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유진 May 03. 2021

먹먹함에도 계속 담아두고 싶은 가족 [파친코]

2권의 아쉬움만 없었더라면 좋았을...

요즘 영화 <미나리> 열풍과 함께 어렵던 시절, 타국으로 넘어가 살아야만 했던 교포들 이야기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이민진 작가가 수십년을 걸쳐 내놓은 장편소설 <파친코> 또한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기에 요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미 해외에선 더 좋은 반응을 얻어왔다.


그리고 올해 연말 즈음, 애플 TV 플랫폼을 통해 드라마로 공개 될 이 작품의 주연 배우는 '이민호'. 그리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빛나는 배우 '윤여정' 선생님이다. 그렇기에 <미나리> 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원작 소설도, 이후 드라마도 큰 이슈가 되지 않을까 한다.



STORY

작품의 배경은 1910년부터 1990년 정도까지. 영도라는 섬에 살고 있던 소녀 '양진' 이 남편 '훈이' 와 결혼한 이후, 여러번 유산 끝에 겨우 만나게 된 딸 '선자' 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후 '선자'를 중심으로 4대에 이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어려웠던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먹먹하게 풀어낸 소설이 <파친코> 다.


파친코

파친코는 도박 게임이다. 한 방의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이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구슬에 돈을 걸고 대박 혹은 쪽박을 맞이하는 운명의 게임. 광복 전후를 기점으로, 일본에서 살고 있던 조선인들은 많은 차별을 받아왔으며 정식 직업을 얻기 힘들었던 이들은 생계를 위해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란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어둠의 세력 '야쿠자' 같은 이들과 엮일 수 밖에 없으며 이는 게으르고 불량스러운 조선인의 이미지가 심어지게 된다.


조선인이 뛰어든 '파친코' 라는 사업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 그럼에도 타국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핍박 속에 생계를 위해 택해야 했던 '파친코' 는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굴러갈지 알 수 없는 불명확한 인생을 묘사한다. 그래서 이는 '선자네 가족' 이 무수히 선택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 인생막을 열어가는 것에 비유한 의미라 할 수 있겠다.



먹먹해지는 가족 이야기

꽤나 두꺼운 볼륨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듯 2세대라 할 수 있는 '선자' 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이 작품은 그녀의 부모님,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 손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 가족이 겪어야 했던 풍파를 그대로 서술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였다 해도, 이들 가족이 가혹한 고문을 계속 받는다거나 하는 위험은 없다. 이들에겐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우울한 현실만 있을 뿐이다.


소설 <파친코> 가 먹먹해지는 이유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떠나 우선 이들 가족이 견뎌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처연하고 아쉽기 떄문이다. 심지어 너무나 순수한 가족이다. 고국 땅에선 민족을 등 진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일본에서는 조센진/자이니치 등의 마이너한 존재로 불리며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다. 굳이 일본과 엮인 이야기가 아니라도, 완전 다른 사상과 환경을 가진 나라로 건너가 생계를 위해 가족이 서로 희생해야 했던 이야기 자체가 서민적이면서 끌린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착하다. 자신의 몫은 전혀 생각치 않은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 사랑으로 서로를 위하고 결점을 보듬어주는 남편과 아내, 부모에게 잘 따르면서 자신들이 커 갈 세상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아이들까지.


특별한 묘사나 장치가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자극적인 높낮이로 이루어진 작품에 길들여진 우리는 이런 평범함에서 오는 감정 변화를 잊게 되었을까. 그렇기에 소설 <파친코> 는 매우 천천히, 가족의 한 명이 되어 철저히 관찰자 시점에서 읽어야만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선자는 사투리를 쓴다. 대화체에서 사투리를 그대로 씀으로써 선자의 감정을 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좋은 선택이었다.



