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슈퍼맨은 될 수 없다.
삶이 너무 별거인 것처럼 나를 압도하는 때가 있는데, 그게 또 한 번 나를 찾아왔었다.
너무 큰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작은 것을 나누고 소소한 것에 행복해하는 법을 잊어버린 내가 다시 그것을 찾기 위해 생각한 방안은 봉사활동이었다.
쿠알라룸푸르에 거주하고 있어서 주변국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고 이동 시간이 짧아 오고 가기가 용이하다.
라오스 아주 시골 마을에서 고아원을 짓고 계신 분을 알게 되어 volunteer 문의를 드렸는데 아직은 공사가 진행 중에 있고 초기 단계라 아는 지인들에 한에서 봉사자를 받고 있다고 했다. 아쉽지만 좀 기다려 보기로 하고 지냈더니 25년이 다 가있었다.
연말에 다니는 교회 청년부에서 치앙마이로 봉사를 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연초에 몰려있는 여행 계획이 많아(5월 전까지 오사카, 시드니, 멜버른, 상하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부담이 되기도 하고 멤버들과의 친분도 깊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지만 봉사활동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가기로 결정했다.
치앙마이에 랜딩 하자마자 근처 몰에서 밥을 먹고 바로 학교로 갔다.
가서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우리가 준비한 것이 그 아이들을 위한 것이 맞나. 가기 전부터 걱정이 되었다.
영어로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알려주고, 페이스 페인팅과 비즈 만들기, 게임을 준비해 그날 하루를 이벤트처럼 보내주었다.
우리가 준비한 것들은 작은 것인데 아이들은 큰 것을 받은 마냥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그날 한 아이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이런 이벤트를 받게 해 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표현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눈이 너무 맑고 순수했다. 나는 이런 눈빛을 언제 가져봤을까.
태국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있다. 봉사를 간 학교 아이들은 소수민족 아이들이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어려운 가정 형편에 있고, 보통 한부모 거나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이곳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신다. 아무래도 소수민족 언어와 태국어를 하지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한계가 있고 또 교육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얻은 것이 많았다.
나는 'giver'의 위치로 이 봉사에 참여했지만 그날의 'beneficiary'는 나였다. 아이들이 주는 눈빛과 웃음, 그리고 사랑이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순수함을 배웠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그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모든 세상 사정에 다 관여할 수 없고 모두를 위한 슈퍼맨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만나고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과 그들의 세상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더 행복할 수 있고 더 좋은 성장을 이룰 수 있고 불확실한 세상이지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온갖 핑계를 대며 자기 배만 불리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바라보고 안을 수 있는 품이 생긴다는 걸. 그 또한 필요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살아보니 이기적으로 살려고 해도 누군가를 돕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함께 살아내는 삶'이란걸 알았다. 그것이 곧 '나를 위한 삶'이라는 것. 이 모든 게 다 직결된다는 세상의 절대적 이치를 알아버려 삶이 가끔은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훨씬 능가할 만큼의 행복과 채워짐이 있다는 거. 그걸 모르고 살아가는 삶은 '반만 경험하고 반만 아는 삶'이 아닐까.
나는 내가 만나게 되는 별들에게 작은 우주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감사하다.
왜냐하면 나 또한 우주가 되어준 이들 덕분에 우주의 한 부분이 되어 결과적으로 우주가 되었으니.
나의 별들에게 작은 우주가 될 기회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삶은 내가 그들에게 슈퍼맨이 되어주는 것보다 훨씬 더 필요한 일인 것 같다.