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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10. 2021

가요계 최초의 스트리트 파이터 - DJ.DOC

어둡고 우울한 히스토리는 이들에게 들어보자


DJ.DOC 1기 (Dream Of Children - 디제이덕)

이하늘, 박정환, 김창렬


DJ.DOC 2기 (디오씨)

이하늘, 김창렬, 정재용



가요계의 악동이라하면 반드시 먼저 언급되는 그룹이자 'Street Fighter' 로 많이 알려져있는데, 멤버 전원이 정말 그 정도로까지 '파이터' 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각종 사고로 파출소, 경찰서를 자주 다녔고 이로 인해 방송 펑크 및 사회 기사면에도 언급되는 등 좋고 나쁜 이슈를 모두 가졌던 그룹이다.


항간에는 너무 딱딱한 선후배 군기 문화 및 특정 그룹과의 불화 등 마찰이 유독 많았는데, 활동 초창기 이들이 가졌던 '그냥 천연덕스러운 말썽꾸러기' 이미지는 지금은 '사고 치는 말썽꾸러기' 이미지가 되고 말았다. 어릴적부터 형님들의 음악을 즐겼던 나도 성장해 감에 따라 가사와 음악으로 적극 내세웠던 사회의 변화 및 그 역동적인 활약상을 되돌아보자면 음... 진짜 굉장한 형님들이다.


각 지역에서 DJ 와 랩퍼로 활약하던 이들이 모여 94년 결성된 그룹 'DJ. DOC' . 유명 DJ '신철' 의 적극적인 스카우트로 모여 초창기엔 '디제이덕' 으로 불렸다 이후엔 그냥 '디오씨' 로 불리고 있는 이들의 음악은 어땠을까. 음악 외의 이슈로 유명한 분들이지만, 여기선 음악에 대한 이야기만 집중토록 하자.



시도는 좋았으나 결국 표절인가...

1집 - 슈퍼맨의 비애 (1994)

MZ 세대는 이들의 데뷔곡 <슈퍼맨의 비애> 를 들으면 경악할 것이다. 노래 제목과 랩핑 스타일, 그냥 음악 자체가 아주 저급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당시를 살았던 이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그룹 '소방차' 이후 3인조 남성 댄스 그룹이라는 것이 이슈였고, 이들의 음악은 해외 음악을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만한게 데뷔곡 <슈퍼맨의 비애> 부터가 표절로 시작한다. 당시 해외 인기 아티스트 'MC Hammar, Tag Team' 등의 스타일을 따라가려던 그들의 느낌은 충분히 앨범에 실렸지만.. 데뷔곡은 전주부터 'Creedence Clearwater Reviva' 의 <Pround Mary> 를 그대로 따라했으며, 랩도 누군가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했다.


할아버지께서 당시 MBC <시사 매거진 2580> 을 보시며 분노에 차셔서는 나에게 '너는 절대로 딴따라가 되면 안 된다, 못 만들면 저렇게 TV 에 나오는거야' 라며 음악을 이 때부터 금지 시키셨기에 기억에 남는다. 그룹 이름이 'Dream of Children (아이들의 꿈)' 인데, 당시 나 같은 아이들이 좋아하던 슈퍼 히어로 '슈퍼맨' 에게도 아픔이 있다는 내용이 관심을 끌었지만, 저런 표절 시비로 아이들의 꿈을 완전 무너뜨렸다.


리어카의 '길보드 차트' 이외에 학교 앞 문구점에서 '슬러쉬, 불량 과자' 등을 먹을 때 스피커에서 자주 나와 익숙했었는데 어쨌든 노래는 병맛이면서 '슈퍼~~맨, 슈퍼~~~맨' 하는 후크와 'JUMP (점프)' 를 '쪼 쪼 쪼 쪼' 라 발음하는 등 그냥 웃긴 아저씨들로 보였다.


스타일은 부티나고 뭔가 세련된거 같은데 어설퍼 보이는 느낌이 강했던건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같은 파워풀한 무대를 계속 봐왔기에 너무 비교가 되서 였을 것이다. 아직 'R.ef' 는 데뷔하지 않았지만 이후 행보를 비교해보아도 남성다운 멋짐은 뒤쳐진 느낌이다. 

