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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여파로 인해 몇 차례나 개봉을 연기했던 작품이 드디어 개봉했다. 여러모로 기대를 끌었던 작품이다. 영화 <건축학개론> 이후 9년만에 컴백하는 '이용주 감독' 의 작품이라는 점, 믿고 보는 훈남 배우 '공유 & 박보검' 조합이 보여줄 브로맨스 케미, 그리고 한국 최초로 '복제인간' 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
예고편을 통해 적정 수준의 특수 효과와 액션 장면, 그리고 드라마 요소가 잘 섞인 영화라 생각했을 사람들이 많을텐데 그렇지 않다. '민기헌 & 서복' 이라는 두 캐릭터의 질문과 대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집중한 작품 <서복>은 어땠을까.
뇌종양으로 인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전직 특수요원 '민기헌 (공유)'. 직장 상사로부터 특별 프로젝트를 수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보호 대상자를 통해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적극 나서기로 한다. 대상자의 이름은 '서복 (박보검)', 줄기세포와 DNA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복제 인간이며 그에게서 뽑아낸 골수액으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함은 물론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는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테러 습격으로 강원도 원주로 '서복' 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것이 그의 임무. 그러나 그 과정에도 누군가의 습격이 있었으며 위급한 상황에서 두 사람은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지만 그들이 가야 할 곳은 어디에도 없는듯 하다.
이용주 감독의 스펙트럼은 대단하다. 사람 섬뜩하게 만드는 공포 영화 <불신 지옥> 이후, 멜랑꼴리한 감성의 <건축학개론>, 그리고 이번엔 무거운 삶의 주제를 던져보는 <서복> 으로 돌아왔다. 복제인간 소재는 이미 많은 해외 영화를 통해 접했지만 이 뻔한 메시지를 감독은 관심 있던지라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보고자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다.
<건축학개론> 이 좋았던 이유는 남녀의 사랑이라는 소재 자체가 흥미로운 점도 있지만, 잔잔하게 풀어나가는 과정과 영상미, 화면구도와 적절하게 섞인 BGM 이 잘 어우러져 꽤 괜찮은 감성 드라마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부분이 <서복> 에서는 독이 되었다.
<서복> 의 주요 구조는 두 주인공이 도피하며 서로 살아온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되돌아보고, 서로 영향을 받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인생 고민 공유' 형태로 진행된다. 비록 초능력을 갖고 있는 '서복' 이라 해도 그건 아주 잠깐 나올 뿐이며 작품 전개에 어떤 전환점도 가져오지 못 한다.
안 그래도 철학적 주제를 담은 영화이기에 완전 드라마 장르로 가던가, 해외 영화처럼 적정 수준의 오략 요소를 섞어야 하는데 <서복> 은 이 요소들의 비중이 어중간하게 섞여 있다. 또한 주변 인물들의 활용이 미흡하다. <건축학개론> 이 옆에서 깐죽거리며 조언 해주는 감초 역할이 있었기에 등장 인물은 많지 않더라도 진부해질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그러나 <서복> 에서 두 사람을 제외한 인물들은 그저 '서복' 을 노리는 악한 인간으로써의 모습만 나올 뿐 두 사람의 성찰 과정에 있어 어떤 변수도 제공하지 않는다. 계속 잔잔하게 흐르던 영화가 마지막 급작스레 커져버린 스케일 속에서 서로의 무력을 활용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는게 뜬금 없었다.
원래 두 주연 배우는 남녀로 설정하려 했으나 멜로 요소가 강하게 부각될듯 하여 브로맨스로 바꿨다 하는데 이는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야기에 집중하여 풀어나갈 거라면 관객에게 감정과 분위기를 전환시킬 요소가 중간 중간에 삽입되었어야 했으나 <서복> 은 시종일관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삶의 고뇌만 보여줌으로써 <건축학개론> 에서 느꼈던 감독 특유의 감수성은 느끼지 못했다. 로드 무비에 복제인간 소재만 얹었을 뿐.
물론 예쁜 경치와 영상미는 좋다. 두 훈남이 같은 화면에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아름다운 영상 속에 풀어가는 이야기와 방법은 너무 루즈하여 감독의 신작이 반갑지는 않다.
두 배우의 연기는 좋았다. 실제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있기에 마치 인생 선후배가 되돌아보는 삶의 여정 같아 보여 좋기도 했고, 캐스팅 자체는 흠 잡을게 전혀 없다.
