랐다. 당시 얼굴없는 가수 '조성모' 의 <To Heaven> 과 '스티브 유' 의 <나나나> 의 뮤직비디오가 아닌 뮤직 드라마를 만들어난 '김세훈' 감독의 힘을 얻어 우울했던 다섯 남자가 다시 일어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근데 너무 길어서 5회차 이상 감상은 지쳐가더라..


이전과 마찬가지로 밝은 사랑 노래를 다룰거라 생각했지만 앨범에 그런 곡은 없으며, 사회 전체를 힐링하는 테마의 이 곡은 사랑 타령만 하는 아이돌의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룹 전체 이미지도 그러하나, 약 5년이라는 시간을 통틀어 가장 뽀송뽀송하면서 화사한 이들의 리즈 시절 외모를 볼 수 있다.


향후 몇 년간 가요계의 '4대 아이돌' 이라 불리는 그룹인, 핑클의 <루비>, 젝키의 <커플>, S.E.S. 의 <Dreams come true> 등. 특히 비슷한 분위기의 곡이던 젝키의 <커플>과 매주 1위 대결을 하던 당시의 짜릿함은 지금 회상해도 두근거린다. 그만큼 두 곡 모두 좋았다.

 IMF 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시기였음에도 가요계는 아이돌이 전성기를 맞으며 활기를 띄었고,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도 더 과격한 연출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송사 또한 라이벌 구조를 활용하여 계속 대결할만한 자리를 만들었고, 이것이 아이돌 팬덤 문화를 광적인 수준으로까지 끌고 간 배경이 되기도 했다. 3집 대박은 이들을 가요 대상의 자리까지 올려놓았으니 전 앨범 중에서 가장 우수한 활동 아니었을까.


케이블에서 한창 뮤직비디오도 많이 보고, 방송사에서 밀어주던 인싸템 'G SHOCK 의 BABY G' 를 타보겠다고 얼마나 전화 응모를 해댔는지. 가장 차분하면서 순수해보였던 활동 시기였다. 그리고 한 가지, <SBS 인기가요> 에서 '빛' 의 공식 첫 무대에서 '토니' 파트에 나오셨던 누나. 지금도 유튜브를 보시며 뿌듯해하고 계시지 않나요.



말도 안 되는 것들이 현실이 되는 그룹

그들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은 이런 소문을 많이 퍼뜨렸다. 과연 진짜 멤버들이 쓴 곡일까. 분명 타인이 만든걸 자신들의 곡이라 속인것이다 라며. 3집은 모두 14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멤버들의 자작곡은 9곡이다. 그리고 앨범 전체가 무거운 주제인 편이다.


특히 'JTL' 에 속하는 세 멤버는 사회 비판 등 꽤 어두운 주제로 곡을 썼으며, 청소년을 의식해서인지 올바른 생각을 심어주자는 의도로 만들어진듯한 곡이 많다. 자살 방지 등..


그런 마이너한 평판에도 리즈였던 3집. 이들의 인기는 통신사 광고를 뛰어넘어 청소년들의 짤짤한 동전을 싹쓸이할 음료 사업까지 진출하여 '칠성사이다'와 '코카콜라'를 위협했으며, 생각보다 맛이 밋밋하여 몇 번 마시다 질린 기억이 있다.


게다가 멤버들의 머리카락으로 뽑아낸 'DNA' 를 목걸이에 담아 파는 등 세상에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상품들이 줄지어 나왔고, 그것이 먹혔다.


<빛> 의 성공 이후, 멤버들의 자작곡을 메들리로 짧은 활동을 이어가던 그들은 아이돌 그룹 최초로 '세종 문화회관' 콘서트를 가졌고, 당시의 화사한 헤어 컬러가 저 음료수들에 분명 영향을 주었을거라 생각한다. 최고조의 아이돌 격전 시기를 치뤄낸 3집 활동. 이젠 인기를 넘어, 그들이 뱉어놓은 아티스트의 성장. 자작곡을 계속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들의 고민은 중간에 이어진 '드림콘서트' 의 열광과 '마이클 잭슨 콘서트' 한국 대표 게스트로 초청되는 등 신비주의 컨셉이 점점 커져감과 동시에 곪아가고 있진 않았을까 한다.