살아나가야만 하는 이들

어디를 가나 텃새는 존재하며, 그것을 한쪽에서 먼저 풀어주지 않는다면 적응해 가야 하는 이들의 하루하루는 그저 잘 버텨나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정작 자신들은 잃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남편 '백이삭' 은 사건에 휘말려 가장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은 안타까운 인물이다.


그러나 그 외의 인물들은 육체적인 어려움 (생계 문제를 제외하고는) 은 없었다. 그들이 힘든건 어쨌든 조선인으로써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 일본 사회에서 정해놓은 한계점으로 인해 아무리 노력해도 누릴 걸 누릴 수 없는 처지. 그렇다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한국은 전쟁 이후로 혼란스럽고 합치된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함께 고생한 가족엑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숙이고 일본인 행세를 하며 조선의 피를 부정해야만 했던 자식 세대. 그들 중엔 비관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쏘아 떠난 아들도 있고, 어쨌든 일본이 만들어 놓은 한계점에서 버텨간 아들도 있다. 일본이 만든 조선인 압박과 한계점은 그들을 마이너한 세계 '파친코' 의 세계로 내몰았고, 결국 일본인 그들도 자신들의 한 방을 위해 마이너한 현장에서 즐긴다.


나와 우리는 누구인가. 자신의 핏줄이 어느 나라의 것인지가 중요한지, 아니면 한 명의 인간으로써 갖고 있는 존엄성이 중요한지. 일본은 전자를 중시했기에 조선인들이 후자를 버리거나 숨길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인정받고 대대로 이어지기 위해선 이 한계점에 맞추어 변형된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박이 날 거 같다 갑자기 빠지다..

먹먹해지는 소설임에도 아쉬움은 있다. 2권은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선자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들 가족이 겪는 상황과 한을 집중한 1권은 너무 좋았다. 이 감정은 2권까지 이어지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이들도 성장했다. 그렇다면 부모 세대가 가졌던 사상과 자식 세대가 바꾸고자 하는 세계의 갈등이나 조합이 더 길게 풀어질거라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2권에선 이들 가족 자체 보다는, 구성원 한 명씩 엮이게 되는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워낙 등장 인물이 많다보니 그들의 개별 사정도 다 들어줘야 하고, 그 이야기들이 모두 2권 초반까지 봐 왔던 선자 가족의 감정선이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도 많다. 그러다보니 정작 선자 가족 보다는 이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로 볼륨을 채운듯 하여 연결점이 희매해졌다는 점이 아쉽다.

실제로 1권 목차를 보면 시대별로 구분이 되어 있다. 그러나 2권 목차는 시대 구분이 없다 (물론 본문엔 있지만). 왜 그랬을까. 시대의 급변 때문이었을까, 2권에서 성장한 가족의 이야기는 앞과는 달리 4,5년 이상의 시간을 훌쩍 넘어가며 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신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길어져 공감대와 감정선이 무너진다.


그리고 급작스럽다. 예를 들어, 선자의 아들로써 정체성 문제로 가장 큰 감정을 끌고 갔어야 할 '노아'가 급작스레 죽는다거나. 그 이외에 급작스레 죽는 인물들이 많고, 그만큼 사건도 많은데 이는 신규 캐릭터에게 풀어야 할 이야기 때문에 기존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인물들을 급작스레 쓸어버렸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아마 많은 독자들이 2권이 아쉽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손자, 증손자인 3~4세대로 갈 수록 먹먹한 감정은 연해지다 뜬금없는 근현대사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꼭 읽어보길 추천하는 이유는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먹먹함을 경험해보라는 진부함 때문이다. 뭐가 나올진 알 수 없는게 인생이라지만 이렇게 한 가족을 4세대에 걸쳐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을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곧 윤여정 선생님의 버프로도 연말에 유명해질 작품 <파친코>.


격동 속에서 어렵게 살아야만 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에 공감해보는건 어떨까. 천천히.


먹먹함에도 계속 담아두고 싶은 가족 (★★★★)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의 본질을 갖춘 러브 판타지 - 덧니가 보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