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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16. 2021

집에서 고민했어도 될 성장기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그냥 홈그라운드에서 멍때리고 고뇌했어도 충분치 않았을까


한국의 '스티븐 킹' 이라 불리는 작가,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를 시작으로 팬이 되고, '진이 지니' 에 이르기까지 약 10년간 그녀의 작품에 빠져 지내왔다. 그런 그녀의 완전 초기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제1회 세계 청소년 문학상 당선작이자 이번엔 어른이 아닌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과격한 주제와 문체를 펼치는 그녀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했다.


유일하게 뒤를 보고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중학생 3명, 파란 개 한 마리.

노란 우의를 입고 코끼리 등에 올라탄 그들이 위에서 바라본 광경, 생각은 무엇일까..

이 책을 보기 전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Q. 스프링 캠프??

 - 야구 용어로 시즌에 들어가기 전 선수들이 전력 보강을 위해 들어가는 전지 훈련


Q. 광주 민주화 운동

 - 군부 정권에 대항하여 진정한 민주주의를 전개하자며 민중을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 



Story

사랑하는 아버지는 실종, 어머니의 재혼식 이후 마음이 흔들리고 있던 중학생 준호. 결혼식 직후, 준호는 절친인 규환이 민주화 운동의 중심자인 친형을 해외로 도피시키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전달하려 '임자도' 라는 섬에 갈 계획을 듣는다. 


그런데 자전거 사고로 인해 규환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형을 만나러갈 기회를 잃자 이 상황을 지켜본 준호는자신이 대신 역할을 맡기로 한다. '임자도'로 가기 위해 우선 광주로 이동해야 했는데, 다행히 그를 도와 줄 수 있는 사람과는 이야기가 다 된 상태이고, 이동을 위해 그냥 친구인 '승주' 네 집에서 운영하는 막걸리 배송 차량에 몰래 승차하기로 한다. 


그러나.. 자신만 있을 줄 알았던 그 곳에서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듯한 주인집 아들 '승주' 와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온 '정아', 그리고 이상한 할아버지와 '정아'네 집에서 키우는 포악한 강아지 루스벨트.

이들이 '임자도'로 이동하며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이 과정에서 어떤 성장을 하게 되는지...



Point 1. 정유정 작가의 주특기, 빠른 전개와 생생한 상황 묘사


정유정 작가 작품의 큰 특징은 바로 빠른 전개와 생생한 상황 묘사이다. 항상 그녀의 이야기는 정적이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상상케 한다. 두 명 이상의 인물이 서로 대립하는 상황뿐 아니라, 단 한 명의 인물이 회상을 한다거나 심적 고뇌에 대해서도 그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면서 이해가 쉽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표현 방식, 필체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비꼬는 듯 하지만 그 비유가 매우 적절해서

'아 현재, 이 장면은 이러한 분위기나 색감, 감정으로 진행되고 있는거구나'  라는 느낌을 잘 준다. 요즘 처럼 책을 읽지 않는 청소년들에게도 조금만 집중하면 마치 영화를 보듯 술술 익히는 마법이 펼쳐질 것이다.


나만큼이나 울화통이 터진 불쌍한 영혼이 하늘에다 주먹질이라고 해댄 모양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아랫배가 심각하게 아파 왔다. 삼 일 동안 대장에 갇혀 있던 묵은 덩어리들이 하필 그 중대한 상황에서 진군의 나팔을 불고 있었다.


막걸리 트럭에서 펼쳐지는 인물간의 다툼, 그저 조용히 걸어갈 따름인 도로 위 상황, 열차 레일, 숲 속의 추격.

이렇게 정적이든 동적인 장면이든 그 호흡이 매우 빠르고, 연결이 자연스러워 쉽게 장면을 상상하고 그것은

언제 이 정도나 읽었지 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흡입력을 갖고 있다.


작품의 감초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강아지 '루스벨트' 인데..  이 강아지는 포악하고 고집이 강한데 대사 한 마디 못하는 동물인데도, 어떤 감초 역할을 하는지 직접 읽어보면 상상이 되는 모습에 재밌으면서도 놀라울 뿐이다.