후속곡 <두근거리는 상상> 은 그냥 저냥 들을만했던 곡인데 오그라들었고, 진실은 그들만이 알겠으나 불화설로 인해 탈퇴했다 하는 랩퍼 '박정환'. 노 코멘트 하겠다.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활동 중단에 들어간 그들은 그 자리로 해체할 줄 알았으나 리즈 시절이 너무나 멋진 형님을 영입하면서 인기 폭발에 나서게 되니..


꽃미남 영입으로 멋진 오빠 스타로 급상승!!

2집 - DJ. DOC 2 (1995)



공부는 하기 싫고, 유독 더웠던 95년 중반 즈음. 팥빙수 가게를 지나가다 흥겨운 멜로디가 나오길래 잠시 멈췄다. 무슨 노래인지 궁금하여 멜로디를 대충 외운 뒤 곧바로 단골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아저씨에게 들려뒀더니 '아, 그거 디제이덕 2집이야' 라는 답변. 아니, 그 슈퍼맨 부르던 아저씨들이 컴백했다고? 그런데 사진을 보니 한 명의 얼굴이 완전 바뀌어 있어서 성형 수술 한 줄 알았다.


랩퍼 '박정환' 의 공백을 채운건 보컬 '김창렬' 의 절친이었던 '정재용'. 2000년대 중후반 <M.NET 의 순결한 재용> 을 포함하여 후덕한 이미지가 음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저씨로 알고 있겠지만, 리즈 시절 영상을 보라. 놀랍다. 내가 봐도 진짜 잘생긴 형이다. 이전까진 아저씨 그룹으로 보였는데, '정재용' 의 영입으로 형님들로 급 바뀌었다. 그리고 잘 몰랐던 '김창렬' 의 외모도 팍 튀어오른듯 했다.


힙합 FEEL 이 가득했던 1집과 달리 2집은 댄스 그룹에 맞는 대중성으로 꽉꽉 채워져있다. 타이틀곡 <머피의 법칙> 을 통해 무언가 어려운 용어를 익힌 듯 하여 스스로 뿌듯하였고, 가사가 신선해서 좋았다. '동성동본 결혼 금지에 반대', '동네 목욕탕 정기 휴무 반대' 등의 메시지를 던진 그들의 노래는 나 같은 초등학생들한텐 유머, 인기, 중독성을 모두 가져다 준 히트곡이었다.

95년 여름 시즌은 한국 댄스 가요계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던 시기. 당시 라이벌로 룰라 <날개 잃은 천사>, 김건모 <잘못된 만남> 등이 있었으며 1집 실패와 달리 1위를 여러 번 차지하며 인기가 너무 많이 올랐다. 쳐다보지도 않던 반 친구들도 이제는 '오빠 오빠' 라며 사진을 모으고, 방송을 비디오 녹화. 이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건 여름 맞이 극기훈련을 가면 장기자랑 시간이었는데, 11개의 반 중에서 절반 정도가 이 노래를 선택했으니 게임 끝이다.


멋있는 안무도 없고, 그냥 설렁설렁한 무대인데 어째서 이렇게 인기가 많았을까. 그건 노래의 대중성이 딱 들어맞았으며 멤버 재정비로 외모 평균치가 상승했다는 점에 있던건 아닐까. 강렬한건 아닌데 분명 멋있고 정감 갔다.

타이틀곡 <머피의 법칙> 이외의 수록곡들도 꽤 괜찮다. 대중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추천 곡은 아래에 적어두겠다. 어쨌든 이 앨범을 통해 95년 여름을 잡아먹으며 최고 댄스 그룹으로 성장, 연이어 발매한 3집의 성공은 시간차를 느낄 새 없이 더 큰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홍블러's PICK

머피의 법칙, 이제는 달라, 이별의 모습, 남아있는 꿈, 다이어트



전성기를 맞은 이들에게 휴식은 없다!!

3집 - D際2德 (1995)


최고의 레전드를 만들어낸 앨범

앨범 이름을 억지로 한자에 맞춘 저 신선한 시도를 보라. 앨범 자켓은 완전 다크하고, 코걸이에 레게 머리에 파격적이다. 심지어 앨범 사진 중엔 상의 노출에 팬티 라인을 그대로 보여주는 센세이션함까지. 인기 스타는 그렇게 해도 괜찮던 시기다. 대신 어른들은 보기 흉하다며 다시는 내놓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이 3집이야말로 'DJ. DOC' 의 최고 명반일 것이다.