홍블러's PICK : H.O.T. 의 팬이라 어쩔 수 없다.. 3집도 모두 들어보도록 하자!!


4. 너무 무거워서 문제였던건 아닐까...

4집 - I Yah! (1999)

악재로 시작하는 활동과 신비주의의 절정

4집은 멤버들의 자작곡이 늘어나고, 멤버들의 나레이션과 토크 타임이 들어가며 전체 트랙수는 늘어났다. 지나치게 신비주의를 고집한 이들의 준비 기간은 너무나 미스테리했기에 4집은 대체 어떤 컨셉으로 나올 것인가에 대한 이슈가 항상 따라다녔으며, 마치 그들의 공식 컴백 시기로 정해진듯한 9월이 다가올 수록 더 심해졌다.


타이틀곡 <아이야> 는 99년 한창 꽃 피워야할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씨랜드 사건> 을 모티브로 한 분노의 외침이다. 베토벤의 '월광' , 모차르트 소나타를 샘플링한 이 곡은 <열맞춰> 보다 훨씬 무겁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대체 이런 템포와 분위기의 곡에 어떤 안무를 선보일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해냈다. 매우 진한 눈 화장과 '강타'를 제외한 멤버 전원의 오렌지색 염색. 그리고 다가가기 무서운 의상 컨셉. 특히 '문희준' 의 갈고리는 지금도 회자된다.

<씨랜드 사건> 의 각 피해자를 모티브로 하여 구상한 의상 또한 화제가 되었으며, 여기에 뉴욕에서 촬영한 어두운 뮤직비디오가 한 몫 더하며 카리스마의 끝판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당시 라이벌 '젝키'는 4집 타이틀 <Com'back> 으로 활동중이었으나, 그들의 카리스마와는 완전히 다른 신비주의에 가려진 이들이 내뿜는 아우라의 크기 자체가 달랐다.


이들의 활동은 공중파가 아닌 단독 콘서트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주 경기장 콘서트'. 나 또한 이 현장에 있었다. 일명 <918 콘서트> 로 불리는 이 공연은 마이너한 쪽으로 많은 일을 낳았다. 개인 무대 중 '문희준' 의 추락 사고로 인해 여러 팬들이 실성하고, 심지어 다음 날 아침 한 소녀는 자살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미 이들로 인해 9시 뉴스로 보도되고 있던 '조퇴 금지령', '콘서트 소식' 등은 이들의 사회적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데 이러한 마이너한 일이 생기니 기성 세대들에겐 얼마나 좋지 않게 보였을까.

더 이상 춤을 출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치료와 함께 억지로 이어갔던 4집 활동. 리더 '문희준' 의 부담은 어마어마했을거라 생각한다. 멤버 중 가장 팬덤이 강했으며, 영향력이 컸던 멤버였기에. 그를 추앙하던 여학생들의 광적인 팬심이 '베이비복스' 의 한 멤버를 지옥 경험까지 밀어넣게 되는 등 할 말이 참 많은 4집이다.


당연히 보수적인 '한국방송 KBS' 는 이들의 무대를 받아들여주지 않았으며, 이후 방송사 일정 조율 실패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향후 'SBS' 에는 SM 패밀리 전원이 활동 제약이 걸려버리니. 4집 자체는 너무 무거운 앨범이다.


과연 이것이 20대의 초반의 남성들이 평소 고민해볼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오한 가사와 분위기. 음악은 성장하였지만 너무나 무거워진 탓에 이들의 장점이던 대중성이 떨어지고, 아티스트로써의 길을 걷겠다는 '탈 아이돌' 전략이었던 것인지. 아티스트로 성공한 앨범일지는 모르나 대중들에겐 임팩트가 남지 않는 앨범이었다.



제약받는 10대들의 우상, 그만큼 기억에 남지 않는..

공중파에선 'MBC 음악캠프' 만이 그들을 받아들여줬다. 그들의 재결합을 살린것도 '무한도전 MBC' 이고, 이쯤되면 그들은 문화방송에 감사패를 수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후속곡 <투지>는 전쟁을 반대하다는 '문희준' 의 자작곡으로, 락 사운드가 빵빵 터진다. 이미 예전부터 락을 좋아하긴 했지만 댄스 그룹에 이런 사운드가 먹혀 들어간다니 정말 놀랍다. 솔로 때도 그렇게 했더라면...