소소하면서 엉뚱한 에피소드의 열거가 '약 2/3 ' 지점까지는 좋았으나, 후반부는 갑자기 식어버린 찌개처럼

밍밍하다. 무언가 가장 견디기 힘든 외부 상황 (사람으로부터 생기는) 이 이들의 성장을 확정 짓는 일화가 있었으면 햇으나 그러지 못했다. 즉, 힘이 훅 빠져버린 것이다. 급작스런 마무리랄까...



Point 2.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성장한 것인가...


과연 제목이 상징하는 성공은  주인공 '준호' 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에게도 그런 것인가.

주인공 '준호' 는 대체 무엇을 위해 성장해야 하는 건지 공감 되지 않는다. 정말로 죽은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와의 다툼 이후로 가족을 버린 것인지 모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사랑... 


애초에 왜 굳이 규환을 대신해 마을을 떠나고 싶었던 것인지, 여정 도중 떠올리는 아버지와의 추억은 

약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준호가 한층 더 성숙해지는 연결 고리가 되지 못했다.  그냥 아버지와의 슬픈 사연이 있는 아이. 그뿐이다. 


절망이라는 조수, 희망이라는 갯바위. 만조가 되면 갯벌에 박힌 바위는 바닷물 아래로 잠겼고 간조가 되어 물이 빠지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마다 바위는 뿌리가 파헤쳐져 조금씩 아래로 기울어져 있었다. 조수에 마모되어 작아져 있었다. 그리고 육년이 지난 그날 아침에 와서는 뿌리째 뽑혀 갯벌에 드러누워 있었다. 바다로 떠날 채비를 하고 마지막 조수를 기다리는 조막만 한 돌멩이가 돼 있었다.


그 누구도 준호가 하고픈 꿈을 막은 사람도 없고, 핍박한 사람도 없다. 그저 혼자만의 고민일 뿐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일탈이라면 일탈이라 할 수 있겠으나 대체 왜 그 위험한 길을 떠나는지, 모험심도, 

도전성과 그의 고뇌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진짜 옆에 있었더라면 패줬을 성격의 '승주' 라는 캐릭터는 끝까지 툴툴거리기만

하는 그런 암적인 학생. 온갖 상처를 안고 있는 '정아' 는 그저 타이밍이 맞아서 이 우스꽝스러운 여정에

함께 했을 뿐, 대체 어느 부분에서 자신의 앞날을 결정한 것인지 또한 공감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그들을 최종 목적지에 끌어다 줄 가이드일 뿐이지 성장의 의미는 없다. 결국 이들은 규환의 형이 도피할 수 있는 서류를 전달해줬다 뿐이지 '스프링 캠프' 라는 용어를 붙일 정도로 이들이 사흘이란 짧은 시간 동안 성장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저 그들의 사연이 뻔하면서 안타까웠을 뿐.


그리고 이들의 감정 변화가 와 닿지 않는다. 후반부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 상황 속에서 생긴 연민 때문인지 왜 '승주' 는 협력하는가. 규환의 형은 그리 쉽게 위험을 무릎쓰고 찾아온 '준호' 를 엄청 나무랐다가 마음을 열어주는지. 그럴 수 있지만 이들의 감정 변화를 표현할 충분한 여유가 없었다..




작가 스스로도 어떤 주제와 방식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지 고민인 상태에서 쓴 작품이라 했다.

다 읽고 나니 그 말이 이해된다. 앞서 언급했듯 중반부까지의 소재가 '로드 무비'를 보는 것처럼 유쾌했지만

그들의 여정의 목적이 무엇이며 얻어낸 성장 결과가 미흡하기에 용두사미로 마무리 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청소년 문학상이라는 수식어 답게 독서에 흥미 잃은 요즘 청소년들이 읽어보기에 괜찮은 작품.

재미로 보자면 말이다. 무언가 이걸 읽고 자신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자면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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