2집 활동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추운 겨울 3집으로 컴백. 2집은 구매하지 않았지만 3집은 참을 수 없었고, 너무 맘에 들어 2집까지 역으로 구매하게 되었으니 명반 인증이 끝났다. 음악적으로 보자면 3집이 확~~~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다. 내가 명반이라 말하는건 방송에서의 성적이 너무나 우수했기 때문이다. 수록곡이 동시에 1위 후보가 되었다면 어떤 느낌일까. <겨울 이야기> 와 <미녀와 야수>.


3집 타이틀곡 <겨울 이야기> 는 작곡가 '윤일상' 의 작품으로 3집은 그의 힘이 컸다. <머피의 법칙> 과 비슷한 파트 분배와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미 댄스 그룹으로는 인정받는 그들이었기에 겨울 시즌에 어울리는 이 쾌활한 노래는 여느 댄스 그룹과 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컴백홈>, 비록 표절 시비로 아쉬웠지만 정면 대결이 기대됐던 룰라 3집 <천상유애>, 파워풀한 기세가 위협적인 터보 1집 <나 어릴적 꿈> 등. 이외에도 95년 겨울은 참 좋았는데, 학교에선 '크리스마스 씰' 구매와 각종 반짝이를 활용한 손편지 시즌. 그리고 발라드도 좋은 곡이 많았다. 그 중 '강수지' 의 <혼자만의 겨울> 을 추천한다. 그 외에 이소라, 뱅크, 김원준, 김정민. 명곡이 너무 많다.


이렇게 좋은 노래가 가득하면서 친구들, 가족들, 지인들과 따뜻함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넘쳤던 시기였기에 트렌드에 맞춰 <겨울 이야기> 또한 시즌에 찰떡 궁합이었기에 스키장에서 주구장창 흘러나왔을 것이다. 3집의 인기는 다음 해인 96년 1분기까지 주욱 이어진다. 봄이 찾아오는데도 1위 후보에 계속 랭크되고 거리에 울려퍼지는 등 이 앨범은 혜자다.



1위 행진의 끝판왕을 보여준 앨범

지금이야 어둡고 거친 이미지만 이렇게 발랄한 사랑 노래를 부르던 때가 있었다는 것. 대중성 가득한 수록곡들은 동시 1위 후보에 올라갔기에 이들의 3집 활동은 곡 단위로 끊어서 했다기 보다는 그냥 3집 자체가 이슈였다.

당시엔 몰랐으나 지금 가사를 곱씹으며 들어보면 씁쓸한 감정을 일으키는 <Remember - 그녀의 속눈썹은 길다> 는 지금껏 그들이 보였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우울한 남자의 착잡함을 보여준다. '정재용' 의 무덤덤한 나레이션을 '이하늘' 이 랩으로 감정을 끌어올리고, '김창렬' 이 온 감정을 쏟아 토해낸다. 메인 보컬 '김창렬' 은 보컬 실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음역대가 매우 높다. 왠만큼 질러야 하는 곡을 노래방에서 불러본다면 혈압 오른다. 절친 '임창정' 과는 다른 느낌으로 부르기 버거운 곡을 소화하는 보컬이랄까.



또 다른 수록곡 <미녀와 야수 - OK? OK!> 는 가장 인기가 많았던 곡으로 기억한다. 96년 3월, 임원 수련회 장기 자랑 시간에 이 곡을 택한 학급이 가장 많았으며 나 또한 첫사랑이 이 곡으로 무대에 올라 환심을 사기 위해 가요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 곡도 작곡가' 윤일상' 의 작품인데, 이쯤되면 그는 'DJ.DOC' 를 제대로 먹여 살린 지원자라 해도 되겠다. 나이트와 길거리 등 어디서 틀어놔도 흥을 유발하는 전형적인 '작업 멘트 노래' 이면서, 12살이 받아들이기엔 난해한 가사들 '이성, 전율' 등. 지금이야 많은 이들이 코믹하거나 쎈 이미지로 알고 있으나 이들의 초창기 노래 중 가장 우수한 곡으로 꼽고 싶다.