일부 방송을 통해서만 볼 수 있던 활동이기에 더욱 신비주의가 강하게 와 닿았으며, 이 활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을 것이다. 팬들만이 기억하는 그들만의 리그.

세기말을 대변하는듯한 사이버 느낌의 테크 웨어와 컨셉. 계속봐도 어색한 '토니' 의 <드래곤볼 스카우터> 컨셉, 지나치게 화장해서 부담되는 '이재원' 의 뒤로 넘긴 머리와 눈 화장 등. 무대 자체에서 뿜어나오는 카리스마는 폭발하지만 그만큼 여러 활동을 하진 못해 아쉬운 곡이기도 하다.


멤버 전원이 20대가 되며 성숙한만큼 음악도 성숙. 마지막 후속곡인 <환희> 는 '강타' 의 자작곡으로, 우아한 군무가 인상적인 띵곡이다. 'MBC 음악캠프' 와 'KMTV 쇼! 뮤직탱크' 무대를 통해 자주 볼 수 있었다.

이쯤되면 '문희준' 의 부상도 점차 완화되어 가고 있었을테고 활동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들의 4집은 왜 이리 기억에 남지 않는걸까. 그건 앞서 언급했듯, 활동 제약이 너무나 많았기에 대중에게 노출이 덜 되었기 때문이며, 너무나 무거운 주제의 앨범이 대중성과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만, 중국 진출도 시도하는듯 내부적으로는 확장의 움직임이 많았겠으나 3집에서 터뜨렸던 대박 행진이 4집까지 이어지지 못한채, 그저 존재 자체가 신비로우면서 거대한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남긴듯 하여 아쉽다. 과연 그들은 어떠한 변신을 보여줄 것인가.


홍블러's PICK : 투지, 아이야, The way that you like me, 815, Korean Pride, 환희


5. 명작의 탄생과 급작스러운 중단

5집 - They are nothing different with us (2000)

우아한 명작을 만들어낸 다섯 명의 아티스트

5집은 전곡을 자작곡만으로 만들겠다고 이미 발표한 상태였기에 더욱 부담이 컸을 것이다. 누군가의 곡이 타이틀곡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대 라이벌인 '젝키' 는 이미 드림콘서트를 통해 해체한 상태였고, 급부상한 후배 가수 '신화' 와 새로운 국민 라이벌 'god' 의 상승 등으로 행보가 주목됐던 5집.

대한민국 망작 영화제에 꼭 올라가는 '평화의 시대' 촬영과 함께, 전자음 가득한 OST 로도 활약했지만 결코 청룡영화제를 꿈꿀 수 없는 그저 그러한 작품으로 마무리 되었다. 한 달 정도 발매가 연기된듯한 5집은 서늘한 가을에 발매되었으며, 처음으로 아파트에 이사 와서 기분이 너무나 좋던 난 KBS 드라마 <가을동화>에 푹 빠져있던 감성소년인지라 5집이 더욱 와닿으면서도 아쉽다.


리더 '문희준' 의 자작곡인 <Outside Castle> 은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느린 템포의 곡이다. 무려 5분이 넘는 긴 시간임에도 방송에선 풀 버전도 모잘라 전주의 백댄서 입장 시간까지 늘려서 활약할 수 있었던건 최고의 그룹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놀라웠다.


항상 강렬하고 템포가 어느 정도 있는 곡으로 컴백했었는데 R&B 라고 해야할까, 현악단의 웅장한 사운드는 물론 울림이 풍부한 남성 테너들의 코러스가 <야인시대 2부>를 떠올리게 한다.

보통 댄스라 하면 드럼 비트가 들어가게 마련인데, 비트없이 현악기의 선율만으로 이루어진 전주를 '문희준, 장우혁' 의 독무로 꾸미는 참신함, 그리고 후반부에 앨범 타이틀인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를 수화로 넣는 센스는 물론 곡 전체를 동글동글한 클래식 느낌의 안무로 만든 '문희준' 의 역량. 무대 전체를 보자면 위문 공연을 보는듯한 완벽한 구성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외에 3곡을 수록한 그의 자작곡은 5집에서 가장 빛났다. 2000년 중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만든듯한 <파랑새의 소원>, 이어폰 꼭 끼고 들으면 번개 소리와 감성이 폭발하는 <FOR 연가>.