'서복' 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태어났고, 계속 이용되어야 하며 한편으론 제거되야 하는 대상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갇힌 공간에서 아무것도 접하지 못 한채 죽지도 않는 삶, 얼마나 이런 지옥을 견뎌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건으로 맞딱뜨리게 된 세상은 호기심 가득한 곳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시장 풍경, 먹거리, 옷가지와 자연 경치 등. 그는 이 모든걸 책이나 화면으로만 접했지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현장은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서복' 에겐 신기할 뿐이다.
이 점에서 픽사의 <소울> 이 생각났다. 태어나기 싫다 다짐했건만, 실제로 살아보니 피자가 맛있고, 음악과 사람들이 좋으며 삶의 느낌을 누려보고 싶어져 세상에 나아가기로 결정. '서복' 은 이미 태어난 존재이지만 인간들에게 억눌려 있고 그 또한 <소울> 처럼 세상을 접하며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은 앞으로 어찌할 것인지를 생각해 나가는 과정이 비슷하다.
'서복' 은 초능력이 있다. 압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것인데, 수 많은 능력 중 이런 설정을 가지게 된건 아마 영화 마지막, 정부 사람들을 구덩이에 쳐박아 넣고 그 곳에서 아둥바둥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처절한 모습을 강조하고자 설정한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저 이 능력을 실험의 부작용이라 설명할 뿐, 이 설정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는 않아 아쉽다.
그에 반해 '민기헌' 은 평범한 인물이다. 그의 가장 큰 역할은 '서복' 의 말에 유일하게 귀 기울여 주는 어른이라는 점. 그 또한 평탄한 삶을 살아오건 아니지만 답해줄 수 있는 선에서는 대응해주고, '서복' 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며 자신도 변화해 가는 과정. '서복' 을 노리는 주변 인간들이 너무나 야비하고 가혹하게 나오기 때문에 '민기헌' 의 인간성은 더 돋보인다.
특별한건 없는 영화다. 우리는 이미 많은 해외 영화에서 복제 인간을 접했으나, 그들은 막대한 자본을 들여 화려한 장면을 넣음으로써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 로써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는다. 핵심 주제인 삶의 대답은 물론이고. 그러나 '서복' 은 앞선 요소는 최소화하고, 드라마에 치중한다. 바로 이 점이 '복제인간' 을 SF 장르로 봐야할 진 모르겠으나 소재만 듣고서 이런 임팩트를 기대했을 관객들에겐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그저 이용주 감독의 생각을 영상화 시켰고, 대사로 풀어나간다는 점이 영화의 핵심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주제의 영화는 기술을 악용하려는 인간의 악한 면을 강조한다. '서복' 을 이용해 불로불사의 삶을 살고,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인간들만 선택하여 치료해주겠다는 절대신 같은 오만함. 모두가 불멸의 삶을 산다면 자유로워지고, 이로 인해 야기될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제거해야만 한다는 임무.
나는 이를 통해 과거 철학자 '홉스' 의 사상이 떠올랐다. 인간들이 모두 자유로운 삶을 살면 누군가 이를 통제해야 하며, 그 중심에 있는 자가 권력자가 되고 그들이 모여 계급 사회와 국가가 탄생한다.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통제해야 하며 문명의 힘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처럼 권력을 갈망하는 '리바이어던' 이 등장하면서 사회가 유지되어 왔다는 점.
작품 속 인간들도 자신이 우선이기에 그 동안 누려왔던 것을 나눠야 한다는 불만, 앞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에 대한 욕망으로 '서복' 을 그저 실험체로써 대하고 있으며 이는 몇 십년간 봐왔던 진부한 상황이자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볼 만한 주제이기도 하다.
굳이 극장 가서 볼 작품은 아닌듯 하다. 잔잔한 배경과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만으로 풀어가는 과정은 큰 화면보단 집의 작은 화면으로 보는게 더 집중이 잘 될 것이며 혹시나 루즈한 전개 속에서 잠들고 싶다면 곧바로 전원 내리고 뻗는게 나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건축학개론> 의 임패트가 워낙 커서 기대했지만 9년만에 나온 신작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부족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감독님의 다음 작품은 음.. 고민해봐야겠지만 우선은 <서복> 을 접해보도록 하자.
<유튜브 홍블러 탑골극장> 을 통해 리뷰 영상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