보통 봄 시즌에 열리는 '드림 콘서트' 까지 끌고 갔던 이들의 인기. 수록곡 <나의 성공담> 은 보컬 '김창렬' 의 고음역 소화의 한계를 들을 수 있으며 이미 3집 초기부터 즐겨 들었던 노래였으나, 이렇게 긴 활동 기간까지 인기가 쭈욱 이어진다는게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노래 정말 높다. 노래방에서 절대 못 부른다. 이는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같은 빅스타들도 그런 결과치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박 3집을 마무리 지으며 그들은 거의 휴식도 취하지 않은채 곧장 여름 사냥에 나섰으니, 스페셜 앨범으로 돌아오게 된다.


홍블러's PICK

겨울 이야기, Remember, 미녀와 야수, 나의 성공담



전성기를 맞은 이들에게 휴식은 없다!!

3.5집 - Summer (1996)



미국 힙합 스타일을 하고 싶었던 그들이었으나 기획사의 주장으로 대중 댄스 가요를 선보였던 그들. 이 스페셜 앨범이 그들이 마지막으로 기획사에 이끌려갔던 활동이었을 것이다. 3집 중단 약 4개월 만에 발매한 이 앨범은 신곡보다는 기존 노래들 중 여름에 어울리는 곡들과 콘서트 버전을 짜집기 했을 뿐인데, 타이틀곡의 성공 때문인지 구하기 힘든 레어템이면서 나 역시 꽤 좋은 추억을 가진 앨범이다 (앨범 자켓은 관리하기 정말 힘들게 만들었더라..).


타이틀곡 <여름 이야기> 는 지난 겨울 이들을 최정상으로 올린 <겨울 이야기> 의 여름 버전이라 보면 되겠다. 그래서 4집에는 <봄 이야기> 로 나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역시 뭔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기엔 방학 시즌이 껴 있는 '여름, 겨울' 이 베스트인가 보다.


이 때부터 슬슬 방송 사고가 일어났던걸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술자리를 즐기고, 이래저래 상승한 인기 탓에 자만한 것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하늘' 의 경우는 방송 펑크로 다른 사람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대신 무대에 올라간 것도 두어번 본 걸로 기억한다. 이미 탑 스타의 위치에 있기에 그 여파가 얼마나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청량한 무대와 달리 그들의 속사정은 어땠을지 본인들만 알 뿐이다.



96년 여름 또한 댄스 그룹 전쟁이었는데 기사회생한 룰라의 <3! 4!>, 상극을 달리는 그룹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95년 가수왕 김건모의 <스피드> 등. 다른 가수들의 곡에 비해 <여름 이야기> 는 템포도 느리고 화려한 퍼포먼스는 전혀 없다. 설렁설렁 추기만 하면 끝이다. 여름 방학 시즌인데도 이 노래에 그렇게 매달렸던건 3집으로 정상에 오른 이들을 우상화하며, 다가올 개학에 대비하여 친구들에게 '나 이 노래 춤 출줄 안다' 라며 자랑하고 싶었던 기대 심리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 영어 학원에서도 여자 아이들은 이들을 좋아했고, 나 역시 아버지와 놀러다닐 때 차에서 항상 흥겹게 들었던 곡이다. 짤막한 여름 한 철 활동을 마무리 한 뒤 여기저기 들려오는 소소한 사건들. 그리고 10대 위주의 그룹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이들의 입지도 달라져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변화를 주고자 미국까지 건너가 만든 4집은 어땠을까.


홍블러's PICK : 여름 이야기



이런 유치뽕짝이 통한다고?!

4집 - DJ DOC 4th Album (1997)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음악이다!

거의 1년 만에 시작한 4집 활동. 97년 봄 즈음에 접한 4집 활동이지만 나는 그들을 기사에서만 접했지 방송으로는 볼 수 없었다. 기사의 내용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사회 비판, 폭력적이고 거친 가사, 멜로디 '등 심의 제도에 걸려 도저히 공중파에선 내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앨범이 나온건 알았으나 당연히 13살이었던 나는 구매가 어려웠고 그저 기사를 통해서만 접하니 대체 어떤 음악을 실었길래 이렇게 방송계에서 막는 것일까 의아했다.