어느덧 중견가수가 되어버려 더 이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에도 부담스러웠을 당시를 생각하면 꽤 성공적인 도전이었다.

일단 멤버 전원의 곡만으로 채웠다는 점에서 놀랍지 않은가. 4집까진 거의 한 곡씩만 수록하던 'JTL' 멤버들 또한 5집에선 두 곡씩을 수록했으며, 첫 트랙부터 들어보자면 좀 더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주제를 말하는 이들을 접할 수 있다. 4집에선 적었던 예능 활동까지 확장했다.


특히 KBS의 <자격지심> 이라는 코너를 통해서는 멤버 각자가 새로운 퀘스트에 도전하는 모습을 통해 이들이 장기간 활동할 거라는걸 예상했다.


조성모의 <아시나요>,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 핑클의 <NOW> 등 쟁쟁한 경쟁자가 있었음에도 1세대 아이돌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낸 5집. 처음 앨범을 듣자마자 후속곡은 바로 이 곡이겠구나 하는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절치 못했던 이별

후속곡으로는 강타의 <그래 그렇게>. 막강한 라이벌 'god' 의 <거짓말>과 본격 배틀을 뜰 수 있을것으로 기대했던 이 곡은 3집 히트곡인 <빛> 의 연속선상에 있는 곡이다. 과격한 안무는 버리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무대 구성을 통해 중견 가수 포스를 뿜어냈던 그들. 문희준의 충격적인 '세일러문 머리'만 아니였다면 좋았겠지만..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반듯한 이미지로 알려진 강타의 '음주 운전' 사고로 인해 활동 전면 중단. 전 앨범 프로듀싱인만큼 여느 때보다 공들였을 5집은 그렇게 급작스레 마무리 되었고, 이는 자연스레 'god' 가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입지를 굳히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음주 운전 뿐이었을까. 슬슬 계약 만료가 다가오며 재계약 여부에 대한 이슈도 있었다. 아직도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카더라 통신들. 특정 멤버들 우대로 인한 차별 대우, 그리고 그들을 대신하기 위해 데뷔를 기다리고 있는 후배 가수들의 존재.


'보아'를 필두로 SM 은 벌써부터 2세대 아이돌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온갖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는 가운데 2001년 2월에 열린 콘서트.

<227 콘서트> 라 불리는 이 공연은 해체설이 오가는 가운데 열렸으며, 그것도 '이재원' 의 부상으로 인해 계속 연기된 공연이다. 초반 멘트에서 리더 문희준은 해체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가장 길면서 안정적인 공연으로 마무리 하였으나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이 될 줄은...


결국 이런저런 불만이 있었던 세 멤버는 기자회견을 통해 SM 을 이탈, 사실상 팀 해체가 되었다. 이후 남은 두 멤버는 솔로 앨범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이렇게 가요계의 1세대 레전드는 물러나게 되었다. 젝키와 비교가 많이 됐던 부분이다.


해체는 없을거라 굳건히 말했는데, 해명의 시간도 어떤 절차도 없이 급작스런 해체는 SM의 건물을 팬들이 던진 단백질 덩어리로 물들게 했으며 소속사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홍블러's PICK : Outside Castle, 그래 그렇게, My Mother, 파랑새의 소원, For 연가, Natural Born Killer


새 앨범은 안 나오나요...


해체 이후, 2004년 SBS 신사옥 오픈 행사에서 뭉친 뒤로 이들의 완전체는 볼 수 없었다. 각자 그룹과 솔로 활동을 병행하며, 방송에서도 어색한 만남을 가지진 않았을까. 멤버가 하나 둘 제대를 하며, 재결합에 대한 카더라 통신은 몇 년째 지속되었을 뿐. 2014년 'god' 가 9년만에 완전체로 뭉친걸 시작으로, 무한도전 토토가의 열풍으로 'S.E.S', '젝키' 등이 결합과 신곡을 발표 했다.


토토가 3편의 주인공이었던 이들 역시 이를 통해 뭉쳤고, 많은 콘서트를 거치며 재기에 성공했다. 멤버의 개별적인 문제로 활동은 다시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어릴적 가장 좋아했던 그룹이지만, 해체 당시에도 지금도. 뭔가 속 시원하지 않은 최신 근황은 왜 이리 신경 쓰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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