1번 트랙 <삐걱 삐걱> 부터 혼란스러운 사회를 비판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의아했다. 이후 4집을 들어보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건드린 노래는 사실 <삐걱 삐걱> 한 곡 밖에 없는데 왜 그렇게 문제가 많은 앨범이라 한 걸까. 그건 아마도 휴식기에 그들이 일으킨 소소한 사고들로 인해 방송 이미지가 떨어져 대중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라는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삐걱 삐걱> 외의 수록곡 중 일부도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담고는 있으나 그렇게까지 막을 상황이었을까. 이후 여러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예능 프로에 나와 언급한 얘기지만 '염색, 문신, 과도한 스타일' 등 규제가 심했던 당시였기에 음악은 물론 존재 자체가 마이너하게 바뀐 그들의 컴백을 어떻게든 방송에선 막아보려 했던게 아닐까라며 학생들 사이에선 카더라 통신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묻히는 건가 싶었던 4집은 호기심을 자극했고, 우연한 예능 프로에서 구원자를 만남으로써 본격적인 방송 활동에 나설 수 있었으니...




역시 대중적인게 제일이지!

KBS 주말 예능 프로 <토요일! 전원출발> 의 MC '신동엽' 이 춤 하나를 유행시켰다. 어르신들이 좁은 관광 버스에서 흥에 겨워 몸을 좌우로 흔드는 동작에서 끌어낸 '관광 버스 춤' 이 히트친 것이다. 그리고 게스트로 나왔던 그들의 타이틀곡 <DOC 와 춤을> 이 함께 어우러지며 이 안무가 노래의 공식 후렴 안무가 되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에도 당시 '신동엽' 의 춤사위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타이틀곡 <DOC 와 춤을> 은 과거 그들의 타이틀곡과 비교한다면 너무 느낌이 다르다. 너무 타이트한 활동에 지쳐서 모든 걸 내려놓았나 싶을 정도의 이미지 변신이었는데. 이 노래 또한 방송계에서 막으려 했던 배경을 보자면 가사에 답이 있다.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나는 나에요 상관 말아요' /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면, 반바지 입고서 학교에 가면 깔끔하고 좋을텐데'. 이렇듯 관습적이면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의 조직, 회사나 학교 등을 향해 파격적인 변화를 주자 부추기는 노래다.


게다가 이 노래는 사회 전체에 변화를 요구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너무 튀어보이면, 즉 개성이 강하면 양아치 소리를 듣는다면 기성 세대는 이를 비행 청소년으로 바뀌는 지름길로 말했고 나 같은 'X세대, 신세대' 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이런 민감한 주제를 매우 가볍고 코믹한 멜로디와 춤, 무대에서 선보이다니, '웃는 얼굴로 비난하기' 와 같다 볼 수 있다.

<DOC 와 춤을> 은 가사처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겨부르고 따라추는 국민 가요가 되었으며 97년 여름 전쟁에서 당당히 정상에 있던 곡이다. 이외에 수록곡인 <해변으로 가요>, <EVERYBODY>, <무아지경> 또한 인기 폭발이었으며 바닷가, 놀이 공원 등에 가면 항상 빵빵 터져나왔다. '에버랜드' 의 '캐리비안 베이' 가 대폭 홍보를 통해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시즌이기도 했으며 이렇게 신나는 곡이 많았떤 97년 여름은 내 생에 최고의 여름 방학이었다.


홍블러's PICK

해변으로 가요, 무아지경, DOC와 춤을, 꼴통 일기



대한민국.. 제대로 꼬집어 주겠다!!

5집 - The Life... Doc Blues 5% (2000)


깊고 어두운 밑바닥에서의 방황

5집이 나오기 까지 무려 3년이 걸렸다. 가요계는 10대 위주의 음악으로 바뀌었고, 가수들의 평균 연령대도 떨어졌으며 다양한 컨셉을 가진 이들이 등장. 사회는 예전보다 많은 규제가 풀리고 완화되었고, 발전했다. 그러나 이들의 소식은 거의 접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폭행, 돈, 소속사, 인간 관계 등 여러모로 마찰이 심했던 휴식기였던 듯 하다. 명확한 진실은 그들만이 알겠으나, 보컬 '김창렬' 은 솔로 앨범을 잠깐 발표하긴 했었으나 여러 문제가 많아 사실상 5집 참가는 거의 못했다 봐도 된다. 5집의 'Special Thanks to' 에서도 '한 것이 없어 부끄러운 앨범' 이라고 말했으니, 5집은 완전체 'DJ. DOC' 의 앨범이라 하기엔 어렵다.

음악적인 충돌, 소속사와의 정산 문제와 개인 악재들이 겹치며 많이 힘들었던 떄로 안다. 꽤 오랜 기간동안 PC 방에서 끼니를 떼우며 우울했던 시기. 언론에선 이들의 일을 과장하거나, 허구로 기사를 내보내고 소속사 파워가 없었던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진 못했고 그저 기사를 보며 분노만 쌓아갔을 뿐이다. 이들의 부정적인 이미지 파급이 컸던건 당시 사회 기술 'PC 통신' 의 발전에 있다.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의 PC 통신을 통해 10대들은 이들의 카더라 통신을 여럿 접할 수 있었고, 비슷한 취미의 온라인 동호회가 생기며 엄마의 전화비 등짝 스매쉬를 맞으면서도 관심 분야가 같은 이와의 온라인 대화를 이어가는게 즐거웠던 때. '스타크래프트, 레인보우 식스 '등의 인기로 PC 열풍이 일어났기에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들이 카더라 통신을 접하는건 당연한 일.

얼마나 많은 칼을 갈고 있었을까. 이들의 분노는 직설적으로 쌓여갔고,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정통 힙합 음악. 이 모든 것들을 끌어모아 발매한 것이 5집인데 문제는 '심의 제도' 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4집이 순한 맛이었다면 5집의 수위는 '불닭볶음면' 에 속한다. 여러 힙합 뮤지션들과 힘을 합쳐 악바리 정신으로 내놓았는데 '방송, 공권력' 등을 대놓고 욕하는 이 앨범을 누가 허용하겠는가.


그랬기에 이 앨범은 발매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청소년들은 구매할 수 없었고 호기심만 자극했다. '19세 미만 청취불가' 라는 빨간 딱지가 앨범에 붙은채 호기심만 유발. 그러나 옳지 않은 방법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MP3' 라는 신문물이 등장하면서 어둠의 경로로 구할 수 있었다. 비록 최고음질은 아니더라도 다운 받아 듣고 다니며 '우와, 진짜 칼 제대로 갈았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자신들을 매도 시킨 두 랩퍼의 분노가 가득 담긴 <L.I.E>, 대한민국 검찰 총장이 나서야 할거 같은 <포조리> 등. 

왜 청소년 청취 불가인지 이해는 간다. 이미 청소년들의 욕설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기성세대의 걱정은 많았으며 나처럼 '질풍노도의 시기' 를 겪고 있는 10대는 안 그래도 일상에서 욕을 쓰는데 이 앨범을 통해 그런 습관이 확산될 수도 있었다.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니는데, 5집은 리듬 좋아 라임 좋아 입에 쫙쫙 달라 붙는다. 그것이 욕이란걸 인식도 못한 채 노래가 좋으니 따라한다. 그러면서 알게 모륵 욕이 입에 달라 붙는다. 그래서 어른들이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본 5집이다. 청소년들에게 이 곡을 자유롭게 불러제낄 기회는 방과 후 노래방이었기에 더욱 널리 퍼지게 된다.


앨범이 발매되고도 3개월 정도는 온라인 상에서만 인기있던 앨범의 궁금증은 그나마 대중성 있는 곡이 나이트 등을 통해 인기가 상승하더니 라디오 차트도 점령. 결국 방송계는 이들을 공중파로 불러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 곡으로만 활동한다는 전제 조건을 걸고 말이다. 그리고 이를 허락한건 항상 신문물에 앞장서는 문화방송 MBC 였다.




한정된 공중파 활동과 레전드 명곡

DOC를 대표하는 곡 <RUN TO YOU> 는 사실 나에겐 맞지 않았다. 오히려 초창기 버전의 댄스 곡이 더 좋았지.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마이너 무대에서 치고 올라온 이 곡은 2000년 여름 1위를 차지하며 확 바뀐 가요 시장에서 '부활한 노장의 파워가 이 정도다' 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규제도 많이 풀렸던 때라 가슴 속에 품었던 모든 분노와 무대를 향한 열망이 뿜어져 나왔으며, 부족했던 공중파에서의 열기는 다른 무대를 통해 충분히 채워갔다.

청소년들에게는 사회 비판에 앞장서는 멋진 형들로, 20대 들에게는 '나이트 문화' '콘서트' 에 딱 들어맞는 대한민국 최고의 흥겨운 이들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다만 보컬 '김창렬' 은 이 곡에서 후렴을 당당히 맡고 있기에 5집 전체와는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이질감은 있었으나 어쨌든 셋이 같이 있어야 DOC 아닌가. 그러다 문득 기억났다. '아, 형들 원래 이름 뜻이 Dream Of Children' 이었지..'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되었고 머리가 커진 청취자들에게 이들의 음악적 변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저작권 문제로 인해 작곡가 이름을 포함하여 뒷말이 많기도 했는데 궁금한 이들은 검색을 통해 찾아보면 된다. 예민한 사항이기에 이들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데도 방송에서 쉽게 언급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정식 활동은 <RUN TO YOU> 밖에 없었으나 앨범 전체가 명반으로 꼽힌다. 사회 비판적인 어두움 이외에 저녁 드라이브를 즐기며 들으면 딱 좋을 <Boogie Night> <사랑을 아직도 난>. 이들의 음악은 5집 전후로 나뉘어도 될 정도로 진정으로 하고 싶어했던 음악을 보여주며, 언론의 말도 안 되는 카더라 통신과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뚝심 있는 아티스트가 DOC 다.


홍블러's PICK : 명반 5집은 전부 들어줘야 세기 말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잘 몰라서 미안해요 형님들...

6집 - Love & Sex, Happiness (2004)


6집은 4년만에 나왔는데, 아쉽게도 이 앨범부터는 나의 추억이 거의 없다. 캠퍼스 새내기 생활에 푹 빠져 나 또한 알코올을 친구삼아 사회를 즐기고 있었으며, 주말 드라마 <애정의 조건> 에 희노애락을 느끼는 감성남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은 폭발적인 아이돌 그룹이 부재한 상태였기에 노멀한 아티스트들의 활동이 많았기도 했고.


그 해 여름 싱글 <One Night>을 먼저 발매했고, '아이리버' 의 MP3 광고 BGM 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타이틀곡 <I Wanna> 는 아직도 센 이미지가 가능하다는 사실 파악 정도에만 그쳤고, 수록곡 <수사반장> 등 5집에서 약간 순해졌을 뿐이지 어릴적만큼 그들의 음악을 즐기진 않았다. 오히려 노래방에서 즐겨 부른건 <Street Life> 인데 가사를 외우고 부른다면 어느새 힙합 뮤지션이 된 듯한 느낌에 뿌듯할 것이다



벌써 11년 전이라니.. 마지막인가요...

7집 - 풍류 (2010)



전성기를 함께 했던 아티스트들이 아예 활동을 중단했거나, 예능 프로에서 웃기는 캐릭터, 시원치 않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아직도 이렇게 정규 앨범을 낼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게다가 2세대 아이돌 시대로 완전 접어들었기 때문에 그 괴리는 더 심했다. 타이틀곡 <나 이런 사람이야> 는 그저 신나기만 할 뿐, 확실히 나는 이제 이들의 음악 스타일은 즐기지 않게 되었다. 걸그룹의 노예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앨범이 나온지도 벌써 11년 전이라니, 시간이 정말 빠르다. 이후로도 이어진 소소한 사고들과 개인 활동. 그리고 여러 성인 콘서트나 클럽 행사 등을 통해 간간히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무한도전 토토가' 이후 다시 활발해지기도 했다. 이제 이들의 신곡을 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가 너무 변했고 이제 이들은 회사로 치면 퇴직을 앞두고 있는 임원급에 해당하는 경력 아닌가.


뒤늦게 진정으로 원했던 음악 '힙합' 을 내세웠지만 그들을 둘러싼 많은 에피소드가 활동을 억누른거 같아 아쉬운 부분도 있다. 나에겐 강렬한 이미지보다는 아직 초창기의 풋풋한 댄스그룹의 이미지가 더 정겨운 형님들. 만약 이 글이 그들에게 읽혀지고, 대면할 기회가 된다면 소주 3병은 기본으로 비우고 시작해야 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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